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당신에게
여보! 나 당신이 사랑하는 진이 엄마에요. 참 오랜만에 당신께 편지를 쓰네요. 결혼하고 당신이 한번도 내 곁을 떠난 적 없고 늘 가까이에 있어 편지 쓸 일도 없어 사랑한다 말도 못하며 그저 무덤덤하게 지내 온 날이 벌써 25년이 되었네요.
그동안 먹고 살기 바빠 부지런히 앞만 보고 달려 온 것 같아요. 이제 욱진이, 광수도 대학생이 되고 보니 당신께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들어요. 당신이 그동안 열심히 살아줘서 아이들 저 만큼 키웠고, 우리집도 생겼고 늦었지만 땅도 얼마 샀으니 말이에요.
그동안 촌에 살아도 땅이 없다는 이유로 농협에 가도 찬밥 신세였잖아요. 당신이 다니던 정미소가 IMF때 부도가 나면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생전 해보지도 않은 자동차 도장기술을 배워 새 가게를 낸다고 할 때 기쁨반 걱정반이었어요. 잘 된다는 보장도 없고.
얼마 되지 않는 퇴직금으로는 돈이 모자라 1천만원 대출을 받으려고 농협에 갔더니 재산이 없어 보증서 줄 사람이 없고 대출을 못해 준다고 하더라구요. 그러면서 당장 적금을 하나 들고 전기세, 전화세, 자동차세 등 온갓 공과금을 자동이체 시키라는 거에요. ‘땅이 없으니까 농협에서도 푸대접을 받는구나’하고 생각했죠.
땅이 없으니까 동네에서도 ‘왕따’고, 땅 없는 사람은 담보가 없어 아무도 돈을 안 빌려 주더라고요.
농협에 가면 직원들이 조합원들에게는 친절하게 인사를 하고 차대접도 하는데, 우리같이 조합원이 아닌 사람은 오든지 말든지 별 관심이 없어 보이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우리가 땅을 사고 당신과 내가 조합원에 들면서 대우가 확 달라졌다는 걸 느꼈어요.
이제는 당신이 “자두밭에 치는 농약, 거름 사와라” 그러면 룰루랄라 신이 나서 사러가요.
나는 일도 잘 할줄 모르는데 당신이 가게 일을 하면서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열심히 자두 농사를 지었지요. 그런데 작년에는 하늘도 무심하시지. 새벽마다 가서 가꾼 자두가 수확시기에 우박이 와서 하나도 못쓰게 만들어 놓고 말았지요. 그 바람에 친척들과 나누어 먹긴 했지만…. 올해는 당신이 노력한 대가가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작년에 자두농사는 망쳤지만 콩 참깨 들깨 옥수수 땅콩 검은콩 무 배추를 심어서 수확했을 때 왜 그렇게 신기한지 몰랐어요. 당신이 지은 콩으로 만든 된장이라서 그런지 된장맛이 더 좋은 것 같았고, 당신이 지은 참깨라서 그런지 더 고소한 것 같아요. 당신 덕에 우리식구 건강도 더 좋아진 것 같구요.
첫술에 배 부르겠어요? 살면서 배우다보면 우리도 행복한 웃음 지으며 노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에 기분이 좋아져요. 우리 어렵게 정착한 시골 떠나지 말고 살아요. 훗날 우리 아들이 도시에 나가 살더라도 힘들고 지치면 쉬어갈수 있게 지금부터 터전을 만들자구요. 그럴려면 당신이 건강해야 해요.
지금도 우리가족을 위해 열심히 운동하고 있지만 앞으로 술과 담배도 줄이세요. 그리고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조금만 더 내 주시고 가족들의 기를 받아 어디가도 주눅 들지 말고 하는 일 잘 되었으면 좋겠어요.
여보, 언제까지나 당신을 사랑해요. 내가 당신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줄게요.
글: 함종순 경북 김천시 개령면 동부2리
출처 : 농촌여성신문(https://www.rwn.co.kr)
첫댓글 열심히 사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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