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禪軒 독서일기 2025년 11월 15일 토요일]
《『대동야승』 中 趙慶男 著 『續雜錄 속잡록』
병조 참의 유백증(兪伯曾)의 상소》 (182)
<1628년 무진년 하 숭정 원년, 인조 6년>
○ 병조 참의 유백증(兪伯曾)의 상소는 다음과 같다.
국가가 불행하여 이같이 전에 없는 한재를 당하였는데 전곡이나마 다소 가망이 있기를 바랐더니, 동풍이 크게 불어 닥쳐 피어난 이삭이 다 말라 죽었습니다. 호남은 다른 도보다 더 심한데 7월에 비가 없어 이미 자란 것은 오히려 손상되어서, 혹 이른 곡식이 성숙한 곳이 있으면 바로 밭머리에서 자면서 밤을 이용하여 절취하거나 혹은 밭 주인을 묶어 놓고 베어가서 심한 놈은 살해하기까지에 이릅니다. 고아ㆍ과부같이 얻어먹을 데가 없는 사람은 기아를 견디지 못하여 목매어 죽는 자가 많고, 화적이 시골 마을을 약탈하는 경우가 기보(畿輔)에서도 그치지 않는데, 초가을부터 이러하니 내년 봄이면 어떠할 것인지는 짐작이 갑니다. 비록 국가나 백성이 편안한 때에 있어서도 이렇게 전에 없는 흉년을 만나면 백성의 근심과 참상을 차마 듣지 못하는 것인데, 하물며 이 같은 전쟁 뒤에 부세가 번거롭고 부역이 무거워서 고혈(膏血)이 벌써 다 된 경우야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아, 하늘이 우리 사직을 붙잡아 주지 않으려는 것입니까. 어찌하여 그러한 재앙과 변괴가 모두 오늘날에만 모여드는 것입니까.
내리신 윤음을 보건데 말씀의 뜻이 간측(懇側)하여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아끼는 뜻이 말에 넘치시니, 한마디 말로 나라를 흥하게 한다는 것이 이 일을 이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하나 과실을 알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과실을 고치기가 어려운 것이요, 착한 일을 말하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착한 일을 행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옳은 말을 구해 들임을 귀중하게 여기는 바는 그 말을 쓰고 그 계책을 시행하여 과실을 고치고 폐단을 개혁하는 것뿐입니다. 옳은 말이 있어도 쓰지 않는다면 무엇 때문에 옳은 말 구하기를 일삼아야 합니까. 신이 또한 전번 상소에 못다한 말로써 전하께서 들으시기에 우러러 번거롭게 합니다.
기미년 같은 흉년은 예나 지금이나 없는 바이지마는 굶주려 죽은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던 것은 대개 무오년 곡식이 조금 잘 익어서 공사 간에 저축되어 있었기 때문에 백성들이 그것을 얻어 산 까닭입니다. 그러나 금년의 한재는 기미년보다 심하고 지난해 농사도 풍작이 못 된다고 할 수 있으니, 공장(公藏)과 사축(私蓄)이 탕진되어 남은 것이 없습니다. 이미 곡식을 옮겨올 곳이 없고 또 곡식을 사들일 곳도 없으니 위로 나라의 것을 덜어다가 아래로 백성에게 보태어 주는 외에는 별다른 계책이 전혀 없습니다. 인군의 부귀는 한 나라에 있으므로 국가가 편안하면 창고나 부고(府庫)의 재물이 그의 재물 아님이 없지마는, 국가가 위란(危亂)하게 되면 한 몸조차 보존하기 어려운데 하물며 그 재물을 보존할 수 있겠습니까. 이 때문에 재물이 모이게 되면 백성이 흩어지고, 재물이 흩어지면 백성이 모이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사리의 상도(常道)입니다.
삼가 듣건대, 내탕고(內帑庫)에 저장된 것은 그 수량이 넉넉하지 못한다고 하니 비록 혹 모두 다 방출하더라도 능히 굶주린 백성에게 두루 미치지 못할 것이나, 다만 인군 된 이가 그의 사저(私儲)를 풀어서 국가의 용도에 보충한다면 백성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이 이보다 나을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 다소에 따라 유사(有司)에게 돌려주어 혹은 기민 구제에 쓰게 하고 혹은 군국(軍國)의 수용에 충당하게 하면 팔방의 백성이 모두 다 감동하여 말하기를, “우리 인군이 나라를 앞세우고 재물을 뒤로 돌리는 마음이 이렇다.” 하고, 이로 인하여 온 세상이 용동(聳動)하여 나라의 근본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니, 어찌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어공(御供)의 물자는 모두 다 이미 줄였으므로 지금 또다시 감하기를, 청할 수도 없고 어떤 물자가 감할 만한 것인지도 알 수 없거니와, 갑건치(甲乾雉)ㆍ갑건장(甲乾獐) 등과 같은 물건은 모두 다 입에 가까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마땅히 재량하시어 감하여야 할 것은 감하고 두어야 할 것은 그대로 두어 일상 음식을 입에 맞을 정도에 그치게 하되, 그 감한 것으로써 구제하시면 백성이 실속있는 은혜를 입게 될 것입니다. 옛적 요 임금의 띠집과 흙 계단이나 우(禹) 임금의 너절한 옷과 변변하지 못한 음식이 무엇이 성덕(聖德)에 손상이 되고 무엇이 지치(至治)에 누가 되었습니까. 기근이 거듭되고 도적이 봉기하며, 나라의 사세가 흙같이 무너져 끝내 수습하지 못하고 보면 비록 감하고 또 감하려고 한들 할 수 있겠습니까. 기인(其人)의 목(木)을 비록 감하였으나 일상 사용에 족하고 이제 또 감하여도 모자라지 않는다고 하니, 또 혹 그 반을 감하여 일용 외에는 많이 남아도는 것이 없게 하고 그 감한 것으로써 기민을 구제하시면 반드시 유익한 바가 많을 것입니다.
해서(海西)의 노전(蘆田)이 비록 상전(上殿) 소속이고 고기와 소금을 생산하는 지방이 비록 궁가(宮家)에게 내린 바라고 하나, 이렇게 병난이 일어나고 농사가 흉작인 때를 당하여 국가의 위급이 한 오라기 털과 같은데 혹시라도 급한 일이 있어 종사가 보존되지 못하면, 부고에 가득 차 넘치는 것이 다만 적병이 자원이 되고 말 것입니다. 왕년에 대간이 여러 날 논란하였으나 윤허를 받지 못하였는데,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달성(達城)ㆍ해숭(海嵩)ㆍ동양(東陽) 3위(尉)는 모두 다 이름 있는 아버지의 아들이니, 반드시 그들이 받은 땅을 국가에 반환할 것이다.” 하였는데, 끝내 들리는 말이 없으니 재리(財利)에서 벗어나기 어려움이 이러한 것인가 봅니다. 옛적 인군 중에도 흉년을 당하여 이웃 나라에 곡물 수출을 요청한 이가 있는데, 하물며 전하께서 자전께 요청하신다면 허락하시지 않을 리가 있겠습니까. 자전께서 허락하신 다음에 어염(魚鹽)의 일을 의당 차례로 거행하더라도, 궁가들이 어찌 감히 원망하는 말을 할 것입니까. 지금 이미 한해가 다 저물었으니 비록 금년의 사용에 미치지는 못하지마는, 올해 기근이 이러하였으니 명년에 비록 우순풍조(雨順風調)라 하더라도 다시 무슨 곡식 종자를 가지고 심어 가꿀 것입니까. 이것도 불가불 미리 계책을 강구하여야 할 것입니다.
무릇 국가를 다스리는 길이 비상한 변을 당하게 되면, 반드시 비상한 대책이 있는 다음에야 사람의 마음을 수습할 수 있고 나라의 명맥을 연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각 사(司)에 공물(貢物)의 기한부 정지를 임진란 뒤에 하였듯이 하면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지 아니하여도 스스로 살게 될 것이요 나라의 사세도 스스로 견고하게 될 것인데, 조정의 의논은 도리어 이것을 중대하여 행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합니다. 신은 생각하기를, 금년 한재는 병화의 참혹과 다름이 없이 인심의 원망과 배반이 이미 극한 지경에 도달하였으니, 폐지하지 아니하면 반드시 멸망할 추세에 있으나 폐지한다면 돌려 쓰기가 손바닥 돌리기보다도 쉬울 것입니다. 만일 임진란 뒤에 이 방책을 시행하지 아니하였다면 우리 국가가 어찌 오늘에 이르렀겠습니까. 전하께서 거(莒)에 있음으로 자처하고 선조(宣祖)로서 법을 삼으신다면 백성을 보호하고 적을 방어하는 계책이 이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아, 한재가 비록 심하더라도 수근(水根)만 있으면 혹 수확할 수 있지마는, 풍재(風災)는 건조한 데나 습한 데나 높은 데나 낮은 데나 고루 그 피해를 입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지금 온갖 곡식이 이삭이 나올 때를 당하여 큰바람이 이렇게 불었으니 한 포기 수확인들 가망이 있겠습니까. 한 해를 넘길 밑천이 어디서 생기겠습니까. 적과 틈이 벌어지지 않고 연사(年事)가 비록 풍성하더라도 오늘날 같은 인심과 국세로는 결단코 멸망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하물며 금년에 재앙이나 변괴 같은 것을 전하께서 일찍이 들어보셨습니까. 무릇 이 다섯 가지에 대해 전하께서 전하의 마음으로부터 단안을 내리시되 오래 끌지 않으신다면 기근을 구제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정관(貞觀) 초년에 여러 해 동안 이른 서리가 내리고 한발이 빈번하므로 기내(畿內)의 호구(戶口)를 모두 시골[關外]로 옮기어 왕래한지 수년이었으되 끝내 한 호(戶)도 도망간 자가 없었으니 태종(太宗)이 인자하고 자상하게 어루만져 편안하게 하여 준 까닭이요, 덕종(德宗)이 봉천(奉天)에서 조서를 내리니 교만한 장수와 포악한 군사가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인군된 이가 만일 성심으로 아끼고 구제하면 비록 흉년을 만날지라도 원망하여 배반하지 않게 되는 것이요, 비통한 언사로 민중에게 고시하면 비록 완악한 백성일지라도 능히 감격할 줄 아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이 다섯 가지 일을 단행하여 백성의 마음을 기쁘게 하여 주고 또한 재신(宰臣)으로 사명(辭命)에 노련한 사람에게 명하여 간절하게 말을 만들어 8도에 고시하게 하시면 늙고 병든 이라도 반드시 막대 짚고 와서 들을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신이 이어 생각건대, 조정 안에 여러 어진 이가 다 모였으되 사람의 도량과 재간이 혹 서로 맞지 않습니다. 이서(李曙) 같은 사람은 재주가 많고 총민(聰敏)하여 적심(赤心)으로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되 일을 만듦이 번쇄(煩瑣)하여 군정(軍情)을 크게 잃었고, 신경진(申景禛)은 위망(威望)이 본래 현저하고 침착하며 굳세어 지략이 있으되 아래 실정이 통하지 못하여 군사의 마음이 붙지 않는데, 이 두 사람이 한 사람은 기보(畿輔)의 군사를 거느리고 한 사람은 연곡(輦轂)의 군사를 맡고 있어서 불의의 변이 있으면 힘을 얻지 못하게 될까 두려우니, 삼가 바라건대 이때에 미쳐 선처하십시오.
남들이 말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은 자신을 위한 계책이 아니라 대개 나라를 위하여서는 원한이라도 걸머지려는 데서 출발한 것입니다. 척리(戚里)의 제수(除授)는 특명에서 나온 것이요 송상인(宋象仁)으로 말할 것 같으면 단정코 다른 뜻이 없는데, 전하께서 자기와 다른 사람을 배격한다고 지적하셨고, 정백창(鄭百昌) 역시 한준겸(韓浚謙)의 사위였는데, 특명으로 이조 참의가 되었습니다. 송상인이 사간이 되었을 때에 이것을 가지고 논란하였다가 남원(南原)에 수령으로 나갔는데, 강직하고 청렴하였으며 바른 것을 지켜 흔들리지 않았으니, 어진 형의 아우는 과연 이러하구나. 수령들이 뇌물을 바치는 것은 법에 응당 벌하게 되어 있으니 권도(權濤)의 탄핵은 진실로 딴 사정 없이 나온 것인데, 전하께서는 그 공격이 대신에게 미칠까 의심하십니다. 두 사람이 혹은 청백(淸白)을 스스로 지켜 확고하게 흔들리지 아니하고, 혹은 강개하고 정직하여 강어(强禦)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는데 조정에 쓰이지 못하니 진실로 애석합니다. 삼가 바라건대, 이 두 사람을 불러 삼사(三司)에 두시면 반드시 능히 간사한 일들을 규탄하여 과오를 바로잡고 빠뜨린 일을 수습할 것입니다.
근자에 보건대, 기강이 해이되어 사람들이 법을 무서워하지 않고 욕심의 물결이 하늘을 뒤덮으며 탐오(貪汚)가 버릇이 되어 수령의 빈 자리 하나를 머리가 부서지도록 경쟁하고 이미 얻고 나면 오직 백성의 재물 긁어먹기를 일삼으니, 백성의 원성이 날로 늘어나고 재력이 탕진되는 까닭은 다만 여기에 연유하는 것입니다. 수령들이 무서워하는 것이 암행어사 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호행(虎行)이라고 일컬었습니다. 만일 사람을 잘 가려 변장시키고 정해진 때 없이 내려보내어 수령들이 그 단예(端倪)를 알 수 없게 하면 감히 마음대로 백성을 침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신의 재질이 비록 용렬하나 근심하는 것은 나라의 일이요, 말이 비록 광망(狂妄)하나 마음은 충성뿐입니다. 마침 직언을 구하시는 날을 만났기로 또다시 추요(蒭蕘)같은 말을 드리는 것입니다. [한국고전종합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