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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28일 대하 3:1~17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꾼 [성전이전4주년감사예배]
오늘은 2017년 11월 26일(주일) 교회이전예배를 드린 지 4주년됨을 기념하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예배로 드립니다. 막막한 상황에서 저희들을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인도하셔서 이런 좋은 아름다운 예배당 허락하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이전까지 함께 해오시면서 하나님의 기적을 목도하게 하셨는데, 앞으로도 함께 하며 하나님의 또 다른 기적의 역사를 체험하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꾼으로 쓰임받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은 솔로몬이 건축할 성전의 장소와 크기와 양식이 소개됩니다. 특히 지성소와 성전 앞의 두 기둥에 대한 양식이 자세히 소개됩니다. 솔로몬의 성전건축과정을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꾼에 대해서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1. 순종의 일꾼(1,2절).
순종은 하나님 앞에서 하는 순종이어야 하고, 순종은 입이나 귀가 아닌 행동을 요구합니다. 그 순종은 하나님 앞에서 그분이 인정하신 순종이어야 합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15:22) 이 말씀은 사울왕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한 행동을 보고 사무엘 선지자가 하나님의 심판을 언급하기 전에 하신 말씀인데요. 사울왕에게 순종이 어떠한 종교적 행위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언급한 말입니다. 사울 왕이 순종하지 아니한 행동은 아말렉과의 전쟁 전에 사무엘에게서 그들에게 속한 재산과 생명 모든 것을 진멸하라고 명하신 것을 이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울의 변명은 아말렉에게서 승전물 중 좋은 것을 골라 하나님께 감사의 제물로 사용하고 싶어 모든 것을 진멸하지 않았다고 변명합니다. 사실 사울의 이러한 행동은 그 당시 고대 근동문화에서 전쟁 후 승전의 영광과 왕권강화를 위해 승전물을 가지고 자신이 섬기는 신 앞에서 제사를 드리는 행위에서 기인합니다. 사울왕도 백성 앞에서 전쟁에 승리한 후 이렇게 화려한 예식을 행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사무엘선지자는 사울왕에게 승전물 중 좋은 것을 택하여 하나님 앞에 경배드리는 행위를 점치는 죄와 같고 우상에게 경배하는 것과 같다고 계시했습니다. 우리가 죄를 회개한다에서 생각하는 ‘죄’란 무엇입니까? 다윗의 살인죄와 간음죄와 같이 윤리적이고 종교적인 관점과 사울과 같은 영적인 관점에서 하나님 앞에서 죄는 우리의 상식과 매우 다릅니다. 사무엘이 사울 왕에게 언급한 순종에 관한 말씀과 같은 의미의 말씀이 성경의 여러 곳에서 언급되었는데요.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호세아 6:6)
예수께서는 사무엘이 언급한 순종에 관한 말씀을 가지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9:13)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마태복음 12:7)
순종과 하나님을 아는 것 그리고 긍휼이 예배(제사)보다 더 중요하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순종은 인간의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닌 하나님 앞에서 그 분이 인정하신 순종이어야 만 합니다. 만일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는 순종은 전부 거짓이고 자기만족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속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저와 여러분은 자기만족이 아니라, 인간의 감동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기뻐하시는 순종의 일꾼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제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서 솔로몬의 순조에 대해서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솔로몬은 성전 건축의 장소에 대해서 순종합니다(1절). 부친 다윗이 정한 장소가 성전건축에 적합한 지 그 적합성 여부를 가리지 않고 오직 순종함으로 성전이 건축될 장소를 수동적으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그 장소는 바로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난 장소였던 것입니다.
우선 ‘모리아 산’은 이전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삭을 바치려 했던 바로 그 장소가 모리아산입니다. 또한 이삭 대신에 숫양을 준비해 두셨던 ‘여호와 이레’의 장소가 바로 모리아산이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순종에 감동하셨던 장소입니다(창22:13).
또한 ‘오르난의 타작마당’이 있었던 장소입니다. 다윗이 인구조사하는 죄를 짓고 징계를 받아서 제단을 쌓었던 여부스 사람 이르난의 타작마당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제사를 받으시고 다윗에게 불로써 응답하시고 진노를 멈추시며 속죄를 이루신 장소입니다(대상 21:18, 26). 같은 장소에서 발생한 두 사건은 ‘희생’과 ‘하나님의 긍휼’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성전의 기능인 속죄를 위한 희생제사와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자비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의 장소를 정한 아버지 다윗과 하나님의 뜻에 솔로몬은 순종한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이사를 하는데 입지조건과 생활환경을 기준으로 결정하기보다는 내가 신앙생활하기 좋은 곳, 교회와 가까운 곳을 선택하는 것으로 비유하면 맞은 표현일까요? 저희도 교회 가까운 곳으로 이사와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 기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솔로몬은 성전건축을 위해 왕위에 즉위하자 마자 3년간을 성전건축에 필요한 건축재료와 기술자들을 준비하는 데 힘썼습니다.
왕상 5장1~12절부터 보면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는데 물적 자원 준비부터 했습니다. 1절을 보면 솔로몬이 두로왕 히람에게 전갈을 보냈습니다. 이 두로왕 히람은 아버지인 다윗왕의 친구였습니다. 그에게 성전건축에 필요한 재목들을 부탁하였습니다. 6절을 보면 “레바논의 백향목을 베어오게 하소서” 그랬더니 7절을 보면 “히람이 듣고 크게 기뻐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히람이 회답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할지로다, 하나님이 다윗에게 지혜로운 아들을 주사 큰 왕으로 삼았으니 내가 전적으로 돕겠다”(7)고 했습니다. 두로의 히람 왕은 솔로몬보다 7년 먼저 왕 된 사람입니다. 그 두로 왕이 목재를 달라고 하니까 흔쾌하게 응답해 주었습니다. 이런 것을 가리켜서 형통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이렇게 흔쾌하게 일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열왕기상 5장 13~18절 까지를 보면 인적자원을 확보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전국에서 일꾼을 불러 모으는데 역군과 벌목공이 3만 명이었고 짐꾼과 담꾼이 7만 명, 석공과 돌을 뜨는 사람이 8만 명, 감독관이 3,300명. 그래서 합계가 183,300명이었습니다. 이들이 레바논 산지로 가서 백향목을 꺾어 베니게 해안으로 옮겨서 거대한 뗏목으로 엮어져 바닷길로 이스라엘 항구까지 옮겨졌는데 그 항구가 욥바라는 곳입니다. 거기서 다시 예루살렘까지 육로로 56km를 운송하여 성전이 지어졌습니다. 그러니까 성전건축 준비가 아주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졌다는 이야기이고 전국에서 숨어있는 기술자들이 속속 발굴되어 모아졌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사전에 치밀한 준비가 이루어졌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솔로몬이 통치 시작부터 성전건축에 힘쓴 것은 여호와의 향한 그의 열심과 선왕인 다윗의 간곡한 부탁(대상 28:20,21)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은 성전 건축의 시기와 장소 뿐 아니라 성전 각 요소 요소의 치수에 있어서도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계시해 준 양식에 따랐습니다. 순종이 축복이지만, 순종하기를 지체하는 것은 곧 불순종입니다. 솔로몬은 순종하는 것을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도 독자 이삭을 드리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하나님의 명령에 어떤 불평도 원망도 없이 지체없이, 즉시 순종했습니다.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번제에 쓸 나무를 짐승에게 실어 아들과 함께 삼일 길이나 걸려서 하나님이 지정하신 모리아 산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을 결박해서 제단 위에 올려놓고 칼을 치켜들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차마 할 수 없는 우리가 말하면 미친 짓도 마다하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했습니다. 이와 같은 그의 헌신과 순종이 있었기에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는 칭호를 받았습니다(약 2:23). 그리스도인이 순종하려면 주님이 생각하시는 마음과 주님께서 보여주신 삶과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목소리와 주님이 도우시는 봉사의 손길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일꾼을 기뻐하십니다. 예수께서도 자신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서 십자가를 지신 사실을 “한 알의 밀이 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순종의 죽음이 필요합니다. 이 죽음은 우리의 ‘자존심’의 죽음이며, 우리의 ‘특권’의 죽음이며, 우리의 ‘편견’의 죽음이며, 우리의 ‘야망과 안락’의 죽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왜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까? 이 부분에 대해서 사 55:8 말씀에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길과 나의 생각하시는 길이 다르기 때문에 나의 생각대로 하고, 내가 길을 결정하면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길과 다르게 가기 때문에 우리는 나보다 크실 뿐 아니라 온 우주만물보다 크시고 지혜로우시고 능력있으신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말씀과 그 분의 인도하심에 따라가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이요. 지혜로운 일꾼이 되는 것입니다.
적용) 나는 주님 기뻐하시는 순종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2) 말씀의 일꾼(3~9)
우리 하나님의 순종하는 일꾼은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이 지정하신 건축지에 성전을 지은 사실에서 우리가 신앙적인 삶을 살 때 항상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서 행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고전 3:10,11). 왜냐하면 우리의 사상 뿐 아니라 행동의 모든 것이 말씀에 그 근거를 두어야 하기 때문입니다(딛2:5). 우리의 기도도, 순종도, 성결함도, 믿음도 말씀에 근거해야 합니다. 또한 성전이 정금과 보석으로 장식된 것도 성도는 말씀되신 그리스도의 터 위에 금과 보석과 같은 믿음으로 집을 건축해야 함을 의미합니다(마 7:24~27).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도로 이 땅을 살아 갈 수 있는 영의 양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믿을 뿐 아니라 생명의 말씀으로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아가며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저도 요즘은 큐티가 잘 되지 않아 고민인데요. 새벽 설교로 전환을 하니까 새벽설교를 그냥 큐티 대용으로 생각하다보니 적용도 잘 되지 않고 고민합니다. 여러분의 큐티생활을 어떠십니까? 지난주에 ‘부모면허’라는 책에 큐티에 대한 부분이 잠깐 나왔는데요. 큐티를 하고 말씀을 듣고 나름대로 적용을 해도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녹아버리는 경험을 자주 하잖아요. 이책의 저자도 그랬나봅니다. 저도 그런데요. 그런 고민을 하다가 큐티를 하고서는 그 날의 키워드, 핵심단어를 기억하고 마무리를 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주제가 ‘겸손’이다 하면 하루 종일 겸손이란 단어를 생각하면서 사는 거에요. 그러다보면 겸손해야 할 부분들이 드러나고 또 교만하고 자기자랑하고 남들을 깐볼 수 있는 상황에도 하나님께서 오늘 주신 말씀이 ‘겸손’이니 자연스럽게 적용이 된다고 하는 것이죠.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이런 방식으로 말씀을 묵상하면서 사는 것이고 동시에 우리는 주일날 강단에서 주신 말씀도 일주일내내 키워드를 중심으로 늘 같이 묵상하면서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지난주 설교의 제목이 “넘어져도 붙드시는 하나님의 손길”이었는데, 기억하기 어려우시면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으로 기억하시고 일주일 내내 내 마음속에 머릿속에 내 심령속에 기억해 놓고 살아가면 좋구요. 만일 그 날에 큐티를 못했으면, 그 전날 묵상했던 그 키워드를 하루 다시 묵상하면서 살아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간증을 하나 하겠습니다. 이번 달 은혜의 강물 헌금을 해야 하는데 기독신문에도 없고 마땅히 할 때가 없는거예요. 이제 거의 11월달이 다 지나가고 있는데, 저는 말씀 묵상하듯이 계속 생각하면서 어디에 은혜의 강물을 흘러보내야 하나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하루는 말씀카드를 보내고 있는 남아공 오경환 선교사님에게 카톡으로 기도제목이 온 거예요. 뭐라고 왔나면
11월 24일 수요일 카톡내용
목사님, 안녕하세요,
제가 병원진료차 잠시 한국을 방문중에 지난 12일 저에게 저의 기억이 상실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오전 7시부터 오후 8시경까지의 일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데요, 뇌 MRI, X-RAY 검사 결과로는 뇌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헤마가 그시간동안의 기억을 저장하지 못해 발생된 일이라고 합니다 자가격리중이라 질본과 연락하여 고대안산병원 응급실에 입원해서
코로나 음성판정 받은후 밤 10시경 뇌 엑스레이, 엠알아이 등의 검사를 했습니다 뇌졸증을 염려했지만 그런건아니고 저와같은 연령대에 극심한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나타나는 일시적인 TGA 현상인 것 같다고 합니다
몇가지 약을 넣은 링거를 맞고 새벽에 퇴원했습니다
어려웠던 중에 감사한 것은 국가격리시설에서 퇴소하는 날이라 친구가 용인격리처로 왔었고 분당 SIM 숙소까지 데려다주는 과정에서 이런일이 발생했기에 갑자기 기억이 끊어지는 난감한 상황에 친구의 도움을 받을수 있었고, 또한 SIM사무실이 가까워서 선교사케어 담당자가 신속히 달려와서 질본과 연락하며 격리기간 중이지만 병원에 입원할수 있었습니다 저녁시간부터 퇴원수속, 선교관으로 돌아오는 과정은 아들 세혁이가 도와주었습니다
어려운중에 피할길을 열어주시며 최선의길로 인도하시는 선한목자 우리 주님을 찬양합니다
현재 정신이 돌아와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지만 26일 세브란스병원에서 뇌파검사와 뇌의 혈류 및 추가검사등을 위해 신경과 예약을 했습니다. 한국에 병원진료와 약 처방을 받기위해 귀국했는데 예기치 않는 경험을 하였기에 남아공으로 출국전 필요한 검사와 처방을 받고 돌아가려고 합니다. 세브란스병원에서 여러가지 필요한 검사 일정이 잘 진행되도록 기도부턱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몽용] [오전 10:29] 많이 놀라셨겠네요. 완전한 회복과 치료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
이렇게 답장을 보내고 나니 너무 마음이 공허한 거예요. 그런데 갑자기 성령께서 ‘은혜의 강물 헌금’을 떠올리게 하시더니 이 선교사님에게 식사비라고 하시게 드리라는 생각을 주셔서 그 전날 어느 교회 여전도회에서 선교헌금으로 20만원을 보내주셨거든요. 그래서 그 중 10만원을 은혜의 강물헌금으로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문자 답장이 이렇게 왔습니다.
[오경환] [오전 10:44] 너무 큰 은혜를 받네요. 감사합니다.
작지만 이런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의 키워드를 붙잡고 여러분이 살아가시면 이런 뜻밖의 경험들을 성령께서 주실 줄 믿습니다. 이런 간증이 생겨서 함께 단톡방에 은혜를 나누는 성도들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꾼은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매일 씨름하고 매일 매일이 쌓여서 평생 씨름하고 그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을 지키기 위해 순종하고 헌신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씀묵상이요, 큐티하는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그저 사울왕과 같이 삶이 없이 종교적인 예배만이 신앙생활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예배를 드리는 기초가 바로 말씀묵상, 큐티임을 기억하십시다. 오늘 광고에 큐티인 정기구독에 관한 광고가 나갔습니다. . 여러분은 물론이고 여러분 자녀들까지라도 다 구독신청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도들 간에 이런 나눔을 할 수 있는 소그룹이 활성화되어 믿음의 삼겹줄이 세워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 습관이 쉽지는 않지만, 꾸준히 넘어져도 또 다시 일어나고 해서 여러분의 삶에 말씀 묵상이 너무 자연스럽게 되고, 우리 자녀들도 함께 해서 여러분 가정에서 가정예배가 회복되기를 원하고 바라고 기도드립니다.
나는 말씀에 기초하는 순종하는 일꾼입니까?
결 론)
그런데 순종의 일꾼과 말씀의 일꾼, 즉 말씀으로 순종하는 일꾼은 ‘내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세워짐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 힘으로 될수도 없지만, 만일 내 힘으로 되면 내 자랑, 내 의가 되어서 결국 교만함으로 타락하게 됩니다(잠16:18). 그래서 말씀으로 순종하는 일꾼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어야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우리에게도 복이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마지막 절인 17절은 성전 문 앞에 있는 두 기둥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야긴’이고, 하나는 ‘보아스’입니다. 야긴은 ‘저가 세우시리라’는 뜻이고, 보아스는 ‘그에게 능력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 앞에 있는 이 두 기둥을 볼 때마다 이 성전을 세우신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영원 불변함, 그리고 성전의 주인되시는 여호와의 능력을 생각하고 의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를 말씀으로 순종으로 세우실 하나님의 능력을 늘 의지하면서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교회이전 4주년 기념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꾼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그 기뻐하시는 일꾼이 바로 ‘순종의 일꾼’, ‘말씀의 일꾼’입니다. 즉 여러분에게 오늘 주신 키워드는요. ‘말씀’ ‘순종’ ‘일꾼’입니다. 이 중 여러분 한 단어라도 한 주간 매일 매일 여러분 마음속에 넣어두시고 기억하시면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시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