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개의 부품만으로 디자인된 모나미 볼펜은 반세기 넘게 36억 자루 이상 국내외에서 지속적으로 제조, 판매되었다. 그 어떠한 장식도 허용하지 않으며, 다른 제품과도 경쟁하지 않고, 모든 소비자들을 차별하지 않는 모나미 볼펜은 분명 시간을 이겨낼 만한 충분한 이유를 가진 디자인으로 꼽힌다. 과대한 디자인을 통해 제품을 차별화하려는 현재의 제품 시장에서 최소한의 디자인이 지니는 의미는 각별하다.
모나미 볼펜 153(1963)• 디자이너: 송삼석(모나미 회장)
기술 독립
50여 년 전 우리나라는 경제개발 5개년이 막 시작되던 시기였다. 모든 것이 궁핍했던 시절이었으며 필기도구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의 필기구는 해외에서 수입한 고가의 만년필과 잉크를 펜촉에 찍어 쓰던 펜대, 저급한 품질의 연필, 벼루에 먹을 갈아 쓰던 붓이 전부였다.
해외에서 수입해 들여온 볼펜은 일반인들에게는 사치스러운 필기구로 구경조차 하기 힘들었던 고급 필기구였다. 만년필은 쉽게 잉크가 새어 나와 옷에 얼룩을 묻히기 일쑤였고 잉크를 찍어 쓰던 펜대는 항상 잉크를 가지고 다녀야 하며 가끔씩 책상에서 넘어뜨리면 뒤처리가 힘들어지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연필 역시 흑연의 품질이 일정하지 않아 연필심은 수시로 부러지고 종이를 찢기 일쑤였다.
볼펜은 1938년 헝가리의 한 기자가 개발했다. 취재 기사를 작성하던 중, 펜이 자주 말라 버려 낭패를 보다가 스스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필기구 개발에 착수했다. 그가 개발한 초기의 볼펜은 윤전기 잉크를 담은 긴 대롱에 펜을 끼어 사용하는 것이었고 오늘날과 같은 볼펜의 형식은 1943년 그가 영국에서 특허를 얻은 것으로, 대롱 끝에 금속의 볼과 이를 감싸는 홀더를 결합해 유성 잉크가 조그만 금속 볼에 뒤덮여 자유롭게 종이 위를 지나면서 그 흔적을 남기는 방식이었다. 사업적으로 이를 크게 성공시킨 것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빅(Bic) 볼펜으로 이전에는 수십만 원을 호가하던 볼펜이었다.
1950년대 후반 1000원가량으로 그 제조 비용을 낮추면서 고급스러운 필기구에서 서민용 필기구로 인식의 전환을 가져오게 했다. 그러나 그 볼펜의 제조 비용을 최저로 낮추었음에도 당시 우리나라의 경제 수준을 고려해 봤을 때 빅 볼펜은 아직도 일반 서민들이 구입해 사용하기에는 매우 부담스러운 가격대였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처음으로 1963년에 볼펜을 제작, 판매한 회사가 광신화학공업사였다.
이 회사는 설립 초기에 일본의 문구류를 수입해 판매를 시작하다가 직접 물감과 크레용을 제조, 판매하면서 사업적 기반을 마련했다. 볼펜 제작은 다른 문구류와는 달리 당시에는 첨단 금속 소재와 정밀 제조 기술을 필요로 했지만 당시에는 이런 첨단 기술을 국내에서는 보유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의 기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볼펜의 개발 초기에도 일본의 볼펜 제조 회사는, 자신들의 고유한 기술을 제공하는 것에 난색을 표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기술제휴가 이루어졌다. 그 결과 우리에게 익숙한 ‘모나미 153’ 볼펜이 비로소 국내에서도 제조, 판매되기 시작했다.
시장에 출시되자마자 볼펜은 거의 폭발적으로 판매됐다. 버스 요금 정도밖에 안 되는 저렴한 가격으로 첨단의 필기구를 구입해 쓸 수 있어 별다른 경쟁 제품도 없이 한동안 한국의 필기구 시장을 석권하며 현재까지 누적 판매량이 36억 자루에 이르고 있다. 반세기가 넘도록 초기의 모습 그대로 한국의 대표 필기구로 자리 잡은 모나미 볼펜이 아직까지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디자인 유전인자를 분석해 보려 한다.
디자인 절제
이 볼펜을 구성하는 부품은 단지 육각형의 플라스틱 몸통, 원추 모양의 촉 덮개, 볼펜 촉을 앞뒤로 밀어내는 조작 노크, 노크의 조작에 필요한 코일 스프링, 잉크 심으로 이루어졌다. 불과 5개의 부품만으로 보관하기 편하고, 끊김 없이 필기를 할 수 있고, 잉크가 흘러내리지도 않고, 책상 위에 올려놓아도 아래로 굴러 떨어트릴 염려도 없고, 더욱이 종이에 글씨를 쓰면 뾰족한 펜촉에서 손끝으로 전달되는 섬세한 촉감도 선사해 준다. 더욱이 이 모든 것을 200원이라는 가격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점 또한 매우 매력적이다. 가격과 성능비 관점에서 보아 최고의 필기구로 꼽을 만하다.
그럼 반세기가 넘도록 모나미 볼펜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한 주요 요인은 무엇일까? 그 첫째는 바로 ‘작은 것이 아름답다(Less is more)’라는 명제가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독일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였던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 1886~1969)의 디자인 철학으로, 현대 건축 디자인에서 장식을 배제하고 기능에 충실하려는 현대 건축의 대표적인 패러다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그의 디자인 철학은 기업의 경영이나 국가 경제의 원리, 생물 생존 법칙의 원리로 다양하게 확장, 적용되고 있다.
이 원리의 핵심에는 바로 ‘지속’과 ‘과유불급’이라는 키워드가 내재되어 있다. 예를 들어 지구상에서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생존하고 있는 생물체는 거대한 몸집을 지닌 생물이 아니라 오히려 단순한 기능만을 하는 작은 크기의 생물이라는 점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생존을 위해서는 가급적 최소한의 몸집과 최소한의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이 매우 유리하다. 모나미 볼펜도 역시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부품만을 가지고 50년이 넘는 시간을 극복하며 아직까지 우리의 필통 속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유심히 볼펜을 관찰해 보면 철저하게 장식적인 요소가 배제되어 있다. 그 흔한 표면 장식도 찾아볼 수 없다. 여성용, 청소년용, 회사원용으로 사용자를 구분해 각각의 소비자 기호에 맞춰 비용이 안 드는 그림 장식 정도는 허용할 듯하지만 제품의 다양화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제조 회사의 고집이 엿보인다. 단지 검정, 빨강, 파랑 색상의 차이는 볼펜이 무슨 색인가를 암시하는 용도로만 사용되고 있다. 무분별한 장식의 사용이 오히려 제품의 생명을 단명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모나미 볼펜은 이를 적절하게 보여 주고 있다.
디자인 평등주의
우리가 사용하는 많은 제품들은 디자인 개발 초기부터 사용자를 누구로 할지 설정하게 된다. 흔히들 기업 경영에서 사용되는 용어들, 예를 들어 유통이나 전략, 타깃, 마지노선 등과 같은 경영 용어들은 군사 용어에서 유래된 것들이 많다. 이러한 용어들은 항상 경쟁과 승리를 위해 사용된다. 시장을 전쟁터로 비유하기 때문이다. 1, 2차 세계대전의 경험은 인류에게 결코 씻을 수 없는 인간 살상의 고통을 가져다주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고도의 경영 기법과 제조 기술을 인류에게 선사했다.
세계 각국의 유수한 기업이 이러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그대로 전수받게 되고 전쟁터는 아니지만 생산과 유통, 소비 시장에서 상품과 서비스로 다른 의미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상황이다. 소비 시장에서 승리는 기업의 존속을 약속하는 반면 패배는 기업의 생존에 결정적인 위협이 된다. 이러한 시장의 원리는 이제 너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무한 경쟁에 내몰리는 기업들은 사활을 걸고 시장이라는 전투에서 승리를 쟁취하려고 한다. 물론 자본주의경제체제에서 이러한 시장의 원리를 부정하게 되면 그 기업은 결코 존속할 수 없다.
그러나 특정한 누군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하면 상황은 좀 달라질 수 있다. 나이에 상관없는, 성별과 무관하게, 사회적 계층을 구별하지 않는 제품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경제적 가치에 우선해서 사회적 가치를 지니게 된다. 모나미 볼펜은 소비자들을 구별하거나 소외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상적인 제품과 확연하게 구분된다. 제품 앞에서 사람들이 평등해질 수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하지만 모나미 볼펜은 사람들에게 항상 평등한 소비를 제공한다. 우리가 흔하게 접하는 제품들은 저마다의 특장점을 내세우며 많은 예산을 들여 광고와 홍보를 하고, 어떻게 하면 다른 제품과 차별화해 궁극적으로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지 온갖 전략을 다 쏟아내고 있지만 모나미 볼펜은 이들 제품과 확연하게 구분된다. 모나미 볼펜이 평등주의에 입각해 경쟁과 차별이 아닌 모든 사람들을 위한 필기구로 인식되는 한, 시간을 이겨가는 몇몇 안 되는 제품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