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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만회정(광주안씨)
광주안씨족보 별록 : 광주안씨 시직공파보(1954년)
1954년에 간행된 광주안씨 시직공파보(侍直公派譜)에 실린 광주안씨족보의 별록을 보면, 광주안씨는 순암 안정복 선생이 농서이씨설에 대해 변무(辯誣)를 통해 밝혔다고 하면서도, 광주안씨 시조를 안방걸(安邦傑)로 하고 광주안씨 9세 안필몽(安弼夢)의 큰 아들이 문하시중 안홍미(安弘美)이고, 둘째 아들이 순흥안씨 시조인 안자미(安子美)라고 기록하고 있다.
파보의 시조 안방걸 이하 세계도 앞에 이와 같은 별록을 기록으로 남긴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다면, 이 글은 문맥 상 순암 안정복의 변무가 있지만, 탐진안씨 족보 기록을 근거로 농서이씨 기원설을 기록으로 남긴 것으로,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후대에 그 기록을 전한다는 순흥안씨 문중의 전의록과 비슷한 의미라고 이해된다.
결론적으로 최근까지 광주안씨도 농서이씨 기원설에 있어서 타 문중과 과히 다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별록에 남기면 전의록과 그 의미가 다른 것일까?
안방걸(安邦傑) --- 안유(安綏) - 안지(安祉) - 안수(安壽) - 안해(安海) - 안기(安器) - 안국주(安國柱) - 안강(安崗) - 안숙량(安叔良)으로 이어지는 계통이며, 중랑장공(中郞將公) 안강(安崗)의 둘째 아들이 시직공(侍直公) 안숙량(安叔良)이다.
廣州安氏族譜別錄
按康津安氏譜 康津系出順興 而受姓之原昭祥記載 始祖諱椀姓李氏 中國隴西人也 封隴西君 唐憲宗元和二年 東入于本國 松岳山下 有子三人 長枝春 次葉春 花春 新羅景文王四年 甲申 有倭亂 兄弟三人 伐義討平 有安國之功 故賜姓安氏 改名 邦俊 邦傑 邦俠 分封 竹山 廣州 竹城云 謹按庚戌譜 順菴公 旣有辯誣 恐未可的信此說
(번역문) 강진안씨(康津安氏) 족보를 살펴보니, 강진안씨는 순흥(順興)에서 갈렸다는데, 자세하게 기재된 수성(受姓, 성씨를 받게 된 유래)의 근본을 보니, 시조는 이완(李椀)으로 중국 농서인(隴西人)으로 농서군(隴西君)에 봉해진 사람이라고 했다. 그는 당 헌종 원화 2년 우리나라로 들어와 송악산 아래에 살면서 3형제를 두었는데 큰 아들은 지춘(枝春), 작은 아들은 엽춘(葉春), 셋째 아들은 화춘(花春)이었다. 신라 경문왕 4년(甲申)에 왜란(倭亂)이 있어 형제 3명이 의롭게 일어나 나라를 편안케 하는 공을 세워 안씨(安氏) 성을 사성(賜姓, 임금이 성을 내려줌) 받아, 방준(邦俊), 방걸(邦傑), 방협(邦俠)으로 개명했고, 죽산(竹山), 광주(廣州), 죽성(竹城)으로 봉군 받았다 한다. 그러나 1790년 광주안씨 경술보(庚戌譜)에서 순암공(順菴公 安鼎福)은 변무(辯誣)를 통해 이와 같은 이야기를 믿게 될까 두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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