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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나 그리고 새로운 여유"
"길에 오르면 자기 영혼의 무게를 느끼게 된다. 무슨 일을 어떻게 하며 지내고 있는지,
자신의 속 얼굴을 들여다볼 수 있다. 여행은 자기 정리의 엄숙한 도정이요.
인생의 의미를 새롭게 하는 그런 계기가 될 것이다."
법정 스님이 한 말이다.
살면서 자기 영혼의 무게를 느끼기란 쉽지 않다.
하늘 한 번 올려다볼 일 없는 바쁜 일상,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또 내일 같은 경쟁사회를 살면서
나를 돌아본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유일하게 나의 내면과 여유 있게 만날 수 있는 시간이 휴가다.
산으로 들로 나가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모처럼 내게 주어진 시간을 독서와 함께 보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여행지로 떠나면서 가방 속에 책 몇 권 넣어가지고 떠나자.
바쁜 생활 속에서 독서는 멀리 있는 일일 수밖에 없다.
직장 동료나 이웃 중 돈을 내고 서점에서 책을 사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지 생각해보자.
책을 구입한 적이 있다면 어떤 책을 구입했는지 물어보자.
아마 생활에 직접 필요한 실용서 몇 권 사는 게 전부였을 것이다.
유럽 어느 공사장에서 점심시간에 햄버거를 먹는 잡역부가 뒷주머니에서 철학책을 꺼내 읽더라는 이야기는
우리에겐 너무나 먼 가설일 뿐이다.
하지만 휴가 때만큼은 뒷주머니에서 철학 책을 꺼낼 수 있지 않을까.
휴가는 평소에 읽을 수 없는 책을 만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간이다.
책을 읽는 모습처럼 아름다운 모습은 없다.
파란 잔디밭에서 혹은 나무그늘 밑에서 가느다란 손에 책을 들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보는 건 늘 흐뭇한 일이다.
독서에 몰입하고 있는 사람의 모습은 `평화`를 떠올리게 한다.
그 모습에서 갈등과 괴로움은 느껴지지 않는다. 오로지 자기 자신과 만나고 있는 초월의 모습만이 있다.
르누아르를 비롯한 내로라하는 화가들은 책 읽는 사람의 모습을 즐겨 그렸다.
그 자체가 하나의 완성된 인간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일을 하거나, 밥을 먹는 사람의 모습에서는 욕심이 드러난다.
하지만 책을 읽는 모습은 현실의 욕망과는 거리가 있다.
독서는 세상과 거리 두기의 한 방법이다. 무엇이든 너무 가깝게 있으면 본질이 보이지 않는다.
긴 시간 일에 파묻혀 세상과 너무 가깝게 살았다면 휴가철에는 거리 두기를 해보자.
내가 어디쯤 있는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도 한 번 고민해보자.
빌 게이츠는 "어린 시절 고향마을에 있던 작은 도서관이 나를 만들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전공분야가 아닌 역사나 사상에 관한 폭넓은 책읽기를 바탕으로 세상을 앞서 갈 소프트웨어의 필요성과
구조를 고민해냈다. 만약 그가 단순한 엔지니어였다면 그는 실리콘밸리에 넘쳐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월급쟁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세상을 바꿨다.
책은 당장은 아무런 무기가 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흐르면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다.
바꾸어 말하면 가장 강력한 무기를 장착할 수 있는 시간이 바로 휴가인 셈이다.
휴가철을 맞아 경제ㆍ경영을 비롯해 인문, 문학, 역사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읽을 만한 책을 소개한다.
휴가를 끝내고 돌아왔을 때 뭔가 뿌듯한 기분을 느끼고 싶다면 여행가방 속에 책을 넣어가는 걸 잊지 말자.
"디즈니가 몇 차례 위기를 극적으로 넘긴 것은?"
(세계 대표적인 혁신기업 디즈니 분석)
슘페터는 기업의 혁신과 관련해 “성공을 이룬 모든 기업은 어느 한순간에만 기업가적이었다”고 주장했다.
혁신을 앞세운 기업가 정신을 유지하기가 그만큼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의 월트디즈니그룹은 대표적인 혁신 기업이다.
월트 디즈니와 로이 디즈니 형제가 미국 LA에서 창업한 지
올해로 90년을 맞지만 아직까지 세계 최고 최대의 콘텐츠 기업으로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디즈니의 사업 영역은 엄청나다.
영화, TV, 홈비디오 제작·유통, 테마파크, 출판, 음악 등
거의 모든 콘텐츠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디즈니는 기술의 발달 등 사업 환경이 변할 때마다
시대적 트렌드를 놓치지 않고 선두에서 계속 새로운 걸 시도해왔다.
‘선진국 10억명 인구가 디즈니 속에서 태어나 디즈니 속에서 살다가 죽는다’
‘나이를 먹지 않는 왕국’ 등의 말은 디즈니의 혁신 DNA와 생명력을 가리키는 말이다.
디즈니는 몇 차례의 위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혁신을 앞세워 위기를 돌파해 왔다.
디즈니의 과감한 도전은 1995년 픽사(PIXAR) 스튜디오와 손잡고
최초의 컴퓨터 애니매이션 ‘토이 스토리’를 제작한 데서 잘 드러난다.
창립 이래 줄곧 사람이 그리는 애니메이션만 만들어온
디즈니 스튜디오로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디즈니는 직원들에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가르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실패를 통해서 창의와 혁신을 키운다는 것이다.
앤디 버드 월트디즈니 인터내셔널 회장은
디즈니의 인재 관리 방식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우리는 사람들의 창의성이 발현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한다.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혁신을 하도록 격려한다.
그리고 실패는 오히려 장려된다.
계속 최고 자리에 머물 수 있으려면 혁신적이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수없이 많은 실패를 경험해야 한다.
디즈니는 직원들로 하여금 빨리 실패하도록 한다.”
디즈니의 혁신의 역사에는 혁신의 경영자들이 등장한다.
앤드 버드 회장에 따르면, 창업가 월트 디즈니부터 ‘창조자(creator)’였다.
앤드 버드 회장은 “월트는 발명가였고 혁신가였으며 창조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혁신과 기술이라는 서로 다른 두 부분을 결혼한 부부처럼 한 몸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말했다.
배운 것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그림을 그려야 했던 학습장애 소년은
상상력을 상품으로 만들었고 사람들에게 ‘꿈’을 팔았다.
월트 디즈니의 사업가적 기질은 2차 대전의 위기 상황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1937년, 전시 경제상황에서는 엄청난 금액인 149만9000달러를 투자해
첫 애니메이션 영화인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만들었다.
당시 디즈니는 미국이 2차 대전에 참전하면서 시설과
인력의 94%를 정부 홍보영상을 만드는 데 동원했지만
나머지 시설과 인원으로 코미디와 만화영화를 만들었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콘텐츠가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었고 이는 적중했다.
그는 1950년대 기존의 놀이공원과는 완전히 다른
‘테마파크’를 만들면서 ‘이매지너(imaginer)’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디즈니의 기술자들이 놀이공원 모든 곳에 상상력을
불어넣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만들어낸 말이다.
지금도 디즈니 그룹에서는 엔지니어라는 말 대신 이매지너라는 말을 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디즈니의 도전은 90년의 역사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1928년 최초의 만화 캐릭터인 미키마우스를 선보인 디즈니는
1930년대 미키마우스 클럽을 탄생시키면서 캐릭터 관련 상품과 서적 등을 팔기 시작했다.
지금도 엄청난 부가가치를 올리고 있는 디즈니 캐릭터의
‘원 소스 멀티 유스(One source multi-use)’의 전범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어 1940년대에는 라디오 방송을 시작했고, 1950년대에는
TV 방송과 함께 장편 애니메이션 제작과 테마파크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1980년대 디즈니는 닌텐도 게임의 열기를 놓치지 않고 게임사업에 뛰어들어 사업을 확장했다.
지금도 월트디즈니그룹 산하의 디즈니 인터랙티브 미디어그룹은
온라인, 모바일, 비디오게임을 망라하는 사업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이어 1990년대 들어서는 미국 3대 공중파 방송사 중 하나인 ABC 등을
잇따라 인수하면서 방송 제국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현재 디즈니는 여러 사업 분야 중에서도 방송과 인터넷을 아우르는
미디어 네트워크에서 가장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ABC를 비롯해 어린이 전문 방송 ‘디즈니 채널’ ‘ABC 패밀리’ ‘SOAPnet’ 등의 채널과
‘스테이지9디지널 미디어’ 등의 제작사, 그리고 ‘라디오 디즈니 네트워크’ 등을 갖고 있다.
ABC가 8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스포츠 전문방송 ESPN도 디즈니 소유다.
현재 ESPN의 가치는 1996년 디즈니가 ABC 인수를 위해 쏟아부은 190억달러 이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러한 디즈니의 도전사에서 위기에서 일으켜 세운 혁신의 경영자로 평가받는 사람은
1984년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른 마이클 아이즈너다.
그는 영화사업에 진출했다가 위기를 맞은 디즈니를 다시 애니메이션 왕국으로 돌려놓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단순한 과거로의 복귀가 아니라 혁신이 가미된 변신이었다.
그는 단순한 아이들 취향의 만화영화 스튜디오였던 디즈니를
‘종합엔터테인먼트 미디어그룹’으로 탈바꿈시켰다.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라이온킹’ 등의 히트작을 쏟아낸 것은 이러한 청사진이 뒷받침된 결과였다.
하지만 20년간 CEO로 군림해오던 아이즈너는 독선적 경영과 주주들과의 불화 끝에
2005년 로버트 아이거 현 CEO에게 자리를 물려줬다.
디즈니의 중단 없는 성장을 이끌고 있는 현재의 로버트 아이거 CEO 역시
디즈니의 혁신 DNA를 물려받은 경영자로 평가받는다.
그가 CEO에 오른 뒤 처음으로 한 일은 픽사 스튜디오의 인수였다.
픽사 스튜디오는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나 있을 때 설립한 회사로,
디즈니의 최대 경쟁자로 평가받는 애니메이션 제작 업체였다.
하지만 아이거와 잡스는 디즈니의 픽사 인수라는, 74억달러짜리 M&A를 이끌어냈다.
이 과정에서 잡스는 디즈니의 지분을 확보해 주주가 됐다.
테크놀러지에 관심이 많은 아이거는 이후 디즈니의 TV물을
애플의 아이팟에서 볼 수 있게 하는 등 플랫폼 혁명도 이끌어냈다.
그는 또 ‘위기의 주부들’ ‘로스트’ ‘그레이 아나토미’ 등 TV 시리즈물에서 잇단 히트작들을 만들어냈다.
디즈니는 아이거의 도전이 성공하면서 최근 실적에서도 상종가를 이어가고 있다.
2011년 408억9300만달러의 매출액에 88억2500만달러의 순익을 내
매출액과 순익 면에서 모두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한 디즈니는
지난 1분기에도 순이익 15억달러를 기록해 지난 동기보다 32% 증가했다.
"나이들어야 알게되는것"
어떤면에서 인생은 등산과 비슷한점이 많다.
산 아래에선 주변밖에 볼수없지만 높이가 달라질때마다 시야는 넓어지고 그만큼
전에는 보지못했던 먼곳까지 볼수있다.
인생이 70을 넘으면 산의 7부능선에 서는것과 같고,
이어 8부능선에 가까우면 시야는 더 넓어진다.
나이든 사람들의 체험적인 지혜는 그래서 놀랍고 소중하다.
산 아래에 있을때는 알지도 못했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들에 대해 깨달음이 오는 것이다.
그래서 나이들면 생각을 바꾸게 되는게 많다.
아집과 고집을 버리게 되고 세상이치에 순응하는 진지한 자세가 되는게 그 때문이다.
20, 30대는 자기가 중심이 되어 자기기준대로 세상을 재단하지만 나이가 들면 그게
크게 경솔 했던 것임을 알게된다.
그래서 세상에는 나이가 들어야 비로서 알아지는 일들이 아주많다.
마음을 비우고 자세를 낮추면 더 많은것을 보게되고 깨닫게 된다.
나이들어 가장 분명하게 깨닫게 되는 일중의 하나가 값과 가치를 나누어 볼줄 알게되는 점이다.
우리모두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값-돈을 위해 써오고 있다.
사실 현실적인 일상을 살려면 돈-경제력은 필수적이다.
그런데 나이들어 문득 생각해 보면 인생을 결코 돈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값은 물건을 사고팔 때 주고받는 돈이다.
가러나 가치(價値)는 사물과 일의 중요성이며 그 깊은 의미다.
값은 육신의 일상이지만 가치는 내 인생의 의미라고 할수있다.
누구든지 나이들면 살아온 길을 되돌아 보게되고 남은 여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다.
값만을 위한 인생과 가치만을 위한 인생은 없다.
두가지는 늘 같이 있는것 이지만 인생을 어떻게 살아왔는가의 결판은 가치에 있는게 사실이다.
값에 탐닉할수록 가치는 엷어진다.
그리고 가치를 찾을수 없는 인생은 ‘허망함’ 그 자체라고 할수있다.
인간은 태어날때부터 선하다.
아니다 인간은 태어날때부터 악하다.
성선설과 성악설은 끝까지 평행선일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후천적 환경요인에 의해 ‘인격’이 형성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데 있어 교육은 절대적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산다는것은 태생적 본능을 스스로 조절하는 능력이 있다는 의미다.
그 능력은 교육에 의해 길러지는것 이기도 하다.
도덕, 윤리가 그런 덕목들이다.
언제나 인성교육이 강조되는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깨달아 알아지는것은,
인간은 그 성정(性情-성질과 심성, 타고나는 본성) 이 선한사람고 악한사람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이론적이기 보다는 체험적인 얘기다.
분명 우리주변에는 더 선한 사람도 있고 더 악한 사람도 있다.
한가지 분명한것은 아직까지는 악한 사람보다 선한사람이 더 많다는 점이다.
그래서 희망적 이기도 하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 정말 자유로워 진다.
이때의 자유는, 남과 나를 비교하는 일 에서의 자유다.
어릴때나 젊었을때는 늘 남과 나를 비교하고 시샘하고 질투하게된다.
사실 그런 심리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
자기발전을 위해 분발하고 더 노력하는 순기능도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교는 스트레스이고 무거운 짐이다.
나이들면 그 비교가 사라진다.
단, 그러기 위해서는 속에 ‘내것’ 을 분명히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인생관 이라해도 좋고, 자기철학이라고 해도 좋다.
남과의 비교에서 해방되면 비로서 자기가 행복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된다.
특히 물질적인 것들의 비교에서 더 그렇다.
더 가졌다는 것은 ‘편리함’ 이지 행복 그 자체는 아니다.
왜냐하면 행복은 주관적 느낌이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음악을 들으면서 느끼는 진정한 행복은 인간이 가지고있는 재산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비밀을 알고나면 더 자유스럽다.
나이들어 좋은점중 이만한것도 많지않다.
노년에 받는 큰 선물이기도 하다.
노년건강이 중요하다는것은 모두가 너무나 잘 알고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실제로 노년을 살아보면 이 문제는 생각보다 더 심각하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것이다.’
그건 정말이다.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다해도 건강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긴병에 효자없다는 말은 사실이다.
특히 나이들어 병이 깊어지면 가족에게도 큰 짐이된다.
본인의 괴로움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사람들은 건강관리와 병치료를 혼동하고 있다.
병치료는 글자그대로 치료다.
그러나 건강관리는 ‘건강한 상태’ 를 유지, 관리하는 것이다.
노년의 건강은 젊어서 부터의 연장이다.
따라서 건강관리는 젊었을때, 건강할 때부터 시작하는게 옳다.
노인들의 70%이상이 한가지 이상의 지병이 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몸은 비록 늙어 노쇠해진다 해도 그 기본에서 건강하면 그게 바로행복이다.
노년건강이 다른 모든 것보다 우선이라는 사실은 전혀 변함이 없다.
주변을 살펴보면 뜻밖에 어리석은 노인들이 많다.
생각을 잘못했기 때문에 그 노년이 비참해진 경우가 그렇다.
‘나이들어 돈 없으면 죽은목숨이다.’
이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경험자들이 쏟아낸 아픈 절규이기도 하다.
현역 이었을때의 재산을 기준한다면 그 노년에 큰 문제는 없다고 할수있다.
그런데 어리석은 이 늙은이들이 자식 뒷바라지 한다고 학비대주고, 용돈주고,
결혼비용까지 대 주다보니 정작 자기들은 알거지가 된 것이다.
그렇게 키운 자식들은 한결같이 그 부모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다.
잘해준 자식일수록 전화도 안한다.
그게 지금의 험악하고 사악한 세상이다.
이게 모두 남의 얘기일까,
어느날 알거지가 된 자기를 발견하는건 이제 아주 흔한일임을 명심해야 된다.
늙어 빈손이 되면 달리 방법이 없다.
그렇게 허우적 거리다 쪽방에 누워있는 하나의 구(具)가 되는 것이다.
나이를 먹으니 이상하게도 주변에서 그런 어리석고 불쌍한 늙인이들을 많이 보게 된다.
안타까운일이 아닐수 없다.
노년에서 가장 무서운 적은 물리적 으로는 ‘돈없음’ 이지만,
내용적 으로 가장 큰 적은 무료(無聊)다.
무료는 재미있는 일이 없어 심심하고 지루한 것이다.
무료는 노인들을 더 빨리 늙게하고 지치게 한다.
노인정에 나가고, 공원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전철을 타고 돌아다녀도 없어지지 않는게 바로 이 무료다.
그런 방법으로는 무료를 극복할수 없다.
어느날 저녁시간,
가까이에 있는 공원에 산책을 나갔는데,
어디에선가 팬 파이프의 아름다운 소리가 들려왔다.
가까이 가 보니 노인한분이 가로등이 비치는 나뭇가지에 악보를 걸어놓고 연습하고 있었다.
얼마나 연습에 몰두했는지 사람이 가까이 가는것도 모를 정도였다.
무료를 스스로 극복하는 케이스의 하나일 것이다.
사실, 나이들어 무엇인가를 새로 시작 한다는것은 결코 쉬운일은 아니다.
그래서 미리미리 뭔가를 시작, 대비해야 된다.
내가 나이 70에 클라리넷을 내려놓고 바로 첼로를 시작한것도 그 때문이다.
목관보다 현악기는 아주 어려웠다
그러나 바하의 아름다운 메뉴엣을 연주하면서
느끼는 행복은 돈으로는 절대 살수 없는것이다.
노년이 주는 선물인 것이다.
인간은 나이가 들면 비로서 보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물론 그렇지 못한 노년도 많다.
보이는것들은 보이지 않는것들의 표상이다.
젊었을땐 그걸 알아보는 눈이 없다.
지금의 나를 지탱해 주고있는건 보이는 것들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내용’ 이 나를 존재하게 하는것이다.
보이는것들은 닳아서 없어지지만,보이지 않는것들은 그래서 영원하다.
사색, 이념, 자기철학, 이데올로기, 종교가 모두 보이지 않는세계다.
지금세대는 모두가 오직 보이는것을 얻기위해 무섭게 질주하고 있다.
‘속도’ 는 반드시 ‘깊이’ 를 잠식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속도와 편리에 함몰된 인생은 나이들었을때
자기를 안에서 지탱해줄 정신적 지주를 가지기가 어렵다.
겉은 멀쩡해도 그 속은 텅빈, 깡통인생은 널려있다.
그 정신이 살아있는 노인들은 행동도 민첩하다.
스스로, 안팎으로 자기를 계속 연마하기 때문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균형을 잡을줄 하는 현명한 노인들이 바로그들이다.
인간은 그게 누구든 결국은 혼자다.
그래서 ‘고독연습’ 이 필요하다.
혼자있을때 강한사람이 정말 강한사람이다.
나이들면 혼자인 시간이 많아진다.
근력이 달려 출입이 어려워 지고 친구들도 하나둘 떠나고나면 혼자 남는것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한 인간의 인간적 성패는 그때 결판난다.
혼자임을 견디지 못하면 진 것이다.
그러나 혼자일때 더 정진할수 있다면 이긴것이다.
그래서 혼자일때 ‘나’ 를 받쳐줄 내용들을 단단히 만들어 놔야 한다.
대표적인것들이 책, 음악, 취미생활이다.
악기를 연주하고, 글을쓰고, 공부하고, 운동만 꾸준히 할수있어도 고독은 오히려 친구가 된다.
혼자있는, 간섭이 없는 그 조용한 시간을 오히려 나를 위해 적극적으로 사용할수
있다면 고독은 충분히 극복할수있다.
지금의 나는 오히려 고독을 즐기는 편이다.
음악을 크게 들을수 있고, 영화도 마음껏 감상할수 있기 때문이다.
거듭 말 하지만 인간은 결국 누구나 혼자가 된다.
이 사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준비한다면 충분히 극복할수 있다.
그래서 ‘고독연습’ 이 필요하다.
무상(無常)이라는 말이있다.
덧없다는 뜻이다.
덧없다는 우리말은 너무 순간적 이어서 허무하다는 의미다.
다른 하나는 보람이나 쓸모없이 헛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생이 무상하다는 말은 나이가 들기전에는 그 의미를 깨달아 알기 어렵다.
그러나 나리를 먹으면서 그 깊은 의미를 알게된다.
불가(佛家)의 큰 가르침중 하나가 ‘집착’ 하지 말라는 것이다.
온갖 번뇌가 집착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노욕(老慾)은 그래서 악이다.
허무주의에 빠지자는 얘기가 아니라 지금의 집착이 큰 의미가 있는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왜 인생은 무상한다.
그답은, 모두가 결국은 죽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죽음보다 더 공평한게 달리 있겠는가.
죽음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는 길이다.
죽은이를 염하는것을 보면 입고가는 수의에 주머니가 없다.
다 두고간다는 얘기다.
그래서 생사는 하늘의 섭리라고 한다.
우리들의 악은 영원히 살것처럼 집착하고 교만해지는데 있다.
결국은 나도 죽는다는 사실을 받다들인다면 사는 방법도 달라질 것이다.
그래서 매일매일을 더 진지하게, 선하게 , 인간답게 살아가야 한다.
겨울에 추운집은 여름에도 덥다.-한국격언.
--박천복--
"민계식 前회장이 카이스트 대학원생들에게 불같이 화를 내며 大怒했다는데…(두번째 이야기)"
민계식 전 현대중공업 회장의 이력은 그 자체로 ‘입지전(立志傳)’입니다.
미국 유학시절 미숙아를 둔 가장(家長)이라는 힘겨운 짐을 지고 고학(苦學) 끝에 MIT 박사가 됐고,
귀국해서는 대우조선을 거쳐 현대중공업(CEO) 최고경영자로서
‘대한민국 조선산업 세계 1위’을 만들고 수성(守成)까지 했습니다.
울산의 현대중공업에서 일할 때 민 전 회장은 거의 매일
새벽 2~3시까지 일하고 일주일에 하루이틀은 아예 밤을 샜다고 합니다.
덕분에 국내 재계 순위 10위 안에 드는 대기업을 경영하면서도
웬만한 공대 교수들보다 많은 300건의 특허를 출원하고 280건의 기술논문까지 쓸 수 있었습니다.
그와 함께 일했던 중역들에 따르면, 민 전 회장도 낮엔 잠깐씩 눈을 부치긴 했다지만
이런 생활패턴을 22년간이나 이어갔다고 하니 강철 체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2011년 12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민 전 회장은 올해 KAIST 해양시스템공학전공 교수와
시민단체인 '선진사회만들기연대'의 공동대표를 맡으면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1942년생, 올해로 71세인 그가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할 수는 그 체력의 비결은 뭘까요?
71세인 지금도 매주 이틀은 10㎞이상씩 달리기, 토스트와 우유로 少食
먼저, 달리기입니다.
울산에 있을 때 그는 매일 조선소 방파제 위를 10㎞씩 뛰는 걸로 유명했습니다.
지금도 일주일에 이틀은 달리기를 한다고 합니다.
한번 뛰면 기본이 10㎞입니다.
그의 분(分)당 심박수는 '산소 탱크' 박지성과 이봉주 수준인 40입니다.
덕분에 겨울에도 두터운 외투를 잘 안 입는다고 합니다.
다만 장갑은 꼭 끼는데 “심장이 적게 뛰어 피가 말단까지 잘 안 돌아서 손발이 차기 때문”입니다.
둘째, 그는 술·담배를 전혀 안 합니다.
담배는 그렇다치고, ROTC 장교 출신에 대기업 중역과 CEO로 33년을 산 사람이 어떻게 금주(禁酒)를 실천했을까요.
그가 장교시절 고공낙하 등 공수특전 훈련을 마치면 연대장부터 일렬로 서서 각자 소주 한병씩을 들이켰다고 합니다.
“그럴 때면 병을 입에 갖다대고 ‘후’하면서 마셨어요.
군복 속으로 소주가 콸콸 쏟아지는데 상관들은 ‘민 소위 술 못한더니 잘하네’라고 했죠.”
현대중공업 중역 회식 땐 정주영 회장이 폭탄주를 돌리면 두 잔까지는 어떻게라도 마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고 몇번 정신을 잃었더니 정 회장도 그에게만큼은 술을 안 권했다고 하네요.
셋째 소식(少食)식입니다.
KAIST 연구실에서 그를 인터뷰를 할 때 접시 위에 은박지로 싼 조그만 뭉치가 있길래 ‘뭐냐’고 물었습니다.
땅콩잼을 바른 토스트 한장이었는데 여기에 바나나 한 조각, 우유 한 잔을 더한 것이 그의 저녁이었습니다.
현대중공업에서 밤늦게 일할 때도 비서가 만들어 놓고 간 토스트 한 장과 우유 한잔이 그의 만찬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육식을 잘 하지 않습니다.
달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릴 적부터 소를 무척 좋아했다는군요.
“시골에 가면 소뿔을 잡고 그 이마에다 얼굴을 부벼대며 놀았어요.
덩치 큰 소가 눈만 껌뻑껌뻑하면서 가만 있어요. 얼마나 착해요. 근데 그걸 고기를 먹겠다고 잡는 게 싫었어요.”
민 전 회장은 그래서 은퇴 후에 한때 소고기를 인공으로 합성하는 사업을 구상했다고 합니다.
그는 “고기라는 게 화학적으로 보면 질소가 주고 탄소·수소 등으로 이뤄진 것”이라며
“공기 중에 많은 질소와 공해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에서 탄소를 추출해서
인조 고기를 만들자는 생각이었다”는 것입니다.
민 전 회장은 “소는 메탄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데
이 가스는 이산화탄소보다 지구온난화에 20배나 더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소는 풀밭에서 노는 거나 보고 먹기 위해 대량으로 사육하고 도살하는 것은 하지 말자는 것이죠.
소고기뿐만 아니라 돼지고기·닭고기를 만들고 지구상에 없는 고기도 합성하고 싶었다는 건데요.
그는 “3년 정도 이 분야를 연구한 다음 10년은 산업화해서 후세들에게 물려 주고 가자”는 생각으로
틈틈이 논문을 뒤지고 비슷한 연구를 하는 곳을 샅샅이 찾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 세계 어디에도 그런 주제로 연구를 하는 데가 없었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식품가공학 교수나 전문가한테 물어보면 ‘미친 소리한다’는 반응 뿐이었습니다.
그는 “미국의 대학 한 곳에서 닭고기 비슷한 걸 합성했다고 들어 반가운 마음에 메일을 보내 알아봤더니
두부로 고기를 만드는 수준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꿈을 접고 말았다는군요.
세번째 이유가 좀 길어졌습니다만, 그를 강철로 만든 마지막 요소로 ‘열정’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과거는 접어두고 지금 현재만 봐도 그렇습니다.
민 전 회장은 유명 대학에 석좌교수 등으로 적(籍)만 걸어놓은 채
1년에 한 두번 특강 하는 명사(名士)들과는 달리 맡고 있는 일 하나하나에 열정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美MIT대학원 문제보다 쉽게 다섯문제를 출제했더니 평균 점수가…
올해 1학기 KAIST에서 강의한 ‘해상풍력에너지’라는 과목은 석·박사 과정을 상대로 한 정식 공학 수업입니다.
강의 준비를 위해 그는 미국 UC버클리와 MIT 유학시절에 썼던
엄청난 분량의 강의 노트들까지 가져와 수업 준비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올해 정교수로 부임하기 전엔 학점을 주는 세미나를 맡았습니다.
그때 UC버클리와 MIT에서 초급 대학원생이 배우는 내용을 더 쉽게 바꿔 5개 문제를 출제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평균 80점 정도가 나오는 문제여서 최소 그 이상의 성적을 기대했다고 하는군요.
기대와 달리 KAIST 학생들의 성적은 평균 30점 정도였다고 합니다.
채점한 시험지를 나눠주고 정답을 풀어주는 자리에서 그 얘기를 하려고 했지만
학과 측에서 “학생들이 실망할 수 있으니 제발 참아달라”고 해서 그만뒀다고 합니다.
민 전 회장은 “학생들이 베이식(basic)한 컨셉을 이해하는대신 그냥 암기하는 건 아닌지”라고 걱정하더군요.
한번은 강의를 하다 크게 화를 내고 강의실을 박차고 나간 적도 있다고 합니다.
학생들에게 “현대중공업 CEO 때의 일을 포함해서 궁금한 것이 있으면 뭐든 마음껏 질문해보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어떤 기업, 종목에 투자하면 좋겠느냐”는 식의 질문만 잇따라 하더라는 겁니다.
성질 급한 민 전 회장은 “질문 같은 질문 좀 하거라, 이놈들아!”라며 버럭 화를 내고 만 것입니다.
그는 보수 시민단체 대표를 맡아 “칼럼을 써 언론에 돌리는 정도로 해서는 절대 변화를 만들 수 없다.
우리와 생각이 비슷한 젊은 대학생들을 포섭하자”는 등의 적극적인 아이디어를 내면서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그는 스스로 “나는 굉장히 젊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2003년 북경(北京)대학 총장을 만난 적이 있는데 당시 그의 나이가 79세였어요.
또 미국 해군연구소에는 지금도 논문을 쓰는 91세 현역이 있습니다.
그에 비하면 나는 청년이에요.”
어떴습니까?
제2, 제3의 파이팅 인생을 열어가는 71세 청년 민계식 박사님 멋지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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