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릉 따르릉..
철꺽. 여보세요..
"주서방 인가? 날세",
예 장인어른 건강하시죠..
"애들은 공부 잘하고?"
아! 예 그저 그렇죠 뭐..
"이거 큰일 났내...."
아니 무슨 일 있으세요?
"배를 따야겠는데 사람을 구할 수가 없내 하범이(처남)는 내려온다는데 자네는 어떠한가?"
이럴 때 내 머리는 번개같이 회전한다. 국가재정상 연가 보상비를 전액 지불하지 아니하기로 결정하였으니, 법정연가 일수를 다 채우도록 휴가들을 가라고 하는데..
휴가랍시고 또 나 혼자 배낭 매고 나서면 우리마누라(자칭 춘향이, 남원에서 여고 다닐 때 춘향제 춘향이 뽑기 대회에 출전했었다고 주장함 순위에 대하여는 국가비밀이라고 절대 안 가르처 줌)의 서리 내린 눈을 마주칠 자신이 업던 차인데
"아이고 아버님 제가 내려 가야죠 ^_^.
처남하고 상의해서 금주에 내려가도록 하겠습니다"
"응 그래 주겠나 고마우이 요즘 공무원들 많이 바쁘다던데 괜찮겠나?"
용감하게 "네 괜찮습니다.. 제가 가서 당연히 도와 드려야죠 흠. 흠"
일요일에 집에서 춘향이의 잔소리를 듣고 있던 중 왠 복음의 전화!!
춘향이 왈(속으로는 좋으면서) 아주 공손한 목소리로 '서방니임.. 시골과수원이 쪼매 넓고 경사가 심한데 충청도 양반님께서 어찌 그리 험한 일을....'
'어허 처가집일이 내일이요, 내일이 처가집일인데, 사내대장부가 어찌 과수원의 배따는 일을 두려워하겠소 허험'
사무실에 금요일부터 화요일까지 연가를 내고,
1999. 10. 29(금)
금요일 아침에 지리산종주에 필요한 배낭(80L)을 꾸미는 내게 춘향이 의심의 눈초리로 처다 보며 한말씀.....
아니 아버님댁 과수원 배따러 가시는 분이 왠 산행 준비시옵니까??
어허 주말일기가 불순하다고 하는데 비라도 내리면 배 수확에 지장이 초래되잖소 비를 맞더라도 배를 따려면 오버복이 필요하고, 장모님이 불편하시다는데 과수원에서의 식사준비가 어려울 게고 그러니 버너·코펠 등이 필요하고, 인월은 지리산 자락에 있어 기후변화가 심하고 고도가 높아 겨울옷이 필요 한 게 아니겠오..
우리 춘향이 머리 속 "긴가 민가?????"
집밖에서 처남 차가 빵빵 거린다.
배낭을 차에 싣고 처남과 처남친구 한 분 이렇게 셋이서 쾌청한 날씨의 경부고속도로를 달려 고향인 청주 나들목을 지나 호남고속도로로 전주 나들목에서 남원으로 또88고속도로를 통해 지리산 입구인 인월 처가집 도착시간이 익일 00:30 이다.
1999. 10. 30(토)
우리가 내려오기 전에 틈틈이 수확을 하셨다는 데 배가 우리주먹 두 개 합친 것 보다 크다.
아침 일찍 과수원에 도착하여 배를 따는데 이게 장난이 아니다.
내가 키가 1미터80인데 사다리를 놓고도 묘하게 달린 놈들은 따기가 힘들고 박스에 담아 경운기 있는 곳까지 운반하는데 80L 배낭 매고 경사길 내려가는 것 보다 더 힘들다.
그래도 시간이 갈수록 일이 손에 익으며 일의 속도가 생각보다 빠르다
배를 따는 중에도 까치들의 배 습격은 계속된다.
까치란 놈들 참 묘하다 아주 잘 익은 배만 골라 파먹는다.
까치들로 인한 피해가 참 심하다고 한다
1999. 10. 31(일)
대구에 사는 동서와 처형 부부가 일요일 새벽에 도착했다.
아침 일찍 과수원 일을 정리하고, 나는 지리산종주를 위해 배낭을 챙기는데 장인께서 어른주먹 두 개 보다 큰배를 5개나 배낭에 넣어주신다.
과장이 아니고 하나에 1㎏이상은 나가니 현재 배낭무게 23㎏, 물2L담으면 2㎏, 배 무게 5㎏, 그럼 도합 30㎏ 와 미치겠다.
산에서 먹는 배 맛은 일품이라며 좋은 것으로만 싸주시는 것을 거절 할 수도 없고... 눈치를 보며 살짝 두 개를 꺼내 대청마루 한쪽으로 감춰둔다.
자! 지난여름 휴가 때 지리산 산행 후 무려 2개월만에 신령님께 인사하려 출발이다.
막 출발하려는데 장모님 말씀 지리산 단풍이 지금 한창일텐데 하신다.
처남 왈 그럼 성삼재까지 주서방 태워다 주는 길에 노고단까지 자기들도 단풍구경 가잔다. 모두 동의
장인은 과수원일 마무리 때문에 아니 가시고
장모님, 동서부부, 처남, 처남친구와 함께 차 두대에 나누어 타고 지리산입구로
어!!! 입구부터 차량행렬이 줄지어 서있다. 공휴일에 마지막 단풍구경이라 차량행렬이 엄청나다. 차를 돌려 운봉으로 향한다. 잘빠지다가 정령치 근처에서 정체..
여기서부터 차창 밖의 단풍구경에 지루한 줄 모른다,
장모님 말씀 한마디 "단풍이 참 곱다!" 모두들 '그러내유!!'
정령치 부근에서 행글라이딩 동호회 행사가 있는 모양이다.
엄청 사람들이 분 빈다.
나도 한번 날고 싶지만 경비도 만만찮을 것 같고 더군다나 춘향이 에게 암벽장비를 들키고 나서부터는 어딜 "바위 타다 떨어져 사고난 사람이 한둘 인줄 아냐 니 나이가 내일모래면 50인데 나 혼자 애들 키우며 과부로 살란 말이냐" 앙앙앙..
참 기가 막혀 서방님 사고 나는 게 걱정이 아니고 혼자서 아그들 키우는 게 걱정이라 이거지... 속으로 중얼중얼 대지만 겉으로야 암벽장비의 성능을 설명하며 안전하다 는 것을 누누이 설명하는 처지에 행글라이딩 이라니 언감생심이지......
차가 너무 정체되어 하늘아래 첫 동네인 심원마을 입구 근처 휴게소에 차를 주차하고 걸어서 성삼재 휴게소로 향한다. 장모님은 수술 휴유증으로 힘들어하신다
성삼재 휴게소.. 와 이건 완전히 장터다. 이러니 지리산이 몸살을 앓지
인월에서 구례 쪽으로 지리산을 관통한 이 기가막힌 도로가 지리산을 황폐화시킨다.
시간이 너무 지체되었고 바람이 심하고 비가 뿌리기 시작한다.
휴게소 안에서 우동 한 그릇 먹기 위해서 줄이 10미터가 넘는다.
비가 오므로 처가식구들의 노고단까지의 산행계획은 중지되고, 나는 출발하기 위하여 휴게소에서 오버복을 입고 있으려니 장모님이 오셔서 손을 잡는다.
"비도 이렇게 오시는데 위험해서 어찌 험한 산을 가려고 하나, 산이 그렇게도 좋은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씀하시는데 괜히 눈시울이 뜨겁다.
조심해서 다녀오겠습니다. 말씀드리고 노고단산장 쪽으로 향한다.
빗줄기가 굵어진다, 배낭은 왜이리 무거운지, 어제 새벽까지 먹은 소주가 막 올라온다.
노고단산장에 도착하니 4시30분이다. 취사장에 들어가 배낭을 내린다.
비는 억수같이 내리고 계속 진행할까 말까 갈등이 생긴다
오늘은 연하천에서 일박할 예정이었는데 시간이 너무 지체되었다.
에라 짐도 줄일 겸 큼지막한 배 하나를 꺼내 깍 아 먹는다.
배가 단맛이 도는 게 기가 막히게 맛있다.
옆에 식사준비중인 젊은이게 한 조각을 권하니 참 시원하단다.
배 한 조각에 소주한잔이 온다, 어!.. 지금 소주 먹으면 진짜 못 가는데 하면서 손은 소주잔을 덥석 잡는다.
어제저녁에 그렇게 많이 먹고 참 누가 주씨 아니랄까봐 내가 생각해도 큰일이다.
결단을 내린다.
여기서 일박하고 내일 새벽에 출발하여 장터목에 배낭을 맡기고 천왕봉 같다가 백무동으로 하산하자 딱 결정을 내리니 마음이 편하다.
자자 내일 산행을 위하여 잠을 청한다.
시끌시끌하여 잠이 깬다. 야간 산행으로 올라온 학생인 듯한 젊은이들이 비에 젖은 옷들을 이층 침상에 걸고들 있다.
화장실을 가려고 밖으로 나오니 비바람에 운무가 자욱하여 앞이 잘 안 보인다. 갈증이 나서 물 좀먹으려고 취사장으로 가니 아이고 웬 아자씨께서 소주한잔 하란다.
내 실물을 보면 알겠지만, 절대 난 소주꾼 같이 안 생겼다... -_-;;
에고 에고 또 묵자, 내일은 내일이고.....
1999. 11. 1(월)
출발하려는 산꾼들로 산장안이 시끌시끌한데 속이 거북하고 일어나기가 힘들다.
06:30쯤 억지로 일어나 밖으로 나오니 바람이 쌀쌀하고, 가랑비가 내리고있다.
생생우동 하나, 처가집에서 싸온 김밥, 버너, 코펠을 들고 취사장으로 향한다.
먹어야지 억지로라도 먹어야지 하는 일념으로 물을 끓이고 우동에 김밥을 먹으니 좀 살 것 같다.
지난 7월인가 백두대간 단독 구간종주 중에(빼재∼덕산재 구간) 빼재에서 야영중 신풍령 휴게소에서 저녁식사 후 휴게소 사장님(장동원 님, 사모님 왈 사장님은 항상 동원 예비군이란다 ^_^;; ) 과 덕유산 개발 반대에 따른 주민대표로서의 비화, 기타 산 이야기 등으로 저녁 8시부터 새벽1시까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야그와 소주를 먹은 후 아침도 거르고 산행을 시작하여 무지하게 고생한 기억이 있다.
행동식도 입에 쓰고 물만 먹으며, 중간 중간에 지뢰(???)를 매설하며, 하여간 너무 힘들어 중간에서 거의 탈진 상태로 배낭에서 코펠 꺼낼 힘도 없었지만 살려면 무어라도 먹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겨우 겨우 라면을 하나 끓여먹고 고생고생하며 산행을 한 후부터는 절대로 아침은 굶지 않기로 굳은 결심을 하였다.
어찌어찌 하다가 08 : 30이 되어서야 출발이다. 비바람이 심해 상하 오버복을 덧입는다.
노고단을 향한 돌계단이 술에 깨지 않은 다리를 지치게 만든다.
노고단 주위는 운무가 자욱하여 주변경치를 전혀 볼 수가 없다.
돌탑을 한번 둘러보고 앞으로 진행, 앞에 우의를 입은 자매(후에 알음)를 추월하여 죽죽 진행한다.
이제야 지리산에 들어 왔음을 실감한다.
땀이 나기 시작하며, 어깨가 무지하게 아프다.
배낭 무게 좀 줄이려고 돼지령에서 배 하나를 꺼내 깍 아 먹는데 아까 본 우비아가씨들이 오고 있어 배 좀 나눠먹고 쉬었다 가라고 권하자 배낭을 내린다.
광주에서 왔다는데 언니는 바위도 타며 산행경력이 많으나 동생은 경험이 부족한 모양이다. 천왕봉까지 갈 예정인데 지리산종주는 처음이라고 한다.
다시 출발하여 고즈녁한 숲길을 걷는다.
임걸령에서 귀신에 쒸였는지 삼도봉 쪽이 아닌 피아골 산장 쪽으로 발이 향한다.
뒤따라오던 두 처자도 아무런 의심 없이 나를 따라온다.
한 10여분 신나게 내려가는데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며, 정신이 번쩍 들어 확인도 할 겸 나침반을 꺼내 지도정치를 하여보니 틀림없이 엉뚱한 방향이다.
뒤돌아 올라갈 생각을 하니 다리에 맥이 빠지고, 기가 막히다.
두 처자의 눈길이 저 아자씨 지리산 초짜 아닌감?? 하는 눈길인데 와!!! 민망 민망.. 씩씩거리며 임걸령으로 되돌아 올라간다.
임걸령에 다 올라와서 미안한 마음에 내가 연하천 산장에 가서 맛있는거 사줄게용 애교떨지만 참 민망스럽다.
반야봉입구에서 배낭을 내려놓고 인터넷상의 패러디신문 딴지일보 로고(똥꼬깊쑤키)와 비슷한 반야봉에 갈까말까 망설이다 그냥 삼도봉으로 올라간다. 삼도봉에서 삼도(전라남·북도, 경상남도)를 뱅뱅돈다.
화개재를 지나 토끼봉을 오르는데 어깨가 빠지는 것 같다.
가랑비는 멈췄으나 바람이 몹시 심하게 불어 뺨이 얼얼하다.
물을 마시며 한참을 기다리자 언니만 묵묵히 따라오고 동생은 보이지 않는다. 끙끙대며 명성봉을 올라 연하천으로 내려가는데 또 긴 계단이 설치되어있다.
이런 인공구조물설치가 진짜 산을 보호하는 행위인지 산의 경관을 해치는 행위인지를 잘 판단하여 설치했으면 한다.
산의 사면이 깍 여 나가니깐 보호하는 측면에서 계단을 설치했겠지만 다른 방법을 택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연하천산장에 도착하니 12시40분이다. 산장에는 찬바람만 쌩쌩불고 산장지기만 홀로 있다. 배낭을 내리고 땀이 식으니 몹시 추워 파일복을 꺼내 입고 따뜻한 미숫가루차를 사서 마시고 20여분을 기다리니 언니가 도착하고 10여분후 동생이 도착한다.
임걸령에서의 약속(?)대로 따뜻한 커피 한잔씩을 사준다.
식사 준비를 하려는데 자매가 자기들이 라면을 끓인단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고 바람이 불어 밖에서는 식사준비하기가 힘들어 산장지기에게 양해를 구하고 산장 좁은 복도에서 라면을 끓이는데 산장지기가 산장숙소 문을 열어주며 안에 들어가서 식사를 하라고 권한다.
아이고 고마워라.. 원래 숙소에서의 식사는 음식냄새가 숙소 안에 배이기 때문에 금지한단다.
식사를 마치고 출발준비를 하고 밖에 나오니 오늘 처음으로 등반객을 본다 그런데 배낭은 가벼운 쌕을 메었고 등산복도 부실하다.
10월달만 되도 1000미터이상 되는 산의 등반 시에는 겨울산행과 마찬가지의 준비를 하여야하는데 이 아가씨들은 준비가 부족하다.
이곳에서 제일 빨리 하산 할 수 있는 코스가 어디냐고 산장지기에게 묻고 있다. 여기서 하산은 위험하니 저 아저씨(나를 가르키며)를 따라 벽소령까지 가서 삼정리 방면으로 하산하라고 알려주는데 졸지에 아가씨 4명을 대동한 가이드가 되버렸다
14시20분쯤 연하천 출발
배낭무게에 익숙할 때도 됐는데 오늘은 영 아니다. 어깨가 쥐가 날 정도로 아프다. 그냥 내 페이스로 산행을 하면 좀 괜찮을 텐데, 우린 지리산 초짜이니 너 혼자 도망가지 말고 같이 좀 가자 라는 아가씨들의 무언의 압력으로 속도조절이 안되고 아주 힘들다.
삼각봉 근방에서는 잠깐 운무가 사라져 주변경치를 볼 수가 있다.
성삼재로 오르는 길에서는 단풍을 볼 수 있었으나 여기서는 스산한 겨울이다. 연하천에서 만난 두 아가씨가 가벼운 배낭(쌕)과 같이 앞서서 죽죽 사라진다. 영신봉은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고 벽소령이 보인다.
16시10분에 벽소령산장 도착
연하천에서 만난 두아가씨는 벽소령산장으로 향하고, 산장앞 의자에서 자매가 두유를 권한다. 초코파이와 두유를 먹으며 시간을 보니 16시30분이다. 30분 정도후면 어두워질테고 나는 속보로 야간산행을 해서 장터목을 경유하여 백무동으로 오늘 중 하산을 해야하는데...
춘향이하고 아이들에게 2일(화요일)에는 가족외식 겸 외출하기로 약속을 하였는데 걱정이다. 공휴일만 되면 배낭 메고 뒷 꽁지 잡힐세라 그냥 도망가는 빵점 서방에 아버지니 이번 약속은 꼭 지키고 싶은데....
자매는 야간산행을 할 계획인지 내 눈치를 살핀다. 낮에는 지리산의 등반로가 고속도로이므로 길 잊어버릴 경우가 거의 없지만, 야간산행은 다르다.
더군다나 비가 눈으로 변했고 바람이 심해 상당히 추운 날씨인데다, 지리산종주는 처음이라는 자매만 뛰어 놓고 나 혼자 도망가기도 그렇고, 에고 그래 이것도 인연인데.. 같이 야간산행을 하자고 하니 안심하는 눈치다.
자매는 둘 다 손전등인데, 어라 큰 처자가 장갑을 안 끼고 있다. 이 추운 날씨에 어찌 할 라고...배낭에서 예비로 같고 다니는 털실장갑을 꺼내 언니에게 빌려주며 한마디 "다음 산행때 부터는 꼭 여벌장갑을 준비해서 손을 호호 부는 산꾼에게 빌려주시길"
작은처자의 산행속도가 자꾸 처진다.
바람이 불지않는 바위 뒤쪽에서 행동식으로 영양갱을 먹고 물을 먹으려는데 팻트병이 얼었다. 슬슬 문지르고 두드리고 하다가 옆을 보니 고드름이 이쁘게 달려있다. 하나 따서 먹으니 옛날 아이스케키 맛이다.
칠선봉을 오르는데 큰처자 손전등이 깜깜?? 고장이다. 주위는 칠흑인데 할 수 있나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고, 진행이 더디고 피로감은 더해간다.
멀리 세석산장의 불빛이 진행 방향에 따라 보였다, 안보였다 하는데 도대체 가까워지질 않는다.
속옷은 땀으로 축축한데 얼굴은 칼 같은 바람으로 얼얼하다.
쉬면서 얼은 팻트병속의 물을 억지로 비벼가면서 먹으려니 고역인데 땀이 식으니 몸이떨려 얼른 진행한다.
드디어 세석에 도착하니 20시20분이다. 벽소령에서 세석까지 3시간40분이나 걸렸다. 배도 고프고 너무 지처서 장터목까지 갈 수 없을 것 같아 세석산장에서 등록 한 후 침상에 배낭을 풀고 물을 뜨러 산장 밖으로 나오니 산행을 할 때와는 달리 너무 추워 물뜨러갈 엄두가 나질 안아 침상으로 돌아오니 옆자리에 있던 젊은이가 웃으면서 물을 권하며, 자기도 담배가 피우고 싶어 죽을 지경인데 나가면 너무 추워 참고있는 중이란다.
자매가 식사준비를 한다며 취사장에 가있어서 걱정을 하고있는데 둘이 얼굴이 파래가지고 숙소로 들어오며, 너무 추워 식사준비를 할 수 없다고 괜히 미안해 하길래 행동식으로 충분히 요기를 할 수 있으니 나는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하자니 내가 더 미안하다.
초코파이2개, 연양갱 하나를 먹으니 더 이상 생각이 없다. 소주나 한잔하고 푹 자자 생각하며 산장지기가 들어와도 발견 못하게 배낭뒤에 술병과 안주(오징어)를 감춰두고(이거 절대로 세석산장지기 한데 이르면 안된다) 건너편 침상에서 행동식으로 요기를 하고있는 자매에게 소주를 권하니 동생은 못하고 언니가 얼른 건너와 완샷이다. 한잔 더 권하니까 너무 피곤해서 자야겠다며 사양한다.
옆자리의 젊은이가 침을 흘리는 표정이라, 한잔하시겠오 하니 고맙습니다 하고 얼른 잔을 잡는다. 거참 술을 권하지 않았으면 생사람 잡을 뻔했구나 생각하니 웃음이 나온다. 자기는 중산리에서 올라왔는데 노고단을 거처 성삼재로 하산할 계획이란다.
내일은 하산을 해야하므로 남은 팩소주 3개를 젊은이와 다 먹고 침낭 속으로....
눈을 감고 잠을 청하려해도 옆자리 아자씨의 교향악소리가 신경이 쓰인다. 커거걱 퓨우우... 커거걱 퓨우우... 평상시에는 별에 별소리가 다 나도 잠만 잘 자는데 오늘따라 이상하게 신경이 쓰여 이리저리 선잠이 들었다 깻다 비몽사몽 뒤척이는데 단체로 온 산행객들의 소란한 배낭 팩킹 소리에 일어나 시간을 보니 새벽4시가 좀 지났다.
1999. 11. 2(화)
해드랜턴을 착용하고 담배 한 대 물고 산장 밖으로 나오니 바람이 매섭다. 배낭 챙겨서 출발할까 하다가 아침은 지어먹고 출발하기로 결정하고 담배 한 대 피우고 침상에 돌아와 침낭 속으로 다시 들어가 두시간만 자자하고 언뜻 잠이 들었는데 같이 산행한 자매중 언니가 아침식사를 하라고 깨운다.
시간을 보니 8시다 아이고 늦잠을 잣구나 하고 벌떡 일어나 수저와 시에라컵만 들고 취사장으로.. 김치찌개에 밥을 맛있게 얻어먹고, 배낭을 패킹 하려고 하니 쌀, 라면, 부식(꼬들빼기, 씀바기, 총각김치 등)이 남아 비닐봉지에 별도로 포장하여 산장지기에게 건네는데 옆에 있던 어느 산꾼이 부식을 안 갖어 왔는데 자기를 주면 안되겠냐고 하니 산장지기가 씩 웃으며 부식을 건넨다.
09시10분 세석을 출발하려고 산장 밖으로 나오니 자매가 다정히 기다리고 있다.
장터목까지 얼마나 걸리고 빠른 하산 길을 묻 길래 한시간이면 가능하고 내가 하산할 백무동길과 중산리길을 지도를 보면서 말해주니 장터목에서 중산리방향으로 하산을 하겠다고 한다.
조금 가벼워진 배낭 때문인지 걸음이 가쁜 하다. 촛대봉에 올라서서 뒤돌아보니 멀리 반야봉이 잠깐모습을 보이며 매서운 바람도 시원하다.
두어번 오리락 내리락 하니 장터목이다.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보니 10시30분이다.
취사장에 들어가 자매가 커피를 끊이고 있는데 주머니속에 있는 핸드폰이 울린다. 아이고 가슴이 덜컥 내려 않는다. 이거 틀림없이 춘향이다..
여보세용 하고 애교있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니 서방님 거기가 서울이옵니까? 어찌하여 통화가 그리 안되옵니까 지금 아그들하고 외출준비 끝났사온데 어찌하오리까?? 춘향이 목소리가 쩡쩡울린다
아이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글씨유 산에서는 통화가 안되는 지역이 많은거 잘 아시잖어유 또 어찌어찌 하다보니 아직도 산속인디 지금 내려가는 중 이구만유......" 횡설수설 한다.
아 이 한목숨 얼마 남지 않았구나.. 장탄식을 토하고 있는데 무심한 자매님들 커피가 다 되었으니 들어와서 한잔 하시란다. 그래 먹자 먹고 나서 생각하자... 따듯한 커피와 비스켓을 먹으니 몸이 따뜻해지는게 아주 좋다.
나는 아무래도 그만 서울로 올라가야 될 것 같아 자매에게 나는 집에 급한 일이 있어서 그만 내려가야 되지만 아가씨들은 여기까지 왔으니 그냥 내려가지 말고 배낭은 취사장에 보관하고 천왕봉까지 두 시간이면 충분히 같다올 수 있으니 같다올 것을 권하니 잠시 생각하다가 천왕봉에 같다와서 하산하겠다고 결정한다.
바위를 탄다는 언니에게 북한산 인수봉을 올라보았냐고 물어보니 아직 타보지 못했다고 하길래 인수봉에 오를 계획으로 서울에 오면은 전화해라 우리산악회에 바위타는 총각들이 많이 있으니 안내 해주겠다고 하며 명함을 건넨다, 여기까지 동행해주어서 진심으로 고맙고 산행에 대하여 많이 배웠다며 광주에 올 기회가 있으면 꼭 전화하라며 언니가 명함을 건네주는데 아주 민망하다 엉뚱한 길로 안내한 주제에...
무사히 잘 다녀오라고 배웅하고 나는 백무동으로 하산한다.
춘향아 서방님 가신다 하며 한참 신나게 내려가다 목 좀 축이고 있는데 40대쯤 되어보이는 아자씨 아줌씨들 여러명이 장터목까지 얼마나 남았어요 하는데 복장이 영 아니다.
두시간쯤 올라가시면 되는데 지금 능선상은 눈발이 날리고 상당히 추우니 조심들 하셔야 합니다 하니 깜작 놀라며 웬 눈이 벌써 오나 하면서 올라들 간다.
참샘에서 물 한 모금 담배한대 피우고 너덜지대를 요리조리 내려오니 백무동이다.
시간을 보니 13시30분, 버스를 타고 인월에 도착하여 처가 집에 들릴까 말까하는데
남원가는 버스가 들어온다. 처가 집에서는 내가 벌써 서울에 가있을 줄 알고있을 텐데.. 다음에 찾아 뵙자 하고 남원 행 버스에 몸을 싣는다.
남원역에서 서울가는 새마을을 타고 춘향에게로...
그날 저녁 동네 사람들 우리집에서 돼지 잡는 줄 알았다는 소문이 있고 ^_^;;
나는 또 처가집(지리산) 가는 꿈을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