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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좋은교회/20231112 주일오전예배/김동건목사님 | |
분류 | 주일오전예배 |
제목 | 성막 중심의 삶 |
성경 | 출애굽기 33:7-11 |
정리 | 참좋은교회 청년부 |
성경말씀(출애굽기 33:7-11)
7. 모세가 항상 장막을 취하여 진 밖에 쳐서 진과 멀리 떠나게 하고 회막이라 이름하니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는 다 진 바깥 회막으로 나아가며
8. 모세가 회막으로 나아갈 때에는 백성이 다 일어나 자기 장막 문에 서서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기까지 바라보며
9.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에 구름 기둥이 내려 회막 문에 서며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씀하시니
10. 모든 백성이 회막 문에 구름 기둥이 서 있는 것을 보고 다 일어나 각기 장막 문에 서서 예배하며
11.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눈의 아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녹취자료 |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동안 노예생활을 했어요. 430년이면 말이 430년이지 4대가 계속 노예생활을 했어요. 모세가 이 부분을 너무 안타깝게 생각을 해서 하나님 앞에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 백성들을 살려주세요. 우리 백성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믿을 수 있도록, 하나님, 우리를 도와주세요. 기도를 했는데 때가 되어서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응답을 하십니다. 10가지 재앙에서 어린 양의 피를 바르니까 첫 번째 재앙에서 아홉 번째까지 재앙에는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10번째 재앙 때 바로왕이 손을 놔버렸어요. 그래서 이제는 너희들은 나가서 하나님을 섬겨라. 놔주게 되죠.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했는데요. 이스라엘 백성들 입장에서는 바로 가나안 땅을 하나님이 보내주실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바로 또 40년. 일주일에서 11일 –12일 만에 갈 가나안 땅을 40년동안 돌아가게 한거죠. 그러니까 하나님을 원망하고 막 욕하고 대들고 어마어마한 욕을 하나님께 하는거예요. 그래서 모세가 아니다, 하나님의 분명한 뜻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순종하면서 가자. 그래서 갔습니다. 나중에 알았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힘들고 어렵고 진짜 애굽에 있을 때가 더 쉬울 정도로 그만큼 힘이 들었어요. 나중에 알았어요. 하나님이 광야에 40년을 통해서 영적인 신분과 영적인 상태와 영적인 모든 것들을 회복하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었다는 겁니다.
그 키가 뭔줄 아세요? 성막이었어요. 키가 성막입니다. 지금처럼 텐트를 친겁니다. 광야가서 이동하니까 텐트치고 안에서 예배하고 또 이동하라니까 접고 이동하고 또 텐트치고 접고 이걸 40년을 한거에요. 장막을 치고 걷어내고 마음의 준비 영적 준비를 하면서 계속 하나님을 바라보게 된 겁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조금씩 조금씩 영적상태가 바뀌기 시작했어요. 그 키가 뭐냐하면, 그 방법, 그 내용, 그 응답이 뭐냐하면 바로 성막이었어요. 오늘 제목이요 성막 중심의 삶입니다.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여러분의 삶이 성막 중심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성막중심이 되어야 해요.
아무도 도와주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을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요. 위로는 해주고 얘기를 하니까 스트레스가 풀리고 공감대는 형성 되는게 맞습니다. 헌데, 집에 또 오고나서 나 혼자 있으면 문제는 똑같이 있습니다. 아무도 여러분들을 도와줄 수 없어요. 그 도와주시는 분은 모세와 함께하셨던 그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도울 수 있어요. 오늘 예배를 나오시면서 어떤 마음의, 어떤 영혼의 준비를 하고 나오셨습니까. 일주일동안 하나님 말씀을 전혀 못듣고 못붙잡고 기도도 못하고 그럴수 있습니다. 괜찮아요. 다시 오늘 하나님 말씀을 붙잡으시면 돼요.
내가 권사인데, 내가 장로인데, 상관없습니다. 과거는 지나갔어요. 오늘 지금 이시간 내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겠다. 내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영혼 속에 담겠다. 그게 중요한거예요. 누가 여러분들을 정죄합니까. 누가 하나님의 자녀를 감히. 정죄 못해요. 하나님의 자녀 백성은 존귀한 자입니다. 여러분들은 존귀한 자입니다. 여러분들이 현장에서 목사님이 몰라서 그렇지 이리저리 내가 내 자신을 내려놓을 정도록 힘듭니다. 괜찮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존귀한 자로 여기신다니까요. 이건 위로의 말씀이 아닙니다. 제가 목사이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말씀하고 있잖아요. 하나님의 백성은 존귀한 자다. 오늘 말씀을 들으시면서 그렇구나, 내가 그동안 성막중심의 삶을 살지 못했다면 오늘 말씀을 통해서 다시한번 그 언약을 붙잡는 예배가 되길 축원합니다.
1. 성막 중심이란?
자, 성막중심은요 잘 들어보세요. 어떤 중심을 얘기하냐하면, 하나님, 그리스도 중심을 이야기합니다. 오늘 9절에 보니까요.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 구름기둥이 내려 회막 문에 서며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씀하시니.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씀하신다고 하셨어요. 성삼위 하나님이 그 보좌의 능력이 나에게 임하는 겁니다. 하나님 중심, 그리스도 중심. 그러다보니까 복음이 너무 중요한 걸 느낀거에요. 그래서 말씀과 복음 중심이 바로 성막중심입니다. 아까 제가 말씀드렸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피를 바른 날, 어린 양의 피를 바른 날 해방됐어요. 지금의 누구 피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여러분들, 출애굽을 할 때요. 첫 번째 재앙부터 아홉 번째 재앙까지는 바로왕이 꿈쩍도 안했습니다. 어느 정도냐, 주술사들 점술가들 무당들 종교지도자들을 불러서 따라하기까지 했어요. 모세가 개구리, 이, 파리, 메뚜기, 우박, 물이 피가 되고, 지팡이가 이 뱀이 되고 이걸 다 따라 했어요. 비웃었어요. 너희 하나님이 하는 거 우리도 할 수 있어.. 비웃었다니까요. 지금 얼마나 우상과 종교가 기독교를 비웃습니까? 근데요 어린 양의 피 예수 그리스도의 피 이름을 부르는 거는 따라 할 수 없어요. 그게 복음입니다. 절대 따라 할 수 없습니다. 흑암과 저주와 재앙과 어마어마하게 몰아치는데 그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어요. 종교와 우상과 해결수 없을뿐만 아니라 해결할 자격도 안 됩니다, 그 사람들은.. 근데 복음이 그리스도가 그걸 해결했어요. 10번째 재앙은요, 따라 하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설주와 인방에 어린 양의 피를 싹 발랐습니다. 하나님의 시간표가 됐어요. 죽음의 사자가 임하니까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의 노예 생활이 끝난 거예요.
여러분들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그 문제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똑같은 문제가 있었어요. 어떻게 보면은 여러분들의 문제는 성경에 나와 있는 문제보다 빙산의 일각일 수 있습니다. 그 문제를 하나님 앞에 내어놔야 돼요. 그렇다! 이 문제는 어떤 종교와 우상이 해결할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하나님의 언약으로만, 그리스도로만 해결할 수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 중심이라는 거예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이 복음이요, 주문이 아닙니다. 어떤 공식이 아니에요. 늘 우리가 들으니까.. 정확한 현장의 문제를 진단하고 그 문제를 해결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우리가 믿는 거예요. 오늘 그분을 의지해서 나온 겁니다, 여러분들이.. 제 말을 듣고 목사의 말을 듣고 교제하기 위해서 어떤 상식과 지식과 참고하기 위해서? 아닙니다. 그럼 지금 유튜브 들으시면 돼요. 유튜브가 얼마나 전문성 있게 설명을 잘해놨습니까? 목사보다 더 똑똑해요. 그 말을 들으려고 여러분들이 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영적인 은혜를 오늘 받으려고 오셨어요. 오늘 믿음이 떨어지지 않는 우리 성도님들의 영적 상태가 다 회복되는 오늘 예배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니까요, 예배의 중심이 달라지는 거예요. 오늘 10절에 보니까요. “모든 백성이 회막 문에 구름 기둥이 서 있는 것을 보고 다 일어나 각기 장막 문에 서서 예배하며” 각각 장막이 뭡니까? 자기가 처한 처소 현장에서 예배했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체험하는 시간, 하나님과 소통하는 시간, 하나님이 영광받는 시간, 그 시간이 예배 시간이에요.
11절에 보니까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이 친구하고 속닥속닥 대화하는 것처럼 하나님과 모세가 대화를 했다는 거예요. 그게 뭡니까? 기도입니다. 기도가 왜 안 될까요? 여러분들 자꾸 틀을 갖추려고 해서 그래요. 멋있는 용어, 고상하게, 유식하게, 기승전결이 다 맞아야 돼요. 아닙니다. 그거 아니에요. 그거를 하려고 하니까 기도가 안 되어지고 부담이 되는 거예요. 기도는요 친구와 얘기하듯이, 오늘 ‘사람이 자기 친구와 이야기함같이 여호와께서 모세와 얘기를 했다’고 그랬어요. 속닥속닥속닥 얘기했어요. 지금 우리 친구들 얘기하죠 그렇게 얘기했다는 거예요. 기도가 그겁니다. 여러분들 부모님하고, 때론 부모님들은 자녀들하고 얘기를 하잖아요. 그럼 ‘엄마 오늘 이런 일이 있었어’ ‘그렇구나 네가 많이 힘들었겠네’ 이렇게 얘기를 하잖아요. 그게 기도인 거예요. 속닥속닥속닥 ‘하나님 오늘 막 거룩하게 영광을~!, ~믿습니다.’ 이게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 나 오늘 힘들어요. 나 너무 힘들어서 쓰러질 것 같아요. 하나님 저에게 힘을 주세요.’ 그게 기도입니다. 그렇게 기도하시는 거예요. 근데 멋있게 기도를 하려고 하니까 그게 힘든 거예요. 기승전결이 다 맞아야 되고, 누가 나를 보지 않을까? 아닙니다. 서툰 말 정말 1차원적인 단어를 쓰더라도 내 중심이 과연 하나님을 향해 있으면 그 기도를 하나님이 받으시는 거예요. 여러분들 오늘 기도에 대해서 좀 깨셔야 됩니다. 그게 기도가 아닙니다. 어떻게 했습니까? 친구와 얘기하듯이 대면했어요.
교회를 세운 목적이 전도 선교입니다. 복음의 빛 여러분들의 빛이에요. 빛만 비추면 내가 처한 현장에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통해서 빛을 보고 영혼을 보내주신다니까요. 여러분들의 빛입니다. 세상의 소금이고 세상의 빛이다 그랬잖아요. 여러분들의 빛이에요. 가서 있는 존재 자체가 빛이에요. 우리 중직자 분들, 성도님들은요 여러분들이 처한 현장에 계시는 것 자체가 존재 이유의 가치가 어마어마한 겁니다. 목사님 저는 기도도 안 하고요, 말씀 읽지 않아요, 불신자처럼 사는데요? 아닙니다. 불신자처럼 사는 거지 불신자는 아니잖아요. 그럼 어떻게 해요? 빛이 있다는 거예요. 존재 자체가 전도, 선교예요. 오늘 조금 단어나 어떤 내용이나 어떤 의미를 좀 틀을 깨셔야 됩니다. 복음은 굉장히 쉽고 그 다음에 편하고 즐거운 거예요. 한 주간 살아가기도 힘든데 교회 와서도 부담 있으면 얼마나 힘듭니까? 교회에서 편해야 돼요. 복음은 편한 겁니다. 쉬운 겁니다. 즐거운 거예요. 그게 복음이에요. 이게 바로 성막 중심입니다.
요즘에 너무 감사하게 우리 렘넌트들이나 어른들을 통해서 영접 운동이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좀 실명을 거론해서 좀 그렇지만은 우리 장성훈 권사님이 오랫동안 이 언니와 남편 되시는 분을 위해서 계속 기도를 오래 해오셨어요. 근데 이제 제가 구역 예배를 계속 가면서 저한테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목사님 제가 오랫동안 기도를 했는데 언니가 예수님을 영접했으면 좋겠다.’ ‘좋습니다. 언제든지 저는 좋습니다.’ 갔어요. 식당을 제가 갔습니다. 가니까 기도를 오랫동안 해오셔서 그런지 모든 복음을 받지 못할 것들 방해들은 다 막아주시고 그 가족만 딱 있는 거예요. 제가 복음을 전했죠. 제 능력하고 상관없습니다. 저는 그냥 숟가락 얹은 것처럼, 원하니까 제가 목사니까 복음 가서 전한 거예요. 영접을 하셨어요. 그래서 지난주 엊그저께 금요일 날도 다락방하고 왔습니다. 하나님이 저하고 상관없어요. 계속 현장을 놓고 기도하고 마음에 품고 뭔가 대단한 걸 하는 게 아니라 기도하고 흑암 꺾으니까 하나님이 복음을 받을 수밖에 없는 플랫폼을 만드시는 거예요. 그게 플랫폼입니다. 또 우리 저 아이들이 앉아 있지만은 지금 너무 감사한것이 아이들이 한 명이 교회를 나온다 안 나온다가 아니고요. 아이들이 자꾸 영접이 딱 되어져요. 지금도 지금 앉아 있고요. 이게 어떤 목사가 와가지고 뭐 그거 아닙니다. 저하고 상관없습니다. 여러분들과 목사님과 계속 그동안 기도해 온 응답이 지금 성취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전도와 선교는요 빛만 비추고 있으면 돼요. 우리 능력하고 상관없습니다. 자랑할 것도 없고 낙심할 것도 없고 ‘야 저 사람 대단하구나’ 그런 거 없습니다. 하나님이 아시는 겁니다. 어떻게 될 때요? 성막 중심일 때..
2. 성막 중심에 믿음의 증인
자, 그러면 성막 중심에 모델의 인물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누굽니까? 모세, 사무엘, 다윗, 다니엘, 바울입니다. 오늘 본문의 7절 구절을 한번 볼게요. 7절에 ‘회막‘이 두 번 나옵니다. 8절에 ‘회막‘이란 단어가 두 번 나옵니다. 9절에 ’회막‘이 두 번 나옵니다. 모세는 ’회막‘ 중심이었어요. 사무엘이요, 항상 젖 땐 후에 한나가 사무엘을 성전에 들였습니다. 다윗이요, 역대상 22장 1절에서 19절에 보니까 자세하게 어떻게 성전을 지을 것인가 쭉 나왔어요. 다니엘, 죽음 앞에서 창문을 열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세 번 기도했다고 그랬어요. 바울이요, 회당이 어디입니까? 교회입니다. 항상 회당에 들어가서 복음을 증거 했습니다. 믿음의 증인들이에요.
자, 고개를 들고 절 보세요. 우리 중직자분들과 성도님들은 무얼 하든 간에 교회 중심이 돼야 됩니다. 교회에서부터 시작이 돼야 돼요. 교회를 무시하고 여러분들 마음대로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입니다. 교회를 무시하고 내 멋대로 하면 안 됩니다. 나 응답받았어. 나 몇 백억 있어. 돈이 몇 백억 있어도요, 교회에서는 원네스가 되어서 하나님의 응답이 있어야 움직이는 겁니다. 내가 돈 있다고 막 교회 짓고 그런 거 아니에요. 교회 중심으로 교회는 움직여 나가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느 교회가 성전을 짓는다고 한다면 왜 저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그게 5년 10년이 걸려도 함께 기도합니까? 하나님이 원네스 되길 원하시는 거예요 사단이 틈타지 않도록. 성전 짓는 거 간단합니다. 몇 백 억 빌리면 돼요. 은행에서. 근데 하나님은 그걸 원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마음을 품고 교회 중심으로, 성경 중심으로, 회막 중심으로, 성막 중심으로 원네스가 되어서 기도하면서 응답받느냐? 그게 중요한 거예요.
그리고 교회가 유익한 쪽으로. 우리 교회 중심의 성도님들이 틀림없이 말씀이 실현됩니다. 성취됩니다. 그 축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요 우리가 왜 성막 중심으로 살아야 될까요? 제가 또 한 가지의 기도 응답을 좀 말씀을 드리면요, 제가 이제 우리 교회 온 지가 1년 한 5개월이 됐습니다. 벌써. 그런데 제가 처음 딱 왔는데 너무 우리 성도님들이 멀리 계신 거예요. 사시는 곳이. 그러니까 제 마음에 너무 안타까운 거예요. 왜냐면 과거에는 이제 맞벌이가 많이 없지만 지금은 다 맞벌이 시대잖아요. 그러면 교회가 가까워야 내가 몸이 피곤해도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러 가야지 이렇게 되는데 일단 성도님들은 교회가 멀면 예배드리는 게 힘듭니다. 그래서 기도했어요. 하나님 성도님들 어떡합니까? 교회가 멀어서 아니 집이 멀어서 교회에 나올 수가 없는데 이게 어떻게 되겠습니까? 계속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응답을 하셨어요. 권사님 세 분이 11월달 말하고 12월 초에 여기 아파트 자이 생기잖아요. 그걸로 다 이사 오세요. 저는 그냥 이사 오는 것 같지만 저는 기도를 했기 때문에 저는 다르거든요. 이게 보통 기도 응답이 아닙니다. 제가 볼 때는 막 섬뜩해지는 거예요. 성도님들은요, 교회와 가까워야 돼요. 그래야 새벽 예배도 나오고. 수요 예배도 드리고, 금요 예배도 드리고. 몸이 피곤할지언정 5분 거리 10분 거리 5분미만의 몇 분 거리면 교회를 나오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님들은 항상 성막 중심으로 사는 성도님들이 돼야 됩니다.
3. 성막 중심으로 사는 성도는?(최고의 영적 전쟁터 -> 교회)
이게 최고의 영적 전쟁터요 교회의 이유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흐름을 타셔야 돼요. 어떤 흐름입니까? 교회가 무엇을 놓고 기도하는지. 교회가 나아가는 방향이 무엇인지. 알고 눈물 흘리며 같이 기도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지금 그 중보기도 함이 있지 않습니까? 마음껏 넣으세요. 교회 흐름을 타야 되는 거예요. 뭐가 창피합니까? 함께 기도하는 게 중요하죠. 응답받는 게 중요하죠. 사람이 응답이 없으면요, 힘이 빠집니다. 암만 복음이 진리인 거 맞지만 나와 상관없어요. 내가 응답 못 받고 내가 축복을 못 누리면 사실 복음 교회 기도 나랑 상관없습니다. 근데 기도 응답을 받잖아요. 매주 예배 오는 게 기다려지는 거예요. 즐겁고. 야 오늘 목사님이 무슨 본문으로 말씀을 주실까? 내가 저번에 이런 응답을 받았는데, 오늘은 어떤 응답을 주실까? 이렇게 된다니까요. 근데 사실 우리 성도님들이 조금 죄송한 얘기지만 기도 응답을 조금 못 받고 계신 것 같아요. 그러면 예배에 나오는 게 부담입니다.
그래서 성막 중심으로 사는 성도님들은 교회의 흐름을 타야 돼. 교회가 원하는 교회 어떤 시간표, 무엇을 위해 기도하는지, 알아야 됩니다. 우리의 시간표는 지금 파키스탄 선교입니다. 지금 목사님 거기 가 계십니다. 이게 우리 선교인 거예요. 카톡에 계속 올려드린 이유도 기도하라고 올려드리는 겁니다. 잠깐이라도. 잠깐이라도 기도할 때 한 분 두 분 30명 40명 50명 되시는 분들이 기도한다? 그럼 어마어마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거죠. 우리 교회의 시간표는 파키스탄 선교입니다. 거기에 중점을 맞추는 겁니다. 그러면 교회를 사랑하게 되죠. 중직자들, 렘넌트들, 새가족들 사실은 교회 안에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교제도 하고, 이야기도 하면서요. 사랑이 있어야 해요. 우스갯소리로 그리스도가 사랑아니냐?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의미 자체는 사랑이 맞습니다. 새가족이 모일 수밖에 없는 문을 열어야 하는 거죠. 그걸 얘기 하는 겁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현장에는 영접은 하지만 교회에 나와서 집사로, 권사로, 안수집사로, 장로로 중직자가 되는 것은 진짜 기적입니다. 오늘 나오신 성도님들! 어떻게 교회에 나오셨습니까? 정말 대단한 분들이에요. 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이 아니면 안되는 겁니다. 그래서 현장에 나가서 전도해보면 진짜 교회에 계신 성도님들이 얼마나 귀한지... 섬김과 헌신이 중요하게 생각되는 겁니다. 청소하고, 식사 당해 주시면서 알게 모르게 헌신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여러분들이 편안하게 누리는 모든 환경은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누군가가 헌신하고 희생하는 겁니다. 절대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편하게 누리는 것들은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으로 되어지고 있는 겁니다. 식사당번으로, 찬양대로, 섬기는 자로, 강단 준비하는 자로 때로는 교회를 깨끗하에 청소해주시는 자로.... 얼마나 귀중한지 모릅니다. 이러한 분들이 모여서 성막과 교회가 이뤄지는 겁니다. 당연하게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그 분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안부도 물어봐주시고요. ”힘든 것 없으세요? 제가 도와드릴께요.“하면서 말이라도 전하셔야 해요. 말 한마디에 사람의 마음이 열리잖아요. 함께 교제하고 기도하는 것이 교회고, 성막입니다. 그래서 모든 성도님들은 성막 중심의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이 주보하나도 그냥 하는 것이 아닙니다. 힘들어요. 제가 부교역자 생활하면서 주보를 10년간 해봤거든요. 전도사 시절에는 새벽 3시까지 했었어요. 이렇게까지 왜 이야기 하는가 하면 이런 부분들을 좀 아시라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상황이 그냥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것들이 모여서 교회와 성막을 이루시는 겁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강단의 말씀이 은혜가 아니라 실제 답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 말씀이 곧 하나님이고, 하나님이 말씀이시잖아요. 그러면 우리가 말씀을 들으러, 하나님을 만나러 온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이 실제 답이 되어야 돼요. 그래서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체험하고 모든 답이 말씀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그래야 여러분들의 삶에 복음이 누려진만큼? 어떻게 됩니까? 기도가 되어집니다. 기도가 되어진만큼, 능력이 나타나요. 능력이 나타난만큼, 현장의 삶이 변화가 되는 거에요. 오늘 강단의 말씀이 은혜를 넘어서 실제적인 여러분들의 삶에 답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 최고의 영적 싸움 (강단 말씀 붙잡는 것)
자, 그러면 결론입니다. 최고의 영적싸움이 바로 강단 말씀을 붙잡는 것이에요. 이것이 영적싸움입니다. 내 기준으로 말씀을 받으면 안됩니다. 내 영적상태로 말씀을 받으면 안 돼요. 영적문제로 말씀을 받으면 안돼요. 내가 처한 형편과 상황에 따라서 말씀 붙잡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하나님의 기준, 하나님의 입장에서 말씀을 받아야 되는 거에요. 그래서 목회자와의 관계가 중요하고요. 성도와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자, 그런데 퀴즈 한번 낼까요? 퀴즈 한번 내겠습니다. 형제하고 싸웠어요. 싸웠는데.. 형제하고 싸웠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은혜 받으려고 교회가는 게 맞습니까? 형제하고 화목하고 교회에 나오는 것이 맞습니까? 지금 헷갈리고 있어요? 네 맞습니다. 먼저 형제하고 화목을 한 다음에 예배 드리러 오라고 그랬어요. 그게 뭐냐면, 예배 드릴 때 모든 것들을 내려놓지 못하는 부분을 먼저 해결하고 온전히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라는 것이에요. 그겁니다. 성도와의 관계, 목회자와의 관계, 내 기준, 내 영적문제, 내 영적상태, 내가 처한 현장으로 말씀을 받으면 안되는 겁니다.
오늘 성막중심의 삶이라고 했습니다. 이번 한주간 교회와 가깝게, 성전과 가깝게, 말씀과 가깝게 내가 그동안 성전과 교회를 너무 소홀히 하지 않았나.. 다시 한번 우리가 올바른 성경적인 교회관을 가지고 한주간동안 성막중심의 삶의 응답을 받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성막 중심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다시 한번 저희들의 영적 신분과 권세를 회복하는 한주간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말씀을 받았지만 우리가 또 한주간 생활하다 보면은 말씀을 놓치고 또 영적 부분에 많은 것들이 놓치는 상황들이 되어지는데, 하나님께서 모든 것들을 막아 주셔서 하나님 말씀을 붙잡고 오직 내 영혼이, 영적 상태가 하나님을 향해서 말씀 중심, 교회 중심, 성막 중심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나님이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성도님들에게 믿음을 주시고 모든 불신앙과 하나님이 영적무기력을 결박하사 견고한 진이 무너질 수 있도록 하나님이 응답하여 주시옵소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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