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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3일 04:30에 집을 나서 인천공항에서 중국 사천성 성도시 쌍류공항에 도착하여
짐을 찾고 공항밖으로 나오니 비가 내린다. 시간은 벌써 22:00를 넘어섰다.
중국 합비를 경유하여 기내에서 밥을 두끼나 먹고 비행기 연착하고 하여 예정 시간을 넘겨 버렸다.
중국여행사 가이드가 반갑게 맞이 하며 대기중인 버스에 서둘러 짐을 싣고 갈길이 멀기 때문에
서둘러 성도를 벗어나 야안시로 약140Km를 두시간 가량 달려 홍주빈관에 도착하여 여장을 푸니
거의 자정이 다되었다. 내일 05:00에 출발해야 하므로 서둘러 잠을 청하지만 잠이 잘 안온다.
거기다 숙소파트너의 코고는 소리에 영 잠을 이룰수 없었다.
※그간 분신 같이 사용하던 고물카메라가 여행을 앞두고 고장이 나는 바람에 작은 똑딱이
카메라를 빌려 갔다. 거의 달리는 버스의 창을 통해 찍고, 자동으로 대충 찍었음을 밝힌다.
예전 같지 않은 사진들이고 , 찰영하느라 숨을 멈춰거나 무거운 고물 카메라 들고 다니면
고소증의 위험요인이 될 수 있기에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아안(야안/雅安) 야안은 티벳으로 진출(進出)하는 중요한 지역이었다.성도와 야안사이에는 고속도로가 통하는데 150km의 거리를 약1시간30분걸린다. 야안과 천전(天全)지역은 <우성(雨城)>이라고 부를정도로 비가 많이 내린다.
2009년 8월 4일 04:00에 기상하여 비몽사몽간에 짐을 챙겨 05:00에 여정을 시작하였다.
캄캄한 밤을 달려 버스에서 졸다가 깨어보니 버스가 잠시 멈춘다.
기사들이 힘을 합해 큰 낙석은 그냥 두고 차한대만 지날 통로를 만들어 통과한다.
처음부터 걱정이 앞섰지만, 그래도 이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느듯 한참 높은산을 오르고 해발2600m인 "얼량산 터널"을 통과한다.
얼랑산(二郞山)은 공래산맥(邛崍山脈)에 속하며 해발이 약3600m 이다.
얼랑산 터널은 1999년11월28일에 개통되였는데 현재 중국에서 해발이 제일 높고 깊이가 제일 깊은 터널이다.
터널의 총길이는 4176m이고 도로상황은 시멘트로 포장이 된 좋은 길이다.
하지만 굽이가 많고 경사도가 급하여 조심해야한다.
얼랑산을 넘어서 대도하(대두허,渡河)에 가까운 감곡지(甘谷地)는 배낭객들들이자주 투숙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대도하를 따라 내려가면 공가산 (7556m),해라구(海螺溝)빙하 및 온천관광지로 갈수 있다.
잠시 주유소에서 주유도 하고 "加水"도 한다.
중국에선 고산을 넘나드는 차량들은 수냉식으로 만든다고 한다.
엔진과 브레이크를 물로 식힌다고....
그래서 버스 화물칸 한켠엔 드럼통만한 물탱크가 있다.
물갑은 유료!!! 고개마다 "加水"라 쐬어진 글을 자주 볼수 있다.
주유소 저 아래 산간 마을이 보이는 곳에 위치한 화장실
중국 전통화장실을 소개합니다. 유료 1인당 1원(한화 약200원)
밥맛을 고려하여 안 찍었는데, 돌아 오는 길에 다시 들리기에 찍어왓습니다.
얼량산 터널부터 비로서 티벳 고원이 시작된다.
녹차와 차마고도의 시발점으로 유명한 "아안"을 시작하여 이고개를 넘어 티벳으로 가던 차마고도길!
이길은 성도에서 티벳라싸로 가는 2600km의 국도318호선입니다.
건너편 산중턱엔 실타래같은 차마고도의 옛길들이 보입니다.
빗길을 달려 해발 1300m 루띵에 도착.
루띵은 야안에서 168km 떨어져 있으며 대도하(大渡河) 동쪽에 자리 잡고 있다.
중국에 도착후 처음하는 식사. 이것이 아침 식사 한끼라는데...
조그만 식당에 머리가 엉켜 붙고 앞치마가 때가 절어 꾸질꾸질한 주방장이 한 요리...
사천하면 유명한 사천짜장이 떠 올려지지만 판타스틱한 맛????!!!
면발은 떡같고 소스는 입안을 확 달구는 중국요리의 첫맛을 본다.
"산초"를 듬뿍 넣었는데, 다들 다 먹지를 못한다.
그렇지만 나는 거의 다먹었다. 양이 너무 많아 다먹지 못했을 뿐!
어쨌던 무었이던 먹어야 한다!
(*2009년 08시 11분)
식사도 했으니 휴식겸 근처의 유명한 "로정교"를 찾앗다.
루띵에는 유명한 루딩교(橋)가 있는데 중국 태평천국(太平天國)의 익왕-석달개 장군이 이곳에서 패배한 사건과
모택동이 이끌던 홍군이 이다리를 점령하였던 사건으로 유명하다.
※루딩쵸우(瀘定橋로정교)
1706년 청나라 강희제 때에 만들어진 다리이며 瀘定橋 라는 3글자는 강희제의 친필이라고 한다.
이 다리는 길이가 103m,너비가 3m되며 13개의 쇠사슬로 되여 있다.
밑 부분은 9개의 쇠사슬로 되여 있는데 그위에 나무판을 깔아 만들었고
양켠에는 각각 2개의 쇠사슬로 난간을 만들었다.
청나라시기부터 이 다리는 티벳으로 드나드는 중요한 통로 였다고 한다.
건너편 마을이 보이는 산은 해발5000m가 넘는데, 대도하를 건넌 홍군들은 이런 고산들을
어찌 넘었는지? 대도하 물줄기를 내려다 보면 어지럽다. 아래를 보지 말고 건너야 한다.
중국 공산당에 가입할려면 이곳 로정을 반드시 다녀가야 할 만큼 이곳은 유명한 관광지이다.
구름 뒤쪽 산이 해발3600m가 넘는 얼량산 지역이다.
루딩차오(瀘定橋) 인근의 22인 용사탑.
1935. 5. 29. 홍군 대이동 당시 주덕, 주은래가 이끄는 홍군이 국민당군에 포위되어 위기에 처했을 때
22명의 홍군 선발대가 국민당군의 기관총세례를 뚫고 루딩교를 탈환하여 大渡河를 건너
홍군을 이동시킬 수 있었다.
이 루딩교 탈환이 없었다면 홍군의 장정은 실패로 끝났을 것이고,
오늘의 중화인민공화국도 역사상에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 육탄 22용사를 기리는 탑이 거창하게 세워져 있고,
도로의 이름이 장정대도, 홍군로 등으로 이름 지워져 있다.
루딩교를 탈환한 22인 홍군들
※홍군의 장정에 대하여...
손문의 신해혁명 후 청조가 멸망하고 제국주의 세력과 각지의 군벌들을 타도하기 위해 손문이 맺은 제1차 국공합작이 장개석의 반공 쿠데타에 의해 깨진 뒤 국민당과 공산당 사이에는 치열한 내전이 벌어졌다. 당시 공산당 홍군(紅軍)은 국민당에 비해 숫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열세였다.
1934. 10. 16. 새벽 중국 남부 江西省에 주둔하던 중국공산당 홍군 10만여명이 장개석의 국민당군 90만여명의 대대적인 공격을 피해 튀기 시작했다. 홍군은 국민당군의 매복 기습과 혹독한 날씨에 맞서 싸우면서 험한 산길과 늪을 행군해 1만 2,500km를 후퇴하여 1년 뒤인 1935. 10. 20. 이들 중 4,000여명만이 살아남아 서부내륙 산시성에 도착해 간신히 근거지를 마련했다. 홍군의 이동은 명백한 도주였고, 패퇴(敗退)였지만 중국 공산당역사에서는 패주가 승리의 신화로 포장된 이른바 장정(長征)이 된다.
"공산주의자들 자신은 일반적으로 이것을 '2만 5,000리 장정'이라고 말했다. 홍군은 18개의 산맥을 넘었으며 24개의 강을 건넜다. 6,000여마일을 진군한 이 대장정의 경험은 홍군에게 '결국 이길 것이다'는 승리에의 신념을, 그들이 통과한 지역의 2억명 중국 인민들에게는 혁명의 씨앗을 심어주었다."
- 에드거 스노(1905~1972), <중국의 붉은 별>(1937)
장정이라고는 하지만 거의 고사 직전이었던 공산당을 구한 것이 바로 장학량이었다. 서안의 화청지 오간청(五間廳)이 바로 그 중국현대사의 물길을 바꾼 '서안사변'의 현장이다. 五間廳에서 쉬고 있던 장개석은 1936. 12. 12.(우리나라의 5공 창출과정에서의 12.12사태와 일시가 같다) 자신이 서북사령관으로 임명했던 장학량에 의하여 연금됐다가 일본을 물리치기 위해 공산당과 힘을 합치라는 요구를 수용하고 12. 25. 석방된다.
1937. 9. 22. 제2차 국공합작 선언은 공산당으로서는 그야말로 기사회생의 전기가 되었다. 國共이 합작하여 치른 일본과의 8년의 전쟁 동안 공산당은 점령지역에서 부패한 국민당정부의 통치력을 와해시켰고, 전쟁 초기 5만 명에 불과했던 군사력도 약 130만 명까지 늘었다. 일본과의 전쟁에서 승리 후 장개석은 모택동과의 기싸움에서 지고 1949년 중국 본토를 공산당에게 내어주고 대만으로 쫓겨 갔다.
루딩을 지나자 이제 아스팔트길은 사라지고 캉딩 고원을 거쳐
해발 4000m이상인 절다산으로 향하는 길은 고난의 버스장정이랄까?
※캉띵(康定)-해발 2500m,물,다리,온천이 많기로 이름 나 있다.
루띵에서 캉띵까지는 49km된다.
이 구간에 와스꺼우(瓦斯溝)라고 하는 골짜기가 있는데 천서고원(川西高原)과 川西분지사이의 중요한 협곡통로이다.
장마철이면 도로가 많이 밀려나고 했는데 지금 공사를 하고 있다.
캉띵은 티벳자치구에서도 유명한 도시이며 깐즈자치주의 교통,문화,상업과 정치의 중심지이다.
캉띵(康定)의 옛이름은 타전로(打箭爐)이며 티벳어로 타절다(打折多)라고 하는데,
'타(打)'는 깃발을, '절(折)'은 산봉우리, '다(多)'는 두 물줄기가 만나는 교차점을 뜻하므로,
'타절다'는 깃발 아래 두 물줄기가 만나는 곳이라는 것이다.
※캉딩에는 2008년에 개장한 세계에서 두번째 높은 공항이 있다. 해발 4,280m.
제일 높은 곳은 티벳의 창도에 있는 방다공항 4,334m이다.
해발이 워낙 높아 착륙후 고소증세로 바로 머리가 띵하다고 하며, 산소가 희박하여 다른 공항보다
1.5배 정도 긴 활주로5500m가 있다.(인천은 3750m)
그만큼 티벳은 고원에 위치하고 있다고...!!!
버스는 마치 4륜구동 같이 힘겹게 달린다.
비포장 길을 계속 올라간다.
버스 차체 하부가 땅바닥에 수차레 닿고 심하게 흔들린다.
이런 길을 MTB하며 지나는 이들도 있다.
앞차가 막히면 한참을 기다리던지 차량노숙을 하던지, 되돌아 갈수도 없다.
차량이 고장나도 장비가 올수도 없다. 어떻게던 헤쳐 나가야 한다.
제발 고장나지 말아 달라고... 또 앞차도 빠지지 말라고 빌어야 한다!
이구간 하루 한차례만 통행을 시킨다.
지정된 시간에 도착을 못하면 다음 날 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렇게 공사중이고 그래서 부랴 부랴 "아안"에서 05:00에 출발해야 했다.
계곡물이 가늘어 지는가 보니 고개 마루에 다와가는가 보다. 승용차는 멈춰 서 있다.
비가 와서 질퍽한 고갯길을 굽이굽이 계속 오른다.
구름이 가득하여 산정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해발 4000m의 고갯길, 김봉지가 터질듯이 빵빵하다.
해발4,287m "절다산"고개마루에 도착 김치 봉지도 터질듯이 빵빵하다.
GPS표시는 북위30도 04분 20초 동경 101도 40분 14초 해발4,297m에 버스는 휴식한다.
버스에서 내리니 으스스 추우며,현기증이 난다. 고소증세를 느낀다.
가스가 심하여 지척을 분간하기 힘들다. 날씨가 맑으면 설산을 바라보는
전망 좋은 곳이라는데, 잠시만 쉬었다 서둘러 내려간다.
※절다산(저둬산,折多山)은 대도하(따뚜허/大渡河)와 아롱강(야룽쟝/雅 long 江)의
분수령인 동시에 한장(漢藏)분계선이다.
캉띵에서 약30분 거리에 있으며 해발은 4298m이다.
저둬산을 넘기전에 저둬촌(折多村)을 지나게 되는데 마을에 온천이 있다.
저둬산을 넘으면 설산들이 끊임없이 이어 진다.
절다산 전경(자료사진)
버스에 승차하니 중국가이드가 고소증에 효험있다는 "홍경천"을 한병씩 준다.
이 약이 효험이 있었는지는 알수 없지만 이후 고소증을 겪지 않았다.
티벳을 여행자에겐 유명한 약으로 알려져 있다. (*2009년 8월4일 12:19)
몇명은 두통을 호소하고, 몇명은 늘어지고 , 몊명은 구토를 한다.
고소증(고산병)은 참으로 무섭다.
첫댓글 중국의 역사를 훤하게 꿰뚫고계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