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의 매력 속으로
한국의 미의 정수는 5대 궁궐로 빛난다
아주 오래전에 창경궁을 다녀온 기억이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영남불교문화원 삼국유사답사팀이 창경궁을 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일행과 합류하기 위해서 지난 3월 18일 일요일에 창경궁을 찾았다.
지난해 연말에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적답사기’ 9~10권을 읽었기에 창경궁에 대한 기초지식은 가지고 있었다. 수원에서 버스를 타고 사당역에서 4호선 지하철을 타고 혜화역에서 내렸다. 2시에 약속을 했다. 나는 미리 도착하여 창경궁 매표소에서 티켓과 소책자를 하나 구입했다. 입장료 500원에 소책자 500원 합1000원으로 창경궁을 보고 느낀 감회에 비하면 공짜나 다름없었다.
모든 사물을 볼 때는 객관적으로 있는 그대로 보고 주관적으로 느끼면 된다는 신념이 생겼다. 먼저 창경궁(昌慶宮, 창성하고 경사스러운 궁궐이란 뜻)의 정문인 홍화문(弘化門, 크게 교화하는 문)을 길 건너편에서 촬영을 했다. 이 문 앞에서 정조대왕이 혜경궁 홍씨의 화갑잔치에 앞서서 백성에게 쌀을 나누어준 곳이다. 궁궐은 전란을 겪으며 불타고 다시 세우기를 반복했다.
홍화문을 들어서니 옥천교 앞에서 궁궐길라잡이 진말득 해설사가 창경궁에 대해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었다. 나도 슬쩍 끼어들어 해설을 들었다. 궁궐은 동향을 하고 있었는데 이는 자연지세가 그렇게 생겼으니 남향으로 앉힐 수가 없으니 동향으로 할 수 밖에 없었다.
춘당지에서 내려온 물은 금천(禁川)이라 불리는 내를 이루고 있었다. 내를 건너기 위해 옥천교라는 아름다운 다리를 만들었다.
돌다리는 우선 튼튼할 뿐만 아니라 모양과 난간이 바람을 통할 수 있도록 만들었는데 익살스런 이무기로 네 귀퉁이에 얹고 쉽게 바람이 통하도록 풍혈로 만들어 시선을 사로잡았다. 두 다리는 아치형으로 잡귀가 못 들어오도록 중간에 귀면상을 새겼는데 도깨비 같기도 하고 무서운 상이다.
명정전(明政殿 밝게 정치를 한다는 큰 건물)에서 해설을 듣고 있는데 대구의 삼국유사문화유적 답사단이 옥천교를 건너오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답사객들이 멋쟁이 차림으로 왔다. 얼른 달려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김재원 박사의 해설을 들었다. 영남불교문화원의 부회장인 ***의 혼사가 있어 단체로 예식장에 갔다가 서울 온 김에 절두산 성지와 창경궁을 찾았다고 밝혔다. 1석 3조의 체험이다.
김재원 박사는 오세훈 서울시장 시절 궁궐해설이 부실하다는 여론이 있자 전국의 유명한 교수 5명을 초빙하여 궁궐에 대해 강의를 서너 차례 했었다고 증언을 했다.
임금의 옥좌 뒤에 세워둔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 또는 일월오병도)에 대해 설명을 했다. 일월오봉도는 해와 달이 영원한 것처럼 조선의 왕실이 영원하라는 바램과 해와 달처럼 음양의 조화, 오행의 木金水火土를 오봉으로 나타낸 음양오행사상을 담은 것이다. 설명을 듣고 난후에는 바다를 건너 육지에 닿고 해와 달과 폭포와 소나무가 그림이 그려진 일월오봉도가 새롭게 보였다.
본래 창경궁은 효와 관련하여 궁중의 왕실 가족이 늘어나면서 대왕대비 왕대비를 모시기 위해 만든 곳이라 한다. 성종은 왕실의 웃어른인 세조비 정희왕후, 예종비 안순왕후, 덕종비 소혜왕후 등 세 분의 대비가 편이 지낼 수 있도록 창덕궁 이웃에 마련한 궁궐이다.
그런데 이 창경궁에서 장희빈과 인현왕후, 조선왕조 500여 년에 가장 큰 비극적인 사건이 아버지 영조가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갇혀 죽은 곳이고,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가 왕이되어 어머니를 혜경궁홍씨를 위해 자경전을 지은 곳이다.
또한 일제가 조선의 명맥을 끝내기 위해서 궁궐을 동물원으로 만든 곳으로 아직도 창경원이라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이는 창경궁이 정사를 돌보기 위해서 지은 것이 아니라 생활공간을 넓힐 목적으로 지었다. 세종이 태종에게서 왕위를 물려받고 아버지 태종을 살던 수강궁에 몇몇 전각을 보태어 지은 곳이라 한다.
그래서 내전이 정사를 다르는 외전보다 상대적으로 넓은 공간이다. 창경궁은 왕들의 지극한 효심과 사랑, 왕과 세자의 애증, 왕비와 후궁의 갈등 등 왕실 가족들이 만들어낸 이야기가 많이 전해져 온다.
창덕궁의 동궁과 맞닿아 있고 담장 너머에는 낙선재가 있다. 또한 창경궁에서 바로 창덕궁으로 갈 수가 있다.
그래서 남.서.북쪽은 작은 구릉으로 자연친화적으로 궁궐의 건물이 배치되어 있어 궁궐의 위압감이나 권위적이지 않아 편안하고 아늑했다. 다만 급속하게 변하는 현대사회와는 전혀 다른 조선 전통의 한옥이 풍기는 멋스러움과 조경이 돋보였다. 이는 일제가 조선 최초의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면서 그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경전 터 뒤에 성종의 태실에 생뚱맞게 이곳에 있었지만 제대로 된 태실이 남아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아무튼 도시의 역사는 오랜 전통적인 건물과 생활이 현대와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발전할 때 더욱 가치가 있을 것 같았다.
조선경국전에 나타난 궁궐 건축
"儉而不陋 華而不侈"의 정신 宮苑제도가 사치하면 백성을 수고롭게 하고
재정을 손실나게 하며, 누추하면 조정에 대한 존엄이 없게 된다.
검소하면서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면서도 사치스럽지 않은 것이 아름답다. 검소란 덕에서 비롯되고 사치란 악의 근원이니 사치보다 검소해야 한다. -정도전-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도 "新作宮室 검이불루 화이불치" 라는 궁궐건축의 정심이 있다고 한다.
또한 조선22대 정조대왕은 "궁궐은 임금이 거처하며 정치를 하는 곳이다. 사방에서 우러러 바라보고 신하와 백성이 향하는 곳으로 부득불 제도를 장엄하게 하여 존엄함을 보여야 하고 아름답게 하여 경계하고 송축하는 의미를 담아야 한다. 궁궐을 호사스럽게 하고 외관을 화려하기 하기 위함이 절대로 아니다"
창경궁을 다녀온 후로 나는 한국인으로서 우리 역사도 제대로 모르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우리나라 고유의 의식주에 대해 제대로 공부를 하고 싶어졌다.
그것도 최고의 5대 궁궐(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덕수둥)부터 다시 보기로 했다. 그리고 조선의 정원과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권역별 테마별로 탐방을 할 계획으로 설렘을 안고 이 글을 마친다.
풍기대에서 김재원 박사 ...방향에 따라 다른 바람의 명칭들 동영상
https://youtu.be/4CYFu5-Nyxc
하늬바람(서풍) 샛바람(동풍) 마바람(남풍) 높바람(북풍)
창경궁 춘당지에서 동양3국의 정원의 차이점 설명 동영상
https://youtu.be/7YE3-7Ak-d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