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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 07
#.1 씬. 수찬의 집 전경. (밤)
덕길 : (E) 그람 우린 워디로 간다냐?
#.2 씬. 수찬의 집 거실. (밤)
수찬, 멍한 표정으로 앉아있고, 덕길 그 앞에 앉아서 물을 벌컥 벌컥 들이키는.
고니, 테이블 밑에 앉아서 테이블에 턱을 괴고 어른들을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지켜보는.
왔다 갔다 하면서 덕길이 마시고 있는 물을 뺏아 마시는 윤희.
윤희 : 그럼 완전 거지잖아요? 집도 없어, 차도 없어, 직업도 없어.
덕길 : (자신이 마시던 컵을 아무렇지도 않게 마시는 윤희를 얼굴을 붉히고 보는) 지가 마시던 것인디......
아무도 덕길의 말에 신경 쓰지 않고.
윤희 : 난 제비짓으로 ....(순간 고니 눈치 보고) 아니 픽업 아티스트로 돈 좀 꽤 모았나보다 했더니.
덕길 : 픽업, 뭐요?
윤희 : 이 양반이 하는 그 일을 전문 용어로 그렇게 부르거든요.
고니 : 제비짓을 영어로 그러코롬 부르는갑네요.
윤희 : (헛기침하고) 그러니까 지금까지 해놓은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거네?
수찬 : 집에 좀 가지?
윤희 : 친구가 길바닥에 나앉게 되서 걱정이 되서 와 있는 사람한테.....
수찬 : 안 고맙거든.
덕길 : 아니, 너 선배란 그 양반도 그려. 맘 놓고 살라고 맡겨놨으믄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살게 해줘부야제.
하루아침에 나가라는 것은 뭔 경우간디.
수찬 : 사택이잖아. 회사 소유 주택이라구.
미국 파견 근무 나가면서 나더러 와 있으라고 한 건데, 다른 회사로 옮기게 됐다잖아.
덕길 : 아니, 사정이야 워쩌케 디얏든, 그려도 후배가 길바닥에 나앉게는 만들지 말아야 할 거 아닌가.
(윤희에게) 그럼 이 동네 집들이 다 회사 소윤가요? 윤희씨네도?
윤희 : 그건 아니구요. 다들 장기 융자로 들어와서 융자 다 갚고 소유권 넘겨받은 집도 꽤 되고,
저희는 처음에 분양 할 때 언니가 사서 들어온 거구요.
덕길 : 언니 분이 참 대단하서요. 뭣으루다 그러코롬 돈을 버셨을까나.
윤희 : 세 번 이혼하면서 위자료 챙긴 게 꽤 되거든요. 여행사도 잘 돌아가는 편이고.
수찬 : 지금 반상회들 하나?
덕길 : 아, 시방 우리가 그런 말 할 때는 아니지.
참말 워쩐디야? 시방 집을 비우라고 하믄 우린 워디로 가야 혀는 거다냐?
고니 : 윤희누나?
윤희 : 응?
고니 : 서울 사시니께 잘 아시겄네요. 서울역이 좋당가요? 영등포역이 좋당가요?
윤희 : 뭐?
고니 : 아부지? 라면 박스 같은 거 많이 챙겨가야겄죠? 깔고 자불라믄?
#.3 씬. 수찬의 방. (밤)
수찬, 침대에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안됐다 싶은지, 핸드폰을 찾아드는.
수찬 : 어, 자기? 너무 늦었지? 아니, 자긴 무슨 말을 그렇게.
내가 그동안 논문 준비다 뭐다 정신이 없었다니까. 내 마음 몰라?
자기 보고 싶어서....(덕길 문 여는) 미치는 줄 알았다.
이깟 공부가 뭐라고 자기도 못보고 이렇게 살아야 하나, 그냥 자기 갈비집 카운터나 봐주면서 사는 게
차라리 나은 거 아닌가 그런 생각까지 했다니까. 내가.
요즘도 손님 많지? 내일 시간 어때? 지금이라도 난 괜찮은데.
어, 그래? 그럼 내일 만나지 뭐. 내일 12시에.....응. 알았어. 거기서 봐.
(전화 끊는, 옆에 서있는 덕길 보고 깜짝 놀라는) 아, 뭐야?
덕길 : 뭣하는 것이여 시방?
수찬 : 길바닥에 나 앉을 수는 없잖아.
덕길 : 그려서?
수찬 : 아파트 전세값이라도 만들어 하잖냐구.
덕길 : 그려서?
수찬 : 그래선 뭐가 그래서야? 비빌만한 데는 다 비벼보겠다는 거지.
덕길 : 제비짓으루다.
수찬 : 아, 그 참.
덕길 : 차라리 동냥 그릇 들고 육교 위에 올라가 앉으면 앉았지 그 짓은 그만 혀라.
수찬 : 요새 육교 위에 올라가 앉아있으면 누가 거들떠나 보는 줄 알아?
덕길 : 너 새끼헌티 부끄러운 짓 하지 말란 거여. 너 죽살나게 터지는 거 보고 고니가 울고불고 한 거 못 봤냐?
수찬 : 새끼는 누가 내 새끼라는 거야. 막말로 고니가 내 새끼라는 증거 있어? 증거 있냐구?
덕길 : (뒤통수 갈기는)
수찬 : 에이씨.
덕길 : 그러는 거 아니다. 하늘 무서운 줄 알믄 그런 말 씨부려 대는 거 아니다. (나가려고 하면)
수찬 : 내가 이 문제만 해결 되고 나면 바로 유전자 검사 의뢰 할 거야.
덕길 : (돌아서서 주먹 드는데)
수찬 : (찔끔해서) 확실히 해두는 게 좋잖아.
#.4 씬. 수찬의 집 마당. (밤)
수찬,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내쉬는.
#.5 씬. 덕길의 방. (밤)
고니, 자고 있으면 그 옆에 누워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는 덕길.
#.6 씬. 수찬의 방. (낮)
수찬, 거울 앞에 서서 옷매무새 매만지고, 향수도 뿌리고 정성을 다하고 있다.
#.7 씬. 수찬의 집 거실. (낮)
수찬, 방에서 나오는. 덕길, 걸레질 하고 있다가.
덕길 : (뿌한 표정으로 수찬을 보는)
수찬 : (나가려는)
덕길 : (킁킁거리며) 사내 자슥이 요상시런 냄새나 풍기고, 새끼가 잘 보고 배우겄다.
수찬 : 그 참. 대사 치루러 나가는 사람 김새게.
덕길 : 삥 뜯으러 나가는 것이 뭔 대사는.
수찬 : 집이나 잘 보고 있어.
덕길 : 남의 집 누가 업어가면 대수다냐.
#.8 씬. 버스 정류장. (낮)
수찬, 서있는. 지나가는 택시.
수찬 : (손을 드는데)
택시 멈추면.
수찬 : (아차 싶고) 아닙니다. (가라고 손짓하는)
이 놈의 마을버스는 왜 빨리 빨리 안와. (모든 게 마음에 안 드는 표정이다)
#.9 씬. 공사장. (낮)
덕길, 남자 앞에 서있는.
덕길 : 지가 특별한 기술은 없어도 힘으로 하는 것은 뭐든 자신이 있습니다.
지가 살던 동네에서 구들 놔준 집도 여럿이구요. 지붕 얹어주는 것은 일도 아니구요.
담벼락 고쳐주는 것은 취미 생활루다 뭐 그 정도구만요.
#.10 씬. 준석의 사무실. (낮)
준석, 희섭, 영재 앉아있는.
희섭 : 제일 문제는 관리 직원 수가 부족하다는 겁니다.
준석 : .....
희섭 : (빤히 보는)
준석 : (의아하게 보는)
희섭 : 그런데요를 안하셔서?
준석 : (픽 웃는) 제가 그렇게 그런데요를 자주 합니까?
희섭 : 아니, 그건 아니구요.
준석 : 부족하면 충원을 해야죠. 충원 계획 작성해보세요.
희섭 : 네, 알겠습니다.
희섭, 영재, 나가면. 윤희 들어오는.
윤희 : 점심 준비 하겠습니다.
준석 : 생각 없습니다.
윤희 : 무슨 밥을 생각으로 먹나요?
준석 : (보면) 입맛이 없거든요.
윤희 : 매일 입맛 있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냥 때 되면 먹는 거지.
준석 : 먹고 싶지 않다구요.
#.11 씬. 감자탕집 앞. (낮)
준석, 윤희 걸어오는.
윤희 : 제가 밥 한번 사드리겠다고 했잖아요.
준석 : (올려다보면서) 나, 저런 거 못 먹어요.
윤희 : 왜요?
준석 : 뭐가 왜요예요, 안 먹어봤으니까 못 먹는다는 거지.
윤희 : 그럼 먹어보면 되잖아요.
준석 : 안 먹어본 건 안 먹습니다.
윤희 : 아, 참. (준석 등 밀면서) 도전 정신, 모르세요?
안되면 되게 하라. 우리 회장님 철학이시잖아요?
준석 : 무슨 감자탕 먹는데 도전 정신까지 갖다 붙입니까?
#.12 씬. 감자탕 집 내. (낮)
뼈다귀가 수북한 냄비, 팔팔 끓고 있고.
준석 : (난감한 표정으로 보고 있는)
윤희 : 아, 이 구수한 냄새. 자 마음에 준비 하시고.
우선 커다란 놈으로 하나 가져다가 이렇게 자세 잡으시고.....(뼈다귀 들고 시범을 보이는데)
준석 : 거울 보면서 먹어본 적 없죠?
윤희 : 네?
준석 : 흉할 거란 생각 안 해봤습니까?
윤희 : 흉해요?
준석 : 이쁠 거 같아요?
윤희 : 먹는 거 앞에 놓고 타박 많으면 복 못 받는다고 우리 엄마가 그랬거든요.
자, 자, 흉하든 이쁘든 맛있게 먹고 배부르면 장땡 아닌가요? (준석의 손에 뼈다귀 들려주는)
준석 : (놀라서 뼈다귀 내려놓으며) 손에 냄새 배잖아요.
윤희 : 닦으면 되죠. 아, 참 말 많으시네. 전 배가 고파서 우선은 좀 먹어야겠어요.
(뼈다귀 들고 열심히 뜯어먹는)
준석 : (신기한 표정으로 보는)
윤희 : 입에서 살살 녹네.
준석 : 입에서 살살 녹지 않는 음식 있습니까?
윤희 : 없다고 봐야죠.
준석 : (피식 웃는, 냅킨 꺼내 주는)
윤희 : 다 먹고 닦으면 되요.
준석 : 이마에 땀 좀 닦으라구요.
윤희 : 땀 좀 섞어 먹으면 간 맞고 좋죠 뭐.
준석 : (하는 수 없이, 윤희 이마에 땀 냅킨으로 눌러주는)
윤희 : (보다가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고)
준석 : (얼른 손 내리는) 땀 줄 줄 흘리며 먹는 거 보기 흉해서 그런 겁니다.
윤희 : 누가 뭐라고 했나요? 신경 써주셔서 고맙네요. (또 열심히 먹는)
준석 : (하는 수 없이 젓가락으로 깨작거리며 뼈다귀의 살 발라 먹는)
윤희 : (기가 막혀 보고) 제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 팀장님이 최고세요.
준석 : (보고)
윤희 : 감자탕 우아하게 먹는 걸로는요.
#.13 씬. 감자탕 집 앞. (낮)
자판기에서 커피 두 잔 꺼내는 윤희.
윤희 : (커피 건네는) 달달하니 좋아요.
준석 : (웃으며 받는)
윤희 : 후식까지 풀코스로 대접한 겁니다.
준석 : 풀코스로 3만원도 안 들어서 좋겠어요.
윤희 : 제 월급에 3만원이면 허리가 휘는 거금이라구요.
준석 : 뭡니까? 지금? 월급 올려달라고 시위하는 겁니까?
윤희 : 알아들으셨으면 됐구요. (길가 벤치에 앉는.)
준석 : 이런데서 먹자구요?
윤희 : 앉아보세요.
준석 : 더운데.....(그러면서도 옆에 앉는) 먼지 속에 앉아서 먹고 싶습니까?
윤희 : 다들 이러고 살거든요.
준석 : 제가 보기엔 정윤희씨처럼 사는 사람 흔치 않거든요.
자기 집 찾아가면서 서울 시내 누비는 사람이 어디 흔합니까?
윤희 : 특이하고 좋잖아요.
준석 : (웃을 수밖에 없고)
윤희 : (그러다 길가 벽에 붙어있는 뮤지컬 포스터 보고)
준석 : (윤희의 눈을 따라가 포스터 보는) 저런 우아한 취미도 있습니까? 뮤지컬 좋아해요?
윤희 : 본적이 있어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알죠?
준석 : ......
윤희 : 제 월급으론 택도 없죠. 타먹은 곗돈 부어야지, 주식으로 날린 돈 빚 갚아야지.
준석 : 주식까지 합니까?
윤희 : 혼수 비용 좀 장만해보려고 큰 맘 먹고 뛰어들어봤는데 꽝 놨어요.
준석 :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닙니다.
윤희 : 줄리아 로버츠 있잖아요?
준석 : 줄리아 로버츠가 주식으로 돈 벌었답니까?
윤희 : 귀여운 여인에서요. 리처드 기어가 자가용 비행기로 뮤지컬 보여주러 가잖아요?
땡땡이 원피스 입혀 가지고. 거기서 팔 막 휘두르면서 휘파람 막 불고.....
(손으로 휘파람 불려고 하지만, 바람 빠지는 소리만 나고)
준석 : (피식 웃고) 연습 좀 더 해야겠네요.
윤희 : 그게 제 일생의 꿈이거든요.
준석 : 휘파람 부는 게요?
윤희 : 그런 근사한 남자하고 엘레강스하게 뮤지컬 보면서 휘파람 불어보는 거요.
준석 : 일생의 꿈이 참 원대하시네요?
희섭, 영재, 혜미 걸어오는.
희섭 : 홍보 문건 작성하시느라 고생하셨는데 제가 점심을 사야죠.
혜미 : 괜찮은데....
희섭 : 팀장님?
준석, 윤희, 세 사람 보고 일어서는.
희섭 : 아니, 여기 무슨 일로.....
윤희 : 점심 드시고 커피 한잔 하시고 계셨어요.
희섭 : 이렇게 길에서, (진짜 감동한 표정으로) 진짜 소탈하십니다.
혜미 : (준석과 윤희를 예리한 눈으로 보는)
윤희 : 점심 드시러 나오시는 길이세요?
희섭 : 응. 팀장님도 나오실 줄 알았으면 모시고 오는 건데.....
준석 : 전, 그럼 이만.....(윤희와 걸어가는)
희섭 : (준석의 등에 대고) 다음엔 제가 꼭 한번 대접하겠습니다.
영재 : 어지간히 좀 하세요.
희섭 : (혜미에게) 저렇게 소탈하시니 결혼 하셔서도 잘해주시겠어요.
혜미 : (어색하게 웃는, 눈으론 준석과 윤희의 걸어가는 뒷모습을 쫓는)
#.14 씬. 수찬의 집 거실. (낮)
덕길, 정보지에 줄 그어 가면서, 전화 하고 있는.
덕길 : 아니요, 서울 올라온 지 꽤 디얏는디요. 저기, 요리 조리 워쩌케 가야 한다는 것만 알려주시믄
지가 길 눈 하난 엄청 밝은 편인디.
수찬, 들어오는.
덕길 : 오토바이? 물론 타죠. 오토바이도 못타면서 퀵서비스 하겠다고 전화 드렸겄습니까?
면허증이요? 오토바이도 면허 있어야 하는게라? 지가 시골 살 땐......여보서요? 여보서요?
아니, 뭔 전화를 지 맘대로 끊고 그런디야.
수찬 : 오죽하면 지 맘대로 끊으시겠어요. (냉장고 앞으로 가서 물통 꺼내들고 마시는)
덕길 : (다가오는) 대사는 잘 치뤘냐? 아파트 하나 사주겠다고 허대?
수찬 : 아파트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덕길 : 향수 병 째 드리붓고 나가서 아파트도 한 채 못 얻어왔냐?
수찬 : (식탁 앞에 앉는) 다음 주에 결혼한댄다. 청첩장 주려고 만나자고 했단다, 됐어?
덕길 : 너가 만나는 여자들은 왜 하나같이 그러코롬 요상하디야.
키우던 제비 지 결혼식에 오라는 여자가 있지를 않나.
남편 끌고 와서 기둥서방 두들겨 패는 거 차에 앉아 귀경하는 여자가 있지를 않나.
수찬 : 짐이나 대충 꾸려 놔.
덕길 : 테레비랑 냉장고랑 다 실어 나르려면 큰 짐차 하나는 있어야 할 것인디.
이 큰 살림 다 들고 어디로 간다냐?
수찬 : 옷만 챙기면 돼.
덕길 : 이 짐은 다 워쩍허고?
수찬 : 내 꺼 아니야.
덕길 : (빤히 보고) 냉장고랑, 세탁기랑 테레비랑 몽땅 다? 너 책상은? 침대는?
수찬 : (눈길 피하면서) 다 선배 형 거야. 그 형 집에서 알아서 실어낼 거야.
덕길 : 그, 그러니께, 너 것은 달랑 옷 나부랭이라고라?
수찬 : (버럭) 아, 그렇다니까.
덕길 : 아니, 제비 짓하믄서 돈 좀 안 모았냐?
수찬 : 나 그딴 양아치 제비 아니라니까.
덕길 : 그럼 대체 너가 했던 제비는 뭣허는 제비냐?
수찬 : 난 여자들을 위해서, 날 원하는 외로운 여자들을 위해서 내 한 몸 희생하면서.....
덕길 : 니가 인간 적십자여?
수찬 : 형하고 무슨 말을 하겠냐. (방으로 들어가버리는)
덕길 : 저것이 바로 전문 용어로 빛 좋은 개살구라고 하는 거이제.
#.15 씬. 수찬의 방. (낮)
수찬, 옷 갈아입고 있으면. 덕길 문 빼꼼히 열고.
덕길 : 이런 상황에서 좀 뭣하지만 할 말은 해야겄다.
수찬 : 또 뭐?
덕길 : 쌀이 떨어져 가는디? 내일이나 먹을라나.
수찬 : 살림을 어떻게 하는 거야?
덕길 : 그랴, 나가 다 처먹었다, 나가 한 끼에 열 그릇씩 먹어치웠다.
#.16 씬. 중고 명품. (낮)
수찬, 옷, 구두, 지갑, 케이스에 담긴 시계 등등을 내놓고 있다.
수찬 : (직원에게) 거의 안 쓴 새 물건이든요. 이 시곈 딱 두 번 찼어요, 두 번.
직원 : 안차고 모셔뒀어도 중고는 중고죠.
수찬 : 다 합해서 얼마나 받을 수 있습니까?
#.17 씬. 은행 자동화 창구. (낮)
수찬, 입금하고 있는, 핸드폰 하면서.
수찬 : 네? 전액이라뇨? 리볼빙 아닙니까? 10분에 일만 우선 입금하면...아니, 연체 좀 됐다구.
아, 맘대로 해, 신용 불량을 만들던지, 말든지. (핸드폰 딱 끊고)
이 냉혹한 금융 현실이 선량한 신용 불량자를 양산하는 거야. (그러면서도 지갑에서 돈을 더 꺼내 입금하는)
우선 두 개는 살려놓고 봐야 돌려를 막던지 돌려를 차던지 하지.
#.18 씬. 동네 길. (낮)
수찬, 라면 박스 등 들고 끙끙거리며 걸어오면.
보경, 운전하고 그 옆에 하니 타고 가는.
보경 : (차창 열고) 아니, 뭘 그렇게 사셨어요?
수찬 : 아, 네. 좀. 어디 가시나봐요?
하니 : 찜질방에요, 같이 안가실래요?
수찬 : 아, 아닙니다. (걸어가면)
하니 : 풀이 많이 꺽인거 같죠?
보경 : 왜 안그렇겠어? 백수에 집에서도 쫓겨나게 생겼는데.
#.19 씬. 수찬의 집 부엌. (낮)
수찬, 탁자 위에 쌀이며, 라면 두 박스 올려놓고 있는.
덕길, 수제비 냄비 앞에서 돌아서는.
덕길 : 전쟁 난다고 하더냐?
수찬 : 앞으로 하루 한 끼는 라면으로 먹어.
덕길 : 그러게 있을 때 좀 모아두지.
수찬 : 하나마나한 소리는 왜 하는데?
덕길 : 하기사 죽은 자식 뭐 만지기지. 내가 그려서 식단을 짜 봤는디.
아침은 고니가 학교 가서 공부하려면 배에 힘이 있어야 현께 밥으로 묵고.
점심은 수제비, 저녁은 그려, 라면으로 허고. 이틀에 한번은 윤희씨네 가서 먹는 게 어떨까 싶은디.
수찬 : 거지야?
덕길 : 내가 일해줌서 슬쩍 눌러 앉고, 너랑 고니가 나 찾으러 와서 못이기는 척 눌러 앉고.
수찬 : 형 찾으러 떼로 몰려가서?
덕길 : 원래 없을 땐 그러는 것이여. 옛날에 우리가 안 그랬냐?
니 엄니랑 우리 엄니랑 춤바람 나서 우리 밥도 안 챙겨줄 때, 수연이네 가서 슬쩍 슬쩍 뭉게고 그랬잖냐.
수연이 큰 엄마 우리 눈 요렇게 흘기면서도 밥은 먹여주시고 혔는디.
수찬 : (싸늘해져서) 수연이 얘기 앞으로 내 앞에서 하지 마. (나가서 방으로 들어가는)
덕길 : 그랴. 니 맘도 오죽하겄냐. 근디 나는 그때가 무진장 그립다.
그때는 엄니들 땜시 배도 많이 곯고 그랬어도 수연이가 안 있었냐.
#.20 씬. 준석의 사무실. (낮)
준석,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마우스 클릭하는.
검색어, 뮤지컬. 뮤지컬 정보 쫙 뜨고.
준석 : (전화기 드는) 내일 예매 좀 하려고 하는데요.
노크 소리.
준석 : 두 사람이요. 로얄석으로.....
들어오는 윤희.
준석 : (놀라서 수화기 내려놓고) 뭐, 뭡니까? 부르지도 않았는데?
윤희 : 저녁 약속 시간 다 되셨는데요.
준석 : 알았으니까 나가요.
윤희 : 왜 화는 내고 그러세요?
준석 : 내가 언제 화를 냈다고 그럽니까?
윤희 : 지금 그러시잖아요?
준석 : 내 말투가 원래 그래요.
윤희 : 그게 무슨 자랑이세요. (나가는)
준석 : 자긴 그게 무슨 비서 말툰가. (수화기 들고) 내일 표 예매 좀 하려고 하는데요.
#.21 씬. 준석의 집 거실. (밤)
한여사, 혜미 차 마시고 있는.
준석, 들어오는.
혜미 : (일어서는)
한여사 : 일찍 들어와서 같이 저녁 했으면 좋았을텐데.
혜미 : 저녁 약속 있으셨나봐요?
준석 : 네. (올라가려고 하면)
한여사 : 와서 같이 차 좀 마시지 않구?
준석 : 씻구요. (올라가는)
혜미 : (앉으며) 굉장히 깔끔한 거 같아요, 준석씨.
한여사 : 곁을 안내주지?
혜미 : (보다가) 성격인데요 뭐.
한여사 : 그래, 그렇게 생각하면 네가 편할 거다. 나나 회장님이나 자기 식구한테도 곁을 안내주는 성격들이라서.
아들인데 어쩌겠니. 부모 닮는 거야 당연한 건데.
#.22 씬. 준석의 방. (밤)
준석, 책상 앞에 앉아서 음악을 듣고 있는.
노크 소리.
준석 : 네.
혜미 문 여는.
준석 : (일어나는)
혜미 : 차 안 드세요?
준석 : 생각 없습니다. 피곤해서 좀 쉬고 싶은데......
혜미 : 그럼 그냥 가야겠네요. 준석씨하고 차 한잔 마실까 하고 저녁까지 얻어먹으면서 버티고 있었는데.
준석 : 나중에 마시죠.
혜미 : 오늘 낮에.....
준석 : (보면)
혜미 : 길가에 앉아서 커피 마시는 모습, 보기 좋았어요.
준석 : ......
혜미 : 내가 그 옆에 없다는 게 서운했지만. 가볼게요. (문 닫는)
준석 : ......(의자에 앉아 눈을 감는)
#.23 씬. 고사장 집 서재. (밤)
고사장 책 보고 앉아있고, 그 옆에 서있는 영자.
영자 : 여보?
고사장 : 내가 그렇게 한가한 사람이야?
영자 : 1년에 한번 만나는 친목 모임이예요.
고사장 : 그러니까 당신이나 가라잖아.
영자 : 부부 동반이라니까요.
고사장 : 시간이 없다구, 시간이. 그리고 그게 무슨 자랑스러운 친목 모임이라구.
고시원집 딸들이 1년에 한번씩 모여서 뭘 어쩌겠다구.
영자 : 남편 자랑하고 싶으니까 그렇죠. 그래도 다들 성공한 사람들 모임이잖아요?
김판사네랑 정변호사네랑, 그 양반들은 꼭 나온다구요.
고사장 : 겨우 셋이 모이는 게 무슨 친목 모임인가?
영자 : 고시원 집 딸들 중에 고시 패스한 남편 얻은 건 우리 셋 뿐이잖아요.
문 여는 혜미.
혜미 : 다녀왔습니다.
고사장 : 그래.
#.24 씬. 혜미의 방. (밤)
혜미, 옷 갈아입고 있으면, 그 옆에 앉아있는 영자.
영자 : 네 아버지 나 창피해서 그런 거야.
이렇다하는 모임에 나 안 데려가려고 하는 것도 다 내가 대학도 못나오고.
혜미 : 엄마 자격지심이예요.
영자 : 네 아버지 고시 패스하기 전에 네 언니 안 가졌으면 나랑 절대 결혼 안했을 거다.
혜미 : 그래도 어쨌든 결혼 하셨잖아요?
영자 : (일어서며) 맞장구 좀 쳐주면 안 되니?
혜미 : (보고)
영자 : 윤희네 집 봐라. 예슬이 할머니 윤희 등 팡팡 두드려 대면서 욕하고 그러는 거
네가 보기엔 볼쌍 사납지?
혜미 : 제가 언제 그 집에 가봤어요? 그런 걸 보게.
영자 : 나 그런 거 부러워 얘. 자식하고 정 없으면 그렇게 되는 줄 아니?
혜미 : 푼수인 딸 두들겨 패는 게 그렇게 부러우세요?
영자 : 난 얘.....네가 어려워. 내가 왜 네 아버지한테 타박 당할 거 뻔히 알면서도
네 언니 못 뿌리치고 전화하고 그러는 줄 아니?
네 언니는 너처럼 어렵지 않으니까 그러는 거야. 남편도 어렵고, 자식도 어렵고.....
그래서 내가 얼마나 외로운 줄 넌 모를 거다. (나가는)
혜미 : .....
#.25 씬. 수찬의 방. (밤)
수찬, 핸드폰 중.
수찬 : 급한 대로 천만원만 좀 돌려봐라. (인상 찌그러지고) 잘린 거 아냐. 내가 그만 둔거지.
다른 데 갈 데 없으면서 그만두기부터 했겠냐. 그러지 말고......
#.26 씬. 미희의 방. (밤)
윤희 : (침대에 앉아 멍하니 미희를 보는) 지금 그게....말이 된다고 생각해?
미희 : 유일한 방법이잖아.
윤희 : 언니 학교 때 공부 잘했지?
미희 : 좀 했지. 내가 아이큐는 우리 학교에서 제일 높았어.
노력을 좀 안 해서 그랬지 하자고 마음만 먹었으면 전교 1등은 숨도 안 쉬고 했을 텐데.
윤희 : 머리 좋은 애들이 다 똘똘한 건 아니라지?
미희 : 뭔 말이 하고 싶은 건데?
윤희 : 언니를 보고 있으면 그 말이 맞구나 싶거든. 공부 잘해 좋은 대학 가 한다하는 신랑을 셋 씩이나 얻어봤어.
그런데 이사도라 닮았다는 말 한마디에 뻑이 가서 제비한테 목매는 거 보면, 이건 아니다 싶거든.
나도 제 정신 아닌 물건이라고 엄마한테 매일 얻어터지지만
언니도 나 못지않다 그런 생각이 물씬 물씬 들거든.
미희 : 넌 정신을 빼놓고 사는 물건이지만, 난 사람이 맑아서 그런 거다.
왜 알지 스티븐 호킹 박사? 그 분도 머리 좋은 걸로는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들잖니.
그런데도 얼마나 사람이 깨끗하고 맑니?
윤희 : 지금 본인을 스티븐 호킹 박사와 동격으로 놓고 보는 거지?
스티븐 호킹 박사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겠다.
미희 : 그 양반 장애가 심해서 벌떡 일어나진 못하실 걸.
윤희 : 아니, 어떡하면 유일한 방법이 당장 결혼해서 데릴사위로 들이겠다는 생각을 하냐?
미희 : 길바닥으로 나앉게 생겼다며?
윤희 : 백씨가 길바닥에 나앉게 생겼으니까 나 좀 데리고 살아주십쇼 그랬어?
미희 : 그건 아니지. 그 사람 자존심이 얼마나 센데?
윤희 : 그러니까 결론은 좋은 머리로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했다는 거지? 지금?
미희 : 설득을 하면?
윤희 : 네 번 이혼하고 싶니?
#.27 씬. 수찬의 집 전경. (밤)
#.28 씬. 수찬의 집 거실. (밤)
덕길, 하품 하며 방에서 속옷 바람으로 나오는.
덕길 : 와 이렇게 밤에도 푹푹 찐디야. (그러다 창 앞에 앉아있는 수찬을 보는, 다가와) 와 안자고 여서 청승이랴?
수찬 : 형은?
덕길 : 더워서 물이나 마실라고.....(옆에 앉는) 나도 잠이 안와서 죽겄다.
수찬 : 나.....뭐하고 산걸까?
덕길 : (보는)
수찬 : 이 나이 먹도록 대체 뭘하고 산걸까?
덕길 : 뭇 여성들의 기쁨이 되서 살아왔지 뭣허고 살어.
수찬 : 월세 보증금 마련할 주제도 못된다, 형. 내가 그런 놈이야.
빌린 외제차 타고 온갖 똥폼 다 잡으며 살았는데.
선배한테 빌린 집에서 사는 게 이만하면 됐지 싶었는데.
어느날 아침 눈 뜨고 보니까 아무 것도 없드라구. 내 일 지일처럼 걱정해주는 친구 놈도 하나 없고.
덕길 : 그거야 여자들 관리 허느라 사내놈들헌티 신경 안 쓰고 산 결과 아니겄어?
수찬 : (킥 웃고) 하긴. 나 작업 들어가면 친구 놈들 전화도 안받는 놈이거든.
그렇게 정성을 쏟았는데 이 상황 되니까 방 한 칸 마련해주겠다는 여자도 하나 없다.
덕길 : 헛산 거 같냐?
수찬 : ......
덕길 : 그려도 고니가 있잖여. 세상에 내 새끼가 하나 있다는 것이 월매나 가슴 뿌듯한 거인디.
수찬 : 난......아직도 안 믿겨. 아무리 봐도 고니 저 놈, 나보단 형을 더 닮은 거 같은데.
덕길 : 너 시방. (벌떡 일어나며) 하여간 너는 인간 될라믄 아직도 먼겨.
고니가 나 닮았으믄 수연이가.....에라 이 똥물에 튀겨죽일 놈아.
난 숫총각이여. 숫총각, 알짜배기루다.....
수찬 : (멍하니 보는) 결혼 했었잖아? 보름 넘게 같이 살았잖어?
덕길 : 에이.....몰러. (방으로 들어가는)
수찬 : ......
#.29 씬. 수찬의 집 부엌. (아침)
수찬, 덕길, 고니 앉아서 식사하는.
고니, 수찬 고개 숙이고 밥에서 콩을 골라내고 있는.
덕길 : 야가 야가.
수찬 : (고개 들고 고니를 보면, 밥그릇 옆에 콩을 골라내고 있다. 자신의 밥그릇 옆에 놓여있는 콩들)
고니 : 지는 콩밥 싫당께요.
덕길 : 쌀 좀 아껴볼라고 콩 좀 섞은 건께 기양 묵어.
고니 : 지는 밥을 조금 덜 먹는 수가 있어도 콩은 참말 싫당께요.
수찬 : (멍한 표정 위로- 엄마의 목소리 겹치는)
엄마 : (E) 수찬아 이 놈아. 아까운 콩을 왜 골라내고 그런다냐?
어린 수찬의 목소리.
수찬 : (E) 지는요 엄니. 참말로 콩이 싫당께요.
고니 : 지만 그러는 것이 아니잖어요? 아저씨도 그러시는데.
덕길 : (수찬 밥그릇 옆 보고) 잘 헌다, 애가 좋은 거 보고 배우겄다.
어른이 되서 모범은 보이지 못할 망정.....
수찬 : (자신도 모르게 주르르 흐르는 눈물)
고니 : 혼나서 우시는 거여요? 뭐 시게 혼나신 거 같지도 않은디.
덕길 : 너 뭐 허냐? 시방?
수찬 : (일어나서 방으로 들어가는)
덕길 : 밥 안 묵고 워디 가야?
#.30 씬. 수찬의 방. (아침)
수찬, 들어와 침대에 앉아 숨을 죽여 우는.
손등을 깨물면서 참으려 하지만, 눈물이 쏟아져 내리는.
#.31 씬. 수찬의 집 거실. (아침)
고니 배웅하고 있는 덕길.
고니 : 오늘 배식 있는 거 아시지라?
덕길 : 알어.
고니 : 다녀오겄어요. (인사하고 나가는)
덕길 : (돌아서다가 수찬의 방을 보는)
#.32 씬. 수찬의 방. (아침)
수찬, 침대에 멍하니 앉아있는. 아직도 눈물이 흐르고.
덕길, 들어오는.
덕길 : 너 안즉 그러고 있냐? 콩 골라낸다고 싫은 소리 좀 한 것이 그렇게 고까운겨?
수찬 : 형......고니 저 자식....내 새끼 맞는 거 같아.
덕길 : (보다가. 울먹해지는) 나가 그렇다고 안 혔냐? 너는 왜 그렇게 사람 말을 못 믿어부냐?
넌 자식아, 사람 의심허는 그 나쁜 버릇부터 고쳐야 혀. (나가는)
수찬 : ......
#.33 씬. 미희의 방. (아침)
미희 거울 앞에서 화장하고 있는. 그 뒤에 서서 언니 장롱 뒤지고 있는 윤희.
미희 : 내 생각엔.....
윤희 : 그 생각 좀 하지 말라니까. 그건 정신과 약 장기 복용하는 사람이나 할 생각이라니까.
선우, 문 여는.
선우 : 약? 누가 아픈데?
윤희 : 누구긴 누구예요? 엄마 큰 따님이시죠.
선우 : 왜, 어디가 안 좋아?
윤희 : 백씨가 갈 데 없이 됐으니까 결혼해서 우리 집 들어와 살라고 한대요. 엄마 큰 따님께서.
선우 : 백씨가 누구야? 백교수?
윤희 : 이제 교수도 아닌데 백교수는.
선우 : 백교수가 너랑 결혼하겠다디?
윤희 : 백씨가 약 먹었어요?
미희 : 얘가 아침부터 왜 입에 약을 달고 살아?
선우 : 예슬 엄마야?
미희 : (보면)
선우 : 신중하자. 세 번 깨박 났으면 됐다.
윤희 : 내 말이.
선우 : 남자 다른 거 없다며? 세상에 너 하나만 봐주는 남자면 된다면서?
미희 : 근데?
선우 : 백씨 너한테 아직 관심 없다. 내가 보면 알어.
윤희 : 그건 누가 봐도 알지.
선우 : 알거지가 됐다해서 교수 때랑 다르게 보고 하는 말은 절대 아니다.
백씨는 너같이 헐렁한 타입 만나서는 해결이 안 될 인물이야.
미희 : 그건 살아봐야 아는 거구.
선우 : (버럭) 그거 알자고 또 시집 갈래?
#.34 씬. 수찬의 집 앞. (낮)
수찬, 덕길 집에서 나오는.
덕길 : 대전?
수찬 : 다음 학기 교수 채용 광고가 나서 거기 아는 선배도 있고 하니까 가서 좀 자세히 알아보려구.
덕길 : 그럼 늦겄네.
수찬 : 형은?
덕길 : 나도 니만 턱 받치고 쳐다보고 있을 수만은 없잖여. 나 먹을 건 벌어와야제.
수찬 : 형이 뭘 하겠다구?
덕길 : 니는. 사지육신 멀쩡한데 할 일이야 없것어.
#.35 씬. 회사 전경. (낮)
#.36 씬. 비서실. (낮)
윤희, 핸드폰 받고 있는.
윤희 : 아. 네.
#.37 씬. 공사장. (낮)
덕길, 벽돌 나르면서 핸드폰.
덕길 : 수찬이도 지방 내려가불고, 오늘 일하는 거 보고 쓰던가 말던가 하겠다고 헌께 기양 갈 수도 없구요.
지가 급하믄 윤희씨 말고 찾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38 씬. 비서실. (낮)
윤희 : (핸드폰) 알았어요. 제가 갈게요,
아무 걱정 마시고 일이나 열심히 하셔서 꼭 채용 될 수 있도록 하세요.
인터폰.
윤희 : 네, 팀장님?
준석 : (E) 들어와 봐요.
#.39 씬. 준석의 사무실. (낮)
준석, 책상 앞에 앉아있고, 들어오는 윤희.
준석 : 저기 오늘 오후에......
윤희 : 스케줄 없으신대요, 팀장님.
준석 : 그게 아니고....
윤희 : 저 지금 조퇴 좀 해야 할 거 같은데요.
준석 : 네?
윤희 : 조카 학교 급식 때문에요.
준석 : 그런데요?
윤희 : 다 먹자고 사는 거잖아요. 근데 애들이 먹으려면 제 손이 꼭 필요하다 그거죠.
오늘 오후 스케줄도 없으시니까.
준석 : 아니, 무슨 비서 일을 이렇게 자기 마음대로 합니까?
윤희 : 저 이번 달 월차도 안 썼거든요.
준석 : 그렇다고 사전에 말도 없이.
윤희 : 갑자기 연락이 왔는데 어떻게 사전에 말씀을 드려요?
준석 : 그래도 이렇게 갑자기 조퇴를 하면.....
윤희 : 꼭 시키실 일 있으세요? 그럼 박미나씨한테 지시하시면.....
준석 : .....
윤희 : 죄송하지만 전 오늘 꼭 조퇴해야 하거든요. 죄송합니다. (인사하고 나가는)
준석 : 손발이 맞아야 뭘 해먹지.
#.40 씬. 학교 교실. (낮)
윤희, 미희, 학부모 배식하고 있는.
미희 : (묘한 눈길로 윤희를 보는)
#.41 씬. 학교 앞. (낮)
고니, 예슬, 영 걸어가고, 뒤에서 걸어 나오는 윤희, 미희.
미희 : 너 설마 그 촌놈하고 그렇고 그런?
윤희 : 아, 약 좀 복용 하라니까.
보경. 차 몰고 와서 차장 내리는.
보경 : 영아? 빨리 타. 레슨 시간 늦어. (윤희, 미희 보고 인사하는) 급식 당번이었나 보네요?
미희 : 영이 피아노 레슨 받으러 가나보죠?
보경 : 네. 특별 레슨 하나 더 시작했는데 시간 맞춰 데려가는 것도 일이네요.
미희 : 힘드시겠어요.
보경 : 자식 잘되는 길이라는데 어쩌겠어요. (영이 태우고 가는)
고니 : (예슬에게) 쟈는 무슨 레슨을 저렇게 줄창 받는디야?
예슬 : 피아니스트 될 거잖아.
고니 : 학원도 솔찮이 댕기고 힘들겄다.
예슬 : 너처럼 집에서 판판이 노는 애 별로 없을 걸. 너 학습지도 하나 안하지?
고니 : .....
예슬 : 그런 앤 우리 반에서 너 하날 거다.
난 학원 많이 안다니는 대신 인터넷 강좌 다섯 개나 듣잖니. 학습지 선생님도 오시고.
고니 : (시무룩하고)
윤희 : 어렸을 땐 노는 게 최고야. 요즘 엄마들 극성도 너무 극성이야. 그게 다 애들 잡는 짓인데.
#.42 씬. 백화점 내. 아동복 코너. (낮)
윤희, 미희, 고니, 예슬 쇼핑하는.
윤희 : 예슬이 옷도 많은데, 온 김에 내 옷이나....
미희 : 발표회 때 사회 맡았다잖니. 넌 내 옷 시시 때때로 훔쳐 입으면서 무슨 옷 욕심이니.
예슬아, 이거 입어보자.
예슬 : 난 이게 더 좋은데.
미희 : 그것도 입어보고.....
고니 : 지는 저 쪽에 가서 앉아 있을라요.
미희 : (그런 고니가 순간 안쓰럽고) 그러지 말고 너도 남방 하나 입어보자.
고니 : 지요? 왜요?
미희 : 예슬이 친구니까 그냥 하나 사주고 싶어서 그래.
고니 : 아, 아니어요. 지는 됐어라.
미희 : 너 어른 말 안 듣니?
#.43 씬. 수찬의 집 거실. (낮)
덕길, 고니의 옷 꺼내보는. 남방 두 벌, 바지 하나, 속옷 몇 개.
덕길 : 이, 이게 다 뭐 다냐?
고니 : 지는 싫다고 혔는디 아줌씨가....
덕길 : 윤희 아줌씨가?
고니 : 아니, 예슬이 엄니가.
덕길 : 아니, 뭔 속옷까지....
고니 : 옷 갈아입는디.....난닝구 해진 거 보시고.....
덕길 : 빤쓰 빵구 난 것도 보여드렸냐?
고니 : 그것은 아니고, 사는 김에 사 주신다구....
#.44 씬. 미희의 집 거실. (낮)
덕길 미희 윤희, 선우 앉아있는.
덕길 : 이거 고마워서.....
미희 : 그냥 우리 예슬이 옷 사는 김에 사준 건데.....
덕길 : (울먹해서) 참말 고마워서 지가 어찌할 바를 모르겄네요. 이웃사촌이 좋다고는 허지만....
선우 : 아이고, 그럴 거 없어. 이웃 살면서 옷 하나 못 사주나.
미희 : 저도 자식 키우는 사람이라 짠해서 사준 거니까 너무 그러지 마세요.
선우 : 우리 쟤가 쓸데 안 쓸데는 확실하게 구별하고 살거든. 저 작은 물건하곤 차원부터가 틀려.
윤희 : 엄만 왜 괜히 난 끌고 들어가.
선우 : 읊어? 첫월급 타서 에미 빨간 내복 사러 갔다가
한달치 월급 털어주고 명품 백인가 뭔가 사온 것부터 읊어봐?
윤희 : 그땐 내가 ....아 그래, 내가 미친 년이야. 제 정신 돌아온지 한참 됐구만 엄마는 틈만 나면.
선우 : (덕길에게) 로또 처음 생겼을 때 있잖아.
딱 한 장만 산다고 갔다가 20만원어치나 산 게 바로 저 물건이야.
윤희 : 아, 그때는.....아, 그때는 내가 왜 그랬지.
선우 : 작은 건 저 모양이래도 큰 애 쟤는 아니거든.
위자료 받은 돈으로 사업해서 배로 뻥튀기 해놓은 것만 봐도 알지.
미희 : 엄마, 여기서 위자료 얘긴 좀.....
덕길 : (감동한 표정으로 멍하니 미희를 보는) 능력이 대단하신가 봐요.
미희 : 뭐 좀.
선우 : 가끔 나사 빠진 것처럼 해서 그렇지 인간성도 좋고, 경제관념도 확실하고 애는 쓸만해.
덕길 : 아, 야.
미희 : 고니 목 뒤에 땀띠 많이 났던데 약 좀 발라주셔야겠어요.
덕길 : (더욱 감동해서 보고)
#.45 씬. 수찬의 집 앞. (낮)
덕길, 감동을 받은 느낌 그대로 걸어오면서.
덕길 : 엄마라 틀리긴 틀리네. 땀띠 걱정까지 해주고.
수찬 걸어오는.
덕길 : 빠르다?
수찬 : (시무룩한)
덕길 : 갔던 일 잘 안됐냐?
수찬 : 벌써 내정이 돼 있드라구.
덕길 : 그라믄 다른 데 알아봐야겄다.
수찬 : 이 쪽으론 그런 거 같아.
덕길 : 그럼 어쩐디야? 너 어디 다른데 취직할 데는 있는겨?
수찬 : .....
#.46 씬. 회사 건물 앞. (낮)
수찬, 이력서 내러 돌아다니는 인서트 씬들.
#.47 씬. 공사장. (낮)
일하고 있는 덕길의 인서트 씬들.
#.48 씬. 윤희의 집 거실. (밤)
윤희, 미희, 수찬, 덕길, 선우, 고니, 예슬 모여 앉아 차, 과일 앞에 놓고.
선우 : 이거 섭섭해서 어쩐대. 가는 줄 알았지만 막상 내일 떠난다니까.
덕길 : 새 주인이 집수리하고 들어온다고 비워달라네요.
수찬 : 그동안 여러 가지로 신세만 지고 갑니다.
윤희 : 갈 데는 정하셨어요?
덕길 : 우선은 여관에 좀 있어볼라구요.
선우 : 여관? 그게 말이 그렇지 여관에서 산다는 게 말이 아닐텐데.
덕길 : 다른 방도가 없으니 하는 수 있나요. 싼 방 하나 알아는 봐뒀는디. 우선은 견뎌봐야죠.
선우 : 미스터 백 아직 취직도 그렇지?
수찬 : 네, 아직은.....
선우 : 다들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겠네.
미희 : (벌떡 일어서며) 우리 집으로 오세요.
선우, 윤희 놀라서 일어서 미희를 잡는.
선우 : 예슬 엄마야? 예슬 엄마야? 신중하게. 신중하게.
윤희 : 언니, 그건 아니라니까.
미희 : 우리 집에서....
윤희 : (미희 입 막으면서) 언니, 이건 막가자는 거거든.
선우 : 그래. 그건 아니다. 예슬 엄마야.
덕길 : (어색한 분위기 무마 하려고) 말씀은 고맙지만 그렇게까지 신세를.....
수찬 : 네, 말씀은 정말 고맙습니다.
미희 : 우리 뒤 창고 있잖아요? 거기 비우면 되잖아요?
선우 : (윤희 보고)
윤희 : (선우 보고)
선우 : 그래. 그렇네. 우선은 거기 비워서 살면 되겠네.
수찬, 덕길 서로 보는.
윤희 : 말 된다.
수찬 : 아닙니다. 정말 그렇게까지 신세를 질 수는 없습니다.
윤희 : 지금 댁이 찬밥 더운 밥 가리게 생겼어요?
수찬 : 찬밥 더운 밥 가리겠다는 게 아니고.
선우 : 와. 한 동네 살면서 정 들었는데 여관 살이 하러 떠난다는 거 알면서 내몰라라 하는 것도 그래.
우리 집에 방이 없는 것도 아니고, 창고 비우면 되는데. 그러자구, 그렇게 해.
미희 : 그러세요, 수찬씨.
덕길 : 요러코롬 간곡허게 권하시는디 너무 마다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거 같다.
#.49 씬. 창고. (밤)
선우, 불을 켜면.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한 창고 안.
덕길, 수찬, 윤희, 미희, 고니, 예슬 창고 안을 보는.
선우 : 좀 치우긴 치워야겠네.
미희 : 지하 보일러실로 옮겨놓으면 되죠 뭐.
선우 : 우리 애가 머리 돌아갈 때 보면 팡팡 돌아가거든.
윤희 : 그 생각은 나도 했는데.
선우 : 넌 빠져 있고. 치우려면 한참 걸리겠네.
덕길 : 걱정마십쇼. 요런 건 일도 아닙니다. 참말 이 은혜를 워쩌케 갚아야 헐지 모르겄네요.
수찬 : 고맙습니다.
선우 : 수도도 연결 되 있으니까 싱크대만 하나 들여놓으면 살만은 할 거야.
미희 : (수찬을 그윽한 눈으로 보면서) 이제 한 집에서 살게 됐네요, 수찬씨.
수찬 : (부담스럽지만) 아, 네.
낮으로 시간 경과, 말끔하게 치워진 창고 안.
싱크대도 설치되어 있고. 살만하다.
큰 대자로 누워있는 수찬, 덕길, 고니.
고니 : 지는요 아부지.
덕길 : 뭐?
고니 : 예슬이랑 서울역에도 가봤어라.
덕길 : 그랬냐?
수찬 : 내가 설마 너 서울역에 라면 박스 깔고 재울까봐서.
고니 : 사람 일은 모르는 거잖어요. 유비무식이라고.
덕길 : 혹시 유비무환이라고 헐려고 한 거 아니냐?
고니 : 유비무환이어라?
덕길 : 그것도 예슬이가 갈쳐주디?
고니 : 아니요. 영이가요. 삼국지에서 유비가 무식하게 준비를 철저히 혔다 그 뜻이라든디.
덕길 : 니 친구들이 아는 것은 많은디 제대로 아는 건 별로 없는 거 같드라.
윤희, 문 여는.
윤희 : 와, 깨끗해졌네.
덕길, 수찬, 고니 일어나 앉는.
덕길 : 지금 퇴근 하서요?
윤희 : 다 덕길씨가 하셨죠?
수찬 : 나도 삭신이 쑤실정도로 일했다.
윤희 : 걸레 좀 빨았나보네.
수찬 : 넌 왜 나만 보면 사사건건 시비냐?
윤희 : 보이길 그렇게 보이잖아요. 댁은 뺀질거리게 보이고, 덕길 아저씨는 나열심 이렇게 얼굴에 써있고.
덕길 : 아, 왜 자꾸 아저씨라고 그러시는가 모르겄네.
윤희 : 저기....(수찬 끌고 한 켠으로 가서 고니 못 듣게) 자리 하나 있는데?
수찬 : 자리?
윤희 : 버스 타러 가는 길에 꽃집 있잖아?
수찬 : 근데?
윤희 : 거기 할머니가 가게 봐줄 청년 하나 있었으면 하시던데?
화분 같이 무거운 거 옮기시는 게 이젠 힘이 부치신대.
수찬 : 나 원예학과 교수였거든.
윤희 : 그러니까.
#.50 씬. 꽃집 앞. (낮)
수찬, 트럭에서 화분 내리고 있는.
수찬 : 우선은 내가 쌀값이 없어서 한다 해.
여자 : 여기요? 이게 무슨 꽃이예요.
수찬 : (얼른 달려가면서) 아, 네 그게요.
#.51 씬. 병실. (밤)
준석, 몽테크리스트 백작 읽고 있는. 윤희 흉내 내면서.
윤희 : (E) 뭐하세요?
준석 : (놀라서 책 떨어뜨리고)
윤희 : (다가와서 책 들어올리고)
준석 : 웬일입니까? 그림자도 안보이던 사람이?
윤희 : 혹시 제 흉내?
준석 : 미, 미쳤습니까? 내가 그냥 무료해서 책 좀 읽어봤지.
윤희 : 아니면 말구요.
준석 : 2주 동안이나 빼먹더니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습니까?
윤희 : 2주? 그거 세고 계셨어요?
준석 : 미, 미쳤습니까? 내가 그런 거나 세고 있게. 그쯤 됐다 했지.
#.52 씬. 병원 뜰. (밤)
준석, 윤희 앉아서 음료수 마시고 있는.
준석 : 다 똑같다고 하더니 정윤희씨도 뭐 다를 거 없대요.
윤희 : 뭐가요?
준석 : 우리 아버지 안 들여다보는 거요.
윤희 : 서운하셨나보다.
준석 : 서운한 게 아니라. 남 말 할 거 없다 그거죠.
윤희 : 이젠 팀장님이 계시잖아요.
준석 : .....
윤희 : 그러니까 예전처럼 매일 와보지 않아도 마음이 놓여서요.
준석 : 누, 누가....뭐랍니까?
윤희 : 근데요?
준석 : (보면)
윤희 : 왜 아까부터 말을 더듬으세요?
준석 : 내, 내가 언제요?
윤희 : 지금요.
준석 : (하늘 올려다보면서) 왜 이렇게 덥나.
윤희 : 여름이잖아요?
준석 : 아, 그걸 누가 모릅니까. 덥다 그거죠.
#.53 씬. 길. (밤)
달리는 준석의 차. 준석, 윤희 앉아있는.
준석 : (돌아보며) 정말요?
윤희 : 네.
준석 : 한번도요?
윤희 : 처음 삽 떴을 때는 회장님 모시고 가본 적 있지만 그 다음엔.....
준석 : ......
#.54 씬. 리조트 내. (밤)
윤희 : 와.
환하게 불이 밝혀진 리조트.
준석 : (윤희를 보고 미소 짓는)
윤희 : (입술을 깨무는 눈물이 글썽하고)
준석 : 그렇게 감동적입니까?
윤희 : 우리 회장님.....보셨으면 좋으셨을텐데.....
준석 : (물끄러미 보는)
윤희 : (준석을 보다가 갑자기 눈에 힘주고, 천천히 손을 들어서 준석의 뺨 쪽으로 다가오는)
준석 : (순간 긴장하는)
윤희 : (준석의 뺨을 찰싹 때리는)
준석 : (뭐야 이거?)
윤희 : 잡았다. (손 펴서 보여주는) 모기.
준석 : (보다가 소리 내 웃는)
윤희 : 신기하죠? 저 진짜 모기 귀신 같이 잡죠?
리조트 내 걸으면서 웃으며 얘기하는 준석과 윤희의 모습들.
#.55 씬. 길. (밤)
달리는 준석의 차. 그 옆에 윤희.
준석 : 리조트에서 자고 수영 좀 하고 올라가도 될텐데.
윤희 : 가야해요.
준석 : 일 있습니까? 일요일인데?
윤희 : 맞선 보러 가야하거든요.
준석 : .....그, 그런 것도 봅니까?
윤희 : 그럼 처녀로 늙어죽어요?
준석 : 그런 거 너무 삭막하지 않나?
윤희 : 삭막해도 어쩌겠어요. 연애할 주제도 못되는데.
준석 : 특이해서 그렇지 뭐 윤희씨 주제 정도면.
윤희 : 욕인지 뭔지. 저도 맞선 시장에 끌려다니는 거 죽기보다 싫은데 어쩌겠어요.
엄마한테 맞아죽지 않으려면?
준석 : 엄마한테 맞습니까?
윤희 : 하루도 절 두들겨 패지 않으시면 입안에 가시가 돋히는 특이하신 분이 바로 저희 엄마시거든요.
준석 : 때리면 때리는 대로 맞을 거 같지 않은데?
윤희 : 제가 뭐 폐륜안 줄 아세요? 때린다고 엄마 손목 비틀고 반항하게. 팀장님은 그러셨어요?
준석 : 모르겠네요, 맞아본 적이 없어서.
윤희 : 와, 얼마나 범생이셨으면 부모님한테 한대도 안 맞고 크셨을까.
준석 : 모르죠. 때릴 만큼의 관심도 없으셨는지.....
윤희 : (그런 준석이 애잔하고)
준석 : 좀 자요, 이 갈고 코 골면서.
윤희 : 저 코는 골아도 이는 안 갈거든요.
준석 : 모르셨구나. 이도 갈아요.
윤희 : 아닌데....
준석 : 그 소리 들으면 죠스 영화 생각나는데.....
#.56 씬. 길. (새벽)
달리는 준석의 차. 윤희 잠들어 있고.
준석, 운전하면서 가끔 윤희를 돌아보는.
윤희 : (몸 움직이다 눈 뜨고) 어, 해 뜬다.
#.57 씬. 길 가. (새벽)
세워져 있는 준석의 차.
준석, 윤희 차 옆에 서서 밝아오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윤희 : 수학여행 가서 석굴암 앞에서 해 뜨는 거 보고 처음인 거 같다.
준석 : 새벽에 일어나 본 적 없습니까?
윤희 : 자야지, 새벽에 왜 일어나요?
준석 : 술 마시고 가끔 새벽에 들어갔을 거 같은데....
윤희 : 술기운에 해가 뜨는지 달이 뜨는지 알아요?
준석 : (웃고)
윤희 : 아. 가슴이 뻥 뚫리는 거 같다.
준석 : (그런 윤희 보고 하늘로 고개 돌려 심호흡 하는)
윤희 : 나중에.....또 한 십년 쯤 후겠지만, 이렇게 해 뜨는 거 보면 팀장님 생각나겠다.
준석 : (윤희를 돌아보는. 감정이 묻어드는)
윤희 : (아무 생각 없이 하늘 보면서 기분만 상쾌한)
#.58 씬. 윤희의 집 마당. (낮)
덕길, 수찬 빨래 널고 있는. 이불 빨래 등 부피가 제법 크다.
수찬 : 잠 좀 자겠다는 사람 꼭 이렇게 부려먹어야 해?
덕길 : 너도 덮고 자는 이불이잖여. 이사도 왔는디 싸그리 빨아서 널믄 기분도 말끔 하고 좀 좋아야.
울그락 불그락해서 들어오는 선우.
선우 : 내가 저 물건 때문에 제 명에 못 죽지.
뒤에서 기 죽어 들어오는 윤희.
윤희 : 그 자식이.
선우 : (옆에 있던 빗자루 들어 던지는) 저게 그래도.
윤희 : (피하면서) 엄마도 봤잖아? 집 장만 할 때 요즘은 여자도 돈을 보탠다고 하던데요 어쩌고 하면서.
선우 :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듣고 있으면 되지.
윤희 : 나 모아놓은 돈 없다고 하니까 그 자식 엄마랑 그 자식이랑 눈 세모꼴 되면서 사람 삐딱하게 보는 거.
덕길 : 잘 안 되셨나 봐요?
선우 : 저 물건 팔겠다고 나선 내가 열쳤지. 집에서 새는 바가지 나가선 안 셀 거라구.
수찬 : 잘 좀 하지 그랬냐?
윤희 : 나도 잘 하고 싶었지.
선우 : 잘 하고 싶은 게 남자 옷에다 물을 확 쏟냐?
윤희 : 실수인 척 했잖어.
선우 : 실수인 척 하려면 연기나 잘하던지.
덕길 : 안즉 인연을 못 만나서 그런 것을 워쩌것어요?
선우 : 저건 저건 시집가긴 애시당초에 틀려먹은 인간이야.
윤희 : 뭐 잘 됐네, 천년만년 엄마 옆에서 매나 벌면서 살면. 엄마도 심심하지 않고.
선우 : 아주 지 엄마 천불 나 죽으라고 고사를 지내라.
#.59 씬. 회사 전경. (낮)
#.60 씬. 준석의 사무실. (낮)
윤희, 보고 하고 있는.
윤희 : 오늘 스케줄은 이상입니다.
준석 : (서류 보면서) 맞선은 잘 봤습니까?
윤희 : 엄마한테 죽지 않을 만큼 원도 한도 없이 맞았어요.
준석 : (고개 들고) 안 보러 갔습니까?
윤희 : 깽판 쳤거든요.
준석 : 나가보세요.
윤희 : (인사하고 나가는)
준석 : (미소 짓는)
#.61 씬. 버스 정류장. (낮)
윤희, 희섭 버스에서 내리는.
희섭 : (하품하는)
윤희 : 피곤하신가봐요?
희섭 : 신입 사원 채용 공고 문안 만드느라 밤 좀 샜더니.
윤희 : 우리 신입 사원 뽑아요? 연초에 뽑았잖아요?
희섭 : 리조트다 아파트다 아무래도 부족해서.....
#.62 씬. 꽃집 앞. (낮)
수찬, 꽃 화분에 심고 있는. 급하게 뛰어오는 윤희.
수찬 : (보고) 어디 불났냐?
윤희 : (숨 헐떡이며 앞에 쪼그리고 앉는) 우리...회사...우리....회사....
수찬 : 회사에 불났어?
윤희 : (손사레 치면서) 우리 회사 신입 사원 뽑는대. 신입 사원.
수찬 : 근데?
#.63 씬. 꽃집 안..(낮)
수찬, 윤희 컴퓨터 모니터 보고 있는.
윤희 : 딱이지? 나이 제한 없고.
수찬 : 요새 그런 거 있으면 인권위원회에 고발당해.
윤희 : 학력은 제한이 있어도 상관없고, 댁이 가방 끈은 긴 편이잖아.
3년 근속하고 업무 평가 성적 좋으면 사택 입주 자격이 주어지거든.
수찬 : (마음이 동하는)
윤희 : 3년 열심히 일하면 집 걱정은 안 해도 되는 거잖아?
수찬 : 느네 회사 시험 어렵냐?
윤희 : 교수까지 했으면 공부는 좀 했을 거 아냐?
수찬 : 입사 시험은 쳐본 적이 없어서.....
#.64 씬. 여행사 내. (낮)
강형사 팜플렛보고 있는. 미희 걸어오는.
강형사 : 아니, 여기서 일하세요?
미희 : (보고)
강형사 : 강역갭니다, 강북서 강력반에 있는 강역개.
미희 : 아, 네. 형사분께서 여긴 무슨 일로?
강형사 : 아, 이거 정말 우연이네. 아무 여행사나 찾아왔는데 이렇게 아는 분을 딱 만나니.
미희 : 아, 네. 여행 가시려구요?
#.65 씬. 사무실. (낮)
수민, 강형사, 미희 앞에 차 가져다 놓는.
수민 : 오래 기다리셨죠?
강형사 : 제가요? 그냥 팜플렛 좀 보고 있었는데 그게 오랜가. 그리고 나 기다린 사람 없는데.
수민 : 사장님은 안계시냐고 물으시고.
강형사 : 아, 그거야 책임자 분을 좀 뵙고 싶어서.
수민 : 세 시간 넘으셨는데....
강형사 : 아, 그런 가요? 시간 잘 가네. 팜플렛 사진들이 워낙 좋아서 시간 가는 줄 몰랐네요.
미희 : 여행지는 어디로?
강형사 : 네? 그건 정해야죠.
미희 : 며칠이나? 몇 분이서?
강형사 : 한 150명?
미희 : (화들짝) 단체시네요?
강형사 : 단체죠. 남부서하고 저희 서하고 합치면.
미희 : 경찰서 형사분들이 몽땅 여행을 가신다구요?
강형사 : 추진 중입니다.
수민 : 그럼 도둑이랑 강도는 누가 잡구요?
강형사 : 지금 그게 약간의 난제긴 한데.....방법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책임자 분과 긴밀하게 좀 의논을 할까 해서....
미희 : 이런 일은 듣도 보도 처음이라서요. 관공서 분들이 통째로 단체 여행을 가시는 일은 드물어서....
수민 : 드문 게 아니라 전혀 없죠.
미희 : 그러니까. 무슨 의논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강형사 : 방법이야 많이 상의 하다 보면 나오지 않겠습니까?
#.66 씬. 동네 길. (밤)
혜미, 운전하고 있는데, 통증을 느끼며 얼굴이 질리는.
더 이상 운전 할 수 없어서. 차 세우고. 배를 움켜잡는데.
차 문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 들면.
수찬 : (차 안 들여다보고 있는)
혜미 : (창문을 내리는) 수찬씨?
수찬 : 왜 여기.....왜 그래요? 어디 아파요?
혜미 : 수찬씨......(통증으로 얼굴 더욱 일그러지고)
#.67 씬. 응급실. (밤)
혜미 누워있고.
그 옆에 의사, 챠트 보며 서있는. 그 옆에 수찬.
의사 : 응급 처치하고 약 투여 하고 있으니까 통증은 가라앉을 겁니다.
수찬 : 왜 이런 겁니까?
의사 : 남편 되십니까?
수찬 : 네? (엉겹결에) 네.
의사 : 유산 한적 있으십니까?
수찬 : (난감하고) 얼마 전에 애가 잘못 됐는데요.
의사 : 자궁 내부에 출혈이 있습니다. 그때 치료 안받으셨습니까?
수찬 : 외국 여행 중에 당한 일이라 제대로 치료를 못 받았습니다.
의사 : 돌아오셔서라도 계속 치료를 받으셨어야죠.
정밀 검사를 해봐야 알겠지만,ㅡ이 상태로 방치 하면 임신하는데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68 씬. 병원 앞. (밤)
혜미, 걸어 나오는. 수찬 따라 나오면서.
수찬 : (혜미의 팔을 잡으며) 이러면 안 된다잖아요?
치료를 받지 않으면 다시 임신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데?
혜미 : 부모님께 뭐라고 하고 치료를 받아요?
수찬 : ......그래도 임신 할 수 없을지도.....
#.69 씬. 야외 장소. (밤)
혜미, 수찬 앉아있는.
혜미 : 사랑하는 사람한테 버림 받고도 살았는데, 더한 거라고 못 견디겠어요?
수찬 : 그게 어떤 마음인지 압니다.
혜미 : (보는)
수찬 : 아주 오래 전에 저도 한번 당했거든요. 아침에 눈 뜬다는 게 얼마나 끔찍한 건지 알죠.
혜미 : 잘못된 결혼 때문에 부모님 속 썩이는 언니가 있어요.
언니 때문에 마음 고생하시는 부모님 지켜보면서 난 저러지 말아야지 이 악물고 결심했어요.
아이를 낳지 못해서 이혼을 당하는 수가 있더라도 저.....이 결혼해야 해요.
수찬 : (애잔하게 보는)
혜미 : .....
수찬 : 아직 모르잖아요. 그리고 최악의 경우에 그렇게 된다고 해도
아이 문제는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겁니다.
혜미 : 그건 사랑이 있을 때 얘기겠죠.
수찬 : .....
혜미 : 수찬씨한테 저......자꾸 최악의 경우만 보이게 되네요.
그래도 다행이예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수찬씨여서.
수찬 : ......
#.70 씬. 회사 전경. (낮)
#.71 씬. 비서실. (낮)
준석 : (E) 들어와 봐요.
미나 : (인터폰 버튼 누르면서) 잠깐 자리 비웠는데....
윤희, 걸어오는.
미나 : 아닙니다. 지금 왔습니다. 빨리 들어가 봐요, 찾으세요.
윤희 : (자료 한 뭉치 들고 사무실 쪽으로 움직이는)
#.72 씬. 준석의 사무실. (낮)
준석, 일어서 있고, 윤희 들어오는.
윤희 : 네. 팀장님?
준석 : 그건 뭡니까?
윤희 : 이거요, 자료실에서.
준석 : 뭐 찾아오라고 한 적 없는 거 같은데.
윤희 : 신입 사원 채용 시험지. 지난 거요.
준석 : 다시 시험 보려구요? 몸으로 얻은 자리라 캥깁니까?
윤희 : 저 그런 거 없는데요.
준석 : 그런데 그건 왜?
윤희 : 그냥 좀 필요해서요. 그런데 왜 찾으셨어요?
준석 : 점심시간이잖아요.
#.73 씬. 준석의 사무실 옆 휴게실. (낮)
준석, 윤희 마주 앉아있는.
윤희 : 저기요?
준석 : 네.
윤희 : 우리 회사 입사 시험이요. 커트라인이 몇 점이예요? 극비사항이라고 하던데.
준석 : 그런 게 있답니까?
윤희 : 없어요?
준석 : 그런 거야, 상대적인 거 아닌가요? 절대 평가라는 게 있을 수 없는 거 아닙니까?
윤희 : 아, 그렇구나, 그럼 몇 등까지?
준석 : 대체 왜 그래요? 누구 시험 보는 사람 있어요?
윤희 : 아니예요, 어서 드세요. 근데 필기시험이 중요해요? 면접이 중요해요?
준석 : 아, 진짜 왜 그러는데요?
윤희 : 제가요. 임시직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그 쪽에 전혀 경험이 없어서.
준석 : 전들 경험 있겠습니까?
윤희 : 맞다. (손뼉까지 치면서) 그리고 보니 우리 둘 다 낙하산 요원이네요. 무적의.
#.74 씬. 창고. (밤)
고니, 잠들어 있고. 덕길 양말 꿰매고 있고.
수찬, 책상 앞에 앉아 뒤로 고개 젖히고 졸고 있는. 노크 소리.
덕길 : 야.
윤희, 사발 쟁반에 받쳐 들고 들어오는.
덕길 : 워매, 윤희씨. 또?
윤희 : 이봐, 이봐,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이보게 친구. (탁 소리 나게 쟁반 책상에 내려놓으면)
수찬 : (놀라 깨면서) 네? 장미 백송이요?
윤희 : 이래서 시험에 붙겠나? 친구?
수찬 : 넌 안자고 왜 또 오냐?
윤희 : 들게나.
수찬 : 너 무슨 사극 찍냐? 왜 이렇게 사발은 들고 들락거리냐?
윤희 : 이번엔 좀 진하게 탔네.
덕길 : 고마운 줄 알고 마시기나 혀라. 공부 허라고 커피꺼정 타다주시는 게 어디 보통 정성인 줄 아냐.
그것만 허시냐. 시험 문제꺼정 다 뽑아다주시고.
윤희 : 그런 정성을 알아줘야 말이죠.
수찬 : 알긴 알지.
윤희 : 아는 사람이 커피 타다 주는 사람 정성도 모르고 자고 있나? 입 헤 벌리고.
수찬 : 너 왜 자꾸 사극 말투로 그러냐?
윤희 : 낫살이나 있으신 분하고 친구 먹고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네.
수찬 : 내가 오늘 화분을 백개도 넘게 옮겼거든. 그래서 눈꺼풀이 천근이다.
윤희 : 그럼 일어나시게.
수찬 : 왜 잠 깨라고 매다 꽂게?
윤희 : (수찬 일으켜 세우며) 잔말 마시고. 자, 국민 체조.
수찬 : 야, 이러는 건 달밤에 체조 하는 거지.
윤희 : 시험에 붙는다는데 뭔들 못하겠나, 이 사람아. 헛둘 헛둘, 몸통 운동. (국민 체조 구령 맞춰가면서)
덕길 : 지도 요즘 허리가 굵어진 거 같은디.....
세 사람 서서 열심히 국민 체조 하는.
#.75 씬. 꽃 집 앞. (낮)
화분 나르고 있는 수찬 따라 다니며 시험 자료 들고 읊어주고 있는 윤희.
윤희 : 이건 틀림없이 나온다니까.
수찬 : 넌 입사 시험 본 적도 없다며?
윤희 : 내가 반에서 40등 밖으로 밀려나 본 적 없는 건 이 타고난 하늘이 내린 감 때문이거든.
수찬 : 너희 땐 반이 몇 명이었냐?
윤희 : 55명.
수찬 : 너도 어지간 했구나.
윤희 : 그래도 공부하고 담 쌓고 산 것 치곤 등수는 좀 나온 편이야. 내가 사지선다형엔 원체 강하거든.
수찬 : 연필 굴렸냐?
윤희 : 아니, 문제를 보고 있으면 유난히 크게 보이는 번호가 있어. 바로 그걸 찍으라는 하늘의 계시지.
수찬 : 왜 아예 처녀 무당으로 자리를 펴시지. (그러다 윤희를 빤히 들여다보는)
윤희 : 왜?
수찬 : 그래서 그런가 너 눈 좀 사시같아.
윤희 : (버럭) 시험 안 볼거야?
#.76 씬. 회사 전경. (낮)
#.77 씬. 비서실. (낮)
윤희, 안절부절 못하고 왔다 갔다 하고 있는.
미나 : 왜 그래요? 어지럽게?
윤희 : 시험 아직 안 끝나겠죠?
미나 : 무슨 시험이요?
윤희 : 입사 시험이요.
미나 : 누가 시험 봐요.
윤희 : 이거 회사 입구에다 엿이라도 사다 붙였어야 하는 거 아닌가.
미나 : 누가 보는데요?
#.78 씬. 회사 일각. (낮)
윤희, 안절부절하고 있으면.
수찬 걸어오는.
윤희 : 어때? 붙을 거 같아? 감이 어떠냐구?
수찬 : 아는 건 쓰고, 모르는 건....
윤희 : 모르는 건?
수찬 : 눈 크게 뜨고 몇 번이 크게 보이나 봤지 뭐.
윤희 : (에라 인간아 하는 표정으로)
#.79 씬. 버스 정류장 앞. (밤)
윤희, 쪼그리고 앉아있는. 다가오는 버스.
버스에서 내리는 희섭.
윤희 : (일어서며) 부장님?
희섭 : 아니, 왜 여기 나와 있어?
윤희 : 부장님 기다렸죠.
희섭 : 날 왜?
윤희 : 채점 하시고 오시는 길이죠?
희섭 : 응.
윤희 : 어떻게 됐어요? 백수찬 말이예요.
희섭 : 백교수?
윤희 : 붙었어요? 커트라인 통과 했어요?
희섭 : 다음 주에 발표 날텐데 그때 알면 되지 뭐하러 밤늦게까지 기다려.
윤희 : 붙었어요?
희섭 : 극비야. 절대 아무한테도 말 하면 안돼.
#.80 씬. 창고. (밤)
수찬, 덕길, 고니, 이불 깔고 있는데, 벌컥 열리는 문.
윤희, 뛰어 들어오는.
윤희 : 됐대, 됐대.
수찬 : 넌 허구헌날 왜 불구경 하러 뛰어다니는 애 같냐?
윤희 : (수찬 팔 잡고 겅중겅중 뛰면서) 됐대. 됐다구. 붙었다구?
덕길 : 시험 붙었다고라?
윤희 : 네. 꼴찌긴 하지만 붙긴 붙었대요?
수찬 : 꼴찌래?
윤희 : 꼴찌면 어때? 붙으면 됐지.
덕길 : 그려, 꼴찌로 붙었다고 월급 쬐끔 주겄냐? (겅중겅중 뛰는데)
윤희 : (뛰면서) 월급은 최종 면접에 붙어야 나오죠.
덕길 : (멈추며) 한번에 붙는 거 아녀라?
윤희 : 아닌데요.
덕길 : 그럼 왜 뛴대요?
윤희 : 필기시험 떨어지면 면접도 못 보잖아요. 어쨌든 붙었으니까 좋죠 뭐.
덕길 : 허긴, (겅중거리며) 붙었으니까 좋다.
#.81 씬. 희섭의 집 거실. (아침)
희섭, 식탁 앞에 앉는. 선, 영 앉아있고.
보경 국 퍼놓으면서.
보경 : 백교수 시험 붙었다면서?
희섭 : (벙한) 어, 어떻게 알아? 극빈데.
보경 : 무슨 극비가 온 동네 사람 다 아냐. 아침에 신문 가지러 나갔다 예슬이 할머니한테 들었는데.
#.82 씬. 면접장 사무실 앞. (낮)
남자1,2, 수찬 영재 안내 받으며 걸어와 문 앞 의자에 앉는.
영재 : 여기서 기다리세요. (사무실로 들어가는)
수찬 : (긴장한 모습으로 입도 풀어보고, 넥타이도 고쳐 매고.)
벽 옆에서 빼꼼히 얼굴 내미는 윤희.
윤희 : (주먹 불끈 쥐고 파이팅)
수찬 : (웃으며, 끄덕이는, 그렇지만 긴장 된다)
#.83 씬. 면접장 내. (낮)
들어와 앉는 수찬, 남자1, 2.
간부사원들과 고사장, 준석 면접관으로 앉아있는.
준석 : 백수찬씨?
수찬 : 네.
준석 : (낯이 익는다 싶고. 순간 윤희 동네에서 마주쳤던 게 떠오르고) 왜 우리 회사에 입사하려고 합니까?
수찬 : (침 삼키고) 집이 없어섭니다.
그런 수찬의 모습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