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산별곡의 40대 *
세월을 이기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 역시 나이 먹을수록 염세적까진 아니었으나 웃음이 점점 사그라들고 있었다
지나친 독서 때문일까. 시력은 조금씩 나빠져 갔고 시를 쓰는 일도 힘에 부쳤다
아니면 매너리즘에 빠진 탓인가. 틈틈히 운동은 (걷기. 헬스) 하고 있었지만
의욕이 충만하지 않은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애마(오토방구)를 몰고 용강에 가서 낚싯대 드리우고 물고기들 건지면서 담배나
작살내고 돌아오기 일쑤였다
40대 시작과, 함께 찾아온 이상스런 혼란은 나를 당황케 만들고 물안개처럼 사라지길
반복하고 있었다
어느 날 도서관에서 무료함을 달래고자 헌 책 위주로 꽂아둔 책장을 살피다가
'소박한 밥상, 그리고 행복한 마무리' 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헬렌 니어링.......처음 접한 이름에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책을 뽑아들고 자리로 와서
읽기 시작했는데 화장실도 안가고 두 어 시간 만에 그 책을 독파했다
그리곤 한참을 멍한 상태로 촛점 없는 동공을 창밖으로 던진 채 나와 생각이 일치하는
이방인(미국인)이 있다는 사실에 흥분감을 느끼며 전율했다
스콧 니어링, 헬렌 니어링...........
25년 나이 차를 극복하고 부부가 되어 한평생을 버몬트 산 속에서 자연인의 삶을
살았던 동지이자, 부부였던 백인.......
나는 즉각 스콧의 자서전도 두 어권 구입해서 읽어 보았다
물질문명을 추구하고 과학의 발달로 최강국이 된 미국에서 이런 사람이 있었다는 게
신기하기만 했다
소박한 밥상, 그리고 행복한 마무리라............
나는 그때부터 청산에 들어 별곡이나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기 시작했다
아버님이 자정을 넘긴 시각에 주무시다 돌아가셨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이유는 모른다
자신이 할 일은 열심히. 하신 아버지.........그러나 세월의 대부분을 낚시로 보내며
술을 벗삼아 길태공으로 살다 가신 아버지는 나에겐 애증의 덫이었다
그렇게 나의. 40대는 중반을 넘어 후반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본격적인 청산별곡을 준비하고자 예행 연습 (?) 삼아 용화리에 빈 집을 얻어 니어링을
흉내내기로 했다
인터넷 문학 사이트에서 알게 된 인연으로 진돗개 강아지 한 마리 얻어와서
'해탈이'라 이름 짓고 함께 동거하기.시작했다
글을 쓰다 막히거나 답답하면 낚싯대 들고 강으로 나갔으며 그래도 안풀리면 용화 가게에
들러 소주를 사들고 와서 건진 피라미로 뱅뱅조림 만들어서 자작하는 시간들은 천국도
지옥도 아닌 염화의 시간이었다
결국 나는 용화리 無心仙堂에서 3년 동안 쓸쓸함을 극복하지 못하고 저잣거리로 되돌아온
탕자가 되고 말았다
나의 40대는 해탈이와 함께 저물어 가고 있었다
* 반야심경의 50대 *
눈을 떠보면 늘 길에 서 있었다 이것은 역마살일까.
집구석 책상에 가만히 앉아 글을 쓰는 것 보다 길을 걷다 문득 생각나는 문장이 있으면
잔디에 앉아서 쓰는 것을 더 좋아라 했다
지천명의 세계는 어떤건지 불안감이 없지는 않았지만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격언처럼
나는 마음을 활짝 열고 지천명의 세계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나는 글 쓰는 것을 중단했다
위정자들 때문에 나라는 연일 시끄러웠고 전직 대통령이 절벽에서 떨어져 사망 했으며
뒤를 이어 칠푼이 같은 여자도 기가 막히는 일만 저지르고 있었으니..........
나는 급격하게 의욕을 잃어가고 있었다
기레기들 천국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