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화(50가지성탄축제이야기, 안셀름 그륀, p85)
하느님은 사람이 되시면서 육신을 취하셨다. 요한 복음은 이렇게 말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거처하셨다” (요한 1,14). “육신” 이라고 할 때 요한은 죄의 육신이 아니라 현세에 매인 것, 허약한 것, 무상한 것을 의미했다. 하느님은 당신 아들의 육화를 통해 불멸의 씨앗을 우리 죽을 육신에 심으셨다.
말씀(로고스)이 육신이 되신 것은 하나의 신비다. 교부들은 이를 “조개 속에 자라는 진주” 라는 상징으로 표현했다. 마리아는 신성한 진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육신을 입힌 조개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이렇게 표현했다. “동정녀가 신의 섬광으로부터 낳은, 광휘와 순수의 예수 또한 하나의 진주다. 왜냐하면 살과 조개껍질과 물기에서 빚어진 진주가 촉촉하고 영으로 충만한 반투명의 물체이듯, 육화된 하느님의 말씀 역시 물기 머금은 몸으로 투명하게 빛나는 영적 빛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타나시우스는 마리아를 통한 말씀의 육화를, 예수께서 마리아의 몸과 결부되어 “사람이 되실 때 취했던 거룩한 육신을 빛나게” 만드신 것이라 이해했다. 달리 표현하면 이러하다: 예수는 우리의 육신을 취하셨으나,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그것을 투명하게 하셨다.
*[백민관 신부가 엮는 신약성서 해설]
<203> 12. 하느님껜 영광, 사람에겐 평화 (루가2장8~20)
백민관 신부ㆍ가톨릭대학장
가톨릭신문 발행일1988-08-07 [제1616호, 3면]
『어둠속을 헤매는 백성이 큰 빛을 볼 것이며 캄캄한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이 비쳐올 것이다…우리를 위하여 태어날 한 아기는 우리에게 주시는 아드님이시며 그 어깨에는 주권이 지워졌고, 그 이름은 기묘하긴 분, 용사이신 하느님, 영원한 아버지, 평화의 왕이시다』(이사9장). 이사야의 이 엄청난 예언은 교외의 한 동굴 속 마구간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 예언의 성취를 확인하기 위하여 하늘에서는『하늘 높은 곳에는 천주께 영광, 땅에서는 선의의 사람에게 평화』라는 소리가 들려왔는데 이 소리는『너희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전한다』는 다짐을 하는 천사의 소리였다. 이 큰 기쁨의 소식은예언서의 권위적 해석가인 율법학자나 그 준수를 위한 권력기관인 제관장들에게 알려진 것이 아니고 일자무식인 들판의 목동들에게 먼저 전해졌다. 이들은 어떤 부류의 사람들인가. 목동들은 사회적으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기들에 관한 일이나 다른 사람에 관한 일이나간에 그들 자신이 별 관심은 오로지양들의 안전뿐이다. 그러니 목동들은 무슨 일에 관해서건 증언을 하지도 않고 증언을 한다 해도 사람들이 믿지도 않는다. 목동들은 세리나 죄인들과 함께 법적으로 증인이 될 수 없는 부류이다. 그러니 하느님의 계획이 이루어지는 것을 알리는 민족적인 성서의 증인들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하느님자신은 이원대한 구세의 시각이 막 도래하였다는 증언을 세상에 알리기 위하여 이들 목동을 택했던 것이다. 이유는간단하다. 그들은 단순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보고 들은 대로 단순하게 믿는 사람들이다. 사실은 목동은 구약성서에서도 하느님의 사람으로 되어있었다. 세속사람들은 이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구약의 성조들은 이스라엘의 목자로 불리었고 다윗을 목자라고 부를 때에는 민족의 지도자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사무하7장7, 예레 2장8).
주님의 천사가 나타날 때마다 주님의 영광을 알려준다. 구약성서에서 이 영광은 하느님이 당신 백성을 구원할 때마다 드러났다 (출애 14장18, 16장7, 40장34, 열왕상 8장11).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영광은 이제 예수아기의 탄생에서 드러난다. 복음서는 이 영광을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으로 돌린다. 요한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전체가 이 하느님의 영광이라고 역설하였고(1장14, 2장11) 루가는 예수께서 승천하실 때에 그리고 다시 세상오시는 재림 때에 그의 영광을 보았다(9장26, 31, 19장38, 21장27, 24장26, 사도 7장55).
예수탄생의 예고 때와 탄생을 알리는 천사와 말은 서로 비교해볼만하다. 두 경우 다 천사가 나타나서 (루가1장26과2장10) 두려하지 말고 안심 시킨다(1장30과 2장10). 그리고는 마리아에게는 은총을 받은자라 축하하였고 목동들에게는 기쁨을 알렸다. 이 두말은 그리스 원어로「카린」과「카란」발음도 비슷하다. 은총을 받은 마리아는 아기를 낳을 것이라고 예언했고 기쁨을 본 목동들에게는 아기가 태어났다고 알려주었다 (1장31과 2장11).
그 아기는 구세주 예수이며 (1장31과 2장11),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며 (1장32), 메시아이신 주님이며 (2장11: 공동번역 구세주), 다윗의 왕권을 받고 (1장31) 다윗의 왕권을 받고 (1장31) 다윗의 고을에서 태어났다 (2장11) 고 알리었다. 그 사실을 알아보는 표로 마리아에게는 엘리사벳의 잉태를 가리켰고 목동들에게는 한아기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어있는 것을 볼 것이라는 세 가지 사항을 자세히 일러주었다. 그들은 빨리 가서 이 세 가지 사실을 확인하였다. 이제부터「구세주」「그리스도」「주님」이란 말은 아기예수에게 이루어지고 이것은 복음서 전체의 주제가 된다. 이것을 알리는 천사는 신이 났고『하느님께 영광』이란 말로 표시하였다. 하느님의 영광은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평화를 가져다준다. 「선의의 사람에게 평화」가 온다. 선의의 사람은 마음이 착하거나 선행을 하는 사람을 두고 한 말은 아니다. 여기서는 성서적인 입장에서 착하신 하느님의 선의가 쏠리는 사람이란 뜻이다. 이런 사람은 어떤 사람들일까. 결과적으로는 마음이 착한사람들이다. 목동과 같이 하느님의 말씀을 단순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다. 매주일 미사에서 노래하는 대영광송은 이러한 뜻으로 알아듣고 만든 전례적인 찬미가이다. 이 찬미는 평화의 왕자가 태어났음을 (이사 9장5) 기리는 노래이며 예수가 전하는 복음은 평화의 복음이 될 것이다 (에페 6장15). 목동들은 형편없는 장소에서 보잘것없는 아기의 탄생을 보고도 낙심하지 않고 하늘의 영광과 땅의 평화를 실감하였고 이 기쁜 소식을 동네방네 이야기하여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았다. 최초의 복음전도자들의 역할을 한 것이다. 이것은 별 볼일 없는 어부들이 주님의 복음을 세계에 전하는 사도들이 된 것과 마찬가지이다.
목동들은 동네에 이 소식을 전하기전에 아기의 양친부모에게 자기들이 겪은 일들을 이야기했을 것이다. 마리아는 이 모든 사실들을 마음속에 고이 간직하고 묵상하였다. 복음서가 우리에게 전하는 마리아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