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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는 주지 동명스님의 큰 방해에도 불구하고 947명이 안면암 순례법회를 여법하게 잘 다녀왔습니다.
어려운 일도 거뜬히 잘 이겨내는 불광 바라밀행자님들입니다.
불광법회 형제님들 한분 한분이 광덕스님이시며 우리 스스로가 정상화를 꼭 이루어야한다는
사회 혜안거사님의 말씀을 깊이 새깁니다.
일요법회를 위해 맡은 바 소임에 임하시는 보현행자님들의 여여한 모습들 그대로 부처님이십니다.
보광당 안내팀, 새법우 교육팀 보현행자님들 조용히 자리하시고,
이번주에는 보문부장 심월행보살님께서 찰밥 600개를 보시하셨습니다.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
법회 시작전 사무국에서 일요법회를 점검하는 회장단의 간단한 회의가 있었습니다.
인례 자광거사님의 천수경 봉독과 타종, 본자운 합창단장님의 헌향,다도팀 정명.여여심보살님께서 차 공양을 올렸습니다.
오늘은 방송시설에 문제가 생겨서 사회 혜안팀장님께서 마이크 없이 큰 목소리로 법회 시작을 알립니다.
포살 : 불자여, 그대 생명에 바라밀생명이 태양처럼 빛나고 있음을 생각하라. 어느 때나 큰 희망과 밝은 미래와 성공을 꿈꾸고 매사에 정성을 기우려 최선을 다할지니라.(나무석가모니불)
불자여 이 국토는 그대의 보살도 성숙의 땅임을 생각하고 작은 소망을 기원할 때도 나라와 세계의 평화 번영과 중생의 성숙을 함께 기원할지니라(나무석가모니불).....
혜담스님께서 반야법문을 하십니다. 항시 건강하시길 불보살님께 기원드립니다.()()()
금주의 법사 : 불광법회 선덕 혜담스님
금주의 법어 : 반야바라밀심(심)이 창조주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불광법회 불광사 법등가족 형제 여러분 대단히 반갑습니다. 그리고 유튜브를 통하여 전국에서 오늘의 불광법회를 함께 하고 계시는 사부대중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오늘이 6월 2일인데 6월의 이름은 신록의 계절이라고 합니다. 새로울 신(新), 푸를 록(綠)자로 푸른 기운이 그득하다는 계절이란 말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허허벌판이던 논에 모가 심어져서 파랗게 빛나고 온 산천에 희망찬 신록이 함께 하는 이 계절에 형제 여러분의 가정에 부처님의 자비 위신력이 함께 해서 집안이 편안하고 가족 모두 건강하고 하시는 모든 일이 이루어지길 빌어 마지 않습니다.
오늘 드릴 말씀은 법회보에 나와 있는 것처럼 ‘반야바라밀심이 창조주다’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창조주에 대해서 많은 말을 듣습니다. 정말 나와 이 세상을 창조하는 창조주라는 신이 따로 있는가? 물론 이 부분에 대해서 신을 믿는 종교에서는 창조주가 있다 하고, 하나님 그 신이 우리와 삼라만상 모두를 창조했다고 인정합니다. 그러나 신을 믿지 않는, 부처님 법을 믿는 우리 불자들은 신이 창조했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를 포함해서 이 삼라만상을 창조한 근본체가 무엇인가 했을 때 부처님께서는 그것이 마하반야바라밀심, 반야바라밀의 마음, 우리의 본성, 법성 그 자체가 나를 창조하고 이웃을 창조하고 삼라만상을 다 만들어낸다고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과 관계해서 우리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는 선사가 있습니다. 승조법사라는 어른인데 구마라즙스님의 4대 제자 가운데 한 분입니다. 이 승조법사는 ‘조론’의 ‘무명열반론’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천지여아동근(天地與我同根)이고 만물여아일체(萬物與我一體)다, 천지는 나와 더불어 같은 뿌리요, 만물은 나와 더불어 한 몸이다는 뜻입니다. 이 말을 항상 많이 들어왔고 내 생명이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이라 배우고 알고 있지만 아마 조론에서 나오는 ‘천지는 나와 같은 뿌리요 일체 만물은 나와 한 몸’이라는 여기에서 제일 먼저 불교에서 공식화된 겁니다. 물론 부처님 말씀에서도 너와 나는 한 몸이라는 말이 있죠. 그러나 학문적으로는 승조법사의 조론이 제일 먼저 나오는 말입니다. 일체가 나의 뿌리고 일체 모든 것이 나와 같은 생명이라는 여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이와 관련해서 금강경 제 18분 일체동관분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합장하고 들으십시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저 한량없는 국토 가운데 있는 바 중생의 가지가지 마음을 여래가 다 아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여래가 말한 바 모든 마음이 다 이것이 마음이 아니요, 그 이름이 마음이기 때문이다. 이유가 무엇인가? 수보리야, 지나간 마음도 얻을 수 없으며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으며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합장 내리십시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현재심불가득이요 미래심불가득이요 과거심불가득이다. 왜? 과거의 마음은 이미 지나갔고 미래의 마음은 아직 오지 않았고 현재의 마음도 찰나찰나 변해갑니다. 때문에 이것이 나의 것이라고 말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 과거심불가득이란 이 말이 뭐냐? 그 마음이란 것이 바로 그러면서도 우리가 사는 이 삼라만상을 만들고 이것을 화엄경에서는 ‘일체유심조’라고 하죠.
일체가 다 마음에 있다. 이것이 유식불교에서 말하는 마음인데 내 마음이 모든 것을 만든다. 그러면 오늘 아침에도 각화사에서 차를 타고 오면서 백운대를 봤습니다. 우뚝 서 있는 저 백운대를 내 마음이 만들었다는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 말씀으로는 그렇다는 겁니다. 저 백운대도 저 한강도 내 마음이 만들었다는 것이 부처님 말씀입니다. 유식에서 내가 없으면 삼라만상도 없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있을 수 있죠? 보통 상식적인 의미에서는 이 말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내가 죽어도 이 지구는 있는 것이고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이름해서 ‘일체유심조’라 말합니다만 일체유심조의 이 마음이 뭐냐 하면 바로 삼라만상을 만드는 근본도리입니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불교의 핵심은 이렇게 일체유심조에 모아집니다.
그러면 일체유심조라는 이 말 자체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앞에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 삼라만상은 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내가 없으면 나의 분상에는 없는 겁니다. 제3자의 분상에는 있겠지만 우리들의 생활이 없어지면 그것이 내 분상에서는 없습니다. 그래서 일체 삼라만상이 전부 내 마음에서 만든다는 말이 될 수 있겠죠. 그래서 이러한 사실을 부처님께서는 다 아시고 내 마음이란 것은 사실은 붙잡을 수 없는 것이라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 ‘부처님은 여래가 말한 바 모든 마음이 다 이것은 마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마음을 이름해서 마음이 아닌데 마음이라 붙였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마음이란 것이 무엇인가 여기에 대해서 어떤 성자는 말하기를 “마음이란 순간순간 일어나는 우리의 생각들이 뇌에 있는 가장 큰 대피질을 통과하면서 나오는 여러 가지 생각의 흐름”을 마음이라고 정의합니다. 물론 이 정의가 맞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성자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마음이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나의 대뇌피질을 지나갈 때 흐르고 있는 그 모든 것을 이름해서 마음이라 한다고 말합니다.
그 마음이 뭐냐? 우리가 보통 마음이라고 말하는 것은 참된 마음이 아니고 망념이죠. 망상으로 그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순간순간 내 생각이 바뀝니다. 그러다 보면 내 마음이 순간순간 바뀌죠. 그런데 우리의 참된 마음은 바뀌지 않습니다. 그것을 이름해서 부처님께서는 우리들의 본성이다, 혹은 법성이라고 말합니다. 이 법성 속에서는 모든 것이 다 갖춰져 있습니다. 그것을 반야심경에서는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이라고 말하죠. 다시 말씀드리면 우리의 본성이란 것은 ‘영원하고 청정하고 원만구족한 것’이라고 반야심경에는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청정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보통 생각할 때 청정이라면 항상 반댓말로는 불결하다가 있을 수 있습니다만 여기에서 말하는 청정성이란 절대청정입니다. 어둠이 있을 수 없는, 태양보다 몇십 배 더 밝은 것을 이름해서 청정이라 했습니다. 그 청정은 그 속에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것이 다 갖춰져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불교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바로 부처님의 말씀을 믿고 이것을 내어쓰기 위해서 일상생활을 하는 겁니다. 나는 못난 사람이고 나는 다른 것도 못하고 나는 건강하지도 않는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나는 원래 건강하고 나는 원래 모든 공덕을 다 갖추고 있기 때문에 구태여 누구에게 부탁하고 기원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종교란 것은 아마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적으로 가장 오래된 종교가 소위 말해서 무속입니다. 무속종교에서는 무엇인가 그 사람들이 소원을 이루어준다, 점쟁이나 혹은 운명을 봐주는 그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그 사람들의 말이 모든 것을 이루게 한다는 말을 믿는 거죠.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그렇지 않고 우리의 마음이 완전무결하다고 합니다. 여기에 불래불거라는 말이 나옵니다.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는다. 내 마음이란 것이 있다가 없다 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 그대로 있는 겁니다. 부동자리입니다. 본래 그 자리에 있는 부동자리입니다.
우리가 보통 성품을 본다고 했을 때 그 성품이 무엇인가? 우리가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저는 젊을 때는 그것을 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미술에 나오는 정물화처럼 불성이란 정적으로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 동적으로 움직이는 겁니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이 우리의 성품이고 이것이 불성입니다. 멈춰있는 그 성품은 무엇을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 것은 그것이 원래 그렇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아무 것도 이뤄지지 않습니다. 불성이란 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서 불성을 찾아야지 참선한다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모든 것이 되는 것처럼 해서는 이룰 수 없는 겁니다. 그래서 불성이란 정적이 아니라 동적이어서 내가 무엇인가를 움직였을 때 내 삶이 진행되는 것이지 가만히 앉아 있으면 안 되는 겁니다.
제가 불광사에 올라와서 시각거사라는 분이 있어서 중학교인가 고등학교 교사였습니다. 이 시각거사가 불광법회에서 불교를 만난 후에 남편이 해야 할 모든 일을 접어버린 겁니다. 그래서 그 부인이 죽을 지경이여. 남편이 직장도 그만 두고 불교 믿는다고 아무 것도 안 하니까. 그래서 그 시각거사가 돌아갈 때쯤 되어서 저한테 와서 얘기했어요. “스님, 제가 죽고 난 뒤에 스님 상좌가 되겠습니다”고 했는데 죽은 지 30년 지났는데 그 사람이 안 왔어요. 그래서 그 거사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에 제 승복을 줘서 그 승복으로 염을 한 겁니다. 이게 대표적으로 불교를 잘못 믿고 있는 현상입니다. 불교를 믿으면 보다 활발발하게 활동해야 되는데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된다, 모든 것이 필요 없다고 생각한 겁니다.
우리 불광법회 거사님 가운데에도 가끔 그런 분을 볼 수 있습니다. 다 허망하니까 그냥 가만히 살자 하지만 그러면 가족은 어쩌고 자식들은 왜 낳았습니까? 이 세상에 태어나면 모든 사람은 의무가 있습니다. 의무가 뭐냐 하면 의무란 가족, 자식을 부양하는 일입니다. 이게 의무이고 이 의무는 생명이 있는 한 없을 수 없습니다. 가장 큰 의무입니다. 물론 자식을 낳고 종족을 보존하는 것도 큰 의무지만 그 못지않게 내 가족을 부양하고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도 우리 모든 사람의 의무입니다. 이것을 모르고 그냥 참선한다고 가만히 몇 시간씩 앉아 있고 옛날로 치면 벼를 널어뒀는데 비가 오면 안으로 걷어들여야 되는데 무시하고 비를 맞든 말든 나는 모르겠다고 하면 인간의 도리를 잘못하는 것이고 그건 불교를 잘못 믿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이 살아가는 데 의무가 있어서 가장이나 가정 주부로서는 가장이나 주부로서의 할 일을 해야 합니다. 이것을 남에게
미루면 그것은 불법에 어긋나는 겁니다. 언젠가 말씀드린 것처럼 ‘임제록’에서는 ‘수처작주’, 모든 것에 주인이 되어라. 그러면 ‘입처개진’, 모든 것이 다 진실이다. 내가 주인으로서 최선을 다할 때 내가 주인, 진실이 되는 겁니다.(보리광보살님 녹취)
일요법회에서 법문 듣기를 최우선하는 수승한 불광형제님들!
지금 우리들은 불광사 소임되는 스님들하고 긴 시간을 그야말로 이걸 싸운다고 할까 아니면 잘못된 것을 고치기 위해서 노력을 한다 할까 그리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야 부처님 법을 바로 펼 수가 있는 겁니다. 우리들이 불교를 믿고 이렇게 하는 것은 뭐냐! 또 의무가 하나 있습니다. 그 의무라는 것이 부처님 법을 나만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펼친다는 의무가 있습니다. 이것이 의무입니다.
그래서 불자가 돼서 부처님 말씀을 나만 믿고 그냥 조용히 살래 하는 것은 참다운 불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정말 법회보에 나와 있는 것처럼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 인 것을 다른 사람에게 끊임없이 언제 어느 때나 알려줘야 됩니다. 그래서 그 속에서 가족들이 화합이 있고 이웃과의 화합이 있는 겁니다. 그럴 때 우리의 삶이 좀 더 밝아지는 겁니다. 우리가 보통 신체적으로 건강하다 이렇게 말을 합니다. 그런데 어떤 책에 봤더니, 이런 말이 나왔습니다.
신체적으로 건강 하다라는 말은 무슨 말인가 어떤 다리를 다쳐서 걸음걸이가 불편하다 그런 것이 아니고 건강하다 그러는 것은 내 삶이 순간순간 항상 즐거울 때 보람이 있을 때 그때 건강 하다고 한다. 이렇게 돼 있어요. 그거는 맞는 말 같습니다. 우리는 지금 현재 무조건 건강하다고 하는 것은 신체적으로 병이 없는 것을 말하지마는 아무리 신체적으로 완벽하더라도 오장육부가 다 정상적으로 잘 돌아가더라도 삶 자체가 시간 시간이 기쁘지 않으면 병든 거예요.
그래서 우리들의 삶 자체가 전부 이렇게 기쁨 속에 있을 때 내 신체도 건강해지고, 내 삶이 행복해 지는 겁니다. 이것을 이름해서 막연하나마 우리들은 행복을 찾는다 그렇게 말합니다. 보통 행복을 말할 때 파랑새 이야기를 많이 하지요. 몇 십년 전에 본 드라마가 있는데, 파랑새는 없다라는 그런 드라마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냥 모든 사람들은 파랑새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냥 모든 사람들은 파랑새를 찾아가는데 파랑새는 내 가족 내가 가지고 있는 겁니다. 밖으로 아무리 찾아봐도 파랑새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이 점을 알고 내 삶을 밝게 비춰나갔을 때 비로소 우리들은 그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이고. 여기에서 우리들은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한 2개월 전인가 형제 여러분에게 이런 책 요가난다에 영혼의 자서전이라는 책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 책은 두꺼운 책인데 일주일 만에 다 보고 난 뒤에 진성거사님에게 책을 드리면서 이 책을 읽고 소견을 감상을 좀 저에게 말해 달라 그렇게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한 일주일 인가 2주 인가 지나서 진성거사가 하는 말씀이 스님 이거는 지금 요가난다라고 하는 저서는 그야말로 요가난다의 자서전입니다. 그분의 생각이고 그분이 스승에게 배운 것을 과장해서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우리나라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누군가 봤더니, 청산거사예요. 근데 청산거사라고 하시는 어른은 어떤 분이냐 저는 도량을 본 적이 없습니다마는 60년대 중반에 그러니까 한 1964~5년 되겠죠.
그때 대각사 근방에 어떤 거사님이 나타나서 어떤 사무실을 얻어가지고 거기서 국선도라고 하는 것을 보급을 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이제 동참을 해서 같이 수련을 했고 그리고 이제 이 국선도가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언젠가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마는 삼풍백화점이 붕괴되었을 때 목포대학에 있는 어느 교수가 올라와서 그 무너진 건물 더미 속에서 살아있는 사람의 기운을 느껴가지고 해서 네 명인가 다섯 명을 구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때 그 장면을 보면서 나도 한번 해봐야겠다. 생각을 해서 책을 사서 그야말로 한 3년을 꾸준히 했습니다. 호흡을 꾸준히 했어요. 했는데 그래 보니까 뭐 어떻게 되느냐 하면은 그냥 내 방에 누가 왔다 가면은 내 방에 누가 들어 오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던 속병의 냄새가 나요. 큼큼한 냄새가 나 그래서 저는 그때 아! 이게 지금 내가 코가 맑아져서 이런 것이 나오는데 이렇게 병하고 관계 없이 생각했어요. 뒤에 보니까 그게 전부 냄새가 나는 사람은 병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런 분들이 돌아가시고 난뒤에 비로소 이게 제가 남의 병을 알 수 있는 그런 눈이 생겼었구나 그런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뒤에 저는 대중목욕탕에 가서 일주일에 한 번씩 머리를 깍고 하는데 목욕탕에 도저히 갈수가 없어요. 목욕탕에 가면 큼큼한 냄새가 나서 그리고 온갖 사람들이 목욕탕에 들어오는데 목욕탕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병이 있는 사람들 냄새가 다 나는 거예요. 그래서 일주일에 한번은 목욕을 가야 되는데 큼큼해서 견딜 수가 없어 그래서 이제 그것을 중지 해버렸어요. 그랬더니 그런 것이 없어졌는데
그런데 공교롭게도 지난 5월 25일날 우리가 순례법회 가기 하루전날 우자형거사라고 하는 그런 분이 각화사를 찾아왔습니다. 이 분이 어떤 분이냐 하면 제가 각화사를 2002년에 창건했습니다. 그때 어떤 젊은 청년이 자기 아이 둘을 데리고 그때는 각화사에 조그만 연못이 있었습니다. 연못에는 붕어도 있고 자라도 있고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 거사가 저에게 하는 말이 스님 제가 각화사를 위해서 무엇인가 할 일이 없겠습니까? 그렇게 제의를 해요. 그래서 내가 그러냐고 그러면은 그때 각화사에는 탱화가 후불탱화하고 신중탱화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마침 옆에 있는 문수보살과 관세음보살탱화를 모실려고 비어두었던 곳이 있었어요. 그런데 거사가 일천만원을 내놓으면서 이것을 가지고 하십시오. 그러더라구요. 그래서 그분 이름으로 해서 잘 모셨습니다.
그런데 그 거사님이 토요일날 왔어요. 와서 하시는 말씀이 스님 요즘 스님들은 도인이 있습니까? 그래 물어요. 그래서 저는 잘 모르겠다고 다만 지금 현재 스님들의 어떤 수행 행태를 보면 도인하고는 거리가 먼 것 같다 뭐 그전에도 물론 저에게 와서 성철스님하고 같이 수행해 본 적이 있느냐 법정 스님은 만나봤느냐 이런 말을 많이 물었어요. 근데 25일에는 와서 그러면 스님의 경계는 어디에 왔습니까? 이렇게 물어요. 물론 이것을 선적으로 말하면 그렇게 하면 한방먹이는 것인데 저는 이제 그런 배짱은 없으니까 자세히 말을 해줬습니다. 예를 들어서 근본 소승 불교에서는 네 단위가 있죠.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 이렇게 네 단위가 있는데 제가 지금 스스로 생각할 때는 아라한은 온 것 같다. 아라한이라는 것은 뭐냐 아라한의 지위에 오르면 자기의 생사를 마련할 수 있고 다시 다음 생에 태어나지 않으려면 태어나지 않을 수 있는 그런 능력이 생깁니다. 그러나 저는 죽어서 다음 생에 태어나지 않겠다는 그런 자신이 없어요. 그래서 아라한이 안 된건 맞지마는 그러나 다른 말로 보면 선불교에서 보면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선불교에서는 이제 중국의 선불교를 일으킨 분이 실질적으로 육조 혜능대사죠 그리고 마조스님이 완결하는데 거기서 보면 뭐가 있느냐 직지인심 견성성불이라 그 마음을 봐서 성불한다 그랬어요. 내 마음을 내가 보면 성불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봤을 때 그러면 어느 정도까지 가야 성불했다고 할 수 있느냐 이렇게 문제가 나오죠. 그래서 제가 이제 설명해 드린 것이 심우도입니다. 심우도 라는 것은 우리는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깨달음을 얻어 가는데 10단계가 있는데,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이 이렇게 돼 있습니다. 심우지요 일단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궁금하죠. 이게 궁금한데 이것을 계속하다 보면 이제 마침내 가서 득우를 하고 그 다음에 목우를 하고 소를 키우고 그래서 보통 이제 좀 단계가 높아진 스님들은 자기 방을 오심이라 그렇게 말을 합니다. 그런데 제일 끝에 나오는 것이 입전수수입니다. 즉 깨달음을 얻었으면 그 다음에 하는 일은 시중에 내려가서 시중에 있는 모든 고통 받는 사람들과 함께해서 동고동락 하면서 그 사람들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는 그림입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비로소 이제 제대로 된 수행자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아마 큰 절에 가면 대부분 대웅전 벽화에는 이 심우도가 그려져 있습니다. 만약에 심우도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분이 계신다면 지금 사무국에 각화사 달력을 100부 갖다 놨으니까 한 부씩 얻어서 심우도가 뭐고 입전수수가 뭔지 하는 것에 대해서 한번 관심을 갖었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스님들이든 누구든 우리가 수행을 한다고 하는 것은 수행에 머물지 않고 최후적으로 입전수수 시중에 들어가서 중생과 더불어 고락을 함께 나누면서 부처님 법을 전하는 겁니다. 이렇게 되었을 때 비로소 완벽한 수행자가 되는 겁니다. 여기에서 이제 나오는 것이 뭐냐. 입전수수가 되려면 화두에 대한 의심이 없어져야 됩니다.
좀 외람된 말씀입니다마는 저는 나름대로 벽암록을 통해서 아마 수십 번 읽으면서 나름대로 아! 이제는 그냥 화두가 어렵지 않고 입전 수수하면 되겠다. 하는 그런 생각이 들기 때문에 현재 여러분들의 앞에 이렇게 앉아 있는 겁니다. 이런 말씀을 그 거사님하고 했는데 거사님이 또 하는 말씀이 청산거사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자기가 청산거사의 대각사 옆에 있는 수련도량에서 같이 했다는 거죠. 그래서 목포대학 교수하고 같이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청산거사가 떠나고 난 뒤에 완전히 국선도가 허물어지게 되었을 때 이 우자형거사하고 목포대학 교수 이런 분들이 새롭게 국선도를 살려가지고 지금 현재 국선도가 됐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모든 이야기를 들으면서 인연이라는 것이 참 묘한 일이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이 수행을 한다는 것은 그냥이 아니라 이 수행의 위신력을 내어 쓰는 겁니다. 그래서 마하반야바라밀을 하는데 이 마하반야바라밀이 내 삶을 전부 창조해 낸다 하는 이것을 가슴깊이 새기고 이걸 느껴야 되는 겁니다. 이건 앎이 돼야 됩니다. 믿음이 아예 앎이 돼야 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삶은 불자로서의 완벽한 삶이라는 것은 행복이 함께하는 삶입니다. 몸 신체도 건강하고 마음도 건강하고 그래서 행복이 항상 차 있는 그런 삶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마하반야바라밀을 염송 하되 그 속에서 내 삶을 충실히 가꾸어 나가는 그런 현명한 우리 불광 형제들이 되어 주십사 하고 바라면서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자은성보살님 녹취)
마하보디합창단 찬탄곡 : 그리움의 노래
불광정상화 발원문 : 송파20구 명등 여심행보살님!
새롭게 선임 받으시는 임원님들 큰 마음 내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명등 회향하시는 송파11구 지승명보살님 그동안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선학보살님 되심을 축하드립니다.
새롭게 탄생한 유튜브 팀장 도국거사님! 어려운 일 기꺼이 맡아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주간보고 하시는 현진 법회장님!
이번주에는 새 법우 두 분이 오셨습니다. 부처님 품안에서 함께하는 귀한 인연 끝까지 이어가시길 기원드립니다.
법회가 끝난 시간에도 마지막 배웅을 하시는 법당안내팀 보살님들 감동입니다.
법회 후에 광명의 등에 추가로 동참하신분들의 발원문을 넣었습니다.
매월 첫째주는 찰밥 도시락 먹는 날, 집에서 간단한 반찬등을 가져와서 나눠먹는 마음 따뜻한 공양시간이 됩니다.
법회가 끝난 후 대웅전에서는 언제나처럼 여법하게 금강경독송기도를 이어갑니다.
매월 첫째주 일요법회 후에는 불광법회의 모든 일을 논의하는 명등회의가 있습니다.
위 공문을 찬찬히 읽어보시면 불광 정상화를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간단하고 정확한 정답이 보입니다.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스님들께서는 타성에 젖은 권위적인 마음을 내려놓으시고 순수불교를 주창하신 광덕 큰스님의 뜻에 맞는 재정투명화와 청정하고 합리적인 사찰운영을 하시면 보시는 저절로 넘치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쉽고 존경받을 일을 마다하시고 어렵게 시간을 끌고 갈수록 부처님 은혜를 등지는 우를 범하는 안타까운 상황이라 생각됩니다.
이번주에도 조계사,봉은사,동명사에서 1인 시위 정진을 이어갑니다.
부처님 정법을 지키는 일에는 어떠한 고난에도 굴하지 않는 불광법회 형제님들의 거룩한 신심에 불보살님의 가피가 항상하십니다.
불광법회 불광사가 청정도량으로 거듭날 때까지 모두가 한마음으로 정진을 이어갈 것입니다.
매주 토요일 오후2시 보광당에 오시면 일요법회 준비를 위한 청정봉사에 동참하실 수 있습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횃불이다. 스스로 타오르며 역사를 밝힌다!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생명 용맹정진하여 바라밀국토 성취하자!
첫댓글 오늘은 오디오 상태가 열악한데 녹취하시느라 고생하셨고, 편집하신 비로자나불 님도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불광이 정상화 되는 그날까지 힘 내세요!!
우리는 햇불이다
스스로 타오르며 역사를 밝힌다.
어려운 여건에도 늘 여여하게 굳은신심으로
불광법회를 이끌어가는 대행보현보살님들
늘 감사드립니다.
혜담스님!
곡진하신 감로법문 고맙습니다.
비로자나불님!
바라밀님!
자은성보살님!
어려운 편집과 녹취로 완성된 불광일지
수고많으셨습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_()_
오늘도 역사적인 불광법회 기록을 남기시느라 애쓰신 모든 분께 감사합니다_()()()_
유튜브 음성으로 문장을 재점검하는데 그게 일정부분 안되어서 힘들긴 했어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