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어머니 집에 갈 때마다 늘 마주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입니다. 전국 깻잎의 40%를 생산하는 금산 추부면에 이들이 대거 거주하며 깻잎 농사를 합니다. 이젠 농촌에도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어머니의 집 주변 빌라에는 베트남어와 따갈로그어, 키르기스어, 몽골어 들이 섞여 삽니다. 마치 어머니가 낯선 땅에 살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듭니다. 어머니는 이들에게 과일과 채소를 나누어주며 친절하게 대해준 대가로 ‘옴마’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를 줄여서 ‘외노자’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외노자’란 말에 부정적인 뉘앙스가 담겨있습니다. 외노자는 가난한 나라에서 온 하급 노동자라는 멸칭이 되었습니다. 미국에서는 남미 출신의 이민자들을 지칭하여 히스패닉(Hispanic)이라 합니다. 얼마 전에는 트럼프가 해리스와 대선 토론을 하는 과정에서 이민자들이 개와 고양이를 잡아먹는다는 가짜뉴스를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민자들에 대한 혐오의 정서가 주류 백인 사회에 얼마나 깊이 뿌리내렸는가를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성서에도 차별받는 외국인에 대한 얘기들이 나옵니다. 유대인들은 자기 혈통과 종교적 관습을 엄격하게 따져 물어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들을 이방인으로 부르며 개 취급을 했습니다. 이방인에 대한 배타적 태도가 유대인만큼 강한 민족도 드물 것입니다. 그런데 성서는 이방인에 대한 배타성과 함께 그들이 어떻게 유대의 역사 깊숙한 곳에 들어왔는지를 말해 주기도 합니다.
다윗이 그 아내를 빼앗고 전방으로 내몰아 죽게 만든 우리아는 히타이트 사람이었습니다. 히브리인 첩자에게 협력한 기생 라합(Rahab)도 여리고 사람이었습니다. 룻기의 주인공 룻(Ruth)도 모압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이방 사람들은 유대인들이 그토록 자랑스러워하고 숭앙하는 조상 다윗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다윗에게 아내를 빼앗기고 죽임을 당한 우리아는 그의 아내 밧세바의 남편으로 끝까지 거명됨으로써 이스라엘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남습니다. 여리고의 창녀였던 라합은 유대 민족 가운데 들어와 결혼하여 다윗의 고조부 보아스를 낳습니다. 그리고 모압 여인 룻은 보아스와 재혼(형사취수에 의해)하여 가문의 대를 잇고 다윗의 고조모가 됩니다.
혈통과 종교가 다른 이방인들이 유대인의 역사에 깊숙이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유대의 종교와 문화를 자기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순수하게 유대교로 개종한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풍습과 문화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유대 종교 안에 가나안의 풍습과 문화가 쉬지 않고 흘러들어 왔습니다. 성서에서 유대인들에게 이방 문화를 가까이 하지 말라고 그토록 강조했던 것은 그들의 비도덕적이고 반인륜적인 문화였지 그들의 존재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이방인과 우상은 바로 그 점에서 배격의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한 나라의 문화적 관습과 종교적 신념은 고유하고 절대적일 수 없습니다. 문화도 변하고 종교도 변합니다. 지금 우리가 절대적이라고 믿고 있는 이 교리들도 과거 언젠가는,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이단이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미래의 어느 땐가는 부정되는 교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 마지막까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사랑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혐오와 배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을 구원의 대상으로 바라본, 예수의 ‘끌어안음의 은혜’입니다.
구약성서 룻기는 유대인의 보리 추수기인 오순절에 읽혔던 책입니다. 보아스와 룻의 정결한 결합과 풍성한 보리 추수가 결말로 제시됐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리고 창녀의 아들 보아스가 유대교 신앙 안에서 고귀하게 사는 배경에, 모압 여인 룻이 가난과 고통 중에도 신의와 정조를 버리지 않고 유대교 신앙과 전통 안에서 고결한 여인으로 사는 배경에, 풍성한 수확과 나눔이 있습니다. 룻기를 읽는 유대인들은 풍성한 추수에 대한 감사와 함께 자신의 땅에서 신실한 삶을 산 이방인 조상들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공유했습니다. 그들은 오순절에 룻기를 읽으며 우리 안에 들어온 이방인들이 이미 내가 되어 있음을 확인하고 선포했던 것입니다.
이번 추석에는 헷 사람 우리아나 모압 여인 룻과 같이 이 땅에서 땀방울을 쏟아내며 성실하고 진실하게 오늘을 사는 외국인 노동자들과 나누려 합니다. 그들에게 ‘옴마’가 되어주신 우리 엄마처럼, 나도 그들의 ‘횽(형)’이 되고 싶습니다. 이름만 남은 추석(추수감사절)에 나눔으로써 풍성한 명절을 보내겠습니다.
추석에 룻기를 읽으면 행복합니다. 그리고, 나누면 룻기가 내 이야기가 될 터입니다.
첫댓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혐오와 배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을 구원의 대상으로 바라본, 예수의 '끌어안음의 은혜'임을 기억합니다♡
인간과 세계에 대한 사랑과 예수님의 끌어안음의 은혜가 모두에게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