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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시집 [☆아침을 여는 여자☆]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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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을 여는 여자 ]
김유제 제2시집 / 세종문화사(2012.12.29) / 값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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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여는 여자
김유제
언제나 먼저 일어나 아침을 연다
불안의 날들
어둠 속에서 개꿈을 몇 자루나 꾸고
현실 같기도 한 대목들을 모두 지우고
학교 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다가
빨래를 시작한다
어제 세상의 악취가 풍기는 겉옷들을
물속에 담그면서
속옷 털끝에 붙어있는 찌꺼기들을
두 손으로 비벼 빨면서
술에 취해 혀 꼬부라진 술귀신을 어루만진다
그러다가 여자는 가슴을 열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큰가슴으로 아침을 열었다
두레 먹는 날
김유제
오늘 아침 동네 가운데
느티나무 아래서 징소리 울려
어머니들 음식 준비가 바쁩니다
암자 스님은 합장으로 오시고
끝집으로 이사 온 가족들의 소개 인사
객지 아들들은 성금봉투로 함께 합니다
이동 노래방이 설치되고
음식으로는 흑염소탕
이장의 선창으로 신청곡 몰려
축하 성금 발표를 먼저 하다 기쁨이 커
수고한 어머니들 저녁 보답으로
염소 한 마리 더 휴대전화 한 통화로
또 천당 갑니다
산 너울에 두둥실 흘러가는 흰 구름소리
앞산 울림으로 메아리 되어 돌아오면
봉성리 봉황산의 어깨가 으쓱
느티나무 고목도 가지를 흔들흔들
이제 오늘 하조 ․ 중 ․ 조 두레 먹는 날
느티나무 옆집 홍순이형은 대전에서 도착
요구르트 박스와 성금 그리고 애창곡으로 박수박수
아쉬운 밤
바람 볏잎 부딪는 줄다리기에
노란 가을은 뜨거운 여름을 넘었지요
대천동 오동나무
김유제
푸름을 먹고 일어서야 하는 너
몸 묶어 기둥 만든 것 누구냐
탈출 없는 부동의 모습으로
천막쪼가리 한 몸 되어서도
찌푸릴 수 없는 얼굴
변함없는 몸짓
바람 찬 겨울에도 떨어지지 않는
또 한 번의 가을이 오면
송아리진 방울소리
봉황산 봉황은 무함한 날갯짓으로
웅성웅성 널 찾아온다
별 타는 마을
김유제
요즘도
그때 그랬던 것처럼
타다 남은 별꽃이 뒷산에 떨어지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거나한 취기로 내 살던 옛집에 들렸더니,
샘 옆 향나무가 무성히 자랐고
오동나무가 큰 잎을 부채질하고 있었는데
어느 겨울이 다가와
상조고개 산 다랑이서 캐온
고구마 부짱 옆 누이의 베틀소리
갈치 담긴 함지박 머리에 인 어머니
서울로 간
시오 리 공장의 작은누나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작은형
동네잔치에서 떡 얻어먹고 체해서 유년에 간 동생
마른바람 가고
모깃불 맷방석
주먹수제비를 먹고 있는데
고함치는 아버지의 술 소리에
마당엔 우거진 잡풀들이 쓰러지고
수도 없이 별들이 쓰러지고
수도 없이 별들이 쏟아져
마을이 온통 별타는 마을이 됐습니다
얼굴
김유제
어느 날
크고 작은 의미 없이
그냥 보고 싶다
그래서
언젠가는 꼭
만날 것 같다
무지개 내리는 바다
김유제
월척이 밤을 뒤척여 새벽입니다
뱃머리 물길을 가르고
어디로 가도 길 뿐인 길
어디로 가도 길 아닌 길
그래서 망망한 바다
우리의 인생길입니다
모든 것들 점으로 만들고
깊어도 넓어도 알 수 없어
더욱 망망한 바다에서
황급한 마음 미꾸라지 입속에
뒤집으면 물음표 같은 낚시를 꿰었어요
찌 없는 낚시를 던져 놓고
반복의 팔 흔들어보면
저 아래서 전해오는 손울림
가끔은 작은 우럭도 잡히지만
허탕이 많아 여기저기 바다를 뒤집니다
잡아봐야 우럭, 놀래미 그런 것들 잡겠다고
모자에 구명조끼까지 입고
빈속에 소주 한 컵
안주로는 뱃머리 부딪는
무지개를 꿀꺽 마셔
취기가 오릅니다
뒤돌아오는 길에도
흐릿한 물방울 무지개들이
작아진 나를 자꾸 덮쳤지요
염주
김유제
달마를 손아귀에 넣어 굴리고 있다
제법 익숙해져서
소리도 딱딱거리며
눈알 튀어나온
불로 뜨겁게 구어서 그린
상형문자
왜 아홉 개의 왕구슬을
한 줄에 엮어서 굴려야 하는지
꼭 들려야만 풀리는지
아직도 몰라서
곡차 연달아 홀짝
불꽃샘
김유제
심지가 중앙에 박히어
다름을 비출 수가 없습니다
저 아래 촛농강 속에서
흔들리는 것은 바람을 막기 위함이지요
보이지 않는 내음을 먹고 일어서서
어둠이 올수록 맑은 소리로
무언의 마음을 일으키는
고요할수록 주우이가 밝아지는
불꽃샘
그 속에 함께하는 기도 소리
그 속에 함께하는 염불소리
어머님의 바램은
촛불로부터의 시작이었습니다
고인돌
김유제
돌아가리
어릴 적 부엉이 울던
말굽내 연 날리던 기억으로
나 돌아가리라
걸어서 부모님 따라 장터 가던 그때
시제 떡 나누어 먹던
그 과거 속으로 출발이다
나뭇지게에 고조배기 해서
사랑방 부엌 군불 때고 그랬던
그 아련한 것들보다
할아버지 이야기 그 그 그 그
한 열 번 더 그 옛날 속으로
기역 니은 가 갸 거 겨 넘어
진짜배기 찾으러 가야만 한다
시인은 가을을 꿈꾼다
김유제
알알들이 기대 익는 들녘
오늘을 위하여
게으른 봄을 이기고
내일을 생각하며
껍질 벗어버린 바다에서도
시인은 쓸쓸하였다
암벽 두드리는 파도 소리가
기어이 아침문을 열고
저만치 물러선 파도들의 노래
부숴 부숴 부숴숴
단단히 뭉쳐진 모래알의 바다를
가을 햇볕들이 굴러다니고 있다
겨울까치
김유제
기찻길 옆 앙상한 가지 위
감나무 2층집
바람 찬 철탑
눈보라꽃 피는 삭정이 집에서
떠나지 못했지
겨울 아침
어둠 헤친 날갯짓
상쾌한 목소리
그 노래 제목은
나는 철새가 아니라고
노랫말은
그래서 떠나지 않는다고
까악, 깍, 깍깍깍
부부일기
김유제
극복․기획․연출 : 남편
아내․1인 ? 역
1장
풀어진 눈 무겁게 올린
쑥스런 미소
그 미소를 투정하는 아내
그것이 전주가 아니라는 남편
시-간-이-가-고
아내가 티뷔(TV)를 켠다
태풍이 몰려오고 있다고
마음속의 바람이 합류한다
일상의 반복된 연속극
가끔 술 취하는 남편
아내의 꽃차 한 잔
실수들이 꿀차 속에서 살아나고
아내를 향한 의지의 눈
물결이 출렁인다.
2장
거북이가 세수한다
양치질에 헛구역질도 몇 번
찬물에 머리를 담그고
그래도 늘어지는 어깨
팔 휘둘러보고
뜀박질을 시작한다
가파른 계단
하나, 셋, 다섯, 일곱
그러고도 저녁 또 시원한 맥주가 생각나는 남편
장인匠人 일기
김유제
밤새워 부숴
뚝뚝 자르고
툭툭 털어내도 남는 것 많아서
물톱질로 칼질하면 무지갯빛 먼지
또 헛기침
서울 유학간 아들의 유선 목소리
입 다물어 거칠게 뛰는 맥박
미완성된 작품 한 점
노온종일 아내가 반복된 속도로
밀어부친 희망
석란석石卵石
벼루 밑바닥 한쪽 구석으로
지석智石
음각 낙관 하나가 삐딱하게 찍혔다
3형제는 석수장이
김유제
3형제
3형제는 석수장이
돌과 만난 큰형
차례대로 된 석수장이
조각가 ․ 건축가 ․ 시인 ․ 공예가
석수장이 3형제의
소리 없는 강은
가공을 거부하는 자연석
자주 연락도 없고
만나서 술 먹는 날 드물어도
형제의 강은
서울에서 시골로
시골에서 서울로
고요히 고요히 흐르고 있다
젓갈
김유제
되도록 애기들을 잡아서
소금에 절여
지하 동굴
많은 날 감추어 모양을 냈지
아무나 좋아할 수 없는
초상집 삶은 돼지고기
먹다 체하지 말라고
허리 꺾어져 꼬부라진
새우젓
그 맛을 아느냐고
어린 것들은
산샘
김유제
날마다
똑같이 솟는 것이 아니어서
기다림은 바라지만
자연의 법칙이 있어
봄 ․ 여름 ․ 가을 ․ 겨울
다르게 나오는 줄 알면서도
넘침만을 기다리지
새 물 쪼아 먹고 비상한 아침
언제나 무색이어서
아무나 퍼먹을 수 있어
어젯밤
별 ․ 바람까지 졸졸거린 산 샘
엎드려 꽉 찬 얼굴로
또 수혈을 한다
밤길
김유제
어디쯤 가고 있나
달빛 따라붙은 날 걷다보면
별 있는 하늘 강에서 그 무얼 찾겠다고
살아온 길은 재친걸음
찾아본 것들도 뭐인지
뛰는 모습은 아직도 어색해
또 그렇게 구두코를 차고 가다,
저 앞서가는 부끄러움
뿌리치지 못해 돌덩이 게걸음 길을 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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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2집을 펴내며
어릴 적 서울의 창동에서 시작된 돌과의 만남은
전국의 석재공장을 떠돌며 익힌 기술을 토대로 일본 이바라기현의 석재단지 연수 후 석조각 수출회사를 창립하였으나 경영 미숙으로 살패하고 91년 습작했던 원고 뭉치를 들고 보령 한내문학회를 찾아간 것이 문학과 시의 만남이었다
그 후 보령시의 지명이 확정되고 보령문학회가 창립되어 2,3,4대까지 회장활동을 하면서 문예사조로 등단하였고 원린문학상과 문예사조 문학상 등을 수상하였으나 시에 대한 부족했던 이해를 찾기 위해 문학신문에서 최초의 문학창작 예술원을 개강한 문을 두드려 귀한 인연들을 맺게 되었다.
배움의 열정으로 보령에서 서대문 예술원을 오가는 촌사람의 글은 시로 가꾸어 주신 신세훈 교수님과 한국 문학발전을 위하여 큰 꿈을 실천하시는 문학신문 이종기 발행인과 2집이 나오기까지 힘이 되어준 이서빈 시인과 지금가지 인연이 된 문학 동인들께 감사드리며 고된 삶을 인내하여준 아내 임미선께도 고마움을 표한다.
돌과 살아온 37년 석조각과 조형, 전통벼루를 제작하며 오늘도 바다와 하나 된 시의 갯벌을 맨발로 달려간다.
신선바위
천만 년 동네 앞산에 솟아
어떤 이는 곰바위라 하고
어떤 사람은 부처님 바위라 하고
누구라도 입 떡 벌어지는
아직 이름 이어지지 못한
바위 마당에 앉아 이름 만들기를 한다
동네 반 바퀴 감싸 흐르는
웃음소리 넘치는 여름 쉼터
영화 속 한 장면이 되기도 하였고
천냥바위라고 불리기도 하는
뿌리박힌 한쪽은 용틀림이라
몸 기댄 또 한쪽은
네모원석 가슴에 품은 새 형상
그 돌 깎아 보석 만들 수 있으니
보석바위라 불러보다가
지금까지 여기 올라앉아서
북향한 발걸음 힘 받은 사람 누굴까
바위와 함께 사는 나는
신선바위라 부르고 스스로 주인이 되었다
2012년 12월 김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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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제 詩集 [※아침을 여는 여자※]
[ 시집 평설 ] -
석수장이 돌 공예 시인의 근육질 언어
김유제 제2시집
『아침을 여는 여자』를 살펴보며
申 世 薰
(文協 제 22,23대 이사장, 현 고문)
‘아침을 여는 여자’가 있다. 김유제 제2시집이다. 갈피 문을 열면 제1부 ‘두레 먹는 날’부터 제8부 ‘산 샘’까지 눈앞에 펼쳐진다. 모두 77편이다. 이중 반수인 38편이 내 눈에 들어온다. 나머지 39편도 전수 씨(C) 학점 이상이면 이상이지, 이하는 없다. 시집 한 권 전편의 수준이 어쩌면 이렇게도 똑 고르게 기본선을 뛰어넘고 있는지 참으로 희한하다. 이런 평균율을 켜고 있는 시집 또한 오랫동안 보지 못하고 살다가 모처럼 이 시집을 대하고 보니, 기분이 날 듯 가벼워진다.
내게 뽑힌 38편 중에는 장원감이 두 편 있다. 시 ‘아침을 여는 여자’와 ‘石人’이다. 장원 버금도 두 편- ‘우담바라(優曇華)’ ‘별타는 마을’이다. 다음은 차상급이 5편인데 시 ‘무지개 내리는 바다’ ‘봄5’ ‘길’ ‘젓갈’ ‘아버지의 가을’이다. 차상다음 차하감이 열 편이다. 시 ‘꽃’ ‘두꺼비’ ‘신비의 여인’ ‘밤낚시’ ‘그대에게 가는 길’ ‘누워 쓰는 편지’ ‘하얀 겨울 오는 날의 왕탱이’ ‘거울이야기’ ‘봄4’ ‘3형제는 석수장이’들이다.
누구나 읽어봐도 괜찮을 가작 반열에 드는 시는 열아홉 편이 있다. 편명을 소개한다. 때로는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그 이름들을 일제히 불러본다. 시 ‘물꽃 피는 날에는’ ‘갯벌’ ‘호박’ ‘공룡을 찾아서’ ‘아침 길’ ‘거미 허공을 잡다’ ‘염주’ ‘뿌리’ ‘늦잠을 자는 게지’ ‘실종’ ‘구름여행’ ‘악바리꽃’ ‘가을 오는 여름밤’ ‘장인(匠人)일기’ ‘날밤 세우기’ ‘단양 동굴’ ‘섬’ ‘안면도 휴양림’ ‘밤길’…이다. 제목만 쭉쭉 읽어봐도 요즘 유행 떠는 포스트 기호시와 같다.
하여튼 김유제는 이 시를 한 편, 한 편 낳느라고 욕 많이 봤다. 쓰는 게 아니라, ‘한 편 한 편 낳는다’고 해야 옳다. 적어도 이 시인에게는 그렇다. 시마다 허술한 게 아니라, 고르게도 단단히 조각되어 태어나 있다.
마침 조각 얘기가 나왔으니, 말한다. 이 시집의 주인공은 돌사람(石人)이자 조각가 하고도 조각 공예가로, 국내는 물론 해외 일본에까지 잘 알려진 국제적 인물이다.
시인은 일본 후지사와시 엔시마 ‘보령 공원’ 작품도 제작하고, 거제시 캐릭터 조형 작품(몽돌이, 몽순이도 손수 조각했다. ‘온달과 평강’이라는 단양군 캐릭터 조형 작품, 정선군 석공예 단지 조향 작품, 시인의 고향 보령시 캐릭터 조형작품 ‘머돌이․ 머순이’ 제작, 공주시 한일고료명 작품도 조각하고, 소설가 이문희 문학비를 세워 그곳을 ‘이문희 문학 공원’으로 조성케 하는가 하면, 최근 소식으로는 정부 청사 이전한 곳의 도시 ‘세종시’ 이름도 오석으로 크게 새겨 세워 놓았다고 한다.
그는 이미 1983년도에 서울대 이순석 교수에게 석공예를 사사한 바 있고, 1988년도엔 일본 석공예 단지에까지 날아가 연수한 바 있다. 1991년 문헌 임원경제지중벼루 석란석을 발굴 제작, 1993년엔 인사동 한복판에서 ‘한국의 벼루 발표전’을 하고, 일본을 비롯한 전국 벼루 등 전시회 총15회를 기록한다. 1994년엔 농림부 지정 전통 석공예 단지를 조성하고, 현재 ‘지석 석공예 연구원’(조각, 벼루)을 운영하는 유능한 석공예가 시인이다.
그의 시도 석공예처럼 편 편마다 단단한 심상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사람 또한 시라, 인품의 무게 출중하고 과묵하며, 얼핏 한번 봐도 믿음성 있는 내유외강의 빼어난 사나이로, 그의 시가 그를 닮아서 모두 튼튼한 미학구조를 가졌다.
강하면서도 부드럽기도 한 시가 그의 작품이다. 그의 대표작 중의 한 편으로 보이는 시 ‘아침을 여는 여자’도 그러하다. 옮겨본다. 한 가정 삶의 아름다운 조각그림이다.
언제나 먼저 일어나 아침을 연다
불안의 날들
어둠 속에서 개꿈을 몇 자루나 꾸고
현실 같기도 한 대목들을 모두 지우고
학교 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다가
빨래를 시작한다
어제 세상의 악취가 풍기는 겉옷들을
물속에 담그면서
속옷 털끝에 붙어 있는 찌꺼기들을
두 손으로 비벼 빨면서
술에 취해 혀 꼬부라진 술귀신을 어루만진다
그러다가 여자는 가슴을 열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큰가슴으로 아침을 열었다
-「아침을 여는 여자」全文
아침을 여는 여성은 한 집안의 생활을 활짝 열고, 모든 살림을 다 꾸려나간다. 아기들 뒷바라지는 물론 ‘세상의 악취가 풍기는 겉옷들을/물속에 담그면서/속옷 털끝에 붙어 있는 찌꺼기들을/두 손으로 비벼 빨면서’(7~10행) 빨래까지 다 빨고 있다.
뿐만 아니라 ‘술에 취해 혀 꼬부라진 술귀신을 어루만’(11행)지기까지 한다. 술귀신은 누구일까. 바깥일을 하는 바깥 양반인 남편이다. 그 남편을 감싸주고 포근히 위로하며 그러다가 여자는 가슴을 열었다(끝에서 3행) ‘늘 그랬던 것처럼/오늘도 큰가슴으로 아침을 열었다’(끝2행). 푸근하고 사랑넘치는, 행복한 생활을 하는 모범가정이라 할 수 있다. ‘아침을 여는 여자’는 현모양처의 여성이요, 이러한 여성을 품고 사는 남성은 행복한 사나이다. ‘큰가슴으로 아침을’(끝행에서) 여는 여자-현명한 보름달 같은 여자이므로….
돌사람 같은 시 ‘石人’도 있다. 조각처럼 잘 다듬어진, 단단하나 호흡장단 부드러운 시다. 흡사 시인의 면모와도 많이 닮은 시다.
부드럽고도 조용하면서도 무위 자연하는 흐름의 시 ‘石人’을 옮겨보자.
구름 가고 달이 가고
별이 뜨고 별이 지고
바람 불고 바람 자도
변함이 없네
꽃이 활짝 하늘을 보고
풀벌레가 울고 웃고
산새 들새 날아가 모두 변했어도
변함이 없네
옷을 입고 옷을 벗듯이
계절이 오고 가고
비 내리고 눈 내려
아침이 오고 어둔 밤이 왔어도
변함이 없네
― 시「石人」全文
변함없는 自我의 세계를 ‘石人’을 통해 추구하고 천착한다. 주위 환경이 아무리 변하더라도 ‘石人’만은 그대로 ‘변함이 없네’(1,2,3연 끝행)이다. 이는 시인의 내면세계를 짐작해 볼 수 있는 단초가 될 만하다.
모두가 다 가고 변해도 ‘石人’만은 그대로다. 꽃이 피고, ‘풀벌레가 울고’(2연 2행에서), 새들이 날아가고 오지 않아도 역시 그대로다. 계절이 변하고, 비와 눈이 내려도, ‘아침이 오고, 어둔 밤이’(3연 4행에서) 와도 늘 그렇게 ‘石人’보다 더 원시성을 지닌 생명의 소유자이고, ‘石人’은 깨우친, 깨어난 문명인 바위도사다. 지성을 갖춘 자연 관조형 자립 생명 돌도사다.
시 ‘우담바라(優曇華)’는 어떤가. 허무적이면서도 약간은 해학과 풍자를 내비친 낭만성을 안고 있다.
3천 년 만에 피울 수 있는 꽃이라서
부처님 몸에서 피어났다고
진짜라고, 가짜라고
진짜도 가짜도 아닌 꽃이 피었지
첫 가을비 오는 날
빈들에 피어오르는 자욱한 안개
꽃나무도 꽃잎도 꽃뿌리 없어도
안개꽃이라 모두 다 좋아해서
빗소리 들리는 창밖
흐릿한 산봉우리 올려다보니
이런저런 생각하다
그냥 눈물 글썽해져서
모든 것 다 좋아하자고
무엇이든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자고
나무 끝 이슬방울 뭉쳐져 마음속 뚝 떨어지면
그 꽃이 정말 우담바라라고
무색하늘 빈 허공에 반짝이는 별꽃도
우담바라라고
그럼
절제된 완성이 되면
마하반야…
-시「우담바라(優曇華)」全文
어느 것이 진실인가. ‘부처님 몸에서 피어났다고/진짜라고, 가짜라고/진짜도 가짜도 아닌 꽃이’(2~4행에서) 피어나 야단이다. 실제 이 ‘우담바라’ 사건은 진짜 가짜 사건에 휘말려 한동안 세상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시인은 이 점을 포착해 풍자하고 해학하는 감각시를 한 편 살렸다. ‘꽃나무도 꽃잎도 꽃뿌리 없어도/안개꽃이라’(7.8행에서) ‘모두 좋아’(8행에서) 한다는 거다.
이러자고 ‘이 모든 것 다 좋아하자고/무엇이든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자고/나무 끝 이슬방울 뭉쳐서 마음속 뚝 떨어지면/그 꽃이 정말 우담바라라고/…반짝이는 별꽃도/우담바라라고’(13~18행에서) 해버리자는 이 모순 세상에 대한 해학적 풍자성이 매우 강한 시다. 맨 마지막 2행에서도 ‘절제된 완성이 되면/마하반야…’로 끝내버린다.
시인은 여기서 긍정도 부정도 아닌 입장이다. 그저 그렇고 그런 세상에…‘그럼’(끝3행) ‘그렇다’는 입장이다. 심지어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하여가)라는 고시조 풍의 해학과 풍자를 정신적으로 자기도 몰래 자연 이어받고 있는 듯하다. 이것이 시 ‘우담바라’의 진정성이다.
시 ‘별타는 마을’도 이렇듯 내세울 만한데, 한 차례 살펴보자.
시골 풍속, 시인의 옛 고향을 배경으로 한 영화 한 편을 보는 듯한 마을풍경이 스토리텔링으로 펼쳐진다. 아주 동적인 드라마틱한 시편이다.
이 시 속에는 여러 가지 장르가 다 압축돼 들어 있다. ‘별타는 마을’ 어느 집안에 ‘누이의 베틀소리’(10행에서)가 살아있고, ‘함지박 머리에 인 어머니’(11행에서)가 살아 있고, ‘서울로 간 형’(12행)에 ‘시오 리 공장의 작은누나’(13행)도 살아 있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작은 형’(14행)-동생은 ‘동네잔치에서 떡 얻어먹고 체해’(15행) 어린나이로 그만 죽어버렸다. ‘주먹수제비를 먹고 있는데/고함치는 아버지의 술소리’(19행에서)도 들려오는 집안 풍경이다.
특히 ‘아버지의 술소리’에 ‘마당에 우거진 잡풀들이 쓰러지고’(19, 20행에서)라는 대목에서는 이 시의 분위기와 집안 구조 형편을 눈으로 보는 듯 여여하게도 펼쳐준다. 아주 돋보이는 극적 수사 표현이다.
그 시절은 ‘수도 없이 별들이 쏟아져/마을이 온통 별 타는 마을이 됐’(끝 2행에서)다는 것이다. 이는 동화적인 기법이기도 하지만, ‘요즘도/그때 그랬던 것처럼/타다 남은 별꽃이 뒷산에 떨어지고 있’(첫 3행까지에서)다는 것이 아닌가.
아무튼 이 움직이며 펼쳐 보여주는 시 한 편 속에서는 소설도 들어있고, 수필도 들어있고, 동화도 들어있고, 문학평론 요소도 들어있고, 연극과 영화 장면도 들어있고, 사진과 그림까지, 무대 장치 같은 마을집안 배경까지 훤히 드러나 있다. 그러나 이건 전부 시 한 편을 빚기 위한 소재들에 불과할 뿐이다.
시 속의 모든 등장 요소들이 시 미학 형식으로 어우러져 한 편의 건축물을 지어내듯 시 한 편을 빚어내고 있다. 그래서 정적인 서정시가 아니라, 동적인 서정시를 빚어냈다. 시 ‘별타는 마을’의 독특한 개성미가 이루어진 이유가 바로 저러한 글솜씨에 달려 있었다.
시 ‘무지개 내리는 바다’의 동적인 심상도 내세울 만한 시품이다. 동적 심상 분위기는 시 ‘별타는 마을’과도 흡사하다.
월척이 밤을 뒤척여 새벽입니다
뱃머리 물길을 가르고
어디로 가도 길뿐인 길
어디로 가도 길 아닌 길
그래서 망망한 바다
우리의 인생길입니다
모든 것들 점으로 만들고
깊이도 넓이도 알 수 없어
더욱 망망한 바다에서
황급한 마음 미꾸라지 입 속에
뒤집으면 물음표 같은 낚시를 꿰었지요
찌 없는 낚시를 던져 넣고
반복의 팔 흔들어보면
저 아래서 전해오는 손울림
가끔은 작은 우럭도 잡히지만
허탕이 많아 여기저기 바다를 뒤집니다
잡아봐도 우럭, 놀래미 그런 것들 잡겠다고
모자에 구명조끼까지 입고
빈속에 소주 한 컵
안주로는 뱃머리 부딪는
무지개를 꿀꺽 마셔
취기가 오릅니다
뒤돌아오는 길에도
흐릿한 물방울 무지개들이
작아진 나를 자꾸 덮쳤지요
-시「무지개 내리는 바다」全文
바다의 역동적인 심상에 삶이 투영돼 있다. ‘월척이 밤을 뒤척여 새벽’(1행에서) 이라든가, 이리 가나 저리 가나 ‘어디로 가도 길뿐인 길’(3행)이라든가, 바로 그 길이 한바다에선 ‘어디로 가도 길 아닌 길’(4행)이라서 ‘망망한 바다’(5행에서) 이것이 바로 ‘우리의 인생길’(1연 끝행에서)이란 것(이상 1연) ‘더욱 망망한 바다에서’(2연 3행)는 ‘모든 것들 점으로’(2연 첫행에서) 보인다. ‘깊이도 넓이도 알 수 없’(2연 2행에서)다. 그래서 ‘망망한 바다’이다. 거기서 낚시꾼은 ‘미꾸라지 입속에/…물음표 같은 낚시를 꿰’(2연 끝 2행에서)어 ‘우럭’, ‘놀래미 그런 것들 잡겠다고/…구명조끼까지 입’(4연 1,2행에서)고 설치게 되는 것이 아닌가. ‘가끔은 작은 우럭도 잡히지만/허탕이 많아 여기저기 바다를 뒤’지는 것(3연 끝 2행에서)이 ‘무지개 내리는 바다’의 꾼들이다. 꾼들은 ‘빈속에 소주 한컵’(4연 3행) 마시고, ‘안주로는 뱃머리 부딪는/무지개를 꿀꺽 마’시기도 한다.(4연 끝2행에서). 뱃머리의 파도가 부서져 무지개를 일으키면, 그 무지개도 꿀꺽 삼킬 때가 있다.
아름다운 고기잡이 낚시꾼들의 상상이지만, ‘소주 한 컵’했으니, ‘취기가 오릅니다’로 돌아갈 수밖에. ‘뒤돌아보는 길에도’(끝연 2행) ‘물방울 무지개’(끝연 3행에서)가 ‘작아진 나를’ 덜칠 수밖에.…이런 동적 이미지가 바다 위에서 연출된다. 마을이 아니라 바다에서도 극적인 장면은 공연된다. 조용한 사색의 시가 아닌 움직이는 운동의 시-근육질 언어의 힘줄 시가 시인의 장기다. 석수장이 돌공예가 시인의 트레이드 마크이다.
시 ‘아버지의 가을’ 맞아 성숙한 시혼을 찾아 살펴보자. 건강미를 자랑하는 시어 근육태는 여전하다.
벼이삭 고개 숙이며 여름이 간다
온통 푸른 하늘 바다
밤이 오면 빛나는 것들이 있다
보름달
어찌 그리 둥그런지
바람이 세수하고 구름이 화장한 얼굴보다
저-각진 별들을 본다
약 1억 개의 별
별강은 흐른다
새 이름 탄생하고 스러지고
그런 것 관찰하러 막내둥이 밤길 먼저 간 날
홀로 앉아 하늘을 본다
달 무지개 사이로
막내 아직 못 볼 것들이 보이고
눈 감으면 또 보여 산봉우리 떼 지어 찾고 있을
아이들의 별들을
내 먼저 훔쳐보고 있었지
-시「아버지의 가을」全文
‘아버지의 가을’은 풍성하다. 이 풍성한 분위기의 가을은 ‘벼이삭 고개 숙이며 여름이 간다’(첫연 첫행)는 계절이다. ‘푸른 하늘 바다’(2행에서)를 관조할 수 있는 철이다.
‘밤이 오면 빛나는 것들이 있’(1연 끝 3행에서)는 그런 맑은 가을이 ‘아버지의 가을’ 심상이다.
‘보름달’(2연 1행) 뜬다. 이 달은 ‘어찌 그리 둥그런지’(2연 2행) 모른다. 세수한 바람보다, 화장한 구름 얼굴보다, 저 하늘 ‘각진 별들을’ 올려다보는 가을밤이다(2연) 무수한 별강도 흐른다. 이 별들은 새로운 이름으로도 태어나지만, 또한 스러져가는 별들도 많다. 이런 신비스런 우주 속 별들의 탄생과 죽음을 관찰하러 미리 막내동생은 저 혼자 먼저 먼 여행길을 가고, 화자인 ‘나’는 ‘홀로 앉아 하늘을 본다’는 관망자가 된다. 관조적 심상은 이래서 집을 짓게 된다. 막내보다 ‘내’가 먼저 신비의 별세계를 하필 풍성한 ‘아버지의 가을’에 즈음해 보게 된다. 산봉우리마다 떼 지어 올라가 찾고 있을 어린이들의 별을 ‘내’가 먼저 훔쳐보고 있(끝4연 끝행에서)다. 가을 풍성한 신비의 별밭을….
시 ‘봄5’의 시어 근육질은 어떤가.
역시 봄 시어라서 푸릇푸릇하고 햇나물처럼 싱싱한 맛에 다른 시보다 부드럽기까지 하다.
어찌 하리, 이미 본 것을
어찌 하리, 이미 느낀 것을
살갗을 파고드는 찬바람 속에
네가 온 것을 알았고
진눈깨비 속 함께한 네놈인 것도 보았다
눈비가 많이 내려
영하의 날씨가 지속된다더라도
산중턱의 꽃 안개꽃을 나는 또 보았네
새싹들이 꿈틀대는 소리는
가랑잎 아래서 가만히 들렸지
온갖 것들과 심판을 벌일 오늘 아침엔
신선바위 평바위 아래
몸 커진 참두릅나무 몸뚱이에 앉아
희뿌연 아침을 새 먼저 일어날 선창을 했다
봄비 오는 날에는 노래해야 한다고
까치 종다리 이름 모를 새들의 합창으로
수꿩소리 봄 쪼개는 그날이 오면
나는 어린 화창함으로
쩌렁쩌렁 노래 부르리라
-시「봄5」全文
시어의 근육질은 튼튼하다. ‘네놈’인 봄이 오는 낌새도 알아차리고, ‘산중턱의 꽃 안개꽃’(7행에서)도 이미 보고 있다. ‘새싹들이 꿈틀대는 소리’(8행에서)는 벌써 눈치챘다. 새가 먼저 깨어나 참두릅나무에 앉아 선창을 부르는 봄 아침 ‘봄비 오는 날에는 노래해야 한다고’(14행) 야단법석인 봄을 이미 곱게 짜놓았다. 행여 ‘수꿩소리 봄 쪼개는 그날이 오면’(끝에서 3행) 화창한 목청으로 ‘쩌렁쩌렁 노래 부르’(끝행에서)겠다는 봄을 창조해냈다.
싱싱한 시어에 튼튼한 형식미를 갖추고 있어, 역시 돌공예가 다운 시인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한 셈이다.
시‘길’도 있다. 잘못된 길일지라도 바로잡아 ‘묵묵히 걸어가야 한다’(끝행에서)는 교훈적인 ‘길’이다.
생각해보면, 살아있음은
언제나 흔들리는 것이다
바람 불면 부는 대로
잔잔하면 고요한 대로
그렇게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지
새순 돋아 푸르른 날
바람에 일어나는 파도타기의 아침
봉우리마다 미소 짓는 새얼굴들
그 몸 부딪는 것들은 살아있음이라서
우리들은 살아가는 날까지
흔들리며 가야 할 길 스스로 정해
지난날 눈꽃을 녹이며
봄바람에 실려진 그 꽃씨들을
멀리 높이 날리는 것만이
불확실했던 목적이었다, 하였어도
어쩌다 그랬다, 했더라도
꼭 그것만은 아니었다고
항변하며 묵묵히 걸어가야 한다
-시「길」全文
‘길’의 튼튼함도 석공예가 시인답다.
‘살아있음은’‘흔들리는 것이’(1,2행에서)란 것도 미리 알고 있다. ‘바람 불면 부는 대로/잔잔하면 고요한 대로’(3,4행)란 뜻은, 가는 사람 잡지 않고, 오는 사람 말리지 않는다는 생활 철학과도 일맥상통하는 군자들의 상상이다. ‘그렇게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5행에서) ‘새순 돋아 푸르른 날’(6행)의 순리다.
주위 만상이 모두가 ‘살아있음이라서’(9행째) ‘…살아가는 날까지’(10행) ‘흔들리며 가야 할 길 스스로’(11행에서) 정해놓고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의지가 잘 나타나 있다. 길은 놓여 있어서 가는 경우도 있지만, 삶의 길은 대개 스스로 닦아가며 개척해가는 경우가 많다. ‘길’ 역시 단단히 언어 근육질이 잘 닦여 있는 탄탄한 감각적 조각길이거나 대리석 바닥의 윤기 흐르는 고풍한 길일 수도 있다.
그의 시어와 시 형식 미학의 구축은 그의 석공예 기술에 의한 언어 미학의 짜임새일 수도 있다.
시 ‘젓갈’의 기교와 언어 발효 기술은 짧은 시 형식을 빛내 주고 있다. ‘젓갈’을 맛보자. 시인은 ‘어린 것들은/그 맛을 아느냐고’(끝 2행 역순임) 묻고 싶어 한다.
되도록 애기들을 잡아서
소금에 절여
지하 굴 속
많은 날 감추어 모양을 냈지
아무나 좋아할 수 없는
초상집 삶은 돼지고기
먹다 체하지 말라고
허리 꺾어져 꼬부라진
새우젓
그 맛을 아느냐고
어린 것들은
-시「젓갈」全文
어린 것들은 ‘어린이’다. ‘아이’ ‘애’들은 ‘어린이’를 비하시켜 낮춘 말이다. 자기 자식이 아닐 경우 ‘어린이’나 ‘아기’를 낮춤말로 부르는 ‘애새끼’ 같은 흉한 말을 문학에서 뿐만 아니라 일반 글에서도 쓰지 않는 것이 고운 말 쓰기의 지름길이다.
시 ‘젓갈’에서 첫줄에 ‘애기’란 시어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동물이나 식물 같은 미물일 경우 ‘애기’라는 말은 표준말 ‘아기’ 보다 훨씬 정답고도 귀여운 말씀이다. 여기서는 ‘애기들을 잡아서/소금에 절여’(첫 1,2행에서)라는 구절이 나와도 오히려 깜찍스럽게도 잘 어울린다. 토하 같은 자잘한 새우들의 애칭으로 쓰여진 시어가 ‘애기’이기 때문이다. 언어 감각이 모자랐더라면 첨부터 새끼새우를 이름 하여 ‘애기들’이라 부르지도 못했을 것이다. 참 재미있는 뒤집기, 낯설기 표현이 따로 없다.
‘토하’(논 새우를 잡아 젓갈로 발효시킨) 담그는 숙성법을 소재로 쓴 새우젓 시다. 이 젓갈은 원래 돼지고기를 먹을 때 양념 반찬으로 조금씩 찍어 먹으면 절대 고기가 체하지 않는다. 누구라도 체했을 때는 ‘토하’를 조금씩 약으로 먹을 경우 체증이 금방 사라지는 특효약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시인은 ‘초상집 삶은 돼지고기/먹다 체하지 말라고’(6,7행)를 이 새우젓 시를 통해 강조하고 있다. 어린이 즉 ‘어린 것들은/그 맛을 아느냐’(끝 2행 역순임)고 되묻는 이유가 나변에 있다. 시 ‘젓갈’은 짧은 11행 1연의 단조로운 시형식이지만, 한국의 명품인 젓갈풍속이 담가져 잘 발효된 귀한 시이다.
형식이나 내용 모두 짜임새 있게 직조한 품격으로 보인다. 그래서 김유제가 담근 ‘젓갈’ 맛이 참으로 간간 짭조름하고도 좋다.
김유제 제1시집『서울역에 봄』(1994.11.10「보령신문」출판국)은 ‘…의 봄’이다. 시인이 ‘백제 벼루 특산 단지’를 운영할 때 나온 첫 시집이다. 이 시집 제5부까지 93편의 시와 유일한 수필 ‘호박꽃’ 한 편까지 다 읽어 봤으나, 한 편도 건질 것이 없던 차에 이번 제2시집 ‘아침을 여는 여자’(2012「문학신문」출판국)의 생 원고 가편집 대장을 보고는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록 작품 77편 모두 어쩌면 그렇게도 수준이 고른지 읽는 사람의 기분을 기쁘게 해준다. 첫 시집에서 거두지 못한 성과를 이번 시집을 통해 확실히 거둘 것이라 믿게 하는 성과물이다. 하긴 첫 시집이 18년 전의 습작기 시집이라면, 이번 제2시집은 떳떳한 詩林의 프로정신으로 쓴 시인의 수준 높은 시집이라 그 차이가 크다.
한 권의 시집 속에 반수 가까운 작품(38편)이 보기 좋게 꽃을 활짝 피우고 있어, 방점을 찍어 놓고 높이 기려 사지 않을 수 없다. 석공예가 시인의 이번 시집은 탄탄한 근육질 언어로 빚은 성공사례의 시집이다. 석공예뿐만 아니라, 시를 조각하는 기술로도 文林社會 일반의 詩林世界에서도 대성할 것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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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사의 글 ◆
아침을 여는 여자
언제나 먼저 일어나 아침을 연다
불안의 날들
어둠 속에서 개꿈을 몇 자루나 꾸고
현실 같기도 한 대목들을 모두 지우고
학교 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다가
빨래를 시작한다
어제 세상의 악취가 풍기는 겉옷들을
물속에 담그면서
속옷 털끝에 붙어있는 찌꺼기들을
두 손으로 비벼 빨면서
술에 취해 혀 꼬부라진 술귀신을 어루만진다
그러다가 여자는 가슴을 열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큰가슴으로 아침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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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제 시인, 석수장인 시인∥
∙ 2000년 문예사조 등단
∙ (사)한국 문인협회 복지위원, 한국자유문인협회 회원, 문학신문 문인회 부회장
∙ 보령시 (사)한내문학회 부회장 역임, 보령시 보령문학회 회장 역임
∙ 국민생활체육 피구 충남연합회장,
∙ 전통 석공예(벼루) 방송 및 출연 13회, 국내외 전시회 15회
∙ 시집 : 1994년 제1시집『서울역의 봄』, 2012년 제2시집『아침을 여는 여자』『
∙ 수상 : 문예사조 문학상 수상, 월인 문학상 수상, 문학신문 문학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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