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이야기방(15)
시골이야기방1기부터 14기까지는 남의 이야기만 두루 했지만 15기부터 나의 이야기를 하려 한다. 처음 세번에 나누어 육아이야기를 한다음 가족이야기를 하려 한다.
몇일전에 광주에서 일하고 있는 조카가 문안전화를 걸어와 둘이서 이말저말 하다가 화제가 지금 고중에 다니는 아들한테로 넘어갔다. 줄쳐오는 물음에 일일이 대답하고 네 동생의 키가 당금 너의 키를 따라잡는다고 하니깐 동생이 벌써 그렇게 컸는가고 놀라와 하였다. 일메터팔십의 미끈한 체격을 가진 조카가 살같이 흐르는 세월과 더불어 먹어가는 제 나의를 감지하지 못하고 대비대상인 동생의 빠른 성숙만 눈에 번쩍 띄우는가보다. 그러면서 조카가 학생시절 아들놈의 보모질하던 일을 또 말해 우리는 세월의 류수를 탄식하며 한바탕 웃었다.
내가 시골학교서 훈장노릇을 하고 있던 어느해 모내기철의 일이다. 한 마을에 사는 사촌 누님네가 두 아들을 명월진에 있는 중학교에 보내고 량주가 많은 밭을 다루면서 밤 늦게까지 돌아쳤다. 고양이손도 빌려쓴다는 모내기철에는 손등이 젖었다 말랐다하는 남자손보다 그래도 솜씨 잰 녀자손이 많아야 일축이 난다. 그래서 나는 일요일에 안해와 함께 누님네 벼모꽂으러 가려고 약속했는데 태여난지 댓달밖에 안되는 아들놈이 문제였다. 그렇다고 집에 혼자 내버려둘수도 없고 또 해빛이 쨍쨍 내리쬐는 논머리에 눕혀놀수도 없었다. 이리 생각하고 저리 궁리하며 고민하는데 마침 누님네 둘째가 일요일이라고 집에 왔다. 그래서 얼싸 잘됐다하고 아이를 조카에게 맡기고 모꽂으러 갔다. 밭에 가면서 아이를 재워놓았는데 한잠 실컷 자고 일어난 아들이 엄마를 찾으며 울어제끼는데 초중생이 우는 아이를 달래는라고 혼쭐이 났는가보다. 놀이감을 주며 달래기도 하고 우는 아이를 안고 다독이며 얼리기도 하고 소리쳐 으름장도 놓으며 있는 재간 다 피웟어도 젖을 먹겠다고 우는 아이를 녀학생도 아닌 남학생이 울음을 그치게 할수가 없었다. 하여 최후 수단으로 조카가 제 손가락을 아이의 입에 넣어주니 처음에는 젖꼭지로 착각하고 막 빨아대더란다. 그런데 나오라는 젖이 나오질 않으니 또 발버둥치며 울어서 아이를 둘러업고 밭에 와서는 아이를 못 보겠다고 나누었다. 바지가랭이를 걷어올리고 논판에 들어서는 조카를 여럿이 타일러서 젖을 먹고 얌전해진 아이를 다시 업혀 집으로 보냈다.
이렇게 애기때부터 흙냄새를 맡으며 자랐고 지금은 코수염이 감실감실한 의젓한 성년으로 자라나 제 주견도 세우고 거울앞에도 자주 서고 부모의 말에도 조금씩 대항하는 아들을 보노라니 곡절많았던 육아시절이 떠올랐다. 원래는 아들의 성장과정을 일기체 글로 적어두려고 생각했댔는데 가난한 생활에 쪼들리면서 먼저 입고 먹는것을 생각하느라 일기쓰는 일은 하루하루 밀리다가 결국 두리뭉실해지고 말았다. 거의 20년 세월이 지나 아들의 키가 부모의 키를 넘어서는 이마당에 옛기억을 더듬어 인상깊었던것을 골라 몇토막 적어놓는다.
1.백날사진
오늘은 아들놈이 고고성을 울리며 이 세상에 태여난지 백날이 되는 날이다. 하늘도 쾌창하게 개여 구름 한점 없는 맑은 날, 해님도 방실 웃으며 축복을 해주는것 같다. 마을과 30리 떨어진 명월진에 아들의 백날사진을 찍으러 가려고 안해는 새벽부터 분주히 돌아쳤다.
비록 호도거리를 한지 몇년이 되였지만 농민들의 호주머니는 여전히 비여있었고 편벽한 시골의 교통도구는 여전히 손잡이뜨락또르, 소수레 그리고 자전거였다. 그때 나에게도 허름한 <<2.8>>형 영구표 자전가 한대 있었는데 나는 이 자전거를 타고 매일 왕복 십리길을 달리며 출퇴근하였고 우리 가족이 나들이를 할때에는 나는 무보수 기사가 되여 택시처럼 요긴하게 사용하였는데 공로가 많고 나의 고정재산 가운데서 한몫 차지하였다.
안해가 아이를 업고 짐받이에 앉자 나는 자전거 페달을 디디며 천천히 산향길을 달렸다. 혼자몸이면 속도를 내여 달릴수 있는 길이지만 오늘은 내 가족, 내 식솔의 안전을 담보해야 하는 중임을 지녔기때문에 웅덩이를 피하고 평탄한 곳을 찾아 조심스러 달렸다. 산간의 정적을 깨뜨리는 방울소리 딸랑딸랑 울리며 달리는 자전거 탄 가족나들이 지금도 인상이 깊게 남아있다.
사진관에 들어가 사진사의 요구대로 아이를 걸상에 앉히고 사진을 찍는데 사진사가 샤타를 누르는 순간에 아들놈이 입을 도독록이 내밀고 제 인생의 첫 사진을 찍었다. 섬광등이 번쩍이는 사진기를 호기심 잔뜩 담긴 새별같은 눈으로 초롱초롱 바라보는 귀여운 모습, 종주먹을 꼭 쥐고 아무때든 너의 비밀을 알아내리라 신심에 가득찬 자세를 런즈에 담아 영원한 백날사진으로 남기였다. 두번 다시 없는 백날사진 지금 우리집 앨범속에서 즐거운 추억을 불러올 그 날을 솜꼽아 기다리고 있을것이다. 뒤따라 안해가 아들을 안고 셋 식솔이 자연스런 포즈를 취하고 첫 가족사진을 찰각 찍었다.
안도 이룡산 씀
2007년5월 15일
첫댓글 추억의 글 보노라니 예전에 내가 자라는 어린시절을 회상하게 됩니다.좋은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멋진글 즐감하였어요
지나간 옛일이 생각됩니다.좋은추억 묻고 갑니다
이룡산님이 엮은 구수한이야기는 옛추억을 거슬러 올라가게 되면서 지나간 추억을 련상하게 됩니다.멋진글에 한동안 마음을 내려놓고 갑니다.계속 즐거운 추억의 글 많이 만들어주시길 바랍니다
애기 백날사진찍던날 이글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울 딸애의 백날사진 찍던날이 생각나네요..구수한 시골방이야기 다음에는 무슨 사연 있을까? 궁금해지네요...하회를 기대합니다..^&^
구수한 시골방이야기가 잼난 가족이야기로 넘어가는군요...즐감하구 가요.
옛추억이 담긴 좋은글 잘읽고 갑니다
지금은 이전에 비해 애 키우는데 모든면에서 편하게 되였지만 호강한줄 모르고 힘들다고만 생각한 자신이 부끄러워 지네요 옛 사색을 자아내는 좋은글이였습니다. 이룡산님 건필하세요
저도 아이 백날 사진 찍을때가 생각나네요..이룡산님의 이야기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좋은 추억을 불러일으키네요
시골방이야기가 이번에는 재미있는 가족이야기로 이어지는군요.아름다운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좋은 글을 읽으면서 명상에 잠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