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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 청지기(5)
눅 12;13-21
사람은 물질을 떠나서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물질을 사용하지만 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빌려 쓰고 있는 것입니다. 물질을 빌려 사용하다가 하나님 앞에 갈 때에는 모두 반납하고 빈손으로 가야 합니다.
인생은 나그네길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세계 제일 부자는 록펠러였습니다. 그가 53살에 죽을병에 걸렸습니다. 죽으면 이 모든 자기 재산이 다 자기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언서를 생각하였습니다.
자기가 죽으면 재산을 고아원, 양로원, 양육원등 나누어 주라고 유언서를 쓰려고 하였습니다. 그 때 이런 생각이 났습니다.
<죽어서 줄 필요 없이 살아서 주면 더 좋겠다.>
그래서 그는 죽기 전에 다 나누어 준다고 생각하고 다 나누어 주었습니다. 모두가 고마워하고 기뻐하였습니다. 얼마나 뛸 듯이 기뻐하는 지 그런 모습을 보면서 록펠러는 너무나 기뻤습니다. 엔돌핀이 많이 나왔습니다. 기쁨은 병 고침의 능력이 되었습니다. 고침 받았습니다. 그 후 록펠러는 나누어 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평생 7000대 전자 올갠을 교회에 기증하였습니다. 수많은 박물관을 지었습니다. 교회도 지었습니다.
그는 역사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물질 청지기입니다.
예수님께서 한번은 이런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어느 해에 농사가 잘 되었습니다. 소출이 많고 곡식이 풍부하였습니다. 미처 쌓아 둘 곳이 없습니다. 그는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이 중얼거림을 듣고 계시던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좀 기분 나쁜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만일 오늘 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영혼을 거두어 가신다면 지금 무엇을 하여야 할까요? 어차피 한번 죽어야 할 인생이라면 죽는 날을 한번 생각하여 볼 만하지 않습니까?
보지 못 하였고 듣지 못 하였고 말하지 못 하였던 헬렌 켈러 여사는 <3일 동안만 볼 수 있다면>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내가 3일만 볼 수 있다면
첫째 날에는 삶에 보람을 느끼도록 해준 친절하고도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다. 나는 오랫동안 그들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그들의 아름다움이 오래 내 마음속에 잊혀 지지 않도록 마음속 깊이 사겨두고 싶다.
오후에는 서늘한 숲속을 거닐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눈에 듬뿍 채우고 싶다. 그리고 황홀한 저녁노을 앞에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싶다. 나는 아마도 그날 밤 너무도 감격하여 한 잠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둘째 날에는 동이 트자 말자 일어나서 밤이 낮으로 바뀌는 기적의 모습을 보고 싶다. 잠든 대지를 깨우는 햇빛의 장엄한 광경을 경건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이 날은 이 세상의 과거와 현재를 두루 살펴보는 데에 시간을 바치련다. 박물관과 미술관을 둘러보면서 예술을 통하여 인간의 깊숙한 곳을 드려다 보련다. 밤에는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고 욕심스럽게 연극관에 가서 연극도 보고 싶다.
셋째 날에는 열심히 일하며 살아가는 삶의 현장을 두러 보려고 한다. 미소 띤 얼굴을 바라보면서 행복에 겨워 질 것이다. 그러나 일의 고통을 보며 연민의 정도 느끼고 싶다. 그러나 진지한 결단의 표정 앞에서 나는 인간의 긍지를 느끼게 될 것이다. 마지막 날 저녁에 나는 영화나 연극을 보면서 인간의 정신이 한 낱 우스개짓으로 물들어 버릴까 겁도 날 것이다.
나는 눈먼 사람이다. 눈먼 내가 눈이 멀지 않은 당신들에게 주고 싶은 말이 있다. 내일 갑자가 장님이 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살며 당신의 눈을 사랑하여라. 눈만이 아니다. 어쩌면 귀머거리가 될 지도 모른다. 벙어리가 될 지도 모른다. 당신에게 주어진 오늘을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나는 확신한다. 볼 수 있는 시력이야 말로 모든 감각 중에서 가장 값진 것이다>
미국에서는 50세가 되면 장의사에서 묘지를 예약하도록 통지가 날라 오는 예가 많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죽어 묻힐 묘지 생각을 하여 보았습니까?
50은 죽음을 생각하고 준비하여야 하는 나이입니다.
60은 날마다 죽음을 준비하여야 하는 나이입니다.
70은 장례식 순서를 미리 짜놓는 나이입니다.
80은 베옷을 하루에 한번 씩 입어 보며 죽음을 준비하여야 하는 나이라는 것입니다.
물질 청지기로 살아가는 하는 우리는 다음과 같은 물질관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1. 심판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진리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다 죽습니다. 진시왕이 안 늙고 안 죽어 보려고 불로초를 구해 오라고 하여 먹었지만 그도 죽었습니다. 죽음 후에는 반드시 누구에게나 심판이 있습니다.
스위스 로잔에서 네프(Felix Nef)라는 사람이 길을 가다가 앞에 자기 친구가 걸어가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는 친구의 어깨를 탁치면서 물었습니다.
<친구! 자네는 죽으면 자네 영혼이 어디로 간다고 생각하나? 영혼이 갈 곳 준비를 하였나?>
뒤를 돌아다보는 친구를 보니 친구가 아니라 친구 같은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헤어졌습니다.
몇 년이 흘렀습니다. 한 사람이 반가워하면서 손을 잡았습니다.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몇 년 전에 당신이 길거리에서 내 어깨를 치면서 영혼이 갈 곳을 준비하였느냐고 물었지요? 그 때 이후 내 머리 속에는 영혼! 영혼! 이 말이 맴돌았습니다. 곰곰이 미래를 생각하다가 나는 영혼을 찾아 나섰습니다. 나는 드디어 교회에서 예수를 발견하였습니다. 당신 덕분입니다>
그렇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죽음을 준비하고 현명한 사람은 심판을 대비합니다. 만일 오늘 내가 죽는다면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도록 심판준비를 하여야 합니다.
후리시쵸프가 소련 서기장이 되었습니다. 그는 이 세상에는 하나님이 안 계신 데 하나님을 믿는 교인들은 사기꾼이라고 말하면서 앞으로 3년 안에 다 죽여 버리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한 명은 시범으로 남겨서 TV에서 전 국민이 보는 앞에서 죽이면 기독교인은 말살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하고 3년 만에 자기가 먼저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분명한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만일 오늘 밤 내가 죽는다면 심판받을 준비를 하면서 철저히 회개하여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물질을 어떻게 사용하였는지 심판하실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2.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에 등장한 부자는 착각을 하고 살고 있습니다. 부자의 독백을 들어 보십시다.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제1착각 물질이 자기 것인 줄 착각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모두 내가가 주인공입니다. 이 말씀에서만 <내가>라는 말이 세 번 나오고 있습니다. 물질이 자기 것인 줄 착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도로 찾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제2착각 생명이 자기 것인 줄 착각하고 있습니다.
오래 살 것인 줄 알았습니다. 물질을 쌓아 놓고 자기 생명은 그 물질을 누릴 줄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신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제3착각 영혼이 자기 것인 줄 착각하고 있습니다.
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내 영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 영혼이라도 내 것이 아닙니다. 다 하나님의 것을 빌려 쓰고 있는 것인 줄 부자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제4착각 물질이 행복의 조건인 줄 착각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물질만 쌓아 두면 평안히 먹고 마시며 즐거워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오늘 밤 부르시면 끝장입니다. 부자는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모두가 청지기입니다.
내 것은 모두 하나님의 것입니다.
3. 멋지게 사용하여야 합니다.
멋지게 물질을 사용할 줄 아는 지혜를 받아야 합니다. 모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다윗이 그런 사람입니다.
다윗은 자기 주변의 신하들과 더불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려고 물질을 드렸습니다. 엄청난 물질을 드렸습니다.
<내가 이미 내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힘을 다하여 예비하였나니 곧 기구를 만들 금과 은과 놋과 철과 나무며 또 마노와 박을 보석과 꾸밀 보석과 채석과 다른 보석들과 화반석이 매우 많으며 성전을 위하여 예비한 이 모든 것 외에도 내 마음에 내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므로 나의 사유의 금, 은으로 내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드렸노니
곧 오빌의 금 삼천 달란트와
천은 칠천 달란트라.
모든 전 벽에 입히며 금, 은그릇을 만들며 공장의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쓰게 하였노니 오늘날 누가 즐거이 손에 채워 여호와께 드리겠느냐
이에 모든 족장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 어른과 천부장과 백부장과 왕의 사무 감독이 다 즐거이 드리되 하나님의 전 역사를 위하여
금 오천 달란트와
금 다릭 일만과
은 일만 달란트와
놋 일만 팔천 달란트와
철 십만 달란트를 드리고
무릇 보석이 있는 자는 게르손 사람 여히엘의 손에 부쳐 여호와의 전 곳간에 드렸더라
백성이 자기의 즐거이 드림으로 기뻐하였으니 곧 저희가 성심으로 여호와께 즐거이 드림이며 다윗 왕도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니라>(대상 29;2-9)
엄청난 물질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다윗은 물질만 드린 것이 아니라 이런 놀라운 고백도 같이 드렸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하셨습니다. 그랬기에 말할 것도 없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면서 이런 고백을 하여야 합니다.
<천지의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보면서 이런 고백을 하여야 합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뉴기니(Dutch New Guinea)의 깊은 밀림 지역에서 선교하던 선교사 부부 이야기입니다. 선교사는 의사였습니다. 의료 선교를 하면서 파인애플 묘목을 심었습니다. 3년을 기다려 파인애플을 따러 밭에 나갔습니다. 익은 파인애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원주민들이 채 익기도 전에 따 갔던 것입니다. 선교사는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만일 당신들이 계속해서 파인애플을 훔쳐간다면 나는 병원 문을 열지 않을 것이요>
그러나 원주민들은 계속 해서 파인애플을 훔쳐갔습니다. 선교사는 그들의 나쁜 버릇을 고치기 위하여 원주민들을 위해 운영하던 병원 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병원 문을 열어달라는 애원하였습니다. 마지못해 문을 다시 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파인애플을 또 훔쳐갔습니다. 파인애플을 훔쳐간 사람 중에 한 명은 자기 밭에 파인애플을 심어준 청년이란 사실을 알았습니다. 호되게 야단을 쳤습니다. 그러자 그는 파인애플이 자기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곳에서는 밀림에 나무를 심은 사람이 그 임자이기 때문에 심은 자기가 소유자라는 주장이었습니다. 생각다 못 하여 선교사가 제안하였습니다.
<밭의 절반을 주겠다. 절반 밭에서 나온 것은 네 것이고 나머지 반은 내 것이다. 내 것만 훔치지 말아라>
그러나 파인애플은 여전히 도둑맞고 있었습니다. 선교사는 청년에게 파인애플 나무를 모두 줄 테니 너의 밭에 옮기고 더 이상 훔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옮기는 인건비를 달라고 하였습니다. 화가 났지만 그렇게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는 말했습니다.
<내 밭에는 다른 식물이 심겨져 있어서 옮겨 심을 수가 없습니다. 다른 밭을 사게 밭 값을 주십시요>
화가 치밀어 오른 선교사는 파인애플 나무들을 뿌리째 뽑아 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새 파인애플을 자기가 직접 심었습니다.
<이제는 내 밭에 내가 심었으니 내 것이다. 건드리지 말아라>
이렇게 원주민들에게 선언하였습니다. 3년이 지나자 파인애플은 다시 열매를 맺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원주민들은 여전히 파인애플을 훔쳐갔습니다. 화가 난 선교사는 이번에는 상점 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생필품을 구입할 수 없게 된 그들은 원래 살던 밀림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파인애플 도적은 없어졌지만 일감도 없어졌습니다. 하는 수 없이 상점을 열자 그들은 다시 돌아 왔습니다. 그러나 파인애플을 훔쳐가는 것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선교사는 궁리하다 독일 산 세퍼트를 한 마리 샀습니다. 사나운 개였습니다. 세퍼트 때문에 아무도 밭 근처에 얼씬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가게 문을 닫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밀림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그는 세퍼드를 처분하자 그들은 돌아와 파인애플을 훔쳐갔습니다.
어느 날 선교사는 깨달은 바가 있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자기 아이디어대로 살았던 것을 회개하였습니다. 선교사는 파인애플 밭 가운데 서서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주님! 이 파인애플 때문에 싸움도 많이 했고 화도 많이 냈습니다. 이 파인애플은 내 것이
라며 정당한 권리라고 주장하기도 하였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저의 잘못임을 깨닫습니다. 이 파인애플 밭은 주님 것입니다. 주님께 드립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원주민들은 끊임없이 파인애플을 훔쳐 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원주민들이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이제 알았습니다. 당신은 파인애플 때문에 화를 내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후부터는 더 이상 파인애플을 훔쳐 가는 일이 없었습니다. 선교사 부부는 잘 익은 파인애플을 원주민들과 함께 나누어 먹으면서 즐거워하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선교사를 찾아와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물질을 드리고 몸을 드리고 시간을 드리고 모든 것을 드리면서 이런 고백도 드려야 합니다.
<천지의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다윗은 하나님께 엄청난 물질을 드리면서 연이어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대상 29;12)
우리는 헌금을 드리면서 이렇게 고백하여야 합니다.
<부하게 되고 귀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크게 하고 강하게 하심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다윗이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다윗은 자기 경험담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부하게 하고 귀하게 하고 크게 하고 강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 내가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체험하였습니다.
다윗을 크게 하고 강하게 하신 분은 전적으로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시 최고 선지자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새의 집에 가서 아들 중에 한 명을 택하여 왕으로 삼으라>
사무엘은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이새의 집으로 갔습니다. 아들들 8명이 모두 들판에 나가서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사무엘이 이새의 집에 가서 아들 중에 왕이 있으니 데리고 오라고 말했습니다. 이새는 아들들을 불렀습니다. 8명의 아들들은 들에서 이런 소식을 들었습니다. 다윗은 8형제 중에 막내였습니다. 7명 형들은 다윗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중에 왕이 있다면 너는 아니다. 막내다. 네가 양을 돌보고 있어라. 우리끼리 갔다 올 것이다>
형들이 이 말을 듣고 다윗도 인정하였습니다. 그래서 혼자 양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왕이 되는 것을 처음부터 포기하였습니다. 7명은 집으로 달려가서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 사무엘 앞에 섰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7명에게 기름 붓는 것을 거절하셨습니다. 사무엘은 더 아들이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새는 지금 들에서 혼자 양을 치고 있는 다윗을 다시 불렀습니다. 다윗이 사무엘 앞에 나타나는 순간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저가 그다>
그래서 기름을 부어서 다윗을 왕으로 삼았습니다. 누구도 생각지 못 하였던 일입니다. 다윗조차도 생각하지 못 하였던 일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런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부하게 되고 귀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크게 하고 강하게 하심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모세도 그렇습니다.
단 한 번도 모세는 자기가 이스라엘 백성의 최고 지도자가 되겠다고 꿈을 꾼 적이 없었습니다. 양이나 치다가 죽을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양을 몰고 이리저리 다니던 어느 날 하나님이 가시떨기에 불을 붙여 주시면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애급으로 들어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4번이나 거절하였습니다. 못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억지로 그를 붙잡으셔서 크고 강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모세도 같은 고백을 할 것입니다.
<크게 하고 강하게 하심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베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도 단 한 번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리라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꿈을 꾼 적이 없습니다. 어느 날 밤 밤새도록 그물을 내려서 고기를 잡으려고 하였지만 단 한 마리도 잡지 못 하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오셔서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처음 만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가 많이 잡혔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르라. 내가 너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베드로는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위대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후에 베드로도 고백하였을 것입니다.
<부하게 되고 귀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크게 하고 강하게 하심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바울도 그렇습니다.
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하는 것이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핍박하였습니다. 스데반을 죽이는 데도 동참하였습니다. 다메섹으로 도망친 예수쟁이들을 잡으려고 다메섹으로 가던 도중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단 한 번도 예수님을 전하는 사도가 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습니다. 소아시아를 복음화 시키는 데 앞장서겠다고 꿈을 그린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위대한 사도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바울도 고백할 것입니다.
<크게 하고 강하게 하심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면서 고백하여야 합니다.
<천지의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부하게 되고 귀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크게 하고 강하게 하심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교회 전에 대령들이 몇 분 계셨습니다. 모두 장군으로 진급되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꼭 될 줄 알았던 차 대령님이 장군으로 진급되지 않자 부부가 원인을 분석하였습니다. 결론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너무 믿고 윗사람과 관계를 소홀히 하였다>
그래서 단추 하나 만드는 데 금 두 돈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래서 100개 단추를 만들었습니다. 5개씩 10묶음을 만들었습니다. 10 명에게 나누어 주며 인간관계를 다시 다지고 싶었습니다. 아내 신 집사님이 차 대령님이 적어 주는 10명 집 방문 길에 나섰습니다. 첫 집에 들어가서 커피를 마시려고 기도하는 데 하나님께서 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너, 이 사람들이 네 남편을 장군으로 진급시켜 줄 줄 아느냐? 내가 시키는 것이다. 그 금 100돈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지 말고 너희 목사님에게 드려 선교에 사용하게 하거라>
이런 음성을 듣고 그는 다음 집으로 가지 않고 내게로 금을 가지고 왔습니다. 나는 좀 부담스러운 헌금이었지만 받아 선교부터 넘겼습니다.
한편 차 대령은 단 한 명도 잘 받았다는 인사가 없자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여보! 왜 10명이 한결같이 잘 받았다는 말이 없지?>
아내 신 집사는 속으로 놀랐습니다. 그래서 말했습니다.
<차차 하겠지요?>
그리고 나에게 그 이야기를 하여 주었습니다. 우리 둘은 줄기차게 기도하였습니다. 이듬해 장군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단장으로 나간 적이 있습니다. 강하게 하고 높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은 물질을 드리며 이런 고백도 하고 있습니다.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 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대상 29;14)
내 것을 하나님께 드린다고 생각하며 드리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을 도로 하나님께 드린다고 생각하며 드리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모든 것은 알고 보면 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청지기 고백의 가장 확실한 고백은 십일조입니다.
십일조는 다음과 같은 십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십일조는 율법이 아니고 은혜의 행위입니다. 십일조는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기 2,500년 전 아브라함부터 드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롯을 적으로부터 구원하고 돌아오는 길에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멜기세덱 제사장에게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역사상 첫 십일조입니다(창14;20)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하나님의 세계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대지도 하나님의 대지입니다. 해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공기도 물론이다. 비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내 것이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것뿐입니다. 이런 은혜에 감사로 드리는 것이 십일조입니다. 십일조는 결코 율법이 아니라 은혜의 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일조를 드리되 온전하게 드리라고 명하셨습니다. 대강 바치는 것은 십일조가 아닙니다.
탈무드를 보면 바리새인들은 조농사를 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계산하기가 힘들어서입니다. 조 한 가마를 세는 데 한 달 걸립니다. 4가마 농사를 짓고 나면 일 년이 걸립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기 위하여 세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일조 정신입니다.
박 재봉 목사님이 십일조 드린 4,000명을 조사하였습니다. 3,990명이 복을 받았습니다. 10명은 온전한 십일조가 아니었습니다.
십일조는 하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온전한 십일조는 쌓을 곳에 없도록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십일조는 하늘 문을 열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이에게 돈을 꾸어주었는데 떼어 먹고 안 준다면 다음에는 결코 안 꾸어 줄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일조를 떼어 먹는 사람에게는 복을 주시지 않습니다.
안 이숙 여사가 말씀하시는 이야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어느 날 여자 집사님이 하얗게 질려서 뛰어 왔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백화점에 갔다가 엄청나게 돈이 많이 들어 있는 지갑을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안 여사가 물었습니다.
<그 동안 십일조 생활을 하셨나요?>
<네>
<그러면 걱정하지 마세요. 하나님께 물질을 정확하게 드렸는데 하나님께서 물질적으로 손해 보게 하시겠어요? 나와 같이 백화점을 둘러보십시다.>
그리고 백화점에 물건 산 가게마다 둘렀습니다. 한 곳에 갔더니 주인이 너무나 반가워하면서 말했습니다.
<잘 오셨어요. 그렇지 않아도 기다리고 있었어요. 이렇게 많은 돈이 든 지갑을 두고 가셔서 얼마나 걱정하실까 생각하고 있는 중이었어요. 연락할 만한 아무 연락처가 없어서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단 100원의 손실도 없이 고스란히 찾았습니다.
십일조는 축복의 비결입니다.
십일조는 물질 청지기의 확실한 고백입니다.</SCRI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