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범죄자가 아닙니다.(딴지일보 기사)

[s20106077서정숙]

[현장출동] 우리는 범죄자가 아닙니다.

2010. 09. 30. 목요일

죽지 않는 돌고래

0.

지난 15일, 딴지일보 편집국 앞으로 한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죽지 않는 돌고래님 안녕하세요.

저는 딴지의 아주 골동 독자입니다. 똥색 딴지 시절부터 시방까지 나름 열심히 애독하고 있는 부산에 사는 장애인입니다. 급하기에 바로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일군의 장애인들이 서울 국민연금공단을 점거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단식까지 하고 있습니다. 이틀 지났습니다. 언제 섭식을 할 지 기약할 수 없습니다. 나머지 장애인들은 연금공단 앞에서 노숙을 하고 있습니다. 450만 장애인들의 생존이 걸린 중차대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 연대)의 주도로 9월 초부터 집회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보도 통제를 하고 있는지 방송이나 신문에는 일절 보도가 안 되고 있습니다. 신정환이 도배를 하고 있습니다. 근데 딴지 역시 기사가 안 되고 있습니다. 딴지는 다릅니다. 사이비 언론들과는 명백히 다릅니다. 한반도 유일의 정론지. 마빡 한 귀퉁이에라도 실어주십시요.

(...후략)

제보 메일을 받았다. 서울의 대형 빌딩 한층을 장애인이 점거하고 있다. 이유를 아는 사람이 없다. 언론에 보도되지 않는다. 억울한 사람이 있다. 무엇보다 재작년 이후로 경찰한테 맞은 적이 없어서 혈액 순환이 잘 되지 않던 차였다.

그래서 딴지가 간다.

1.

 
나루역 4번 출구로 나와 몇 걸음 걸으면 광나루 지구대가 보인다. 바로 옆, 지구대를 잡아 삼킬 듯한 마천루가 행인을 압도한다. 서울시 광진구 광장동 대한제지빌딩. 장애인들이 점거하고 있는 곳은 빌딩의 6층, 국민연금공단 장애심사센터다.

빌딩 앞 공터의 주인공은 세 부류다. 농성을 위해 노숙을 하며 서명을 받고 있는 장애인, 그들을 위해 서명을 하는 행인 그리고 방패를 든 전경이다.   

방패를 든 전경은 기둥 뒤에 줄지어 서있고 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장차연)회원들은 가끔씩 몸을 뒤틀며 플랜카드를 움켜 쥐고 있다.

 

<주위에 걸려 있는 현수막>

<숟가락을 입으로 가져가는 간결한 동작을 위해 

전력을 쏟아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농성하는 이들은 화장실에 가려는 태생적 간절함조차 제때 녹이지 못해 가슴 태우는 사람들이다. 누군가는 평생 신경도 쓰지 않는 일들이 그들의 현실을 지배하고 있다. 왜 이렇게까지 스스로를 혹독하게 다루며 길거리에 나와있는가. 공공기관을 점거하는, 세상의 따가운 눈초리가 예상되는 방법까지 동원하며 주장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건의 핵심은 정부의 '장애등급재심사'다. 겉으로 드러난 제도의 뜻은 매우 훌륭하다. '가짜 장애인'을 적발해내 좀 더 어려운 사람에게 혜택을 주자는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현실은 겉으로 드러난 것과 꽤 다르다.

장애인들은 '장애등급재심사'를 받으면 좀 더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정부의 말을 믿었다. 그리고 재심사를 받았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병원으로 갔고 없는 돈을 모아 각종 검사를 받았다. 단돈 몇만원의 보조금을 위해, 단 몇 시간의 활동보조라도 더 얻기 위해 어렵사리 그 결과를 제출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장애등급의 하향이었다. 이 땅에서 장애등급이 내려간다는 의미는 장애 그 자체보다 더 큰 시련을 의미한다.  

왜?

 

'활동보조서비스'라는 것이 있다. 만 6세 이상~만 65세 미만의 장애인이 목욕, 대소변, 청소등의 각종 활동에 대해 정부에서 지원하는 서비스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보건복지부에서 장애등급 재심사를 의무화하며 이 서비스를 1급으로 제한한 것이다. 1급 장애인이었던 이가 장애등급재심사를 받고 등급이 하향되면 당장 화장실 조차 제대로 갈 수 없는 처지가 된다.

실제 하반신 중 오른쪽 세번째 발가락만을 겨우 움직일 수 있는데 2급 판정을 받은 사람이 있다. 전신마비로 기저귀를 차고 누워 생활하는데 2급으로 하향 조정된 사람도 있다. 이들 대부분은 부자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압도적이다. 국가에서 서비스가 끊기는 즉시 누군가를 고용할 수 없다면 지금까지 상상 속으로만 존재했던, 또는 몇번은 겪어야 했을 어떤 비참함을 지속적으로 느낄 수 밖에 없다. 방 한구석에서 축축해진 바지를 잡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따위의 일 말이다.  

혹독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엄격해진 장애 기준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적어도 그들을 위한 것은 아니며 나 또한 동의하지 않는다.   

<활동보조서비스가 없다면 이런 사진은 찍을 수 없다.>

그들의 말을 들어보고 싶다. 집행위원장인 제청란씨가 점거된 층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지하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방패를 든 경찰 4명이 서 있다. 그들을 지나 지하로 내려가자 든든한 체격을 가진 검은 양복의 남자가 소지품을 검사한다. 딴지일보 기자임을 밝히고 가방을 열어 보여준 후,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4개의 엘리베이터 중, 사전에 알려준대로 점검중이라는 3호기를 탔다.

6층에 도착했다. 경찰의 급습에 대비해 휠체어를 탄 남자가 바위처럼 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신분을 밝히자 길을 터주었다.

6층 장애심사센터의 풍경이다. 평소라면 퇴근 이후에나 볼 수 있을 듯한 적막함이 구석 구석을 지배하고 있다. 점거된 건물의 농성 현장이라고 하기에 이 적막감은 너무 어색하다. 그들이 느꼈을 무력감과 사회적 약자로서의 위치를 이 텅빈 느낌이 대변하는 듯하다.  

6층에 있어야 할 공무원들은 모두 위층으로 올라가 업무를 보고 있는 상태다.   

 

카메라를 들고 이리 저리 돌아 다니고 있는데 누군가가 나를 불렀고 어느샌가 내 손은 현수막 끈을 잡고 있었다. 힘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일 중에는 괜찮은 종류의 작업이었다고 생각한다. 법정에서 이들의 행위를 범죄라고 판결한다면 공범이 되는 셈이지만 살면서 이 정도의 경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가족에게도 별로 부끄러운 일이 되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다만 나는 성큼 성큼 걸어가 줄을 잡고 풀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다. 그들 중 누군가는 현수막 하나를 걸고 푸는 데 당신이 하프 마라톤을 할 때 흘리는 정도의 땀을 쏟아내야 한다. 

현장을 살피던 중 대구 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명애 상임대표를 만났다.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곳을 점거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가 장애등급재심사를 판정하는 곳이라고 해서 왔다. 우리는 그  판정을 그대로 받아 들일 수 없다. 어떻게 장애를 의학적인 잣대와 서류로만 판단할 수 있는가.

이 심사를 받기 전에는 혼자서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1급 판정을 받았던 사람들이기에 활동보조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재심사를 받고 급수가 밀려나면 정말 막막하다. 그에 대한 대책이 아무것도 없다. 단지 급수를 떨어뜨리는 데만 초점을 맞춘 이번 사태는 정말로 막아야 한다.

언제 이렇게 바뀐 건가?

원래 장애등급은 20년 전부터 있었다. 그때 우리가 등급 판정 받았고. 그런데 올해 들어와서 갑작스럽게 재심사를 한다고 하고 1급만 활동보조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등급이 떨어지면 보조를 받을 수 없다고 통보하고. 그렇게 되면 우리같은 사람은 어떻게 사나. 장애인 콜택시도 이용을 할 수 없게 되는데 이런 다리로 어떻게 일반 택시를 탈 수 있겠나.

그리고 불합리가 돌아갈 수 있다는 고지가 전혀 없었다. 반대로 연금을 받을 수 있으니 재심사를 받으라고 했다. 장애인들은 정말 돈 생길 일이 없는데 얼마나 간절했겠는가. 특히 자부담하는 분들은 단돈 몇만원이라도 보태기 위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갔는데...  돌아온 결과는 장애등급 하향이었다.

어떻게 책상에 앉아 펜대 하나로 사람을 이렇게 죽일 수 있는가. 그래서 우리가 이곳에서 단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리를 하면 정부에서 연금을 준다고 장애인들을 유혹해서 재심사를 받으라고 해놓고 오히려 장애등급을 떨어뜨려 혜택을 줄인 거다. 맞는가?

그렇다. 복지예산을 조금만 책정해 놓고 할일은 많으니, 이런 식으로 은근슬쩍 끊어내서 예산에 맞추려 하는 거, 정말 괘씸하다.

그리고 보건복지부나 이쪽 사람들을 만나면 하는 소리가 "빨리 나가셔야 정말 시급하게 등급을 받아야 하는 분들의 등급을 메기지 않겠느냐"이러니... 정말 이런 화를 돋구는, 화난데 기름을 붓는 소리를 하고 있으니 답답하다.

나도 화난다. 그런 발언은 굉장히 치사하다고 생각한다.

정말 우리 장애인들은 아무 생각도 없고 자기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한 거 같은데 너무... 너무... 화가난다. 이런 제도를 시행하면 분명히 불이익을 받고 전혀 생활이 안되는 사람이 있을 게 뻔히 보이는데 어떻게 사회적인 안전망 하나 갖추지 않고 우리를 낭떠러지로 밀어 버릴 수 있나. 그렇게 되면 우리는 죽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죽기를 각오하고 이곳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면 만약 활동보조서비스를 계속 받을 수 있다고 해도 상식적으로 시간이 너무 부족한 듯하다. 만약 월 120시간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해도 하루에 4시간 뿐 아닌가.   

그렇다. 아침에 집에서 밥 먹고 씻고 이러면 벌써 몇시간 지나가고 지하철 타고 이러면 또 2시간 금방 지나간다. 야간에 학교라도 다니는 아이들은 그 서비스를 쪼개고 또 쪼개서 아껴써야 한다. 이것도 개선되어야 할 점 중 하나다.

이때, 엘리베이터 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 인터뷰가 중단됐다.

정보과 형사로 추정되는 남자 두명이 협상을 위해 올라왔다. 그들이 내려간 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박홍구 공동대표와 짤막한 인터뷰를 가졌다.

전장연이 보건복지부에 바라는 점은 무엇인가?

일단 장애등급재심사 중단하고 대책을 세우는 것. 활동보조서비스를 위한 예산을 충분하게 늘려달라는 것, 그 정도다. 세세하게 들어가면 등급하락으로 피해를 받은 사람들에 대한 구제책, 장애등급 재심사에 들었던 비용의 지원이다.

보건복지부와 이야기는 어떻게 진행됐나? 

어제 차관 면담을 했다. 내년 10월 부터 활동보조서비스에 대해 5만명을 대상으로 하겠다고 했다. 자부담은 15%로 올리겠다고 하는데 여기에 대해선 계속 싸워나가야 할 듯하다.  

재심사를 당분간 유예하는 방향으로 하겠다는 소식이 있는데 이건 공식적으로 확인된 사안은 아니다.

방금 들어보니 MBC기자도 취재를 위해 오고 있는 중이라고 하는데 다행이다. 상황을 보니 조금 긴박하다. 지금 연행명령이 떨어진건가.

그렇다. 전체 연행 지침이 떨어졌다고 한다. 내려가면 모두 잡아갈 듯하다.

본래는 3시간 정도 취재 후, 명동 사옥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연행 지침이 떨어졌다는 말에 발길을 돌릴 수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 카메라 한대가 사라질 때마다 현장은 어떤 형태로든 조금씩 더 잔인해지기 때문이다.

단지 현장을 기록하는 역할을 맡은 미약한 내가 연행을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극한 상황에서 최소한의 방패막이 될 수 있을 가능성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후 너부리 편집장에게 상황을 보고했고 사옥에 돌아가지 않고 현장퇴근을 하기로 했다.  

경찰의 연행에 대응하기 위한 회의가 열렸다. 약속된 시간에 전국집회를 하고 자신들의 뜻을 전하기 위해선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하지만 아래로 내려가면 즉시 연행된다. 이들이 모두 연행되면 장애인의 권리를 위해 싸워 줄 핵심이 순식간에 빠지게 되고 지금까지의 약속과 그나마 쌓아 놓았던 결과물이 거짓말처럼 날아가 버릴지 모른다.  

엷게나마 남아 있던 웃음들이 조금씩 자취를 감춘다. 긴장감이 돈다. 크게 심호흡을 한다. 내려갈 순서를 정한다.

그리고 서로의 건투를 빈다.

"내려가서 만납시다."

경찰과의 협의 탓인지 일단 모두 지하에 모이기로 했다. 한번에 엘리베이터에 탈 수 있는 전장연 회원은 두명. 순번을 정해 엘리베이터를 탄다. 첫번째 팀은 MBC기자와 함께, 두번째 팀은 나와 함께 내려간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시간이 엿가락처럼 늘어난 기분이 든다. 문이 열렸을 때 경찰들이 갑자기 달려와 이들의 손목에 수갑을 채울지도 모른다. 우리는 말이 없었고 나는 엘리베이터 벽을 향해 이 순간을 기록했다.

 문이 열리자 엘리베이터 주위를 둘러싼 여경과 형사가 보였다. 이 중 누군가가 전장연 회원의 휠체어를 만졌고 실랑이가 벌어졌다.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여경과 형사가 멀찌감치 떨어진다.

6층을 점거하고 있던 전장연 회원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한다. 이 때 사건이 터졌다. 몰래 숨어서 장애인들의 얼굴을  카메라에 담고 있던 형사가 발각된 것이다.  

장애인들은 흥분했고 지하 1층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채증형사는 재빨리 도망쳤고 장애인들은 그 형사를 잡기 위해 몸을 던지며 위험한 상황이 연출됐다. 결국 채증형사는 숨어 버렸고 장애인들은 자신들을 범죄자 취급하는 그들에 대해 분노를 터뜨렸다.

게다가 엘리베이터 전원이 갑자기 내려갔다. 장애인들은 계단을 통해서는 1층으로 올라갈 수 없다. 불이 꺼진 전원은 전장연 회원들을 지하에 고립시킨 후, 힘으로 연행하겠다는 의사로 받아들여졌다. 회원들은 격렬하게 항의했다.  

 

그들의 분노를 진정 시키기 위해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형사와 여경이 완전히 퇴장한다. 이후,  몇번의 대화로 분위기가 한결 나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들이 대화하는 사이, 저 너머로 조용히 나타난 경찰 두명이 눈에 띄었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 그쪽으로 걸어갔다.  

조용히 나타난 경찰 두명은 휠체어가 넘어갈 수 없도록 장애물을 놓으려 하고 있었다. 곧 이를 눈치 챈 전장연 회원들은 다시 분노했고 다리를 쓰지 못하는 여자 한명이 휠체어에서 몸을 떨어뜨려 기어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나갈 거예요. 우리는 범죄자가 아닙니다."

주위는 어느샌가 조용해졌고 계단을 모두 기어 올라 갈 때까지 어느 누구도 그녀에게 접근할 수 없었다.

그녀의 조용하고도 격렬한 움직임은 경찰들조차 나갈 공간을 열어 줄 수밖에 없게 했다. 경찰의 저지선 너머로 박수 소리가 들린다. 그런 그녀의 노력 때문인지 지하에 있던 회원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회원들과 함께 1층으로 올라왔지만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수십명의 전경들이 일렬로 서서 출입문을 봉쇄했다. 밖에서는 길을 열기 위해 전국에서 모여든 장차연 회원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서장은 농성자 중 7명의 인적사항을 받기 전까지는 문을 열어 주기 힘들다고 말했다. 전장연은 1명의 인적사항으로 타협을 보려 했다. 좀처럼 타협점이 나지 않는 가운데 충돌이 계속 된다.

집회를 위해 모인 장차연은 안쪽에 갇힌 농성자들을 데리고 나오려는 듯 계속해서 경찰 저지선을 뚫고 비집고 나온다. 고함을 치는 듯했지만 유리문이 굳게 닫힌 탓에 들리지 않는다.

안에서, 밖에서 그들은 굳게 닫힌 유리문에 손을 대고 힘을 써본다.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는다. 처절한 눈빛이 보인다.

 

 

어느샌가 경찰의 실수인듯 문이 열렸다.

 

 

나가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

더 이상 이를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한 서장은 경찰 저지선을 풀고 완전히 길을 열었다.

 

"안에서 단식하면서 힘들었지?"

"밖에서 추웠을 텐데 몸은 괜찮아?"

 "반갑다, 이렇게 다시 보니 참 반갑다."

약속했던 오후 2시는 한참 지났지만 집회에서 함께 모이기로 한 약속은 지킬 수 있었다. 대표와 사회자는 그동안의 활동상황을 보고하고 구호를 외쳤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

"생존권을 쟁취하자!"

"장애인 차별 철폐!"

다행히 연행 지침은 철회되었고 집회는 무사히 끝났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갈길이 멀다.

혹자는 장애인에 관한 예산을 맞추다 보면 천문학적이 된다고 조소를 던진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천문학적인 예산이 들면 지금부터라도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여야 한다. 

왜 그렇게 많은 돈이 드는가.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6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당연히 써야 할 곳에 세금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애인에게 쓰이는 세금은 장애인이 우리로부터 빼앗아 간 것이 아니다. 비장애인이 장애인이 누려야 할 권리를 빼앗아 써 왔던 것이다. 

가족 중의 누군가가 뇌경색으로 쓰러져 마비가 온다. 자신이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를 쓸 수 없게 된다. 나의 자식이 소아마비에 걸린다. 그때 가서 후회하면 늦다. 장애인, 비장애인이 함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사회가 나중에 어떤 기회비용을 치를지 나는 두렵다.

흙색 빛을 띄는 강 위에서 아들, 딸과 함께 유람선을 타며 시원한 바람을 맞을 수 있는 세상,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아이가, 적어도 나보다는 편견과 선입관 없이 장애인을 대하고 그들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세상이 좀 더 좋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 느낌이 오늘 카메라와 녹음기를 들고 도심 한 복판에서 그들과 함께 빌딩에 갇혀 있었던 이유 중 하나인 듯하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홈페이지 : http://www.sadd.or.kr/

(나의 의견) 

장애인이 장애를 느끼는 것은 그들의 신체적 불능 때문이 아니라 사회가 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을 어딘가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제가 저분들에게 정책적 행적적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저분들이 저렇게 힘들어 하지 않을 사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저분들 모두 무사히 빌딩을 나와 서로의 안부를 묻는 부분에서
저 역시 가슴을 쓸어 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장애가 자랑이냐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건
장애인의 몫이 아닌 우리 '상식을 갖고 있는' 비장애인이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게 저분들과 더불어 우리자신들에게도 살만한 세상이 될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