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6.11일 문재인 좌파 정권 때도 북한의 실상과 이 승만 대통령의 진면목을 알리려 고군분투해 온 김 덕영 영화 감독의 글입니다. 우리가 모르고 지나쳤던 現韓國의 달라진 위상을 실감하는 계기가 되니 必讀을 强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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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일이다. TV에 나온 한 여성 탈북자 이야기 한마디 때문에 눈시울이 붉어졌던 적이 있었다.
그녀에게 진행자가 물었다.
“대한민국 국민이 되었다는 것을 느꼈던 가장 가슴 벅찬 순간은 언제였나요?”
답을 하기 전에 오히려 그녀는 함께 자리를 하고 있는 출연자들에게 이렇게 질문을 던졌다.
"혹시 여러분들은 여권을 펼치면 앞 장에 뭐가 쓰여 있는지 아세요?"
갑작스런 질문에 모든 사람들이 당황했다.
'대한민국 아닌가요?', 'Republic of Korea?', '혹시 무궁화가 그려져 있지 않나요?'...
"무궁화가 있는 그곳에 영어와 한국어로 글씨가 새겨져 있어요..."
생소한 이야기였다. 지금까지 수많은 여행을 다녔지만, 대한민국 여권 앞장에 글씨가 적혀 있을 거란 생각은 해본 적도 없었다. 당연히 무슨 글씨가 있는지도 몰랐다. 차분하지만 조금 울먹이는 말투로 그녀가 말을 이어갔다.
"이 사람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최선을 다해서 보호를 해달라고 쓰여져 있어요. 전 그걸 몇 번을 읽었는지 몰아요. '이 사람은...' '이 사람은...' 그걸 읽을 때마다 너무 뭉클뭉클 한 거예요. 내가 어디를 가든 대한민국이 나를 지켜주는 거잖아요."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한참 동안 그녀의 말이 머리 속에서 맴돌았다. 탈북을 하고, 자유가 없는 곳에서 살다가 한 사람의 당당한 국민으로 살아가고 있었지만, 그녀 역시도 자신을 보호하는 국가의 존재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과연 나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그동안 학술서적을 통해서 수없이 읽고 고민한 문장이었지만, 내가 갖고 있던 국가라는 개념은 그만큼 추상적이었다. 그래서 멀게만 느껴졌다.
그녀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것이었지만, 나에게는 그저 너무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것이 나와 그녀의 차이였다.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운 공기 속에 살아온 사람들은 자유의 소중함을 모른다. 하지만 북한에서 자유가 없는 지옥 같은 삶을 살다 온 사람들에게는 자유에 대한 간절함 같은 것이 있다고 한다.
국가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김일성 일가만을 위한 일당 독재 아래에서, 북한 주민들이 자신을 보호하는 존재로서의 국가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겐 너무나 당연한 글귀 하나가 그녀에겐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어 볼 정도로 가슴 벅찬 순간이지 않았나 싶다.
“영화 '건국전쟁' 제작과 '김일성의 아이들' 상영회를 하고 계신 감독님을 위해서 대한민국 영사관이 돕겠습니다.”
서울을 떠나기 전, 대한민국 영사관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한 곳도 아닌 여러 곳이었다. 어떻게든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돕겠다는 말이었다. 그 순간 십 년도 더 된 오랜 탈북자의 이 이야기가 떠올랐던 것이다.
2019년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외롭게 동유럽으로 로케이션 촬영을 떠났던 때에 비하면 정말 너무나 큰 변화다. 세상이 바뀌고, 기류가 변하고 있다는 증거다.
적어도 북한 인권이나 김일성주의에 대해서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한다. 북한을 몇 번 방문했다고 자랑스럽게 떠들고 다니면서 단일민족, 평화교류 운운하며, 종전선언을 주장하는 친북 좌파들의 주장이 틀렸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사실 그 자체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이었다. 진실을 찾기 위해선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걸 개인이 혼자서 했다. 2019년 동유럽에서 촬영을 하면서 얼마나 서럽고 외로웠는지...
그런데 이번 작업은 뭔가 시작부터 다르다. 등 뒤에 든든한 버팀목이 자리를 잡고 있는 느낌도 든다. 그래서 책임감도 크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지만, 마음은 뿌듯하다. 나를 보호해주는 국가가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움츠렸던 가슴이 펴지고, 두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백여 년 전, 스무살 청년 이승만은 나라의 주권을 찾기 위해 미국을 찾았다. 그가 그토록 찾고자 애썼던 100년 후의 대한민국의 주권과 독립, 힘없는 나라 국민에서 이제는 세상 어디에서도 어깨를 펴고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영화 '건국전쟁'을 이렇게 든든한 마음으로 시작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가슴이 벅차다.
해가 뜨면 내일은 1904년 스무살 청년 이승만이 처음 도착했던 샌프란시스코의 항구로 나가볼 생각이다. 그때 그의 가슴엔 어떤 조국이 있었을까?
출처 : 최보식 의 언론(https://www.bos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