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위 잎에 묻어온 한 소쿠리 사랑
솔향 남상선 / 수필가
제자가 원장인 보성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오다 버스 안에서 지인 류차선 여사님을 만났다. 여사님은 놀이터 공원에서 맨발걷기를 하다 만난 분인데 가슴이 따뜻하고 사려 깊으신 분이셨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되지 않지만 놀이터 공원에 어떤 사람이 애완견을 끌고 나왔다가 견공이 배설한 것을 나 몰라라 식으로 그냥 가 버렸다. 주변 사람들은 푸념만 늘어놓지 치우는 사람이 없었다. 그 때 여사님이 치우시는 걸 보았다. 사람들은 실천도 못하는 말잔치뿐인데 여사님은 실천궁행(實踐躬行)으로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여사님이 존경스러웠다.
버스 안이라 긴 얘기는 못하고 간단히 몇 마디만 했다. 이따가 차에서 내릴 때 머위 좀 가져가라는 거였다. 남해 산기슭에 사시는 스님께서 택배로 부쳐온 것인데 입맛을 돋우는데 괜찮은 찬거리가 된다 하셨다. 스님을 알게 된 것은 심장병수술 환자들이 운영하는 밴드가 있는데 거기서 알게 된 스님이라 했다. 밴드 클럽 회원은 심장병 수술환자 600명인데 동병상련(同病相憐)하는 마음으로 서로가 정보를 주고받으며 상부상조하는 모임이라 하셨다. 상생(相生)을 위해 결성된 밴드 단체이지만‘힘을 합하고 마음을 같이 하는 가슴들’이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육력동심(戮力同心 : 힘을 합치고 마음의 함께 함)’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그들의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여사님 댁으로 같이 가서 머위를 받아왔다. 비닐봉지에 담았던 걸 쏟아보니 눌러서 큰 소쿠리로 하나였다. 시들기 전에 손질해서 물에 헹구어 냈다. 흙을 씻어 낼 때는 눌려 있던 한 소쿠리 머위가 세 소쿠리 네 소쿠리 사랑이 되었다. 부탄가스에 불을 붙여 데쳐 낼 때는 머위에 묻어온 사랑이 부피 팽창을 했는지 여섯 일곱 냄비로도 감당이 안 되었다. 머위를 무쳐먹을 때는 어렸을 적 머위 나물을 해 주셨던 어머니 생각이 났다. 어머니 일찍 가시고 대학 졸업한 후 나는 대전에서 살았다. 어쩌다 고향에 내려가 어머니 친구 분을 찾아 뵐 때는 누런 부대자루에 머위를 그득 베어 주시곤 했다. 거기다 검정콩 반 됫박에 마늘 접까지 꽁꽁 묶어주셨던 골동품 추억까지 눈에 밟히고 있었다.
남해에서 스님이 보내신 머위가 여사님 댁을 거쳐 우리 집에까지 온 거였다. 보통 여인 같으면 불원천리(不遠千里) 멀리서 택배로 보내온 머위였으니 당신 집에서 소비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콩 한 알이라도 나누어 먹는 따뜻한 가슴을 가진 여사님 이었기에 나에게까지 적선하신 거였다. 여사님의 후덕하신 마음에 고개가 숙여진다. 순간 마가렛 풀러의 명언이 떠올랐다.
“사랑은 작은 것에서도 무언가 특별함을 발견하는 능력이다.”
여사님한테서 받아온 머위가 바로 그런 거였다. 게다가 세인들의 가슴을 울리는‘간디’가 남긴 불후의 한 말씀까지 거드는 거였다.
“사랑은 결코 청구하지 않으며, 항상 주는 것이다.”
어머니 사랑 같은 것이 바로 그런 것이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푸는 사랑이리라. 사람은 살면서 누구든지 오매불망(寤寐不忘)하는 그리움 한둘 정도는 가지고 있다. 나도 이 나이가 되도록 살면서 간헐적으로 그리워했던 대상이 있었다. 마침 머위가 어머니를 연상(聯想)하는 계기가 되었던지 하늘에 계신 어머님까지 모셔왔다.
‘머위 잎에 묻어온 한 소쿠리 사랑!’
여사님이 주신 한 소쿠리의 머위
거기엔 남해에서 묻어온 스님의 정성사랑이,
여사님의 체온이, 육력동심이, 숨 쉬고 있었네.
끓는 물 냄비에 넣어 데쳐 무쳐 먹을 때는
어렸을 적 머위나물 꽁보리밥 어머님 생각에
물기 어린 눈, 울보는 그 시절을 그리고 있었네.
머위 잎에 묻어온 한 소쿠리의 사랑
그건 바로 스님, 여사님의 영혼의 보시였으니
대가 없이 베푸는 예수님의 마음으로 가꿔 가리라 .
‘머위 잎에 묻어온 한 소쿠리의 사랑!’
보상을 바라지 않는 어머니 사랑으로
한라에서 백두까지 따뜻한 세상이 되게 하리라.
첫댓글 머위의 사랑이 어머님의 그리움이 되었습니다.
사랑은 결코 청구하지 않으며, 항상 주는 것이다. 역시 간디는 위대한 성인이군요. 마음에 새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