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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들
박 완 서
나도 못생긴 편은 아니지만 내 여자애는 정말 예뻤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젊었다. 우리에게 시월의 양광(陽光)이 오히려 사월의 그것보다 화사했고, 매연 자욱한 도심의 번화가에서 달착지근한 꽃내음이라도 맡을 듯이 가슴과 콧망울이 함께 부풀어 있었다. 이러다가 그 왜 있잖아, 사랑이라는 걸 하려는 거 아냐? 문득문득 사랑에의 예감이 우리를 간지럼 태우고 그럴 때마다 우리는 뜻없이 키들댔다. 우리는 많이 웃고 많이 지껄였다. 신촌 로터리에서 만나 서대문을 지나 서울고등학교 모퉁이까지가 걸어서 이렇게 잠깐인 줄은 미처 몰랐었다.
우리는 타고 다닌 지난 수많은 날을 아까워하고 그 동안 낭비한 교통비를 아까워했다. 약삭빠르게도 우리는 오늘 절약한 교통비로 이미 초콜릿바를 핥아먹은 뒤였다. 앙증스럽도록 조그만 입가에 초콜릿으로 까만 테를 두른 것도 모르고 열심히 조잘대는 여자가 너무 귀여워 나는 거의 통증에 가까운 고통을 느낀다.
여자는 오늘 덕수궁으로 국전 구경을 갈까 국제극장으로 〈대부代父〉 구경을 갈까를 가지고 혼자 찧고 까부는 중이었다. 내가 이렇게 좋은 날은 암만 해도 고궁이 좋겠다고 국전 편을 들면, 그까짓 국전쯤 안 봤댔자 화제에 궁할 건 하나도 없지만 여직껏 〈대부〉를 안 본 애가 있는 줄 아느냐고, 그걸 안 보면 화제에 끼어들질 못한다고 투정을 하고, 그럼 〈대부〉를 보자고 내가 큰맘 먹고 양보를 하면, 그 끔찍스러운 걸 돈 내고 봐줄 생각을 하면 미리 치가 떨린다고 그 끔찍스럽다는 장면장면을 일일이 모션까지 써가며, 그녀가 아직 그 영화를 안 봤다고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으리만치 생생하게 묘사를 하는 바람에 나는 나도 그 영화를 본 것 같은 착각이 들어 그럼 국전을 보자고 다시 번의를 한다.
누구든 지날 길에 우리의 이런 대화를 서너 마디만 주워들어도 “별 골 빈 친구들 같으니라고 쯧쯧” 하며 한심해할 시답잖은 수작이 우리에겐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다. 아름답지만 골 빈 여자와 더불어, 나도 골이 상쾌하도록 텅텅 비어가면서, 골을 제외한 딴 부분은 마치 단물 오른 과물(果物)처럼 충만해지는 느낌, 그 즐거움을 무엇에 비할까. 정말이지 난 이 여자와 사랑을 하려 나보다.
어느 틈에 우리는 광화문 지하도 못 미쳐 육교 앞까지 왔다. K여고로 들어가는 길목으로 이어지는 이 육교는 많은 사람의 통행으로 늘 휘어질 듯이 고단하다. 오늘은 좀더 심한 것 같다. K여고에서 어머니들이 쏟아져 나와 육교를 건너고 있다. 어머니들은 대개 보따리를 들고 있다. 엉성하게 포장되었거나 노출된 내용물은 방석, 쿠션, 베개, 리본, 플라워 등속이다. 어머니들의 밝은 표정과 함께 그것들은 하나같이 화사하고 아기자기해서 보는 사람을 절로 미소짓게 한다. 마치 유모차에 탄 잘생긴 애기 같이.
“참, 오늘이 K여고 바자 날이지, 우리 저기 들렀다 가요. 예쁜게 많을 텐데.”
여자가 아는 척을 한다. 그녀도 K여고 출신이고 동생들은 아직 다니고 있다니 아는 척을 하는 건 당연하다.
“남자가 어떻게…… 쑥스럽게스리.”
나는 한마디로 사양을 하면서도 행복한 어머니들이 한 아름씩 안고 있는 아롬다운 생활의 내용물을 슬쩍슬쩍 눈여겨보는 게 근지럽도록 즐겁다. 옴뚜꺼비같이 너절한 이삿짐 나부랭이를 보고 느끼는 생활에의 진절머리랄까, 무서움증이랄까 그런 것과는 정반대의 느낌, 생활이니 가정이니 하는 울타리에의 따스운 친화감을 애인을 만들고 싶은 여자와 같이 느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재수좋은 일인가.
“들렀다 가요, 응? 예쁜 게 얼마나 많고 싸긴 또 얼마나 싸다고…….”
그녀는 내가 으레 뒤따르리라 자신한 듯 깡충깡충 먼저 육교 계단을 오른다.
“싫다니까.”
나는 혼자서 투정을 하다가, 바자에 들르지 않더라도 영화 구경이나 국전 구경을 가려면 어차피 육교나 지하도를 통해 길 건너로 건너가야 된다는 결 깨닫는다. 여자에게 내가 져주느냐, 나에게 여자가 져주느냐는 우선 길을 건너놓고 나서의 문제인 것이다.
때마침, 계단을 다 오른 여자가 육교 난간을 짚고 서서 열심히 나에게 손짓을 하고 있다. 나는 못 이기는 척 빙긋 웃고 육교의 첫 계단을 딛는다. 그러나 껑충, 그까짓 거 두 층씩 뛰어오를 셈으로 탄력 있게 내디딘 첫걸음은 뜻하지 않은 완강한 저지에 부딪힌다. 지금부터 잠시 육교의 통행이 금지된다는 간단한 전갈과 함께 두 사람의 순경이 보초 서듯이 계단 양쪽에 막아선다. 길 건너에서도 동시에 같은 일이 일어나고 이미 육교에 올라 있는 사람에게만 제 갈 길로 갈 기득권이 주어진다. 삽시간에 육교는 텅 비고 길 양편에 길을 건너야 할 사람들이 점점 큰 무리를 이룬다. 그래도 왜? 라든가 얼마 동안이라든가 통행금지에 대해 일단 있음직한 해명을 순경은 하려 들지 않는다. 갈 길이 막혀 고이고 있는 게 막힌 하수구의 구정물이 아니라 바로 사람이란 걸 무슨 수로 그에게 인식시킬 수 있담. 한낮에 많은 사람의 통행의 자유를 빼앗은 순경의 얼굴은 위인의 동상처럼 외포(畏怖)를 떨칠 뿐 미동도 안 한다.
육교 양쪽엔 육교를 건너야 할 사람들이 자꾸자꾸 밀린다. 그러나 아무도 순경에게 왜라든가 언제까지라든가를 물을 엄두를 못 낸다. 용무가 급한 사람은 초조히 발을 구르면서도 불평은 입속에서 적당히 우물댄다. 급하지 않은 사람은 “아마 높은 양반이 지나가려나보지” 하며 뜻밖의 구경에의 기대로 횡재를 점치는 노름꾼처럼 음흉해진다.
“이 길을 건너다 숨진 어린 넋을 위하여……”라는 감동적인 사연까지 새겨진 육교, 차량의 홍수를 초연히 이 길과 저 길 사이를 손잡듯이 정답게 이어주던 다리는 삽시간에 난공불락의 요새로 둔갑하여 건너가야 할 사람과 건너와야 할 사람 사이에 가로걸려 있다.
차량의 통행이 여전한 것을 보면 높은 사람이나 구경거리가 쉬 나타날 것 같지도 않다. 그럴수록 발이 묶인 사람은 발이 묶인 까닭이 궁금하고, 까닭도 모르고 무작정 발이 묶여야 하는 일이 심히 부당한 일로 여겨져 억울하다. 세상에 억울하다는 느낌처럼 고약스런 느낌이 또 있을까?
“누가 온다는 거야, 젠장.” “높은 사람이 온다니 아마 정수리로 육교라도 들이받을까봐 그려는 거야 뭐야.” “언제까지 이럴 셈이야. 무슨 말이 있어얄 게 아냐, 씨발.” “영문이나 일러주고 사람 발을 묶더라도 묶어야지. 내 더러워서…….” 웅얼웅얼, 쑥덕쑥덕…… 그러나 행여 순경이 들을세라 될 수 있는 대로 뒷전에서, 될 수 있는 대로 입 속에서 웅얼댄다.
도대체 이런 비겁한 쑥덕공론으로 무엇을 해결할 수 있단 말인가? 건너가야 할 사람의 건너가야 할 용무와 건너와야 할 사람의 건너와야 할 용무를 포로처럼 교환할 수라도 있단 말인가? 건너가는 일과 건너오는 일을 서로 비기게라도 할 수 있단 말인가?
순경은 여전히 사람들의 이런 초조와는 무관한 채 동상처럼 위대하다.
나는 이렇게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 상태를 지속시키는 게 점점 고통스러워진다. 사람들의 비겁한 쑥덕공론이 온통 내 머릿 속으로 꽉 차들어 벌처럼 윙윙대는 것 같기도 하고 피가 체온 이상으로 데워져 가슴으로 쏟아져들어오는 것모양 가슴이 화끈거려 안절부절을 못 하겠기도 했다. 그것은 어떤 징조였다. 나는 그게 어떤 징조인지를 알고 있을 터였다. 나는 주제넘게도 지금 이 자리에서 사람들을 위해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내 의지와도 상관없는 내 왕년의 반장 기질과 결부된 일종의 조건반사 같은 거였다. 나는 초등학교 육 년 동안, 중고등학교 육 년 동안을 줄창 반장 노릇으로 일관해왔고 이제 대학 이 년이니 긴긴 반장질을 벗어난 지가 겨우 일 년 반 남짓밖에 안 된 셈이었다. 결국 나는 나의 성격 형성의 가장 중요한 시기 십이 년 동안을 여럿의 불평불만을 타당한 이유로 회유 진압하거나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때는 여럿의 그것을 선생님에게까지 도달하게 함으로써 불평불만의 배출구 노릇을 하거나 했던 것이다. 그런 일에 조금이라도 게을렀다간 대뜸 반장 넌 뭐냐? 무능하다, 자격 없다, 집어치워라, 어쩌고 하는 조롱을 빗발처럼 감수해야 했던 것이다.
대학생활이 나에게 준 여러 종류의 자유― 연소자 입장 불가의 영화관에 어깨 펴고 드나들 수 있는 자유, 아무 데서나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자유, 대폿집에서 막걸리 한잔으로 방성대가 할 수 있는 자유, 여자와 뮤직홀에서 온종일 몸뚱이를 들까불 수 있는 자유도 막상 누려보니 상상했던 것보다 시시했지만 반장으로부터의 자유만은 자다 깨서 생각해도 새롭게 홀가분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백주 대로상에 악몽처럼 반장의식이 고문을 받을 줄이야. 더욱 난처한 것은 나의 반장의식이 나에게 협박하다시피 시키는 일, 여럿의 쑥덕공론으로 동상의 고막을 울려주는 일에 나는 도무지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자신이 없을 뿐 아니라 나는 그 일이 무서웠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 일에 어쩔 수없이 떠밀리고 있었다. 헤엄도 못 치는 주제에 깊이도 모르는 물로 떠밀려야 하듯이.
나는 문득 길 건너에서 이쪽을 보고 열심히 손짓을 하고 있는 나의 여자를 발견했다. 여자는 웃고 있었다. 손짓은 어서 건너와 보라는, 아이들의 용용 죽겠지 같기도 하고, 자기만 먼저 가겠다는, 이를테면 빠이빠이 같기도 했다. 용용 죽겠지건 빠이빠이건 난 구태여 그것을 분별하려 들지 않았다. 실상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저 여자와 난 얼마나 동등했으나 그런데 지금은 뭔가. 저 여자는 재빨리 요새를 돌파한 용사고 난 낙오자인 것이다. 저기서 건너다본 난 얼마만큼 머저리로 보일 것인가.
여자 앞에서 더이상 머저리일 수만은 없다는 오기와 예의 반장 기질이 합쳐지면서 저돌적인 용기가 된다. 나는 사람들을 헤치고 감연히 순경 앞으로 나선다.
“대관절 무슨 일로 사람들 통행을 막는 겁니까? 까닭이나 알아얄 게 아뇨.”
그 말 한마디를 위해 대단한 용기와 엉뚱하게도 왕년의 반장 기질까지 합세를 했을 터인데도 내 목소리는 목에 결린 빙충맞은 소리가 되어 나온다. 순경도 못 들었는지 무표정하다. 나는 당연한 걸 묻는 걸 지나치게 어려워하고 있는 자신에 대해 부득불 화가 난다.
“언제까지 우릴 이대로 놔둘 거요? 참는 데도 한도가 있지.”
기어코 나는 나도 깜짝 놀라도록 큰 소리를 지르고 만다. 비로소 순경이 나를 돌아다봐주었다. 그러나 뭐 이런 게 다 있어 하는 듯이 내 아래위를 쓱 한번 훑어봤을 뿐 다시 나를 묵살했다. 이게 무슨 꼴이람, 순경과 대화를 나누는 일이 이렇게 깨끗이 실패하리라곤 전연 예기치 않았으므로 나는 심히 낭패했다. 그리고 내가 정말로 발이 묶인 여러 사람의 반장이라도 되는 것처럼 면목도 없고, 한마디로 내 꼴은 엉망이 되었다.
‘좋다. 네가 나를 묵살하면 나도 너를 묵살해주마. 너도 좀 당해봐라.’ 내가 냉큼 생각해낼 수 있는 것은 고작 이거였다.
“난 좀 가야겠소.”
물론 묵살은커녕 전신으로 순경을 의식하며, 될 대로 돼라, 이 판국에 이럴 수밖에 더 있느냐는 자포적인 심정도 거들어서 나는 꽤나 반항적인 몸짓으로 제법 당당하게 계단을 오른다.
“야!”
계단을 절반쯤이나 올랐을까 할 즈음 노한 고함 소리와 함께 나는 뒷덜미를 세차게 잡힌다. 순경은 내 뒷덜미를 잡은 채로 나를 가볍게 빙그르르 돌려 앞세우더니 계단을 내려온다. 나는 티셔츠와 위에 걸친 신사복이 함께 목 뒤에서 어찌나 무지막지하게 움켜잡혔는지 순경에게 밀려 계단을 하나하나 내려디딜 때마다 곧 눈알이 튀어나오고 혓바닥이라도 쭉 내빼 늘어뜨릴 듯이 고통스럽다. 아마 교수(絞首)당해 질식사하기 직전의 고통이 이러려니 싶다. 게다가 계단 밑에서 나의 이런 꼴을 보고 웃는 사람들 꼴이라니, 영락없이 악당의 교수형을 구경하며 좋아라고 길길대는 서부 개척시대의 개척 민만큼이나 천진하고 잔인해 뵈지 않는가.
길길길…… 사람들은 아무 근심 없이 잘도 웃어댄다. 아예 그들의 용무 같은 건 까먹은 눈치다. 나를 구경하는 재미로 얼이 쑥 빠져버린 사람들의 웃음소리를 견디는 고통이 교수의 고통보다 더하면 더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저들은 초조했고, 바쁜 저들만의 일이 있었고 그래서 저들은 하나하나가 제각기 또렷하게 아름다웠더랬는데 지금은 하나같이 백치스럽게 변모해 있다.
드디어 계단을 다 내려오고 목을 죄는 고통으로부터 좀 놓여나는가 했더니 웬걸, 한층 세게 목이 죄어지고 이내 온몸이 빙그르르 한 바퀴 돌려지더니 순경과 마주 보게 세워진다. 그사이가 눈부시게 빨라 나는 어지럽다. 어느 틈에 그의 손은 뒷덜미가 아닌 내 앞가슴에서 옷깃을 한 움큼 움켜쥐고 있다.
“뭐야 넌, 무슨 빽으로 함부로 법과 질서를 무시해 응?”
법과 질서라니, 지금의 나에겐 너무도 어렵다. 나는 멀뚱히 내 가슴께를 움켜쥔 그의 손과 그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오늘 넥타이를 안 매길 참 잘했어. 티셔츠를 입은 건 잘한 일이야 고작 이런 생각을 했다.
“아니 대학생 아냐? 대학생이면 다야?”
그는 드디어 내 신사복 깃에 달린 빛나는 배지를 본 모양이다.
“건방지게스리.”
그의 얼굴에서 직업적인 권태가 싹 가시며, 강한 분노와 악의적인 조롱으로 아주 살벌한 얼굴이 된다. 그의 그런 변모가 나에겐 너무도 뜻밖이다. 나는 아직 그렇게 악의적인 시선에 내 배지와 내 얼굴을 내말긴 경험이 없었다. 내 배지는 꽤 이름도 있고, 인기도 있는 대학의 것이었고, 그것의 쟁취를 위해 나는 고등학교 삼 년 동안을 지독하게 공부를 했고, 그래서 난 내 배지가 자랑스럽고 지금 과거의 나처럼 수험 준비르 악전고투중인 내 후배녀석이나, 이런 수험생을 가진 학부형들에게 내 배지가 미치는 심리효과를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선망과 동경에 익숙해 있었고 나는 그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나는 면도나 세수하는 것, 심지어는 이 닦는 것을 잊고 외출한 적은 있을지언정 내 배지를 내 옷의 가장 눈에 띄는 곳에 도드라지게 다는 것을 잊어본 적은 없었다.
순경이 나를 움켜쥔 채 말없이 세차게 서너 번 흔들더니 징그러운 것을 떨어버리듯이 획 뿌리친다. 흔들린 반동으로 나는 뒤로 엉덩방아를 찧고 만다.
“와하하…….”
구경꾼들의 유열(愉悅)은 드디어 절정에 달한다. 나는 일어나서 엉덩이를 털고 앞뒤로 엉망으로 구겨진 옷의 목둘레를 바로 잡고 지독한 모멸을 견딘 배지를 한번 토닥거려주고 사람들을 헤치고 도망쳤다. 사람들은 아직도 길길댄다. 아마 앙코르라도 부르고 싶을 게다. 천만에 천만에, 다시는 이런 일에 말려들까보냐고 나는 뺑소니를 친다.
수리중인 광화문 지하도가 동굴의 입구처럼 열려 있다. 통행이 자유롭다. 그렇지, 지하도니까, 발밑에 해당하니까. 나도 도망치듯이 지하도 속으로 들어갔다. 지하도의 출구는 내가 들어간 곳 말고도 세 곳으로 열려 있다. 나는 의당 국제극장 쪽으로 나가서 내 여자를 만나야겠지만 잘못 나가서 동아일보사 쪽이 되길래 되돌아 들어와 다시 나가니 비각 쪽이다. 나는 그런 실수를 자꾸만 저지르며 좀처럼 국제극장 쪽을 못 찾는다.
정말은 나는 여자를 만나는 것을 꺼리고 있었다. 그녀가 나에게 얼마나 정떨어졌나를 확인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어쩌자고 나는 그런 꼴을 애인을 만들고 싶은 여자에게 보여주고 만 것일까? 참 재수 없는 날이었다.
나는 용의주도한 편이어서 여자와 데이트하기 전에 미리 여러 경우의 즐거움을 상상하고 궁리도 했지만, 행여 부딪힐지도 모를 곤경의 경우도 예상하고 대처할 준비가 늘 단단했다. 나는 별의별 곤경을 다 공·상했었고 이런 공상이 즐거움의 공상보다 더 재미있었다.
둘이 점심을 먹으려는데 여자가 의외로 주머니 사정에 빗나가는 비싼 것을 시킨다면 어떻게 태연히 식사를 하고 어떻게 여자에게 안 들키게 시계를 풀어주나에서 시작해서, 밤거리에서 부랑배의 공격을 받았을 때 여자를 어떻게 안전지대로 피신시키고 묵은 당수 실력을 어떻게 발휘하나, 또는 수영을 즐기다가 여자가 갑자기 쥐가 올라 꼬르르 가라앉을 때 어떻게 멋있게 크롤을 쳐가 구출하나까지, 내 상상 속에서의 나는 어떤 곤경에서도 소영웅이었지, 여자 앞에서 누더기처럼 내팽개쳐지는 참경에까지는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오랜 방황 끝에 겨우 국제극장 쪽으로 솟아올랐다. 이미 여자는 없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여자를 만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오히려 다행이다 싶었다. 나는 혼자서 국제극장에 들어가 〈대부〉를 보고 재미없다고 생각하고, 어슬렁어슬렁 국전을 보러 가서 사람이 하도 많아서 대충대충 보는 척만 하고 시시하다고 생각하고, 밖에 나와서 빠르게 어두워가는 거리를 보며, 하나 둘 켜져가는 네온을 보며, 미아처럼 망연히 서 있다가 불현 듯 술을 먹고 싶다고 생각했다.
한번 술 생각이 나자 환장을 하게 그게 먹고 싶었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일시에 생동하며 아우성쳤다. “술, 술, 술” 하고. 나는 무교동 쪽으로 곤두박질쳤다.
술집이 있는 골목의 어둠은 비로드처럼 보드라웠고 술을 파는 집들은 저녁노을처럼 붉고 아름답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어느 집의 문이고 다정하게 열려 있었고, 어느 집의 문이건 고혹적인 속삭임을 갖고 있었다.
“지금 당신의 시간은 취할 시간입니다. 지금 당신의 시간은 취할 시간입니다…….”
나는 나의 첫 잔에 비렁뱅이처럼 달겨들어 비렁뱅이처럼 핥아댔다.
두 잔, 석 잔, 넉 잔…… 피돌기가 빨라지고 훈훈해지고, 따뜻해지고, 행복해지고, 얼큰해지고, 화끈화끈해지고, 뒤죽박죽이 되더니 엉망진창이 되었다.
같은 과 친구놈도 만났다. 같은 과에 있다는 것 말고는 절대로 친해질 수 없을 것 같은 놈이었는데도 단박에 친해졌다. 그놈도 혼자서 술을 마시고 있었고 혼자서 숱을 마시다가 들켰다는 걸로 둘은 충분히 친해질 수 있었다. 그건 공통점이 아니라 실로 기막힌 공감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행복한 명정(酩酊)을 위해 주머니를 아낌없이 털고 시계를 풀고 학생증을 잡혔다. 그래도 우린 아직 더 마실 수 있었다. 완전히 취하기 위해서는, 완전히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딱 한 잔만 더 술이 있어야 했다. 나는 그 마지막 잔을 위해 내 빛나는 배지라도 잡히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것을 잡아주지 않았다. 우리는 술부대처럼 포만한 채 그러나 딱 한 잔만 더 하는 미칠 듯한 갈증은 기어이 못 푼 채 깊은 밤거리로 내팽개쳐졌다. 우리는 서로 곤죽처럼 끈끈히 엉켜서 혀 꼬부라진 소리로 쌍소리를 짖어대며 허위적 허위적 밤거리를 헤엄쳤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내가 눈을 떴을 때는 나는 낯선 여러 사람들과 같이 있었고 그 술친구놈은 내 옆에 없었다. 내가 눈을 뜬 곳은 C서(署)였고 곧 즉심에 회부돼 야간 통금 위반 음주 폭행 등의 죄목으로 칠 일간의 구류 처분을 받았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나는 칠 일 동안이나 자유를 빼앗겼지만, 칠 일 동안이나 자유를 꿈꿀 수 있는 것이다. 자유를 빼앗긴 것보다 몇 배 찬란하고 매력적인 자유를 꿈꿀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구류기간을 마치고 먼저 나가는 이들은 하나같이 사식 차입도 없고 면회인도 없는 나를 동정해서 나가서 연락해줄 테니 가족이나 친지의 전화번호나 전화가 없으면 주소라도 가르쳐달라고, 나가는 대로 연락해주겠다고 고맙게 굴었다. 하숙을 하고 있어 가족이 없다고 하면 친구나 애인이라도 있을 게 아니냐고 친절한 이들은 귀찮게 졸라댔다.
남의 친절에 대등한 친절로써 보답할 수 없다는 것도 적지 않은 괴로움이었고, 그럴 때마다 내 여자애를 생각하게 되고 딱 한 번 걸어본 그녀의 전화번호를 또렷이 기억하게 되는 것도 괴로웠다. 18 ㅡ1818. 과는 다르지만 같은 학교니까 제법 반반한 여자애로 눈여겨봐두게 되었고, 그룹 미팅 같은 것을 통해 말도 시켜보게 되었고, 우연히 만난 것같이 자연스레 등교나 하굣길에 만나서 정문에서 강의실까지의 길고긴 은행나무 길을 둘이서만 걷는 일이 잦아졌고, 드디어 전화번호를 알아내고 처음 걸던 일. 두근거리며 번호를 돌리고, 중년 부인의 기푭 있는 “여보세요”에 고만 기가 죽어서 수화기를 놓칠 뻔하다가 용케 용기를 내어 여자 이름을 대고 바꿔달라고 하고 하회를 기다릴 때의 조바심과 설렘, 같은 학교 친구라는 것만으로 의외로 쉽게 여자애와 통화가 되었을 때의 기쁨보다 앞서는 너무 딸을 방종하게 키우는 게 아닌가 싶은 엉뚱하고 어쭙잖은 걱정, 드먹어 신촌 로터리에서 만납시다는 데이트 약속이 이루어진 기쁨, 그 밝고밝던 가을날의 행복한 산책, 끝없는 요설로 나불대던 뀌여운 입술에 뽀뽀를 할 수 있었으면 하는 처음 느낀 구체적이고도 강한 욕망, 내 회상은 늘 이 근처에서 진저리를 치며 더 이어지는 것을 막았다. 나는 그날 육교 앞에서 내 몫이었던 그 기묘한 역할에 대해 두고두고 진저리리 쳐도 모자랄 것 같았다. 나는 그것을 단순한 횡액으로 처리해서 심리적인 일단락을 지을 수가 없었다.
유치장 생활 닷새째 되는 날은 나에게 특별히 친절해 칫솔까지 같이 쓰는 것을 허용해준 친구가 풀려나가는 날이었다. 나는 그에게 홀딱 반했었으므로 퍽 서운했다. 그는 좀 특이한 데가 있는 친구였다. 그는 유치장 안에서는 절대로 소유해선 안 되는 걸로 되어 있는 물건들을 요술쟁이가 빈 모자 속에서 비둘기 꺼내듯이 빈주먹으로 순식간에 만들어내어 우리를 즐겁게 해주고는 감쪽같이 없애는 재주가 있었다. 만들어낸 물건을 구경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때로는 그가 뒤적뒤적 호주머니를 투어 번 뒤져 만들어낸 담배와 성냥으로 돌아가며 두어 모금씩 황홀한 끽연을 즐길 수도 있었다. 그는 볼펜도 파란 면도날도 주머니만 뒤지면 만들어냈다. 우리는 그의 요술의 속임수를 기어코 알아내고야 말겠다고 눈을 빛내며 그에게 달겨들어 뒤지고 만져보고 갖은 짓을 다 해도 그는 노회한 마술사처럼 짐짓 권태로운 얼굴을 하고 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그에게 반한 건 그 요술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대개 한 방 친구들을 별명으로 불렀는데 나는 단박에 ‘병신’ 으로 불려졌다. ‘벼엉신’, 그 가락이 아주 독특했다. ‘병’을 길게 강하게 끌고 ‘신’ 은 가벼운 탄식처럼 살짝 지나는 그 독특한 발음에는 거의 육친애적인 짙은 연민을 담고 있었다. 나는 그 별명에 조금치의 저항도 느끼지 않았을 뿐더러, 그렇게 불릴 때마다 조금 슬픈 듯하면서 부드럽고 친근한 어루만짐을 당하는 듯한 피부적인 쾌감을 느꼈다. 나는 “벼엉신” 하는 그 독특한 가락과 가락 밑에 앙금처럼 가라앉은 연민을 좋아했다. 몸에 잘 맞는 옷을 좋아하듯이 흘러간 옛 노래를 좋아하듯이 그렇게 좋아했다. 그런 가락으로 나를 불렀다는 것은 그가 나를 한눈에 속속들이 알아버렸다는 증거였고, 그래서 내 기쁨은 지기(知己)를 만난 기쁨일 수도 있었다.
그는 나갈 차비를 하면서,
“벼엉신, 여직껏 애인 하나 없어?”
“있긴 있지만 이런 꼴 보이긴 싫어요.”
“벼엉신, 정떨어질까봐?”
“그런 건 아니지만…….”
“군소리 말고 전환 있어? 몇 번이야?”
나는 한번 군침을 꼴깍 삼키고는 18 ― 1818을 대주고 말았다. 그는 별로 귀담아듣는 것 같지도 않길래 먼저 나가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마디씩 하는 그런 인사치레거니 했는데 바로 그날 오후 면회실 키다리가 날 불러내지 않는가.
면회는 한꺼번에 두 사람씩 하게 되어 있어, 나는 딴 방에서 불려나온 생판 낯선 친구와 각각 한 손씩을 수갑으로 묶여 한 짝이 되었다. 그는 왼손, 나는 오른손을. 우리는 서로 수갑 차인 손을 자기 주머니에 넣어서 감추려고 잡아당기다가 내 짝의 힘이 더 세었는지, 그는 자기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찌를 수 있어 제법 의젓한 자세가 되었는데 내 꼴은 우습게 되고 말았다. 그가 당연히 앞서고 나는 그에게 매달린 돌멩이처럼 질질 끌리다가 면회실 문지방에서 한번 곤두박질을 치고는 면회실에 들어섰다.
닭장 철망보다 좀더 굵고 억센 철망 너미 한 평도 될락 말락한 비좁은 곳에 대여섯 명이나 되는 부녀자들이 붐비고 있었다. 한쪽에 울상을 하고 서 있는 내 여자애 외에는 다 내 짝의 면회인인 모양으로 내 짝 앞으로 여자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내 여자애는 가까이 다가오지도 않고 울상을 풀려 들지도 않았다.
내가 먼저 멋쩍게 웃었다. 그래도 그녀는 울상인 채 빨간 바바리코트 포켓에 양손을 찌른 채 꼼짝도 안 했다. 나는 기가 죽어 그냥 도망쳐 들어가버리고 싶었지만 내 한 손이 내 짝과 연결돼 있었으므로 내 짝이 하는 대로 나도 따라서 의자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철망 너머에도 면회인을 위한 의자가 두 개 놓여 있기에,
“좀 앉았다 가. 누추하지만…….”
내가 먼저 말을 시켰다. 철망 밑은 십 센티 높이로 뚫려 있어 물건을 주고받을 수 있게 돼 있었다. 앉자마자 내 짝에겐 먹을 것이 들이닥쳤다. 보온병 이 옆으로 누워서 들어오고, 콜라, 목장 우유, 드링크제, 빵봉지, 통닭 그런 게 꾸역꾸역 들이닥쳤다. 면회실 키다리가
“병은 일체 갖고 들어갈 수 없으니까 병에 든 건 다 마셔야 돼. 빵이나 그 밖의 것은 나한테 검사 맡고 갖고 들어가고. 면회 시간은 오 분이야. 빨리 빨리들 해치워.”
내 짝은 한 손으로 신속히 커피에, 우유에, 콜라에 × ×드링크에, ○○드링크를 차례차례 들이켰다. 그리고 간간이 식구 누구에겐지 심한 인상을 써가며, 어떻게 좀 손을 써서 빨리빨리 꺼내주지 않고 뭣들 하고 있느냐, 누구 환장하는 꼴 보고 싶으냐고 공갈을 때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내 여자애와 나는 정말로 할 일도 없고 할 말도 없었다.
“미안해.”
할 수 없이 난 밑도끝도없는 사과를 했다.
“난 이런 덴 처음이야.”
그녀가 입을 뾰죽하게 하고 처음으로 말을 했다. 나는 김이 팍 샌다. 남자가 여자에게 정겨운 뽀뽀라도 해주려는데 여자가 “난 이래봬도 처녀야” 한다면 남자 기분이 얼마나 잡치겠는가. 내 기분이 꼭 그랬다.
내 짝은 마실 것은 다 마셔댔는지 이번엔 담배를 피워물더니 꿀같이 빨아댔다. 나는 다시는 할 말도 없고 해서 쩍쩍 입맛만 다셨다. 나도 꼭 한 모금만 담배를 빨고 싶었다.
“미안해. 정말 난 이런 곳이 처음이거든. 그래서 먹을 것을 사다가 넣어줄 수 있다는 걸 몰랐어.”
그러면 그렇지. 그래서 이런 곳이 처음이란 소릴 했군. 나는 그녀에 대한 노여움을 단박에 풀고 히죽히죽 웃었다.
“괜찮아. 이런 데 와준 것만도 고맙지 뭐.”
“그래도…….”
“글쎄 괜찮다니까.”
그녀와 나는 똑같이 왕성하게 먹어대는 내 짝을 너무 의식하느라 좀처럼 둘만의 화제를 못 찾는다.
“그 속에선 뭐 제일 불편해? 역시 먹는 것?”
“아냐, 여기 식사도 꽤 먹을 만해. 정말이야.”
난 그게 정말이라는 걸 어떻게 그녀에게 증명해줄지를 몰라 자유로운 한 팔로 마치 아이들의 알통 자랑 같은 폼을 재 보였다. 그리고 또 히죽히죽 웃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아까부터 우리들의 수작을 엿듣고 있던 늙수그레한 부인이 끼어든다.
“아유 딱해라. 색시도 어쩜 이런 델 빈손으로 왔소. 쯧쯧, 지금이라도 당장 뭘 좀 사다가 디밀어요. 면회 나갔다가 빈손으로 들어가면 한 방 친구들한테 얼마나 구박을 받는다구…….”
내 짝의 어머니나 이모나 아마 그쯤 될 듯싶은데 유치장 안 사정까지 제법 아는 척을 한다.
“그게 정말이에요?”
내 여자애가 다시 울상이 된다. 난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우기고, 노부인은 절대로 그렇다고 우기고, 그러는 사이에 면회시간이 끝났다는 키다리의 말이 떨어진다. 내 여자애는 무슨 생각에선지 철망 앞으로 바싹 다가오더니 키다리한테 쌩긋 웃으며 고개까지 까딱하고는
“선생님, 저 조금 있다가다시 한번 면회 올 테니 잘 부탁합니다.”
“흥, 누구 맘대로.”
키다리는 고약한 것을 씹어뱉듯이 한마디 하고는 내 짝이 가지고 들어갈 먹을 것 보따리를 일일이 헤쳐서 면밀한 조사를 한다. 그러면서 중얼 댄다.
“쌍년 같으니라구, 골백번 면회 와봐라. 그림의 떡이지. 며칠 꾹 참았다가 끼고 뒹구는 게 낫지.”
다행히 나만 알아들은 모양으로 그녀가 다시 한번 애교를 떤다.
“네, 선생님, 이이가 몸이 아프다잖아요. 약도 좀 차입하고 싶고, 영양 있는 것도 좀 네, 부탁합니다.”
“안 된다면 안 돼.”
“왜 안 돼요? 아까부터 여기서 기다리면서 다 봤어요. 하루 두 번 세 번 면회 온 사람도 잘만 시켜주고선 왜 나만 안 돼요. 그런 법이 어딨어요?”
여자의 교태로 어떤 방편을 삼으려던 것을 포기한 내 여자애는 일순 도전적 인 모습으로 표변하더니 목소리에서 부드러운 콧소리 같은 게 싹 가시고 앙칼져진다. 나는 겁이 더럭 난다. 아니나 다를까,
“뭐 이년아, 네가 뭔데 나한테 설교야. 네가 서장이야 뭐야?”
키다리의 표정이 험악하다 못해 흉악헤지더니 철망만 없다면 한 대 때릴 듯이 거칠게 삿대질을 해댄다.
“같잖은 년 같으니라구. 아니꼽게 뭐, 법을 다 쳐들어. 지금 내 기분이 울고불고 빌붙어도 될까 말깐데.”
펄펄 뛰면서 키다리가 내 여자애를 보는 눈에 나는 치가 떨린다. 저런 시선을 쐰다면 누구라도, 제아무리 위대한 인간 정신의 소유자라도 단박에 된장독 속의 구더기로 변신 안 하곤 못 배길 것 같다. 나는 거의 주술적인 공포를 느낀다. 그리고 나의 이런 공포는 결코 터무니없는 게 아니었다. 말문이 막힌 채 한동안 아랫입술을 자근자근 씹고 있던 내 여자애가 “선생님 죄송합니다. 몰라서 그랬어요” 한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돌아섰다.
나는 평소의 그녀가 얼마나 버르장머리 없고, 오만불손하고 안하무인이었던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더 그녀의 변모가 슬프다. 이 정도의 망신에서 스스로를 지키려는 지혜로,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의 비열의 철학을 순간적으로 터득한 그녀가 슬프다. 오천 년의 유구한 생활철학을 일 초 만에 터득한 그녀가 슬프다.
“나 한 번만 보고 가.”
나는 그녀를 불러세웠다. 그리고 먹을 것을 주고받는 구멍으로 손을 내밀었다. 한 조각의 위무(慰撫)를 주고받기 위해 그녀의 작고 보드라운 손이 내 손에 고분고분 안겨왔다. 그녀는 아직도 아랫입술을 깨문 채 울고 있었다.
“병신, 울긴 그만 일로.”
내 ‘병신’ 에도 제법 가락이 생긴 것 같다. 그녀는 갔다. 내 짝은 가지고 들어갈 짐이 너무 많아, 도저히 한 손으론 처리할 수가 없어 두 손으로 가슴에 안으니 결국 내 한 손까지 끌려가 보탬이 될 수밖에 없어 나는 들어올 때보다 더 우스운 모양으로 면회실을 나간다.
그런 꼴로 걸으며 갑자기 나는 내 자유로운 한 손으로 무릎을 치고 싶어진다. 오랜 수수께끼를 푼 소년처럼 환성이라도 지르면서 말이다.
나는 왜 사람들이 어른이 됨과 동시에 하나같이 행주처럼 무기력해지고, 자벌레처럼 비열해지고, 잘 삶은 야채처럼 보들보들, 나글나글해지는지를 몰랐었다. 왜 어떤 악덕에도 순종만 했지 정직하게 싸움을 걸 줄을 모르는가가 궁금했었다. 나는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의 사람다움을 지키기 위한 가시를 인두겁과 함께 타고 태어난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요즈음 사람들은 도대체 언제 어디다 써먹으려고 가시를 감추고 숙멕 노릇을 하나 그걸 몰랐었다. 그런데 난 지금 그걸 알아낼 꼬투리틀 잡은 듯했다. 마치 어떤 흉악한 음모의 단서라도 잡은 듯이.
그래, 거긴 분명히 음모의 냄새가 있어. 우리를 고분고분 길들이고, 우리의 가시를 마멸시키기 위해 용의주도하게 꾸며진 음모의 냄새가.
나나 내 여자애가 겪은 곤욕도 결코 우연한 횡액이 아니라 미리 마련된 음모에 의한 초보적인 기초훈련쯤에 해당될 테지. 우린 장차 이와 유사한 경험을 반복헤서 쌓게 될 테고, 익숙해질 테고. 이렇게 해서 길들이기 음모는 완성될 것이다. 아아, 사람들도 다 그렇게 하여 그렇게 길들여졌던 것이다.
이제 나는 수수께끼를 푼 소년처럼 무릎을 치고 환성을 지를 차례다. 그러나 나는 둘 다 할 수 없었다. 겨우 신음처럼 무거운 한숨을 토해냈을 뿐이다. 나는 무서웠기 때문이다. 내가 이미 그 길들이기 음모의 교활한 톱니바퀴에 말려들었다는 사실이, 내가 속한 사회가 이렇게 잘 길들여진 사람들에 의하여 참여되고 움직여지고 있다는 사실이 나는 무서웠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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