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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뭍고 땅위에 쓰러지다.
<급보!
무적검 일행의 종적 발견.
현재 북경을 나서 숭산(崇山)으로 향하고 있음
. 총 인원은 십사 인, 남 십일 여 삼. 모두 고수들임. 탕마령주님의 결단을...
정천밀조(正天密組) 제 삼십사 호>
전서구는 첩지를 달고 서쪽으로 날아갔고..
. 북경에서 숭산으로 이르는 모두 길목으로 탕마사십사객이 집결하고 있었다.
* * *
숭산 소실봉에 있는 대 소림사의 어느 밀실.
십여 명의 인물들이 모여서 숙의를 거듭하고 있다.
{황녹천에게서 연락이 왔소. 무적검의 행방을 탐지했다고 하오.}
{그들은 무적검을 요격할 생각이겠지요?}
{그렇소. 무적검은 숭산으로 오고있소. 대단한 위협이 아닐 수 없소.}
{그럼 우리도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지 않겠소?}
{그렇소. 우리가 비록 황녹천과 삼수의 힘을 빌린 약점이 있기는 하지만
우린 정통의 명문정파요.
그들을 무조건 쫓아갈 수는 없소.
이쯤에서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거취를 확실히 정해야 할 지도 모르오.}
{무적검의 능력은 어느 정도요?}
{제자들의 보고에 의하면 그의 무공은 추측이 불가하오.
단지 불패도라는 여인의 무공이 알려졌지만,
가공하여 우리중의 어느 누구도 일초지적이 될 수 없을 정도라고 하오.}
밀실 안은 찬물을 끼얹은 듯이 숙연해졌다.
{음! 우리는 그럼 일단 여기에서 몸을 사리도록 합시다.
그들 두 세력 모두 정파라고 할 수 없는 곳이 있으니
그들 중 약해진 쪽을 합공하여 사파로 몰면 무림의 정의는 우리가 지키는 것이 될 것이오.}
아무도 그의 말에 이의가 없었다.
이미 절세고수가 나타나지 않는 구파일방이 계속 명성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이런 처세술 때문인지도 모른다.
× × ×
-요월정(遙月亭),
달과 더불어 노닐 수 있다는 요월정은 늦가을 지는해를 내려다 보고 서있었다.
황혼이 곱게 나래를 접고 물가를 날아다니는 철새들은 제 집을 찾는다.
한데 언제부터인가 요월정의 내전에는 두 사람이 마주앉은 채
나직한 음성으로 무슨 말인가를 주고 받고 있었는데...
그들 중 한 사람은 바로 과거 정천수호군주였던 왕혜려가 아닌가?
정천수호군주 왕혜려!
그리고 정천수호군의 부군주였던 북궁헌!
그들은 탕마사십사객의 마지막 두 명이 되어 버리지 않았던가?
과거 등마제에서의 참혹한 패배를 통감하고
스스로 탕마사십사객의 일원이 되기를 갈망했던 것으로 알려진 왕혜려...
한데 지금 그녀는 한 사람을 향해 공손히 부복해 있는 것이 아닌가?
황혼의 붉은 후광을 등에 업고 막연히 동정호의 수면을 내려다 보고 있는 면사인...
그는 일신에 눈처럼 흰 백의를 걸치고 있었으며
역시 눈처럼 희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한데, 그의 손, 섬세하며 아름다운 옥수는 분명히 여인(女人)의 손이었다.
한데 그 손에는 백옥처럼 은은히 백광이 흐르고 있는 것이었다.
그 모습은 마치 황혼에 조화를 이루어 보는 이로하여금
말할 수 없이 신비로운 환상의 세계로 끌어가는 묘한 분위기를 표출하고 있었다
. 그녀의 투명한 눈망울 역시 백광을 띠고 있었다.
문득 백의면사여인의 입에서 무감정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가 그렇게 대단한 인물이던가?}
독백하듯 중얼거린 그녀는 시선을 들어 멀리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았다.
{대체 몇 명의 탕마객들이 그에게 당했는가. 사십사객중에서...}
이 물음에 왕혜려는 더욱 허리를 깊숙히 숙였다.
{이미 반 수 이상이 당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반 수 이상이...?}
면사여인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를 척살하기 위해 탕마사십사객 중 이십 명이 함께 움직였으니..
. 곧 좋은 소식이 오리라 기대가 됩니다.}
왕혜려의 얼굴에 땀방울이 맺히고 있었다.
(무적검! 그 사내, 텁텁한 분위기의 절세 미남자!
나는 지금 그를 죽이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던 최초의 남자를...!)
백의면사녀가 그녀를 향해 물었다.
{너는 그를 만나본 적이 있다고 하던데, 그때의 느낌은 어땠나?}
{권태로운 표정의 종잡을 수 없는 신비한 고수였습니다.}
{탕마사십사객의 최고수인 네가 그를 상대한다면?}
{얼마를 버틸 수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패한다는 것은 기정사실입니다.}
왕혜려는 깊이 부복하며 말했다.
이 백의면사녀는 그녀로서도 처음 대하는 탕마령주(蕩魔令主)이다.
정천보에서의 서열이 십위 이내인 지고한 인물이기에 왕혜려는 긴장하고 있었다.
정파의 모든 힘을 결집시킨 정천보에서의 서열이 십위 이내라면
실로 엄청난 신분의 인물인 것이다.
지금까지 왕혜려로서도 본 적이 없는 탕마령주인 것이다.
무림에 알려진 바에 의하면 정천수호군주 왕혜려라는 존재도 엄청난 것이었다.
하나 정천보의 진정한 힘에는 이렇듯 가공할 인물들이 상당수가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문득, 탕마령주의 독백과 같은 중얼거림이 이어졌다.
{무적검! 그를 보고 싶다.}
{...!}
{탕마사십사객들로서도 상대할 수 없는 인물이라면...
제 사십사객인 너도 필패를 장담하는 자라면...}
탕마령주의 눈에 신비로운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왕혜려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령주께서 나선다면... 무적검을 상대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 그 남자...무적검! 등천마세의 주인이라지만...
령주는 탕마사십사객과는
비교할 수 도 없는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존재라고 하지 않은가?)
그녀는 탕마령주의 손과 눈빛에 감도는 백광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것은 확신이었다. 그리고, 탕마사십사객의 령주라는 사람에 대한 믿음이었다.
(그는 죽겠지! 내 마음에 한 자락의 그림자를 드리운 채...)
비록 왕혜려는 처음 대하는 탕마령주이었지만
그녀의 몸에서 풍기는 신비한 기운에 완전히 압도당하고 있었다.
{본 령주가 직접 상대할 것이다.
그러니 그대들은 살아있는 탕마객들을 이끌고 그에게서 물러나도록 하라!}
면사인의 말은 상대를 짓누르는 힘을 담고 있었다.
한데 그때였다.
말하던 면사여인의 눈에 번쩍 기광이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그 빛은 눈이 부셔져 버릴 듯한 백광
, 왕혜려의 시선이 탕마령주의 눈을 따라 한 곳으로 향했다.
바로 강변이었다.
한데 그곳에 언제 나타났는지 한 사람이 저녁 강의 정경에 취한 듯 서 있었다.
백의를 표표히 날리며 황혼을 가슴에 포용한 채
일렁이는 물결을 한 없이 바라보고 있는 청년
, 대체 누구이기에 탕마령주의 시선을 끌고 있는 것인가?
왕혜려는 기겁할 듯 놀랐다.
(저 사람! 그 사람이 어떻게 이곳에...
한데... 령주께서 어떻게 그를 알아본단 말인가? 아아...)
탕마령주, 그녀는 마치 빨아들일 듯이 청년을 응시하고 있었는데...
과연 그녀의 두 눈에는 은은히 긴장의 빛이 흐르고 있었다.
{무적검!}
왕혜려는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탕마령주의 시선은 계속 청년을 향해 머무른 채
동공에 떠올라 있는 백광을 강렬하게 발하고 있었다.
{느낄 수가 있다. 저자야말로 무적검일 수 밖에 없는 인물이며..
. 아니라면 장차 우리의 가장 무서운 적수가 될 인물이다.}
무서운 본능이었다
. 정상적인 사람으로서 어찌 동물과 같은 이러한 본능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갑자기,
쿠쿠쿵!
요월정 지붕위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정자의 밑으로 굴러떨어지는 뭉뚝한 몸체,
반쯤 날아가 버린 머리, 절단된 사지!
끔직한 모습의 동체였다. 그런데도 여전히 몸을 꿈틀거리고 있었다.
순간 왕혜려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렸다.
{이럴 수가... 무적검을 척살하기 위해 나섰던 북궁헌이...!}
충격이었다. 끔직했다. 그녀도 저와 같은 괴물의 몸이라니 절로 몸이 떨렸다.
그녀도 영혼을 잃은 탕마사십사객의 한 사람인 것이다.
등마제에서의 참패에 대한 책임으로 강제로 제령(除靈)당하고
눈앞에 꿈틀거리고 있는 북궁헌과 함께 약물로 단련되어진 마물인 것이다.
사태는 명확해졌다.
처참한 상태에서 바닥에 꿈틀거리고있는 북궁헌은 무적검에게 당한 것이 분명하다.
황혼을 말없이 주시하고 있는 청년,
그는 다름 아닌 소일초였던 것이다.
무적검이라는 또하나의 이름으로 한천이기의 등천마세에 이름을 빌려주고 있는...
그는 느끼고 있었다. 바로 저 멀리 요월정에서 풍겨져 오고 있는 기운을...
(묘한 기분이 드는 군! 마치 죽은 지 오래된 시체를 대하는 듯한 느낌... 한천이기보다 더한데...)
탕마사십사객들에게서 느낄 수 있었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느낌이었다.
의외의 수확이라면 수확이었다.
탕마객들의 배후에 이런 인물이 도사리고 있으리라고는 상상을 못한 것이다.
문득 그 시체같은 느낌의 인물이 요월정를 떠나 가까이에 접근하고 있음을 소일초는 느겼다.
그렇게 느끼는 순간 이미 그 인물은 등에 와 닿고 있었다.
그리고,
{그대가 바로 무적검인가?}
무심한 음성이 소일초의 전신으로 흘러들었다.
바로 탕마령주라는 여인의 것이었다.
× × ×
돌연,
{움직이지 마라!}
무미건조한 이 음성은 바로 왕혜려의 등쪽에서 들려오는 것이었다.
그녀의 뒤에서 측량할 수 없을 정도의 강렬한 기운이 흘러오고 있었다.
태산을 바수어 버릴 듯한 강맹한 기운, 그녀는 단지 그것만을 느끼고 있었다.
검에 찔리는 것이나 심장을 관통당하는 것도 두려워 하지 않는
탕마사십사객의 최고수인 그녀이나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한 걸음이라도 움직인다면 몸이 다치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폭발해 없어져 버릴 것 같았다.
이것은 단지 느낌이었지만
그녀의 등쪽에 선 인물은 그만큼 가공한 기도를 풍겨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바로 원천기였다.
그리고, 왕혜려의 앞에는 다시 많은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치렁치렁한 백발의 미녀와 다른 두 미녀,
그리고 사마귀와 다섯 도객,
그들의 무기와 손은 일제히 그녀를 향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녀가 탕마사십사객 중의 하나라는 것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는 듯 했다.
(무서운 고수들! 탕마사십사객이면 천하의 어떤 세력보다 강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어디서 부터 잘못된 인생인지는 몰라도 그 인생의 종지부를 찍기로 마음을 먹었다.
히압!
그녀의 몸이 기합과 함께 뒤로 젖혀졌다.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원천기의 손에서 검은 묵룡이 뛰쳐나오면서 그녀를 휘감아 버렸다.
파아아아!
끼아아악!
섬찟한 비명과 함께 묵룡에 감긴 그녀의 몸이 피보라로 변하면서
묵룡과 함께 요월정 지붕을 뚫고 나가 밖으로 흩어졌다.
원천기는 아예 등천마룡으로 그녀의 몸을 분쇄시켜 버린 것이다.
그렇게하여 천하의 재녀 한 사람은 땅속에 스며들고 말았다.
꽃다운 청춘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피로서 점철된 그녀의 삶은 끝을 맺고 말았다.
모든 운명은 결국은 자기가 선택한 것인 것을...
그녀는 어느 순간에 잘못된 선택을 했던 것인가...
요월정 주변의 꽃들은 그녀의 피와 기름으로 봄이 오면 다시 피어날 텐데...
그녀는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
사은상의 눈물 한 방울과 함께...
× × ×
{너는?}
{나는 탕마령주다.}
소일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나는 무적검이다.
탕마사십사객의 뒤에 너같은 여자가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너 또한 괴물이냐?}
탕마령주의 눈에서 하얀 광채가 쏟아졌다.
{나는 그런 것은 모른다. 단지 이번에 무적검이란 자를 죽이기 위해 나왔을 뿐이다.}
순간 그녀의 백옥같은 손에서 역설적으로 붉은 혈강(血강)이 뻗쳐나와 소일초의 머리를 쳐왔다.
{혈옥강(血玉강)!}
소일초의 놀람에 찬 외침이 튀어나왔다.
-혈옥강(血玉강)!
이것은 혈옥수(血玉手)가 극에 이른 후에 다다를 수 있는 무공이었다.
그리고 혈옥수는 다름아닌 사옥상(史玉祥)이 익힌 무공이었다
. 십이성에 이르면 가격당한 상대의 동공과 뇌가 파열되고 혈맥이 가라진다는,
무림에서 오직 사옥상만이 사용한 무공이었다.
신지가 부족한 그녀를 위해 천수마영 사진성이 특별히 연구하여 익히게 한 무공...
그녀는 오직 동작을 통해서만 익힐 뿐 글과 말을 통해 익힐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무공을 익히기에 아주 적합한 몸을 가지고 있었기에
사진성은 번거로움을 마다않고 키웠던 것인데...
{너는 사옥상이구나! 오! 맙소사, 벌써 마물이 되고 말았어!}
소일초의 머리를 사은상의 혈옥수가 그대로 관통했지만 소일초는 여전히 말하고 있었다.
바로 혈기자의 이환공(移幻功)이 펼쳐진 때문이다.
탕마령주는 그의 이 괴이한 무공에 어리둥절 하더니 소매를 떨쳤다.
순간 쫙! 하는 소리와 함께 소매속에서 아홉개의 영롱한 구슬이
중간중간에 달린 채찍이 튀어나왔다.
그 채찍은 뱀처럼 영활하게 움직이며 소일초의 목을 감아왔다.
소일초는 난감했다.
탕마령주가 사옥상이 맞다면 죽여서는 안된다.
하지만 탕마령주일 뿐이라면 지금 단 일초로 죽여야 하는 것이다.
인지와 중지를 모아서 검결을 맺었다.
뻗어오는 채찍은 그냥 말을 수는 없다. 피하든가 되돌리든가 해야 한다.
피잉!
일초검공이 위력을 발휘하자 채찍은 방향을 바꿔버렸다.
순간 탕마령주가 채찍을 놓아버리며 몸을 돌렸다
. 한데, 놀랍게도 그녀의 오른 발 뒤축이
어느새 소일초의 머리를 찰 정도로 가까이 와 있었다.
천하의 소일초도 간담이 서늘했다.
급히 몸을 숙여 일곱걸음이나 자리를 옮겨서야 탕마령주의 발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탕마령주는 초식무공의 대가였다.
그 현란한 수법은 이루 말로 헤아릴 수 없을 만치 찬란하고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어,
초식과 초식의 연결에 전혀 빈틈이 없었다.
적절한 초식은 절세의 무공이다.
그녀의 몸이 풍차처럼 돌아가며 권장지를 뻗어내고
거리를 측정할 수 없는 그녀의 기묘한 각법은
어느 일파에서 흘러나온 무공인지도 알 수 없었다.
손은 손대로 발은 발대로...
심지어 머리와 어깨도 그녀의 무기가 되어 예상치 못한 기초를 발휘해 냈다.
발은 슬쩍 움직이면서도 땅에서 흙먼지와 함께 돌을 차보내기도 했고,
때로는 내공이 결집된 무서운 혈강이 초식과 초식사이에서 뻗어나오기도 했다.
사옥상은 소일초로서도 정말 힘든 상대였다.
일초검공으로 상대를 죽일 수도 없는 데...
검지로 펼치는 일초검공을 그녀의 현란한 수법이 교란시키면서
마치 몸이 수십 개인 듯 사방에서 소일초를 공격해왔다.
(서로 다른 초식무공과 기공을 이렇듯 배합하여 절묘하게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니...
이 여자는 사옥상이 아니다. 사옥상이 이런 무공을 가지고 있을 수는 없다.)
그녀의 경탄할 무공의 현란함에
넋을 잃은 채 탕마령주의 공격을 받아내던 소일초는 마음을 정했다.
자기도 일초검공을 포기하고 오직 초식으로만 맞서 보기로...
탕마령주의 일권을 피했다 싶은 순간
탕마령주의 스쳐지나간 몸에서 발이 밑에서 원을 그리며 치솟아 소일초의 가슴을 찼다.
일초검공을 포기하자 마자 나타난 결과였다.
{윽!}
충격이 크긴했지만 정통으로 격중되지 않아서 견딜 만 했다.
순간 탕마령주는 체바퀴처럼 몸을 동그랗게 말면서 두 손으로 그의 눈을 찔러왔다.
급히 고개를 돌렸지만 두 손가락은 그의 머리를 스치면서 머리카락을 날렸다.
마교칠십이절기고 혈기자에게 사기쳐서 배웠던 무공이고 간에 모두 사용해 볼 틈도 없었다.
바람처럼 움직이는 그녀에게 일초검공 외에 어떤 무공으로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소일초도 그녀에게 강렬한 투지를 발휘하여 자신이 보고 듣고 배웠던
모든 수법들을 총동원했지만 두들겨 맞기만 했다.
그의 몸이 금강체가 아니었다면 벌써 죽고 말았을 것이다.
탕마령주가 자신의 앞에서 튀어오르며 무릎을 세웠는데 공격은 팔꿈치로 했다.
그의 머리에 팔꿈치가 내려 찍힐 판이라
그의 몸이 수평으로 뉘여지며 탕마령주위 겨드랑이를 발로 찼다.
발은 허전한데 다시 자기의 명치에 꽂히는 그녀의 발...
소일초는 정신을 차릴 수도 없었다.
공격이 시작된 후 우박처럼 잠시의 틈도 주지않고 몰아치는
이러한 무공에 치를 떨지 않을 수 없었다.
몇 번의 공격을 몸으로 받아내기로 마음을 먹고 이환공을 일으켰다.
그 사이에도 탕마령주의 만근같은 공격을 수 차례나 받았다.
이환공이 효과를 발휘하여 탕마령주의 공격이 허공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신비의 무공 이환공도 잠시, 탕마령주는 떨어져 있던 채찍으로 그의 몸을 휘감았다.
신비의 무공 이환공의 최대 단점은 이순간에 드러나고 있었다.
잠시 동안 효력을 발휘한 후에는 불이 꺼지듯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끌어올려야 하는 것인데 소일초는 아직도 그런 점을 모르고 있었다.
여태까지 소일초가 이환공을 오랫동안 펼쳐야할 만큼 강한 상대를 만나지 못한 때문이다.
그는 다시 흠뻑 두들겨 맞으면서 몽롱하게 염두를 굴렀다.
(이 여자를 이기자면 특이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틈을 주고 같이 치는 것이다.)
그는 수비를 풀면서 틈을 보였다.
탕마령주의 수족은 짜맞춘 듯이 그 틈을 파고 들때 그의 손도 똑같이 뻗었다.
그러나 그 수법도 허탕이었다. 자기는 맞아도 상대방은 맞아주지 않는 것이다.
(하는 수 없다. 일초검공아끼려다 소일초가 가겠다.)
{이얍-!}
우렁찬 기합과 함께 그의 손에 마황검이 들려졌다.
마황검이 그의 몸을 한바퀴 둘렀다. 마침내 일초검공이 발휘된 것이다.
검에서는 지금껏 맞은 분노가 폭출되는 듯 폭풍같은 기류가 일어나며 사방을 휘감았다.
탕마령주도 일초검공에는 깜짝 놀란 듯 검의 세력권 밖으로 벼락처럼 물러났다.
그러나 전세는 순식간에 역전...
탕마령주는 일초검공의 세력권을 벗어나지 못해서 기류에 싸이고 말았다.
그녀는 기류안에서 발버둥 쳤지만 몸은 점점 조여들 뿐이었다.
일초검공!
과연 무적이었다.
소일초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내공에서는 딸릴 것이 없다.
마침내 바람같은 탕마령주를 검으로 가두어버린 것이다.
발버둥치는 탕마령주...
소일초는 보면볼수록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언제 자기가 그처럼 두들겨 맞은 적이 있었던가? 전신이 욱신 거릴 정도였다.
그리고 지금 검에 갖혀있는 저 여인 또한 탕마사십사객보다 더 무서운 괴물일 것이다.
그의 검에서 면도날같이 예리한 기운이 움직여 탕마령주의 몸 사지근육을 절단해 버렸다.
살아는 있어도 수족을 전혀 사용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경력을 움직여 그녀의 경골을 부수어 버렸다.
그리하여 소일초는 분을 풀었고
탕마령주는 풀기없는 빨래처럼 전신에 검붉은 피를 흘리며 무너졌다.
괴물이고 뭐고 간에 그지경이 된 이상 몸밖에 꿈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녀의 목에서는 그륵그륵 가래끌는 소리가 울려나왔다.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계집이길래 그리 지독해.}
소일초의 손에서 장력이 격출되면서 탕마령주의 면사를 날려버렸다.
{헉...!}
오...세상에! 그녀는 그의 처음 짐작대로 정말 사옥상이었다.
얼굴은 그다지 변하지 않고 그대로 였다.
자신이 정천보에 잠입하여 구하고자 했던 그녀가
벌써 탕마령주라는 신분으로 마물이 되어 나타난 것이었다.
목소리마저 변해 버리고 태도마저 달라져 있었다.
사옥상은 두 눈에서 백색광채를 뿜으며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입에서는 연신 꺼르륵 소리가 새어나오는데...
소일초는 다급해 졌다.
고개를 돌려 멀리 있는 요월정을 보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 취풍녀도 한천이기도, 사은상도...
그가 사옥상에게 두들겨 맞고 있을 동안 그들이 사라진 줄도 모르고 있었다.
{일이 이렇게 꼬이다니...
그들이 그렇게 빠른 시간내에 사람을 이렇게 괴물로 바꾸어 놓을 수 있을 정도란 말인가?}
그래도 몸을 산산히 흩어버리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그랬더라면 탕마령주가 사옥상인 줄도 모르고 정천보에서 찾아헤맸을 것이다.
사옥상이 그를 많이 때려서 화를 돋군 것이 어쩌면 잘 된 일이었다.
풀뿌리가 뽑혀서 날아가고 바위가 깨뜨려졌으며
땅이 패인 격전장에서 그는 그녀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그처럼 덜렁이가 의술을 알리는 없다
. 단지 그의 손에 있는 백송균화의 신비한 축복에 의존할 뿐이었다.
그는 먼저 사옥상의 체질을 바꾸어 놓은 약물을 제거하고
그녀의 체질을 정상대로 돌리는 데 착수했다.
그의 손은 생명을 담고 있는 손
, 뜻에 따라서 사옥상의 체질은 바꾸어 지고있었다.
서서히 아주 서서히 밤은 깊어가는데 그의 일행들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밤바람이 차가운데 마땅히 옮길 만한 장소도 근처에 보이지 않는다.
요월정도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사옥상의 체질을 돌려놓은 그는
그녀의 정신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기에 감히 몸을 다 치료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그대로 두기도 난감했다.
(이럴 때 소아가 있었으면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는 다시 그녀의 몸을 완전히 치료하고 수혈을 짚어 버렸다.
이제 그녀는 마물이 아닌 것이다.
그녀의 체력은 급격히 감소하여 허약하기 이를데 없었다.
그동안 독과 약물을 복용해 왔었는데 갑자기 그 기운이 모두 제거되어 버린 때문이었다.
그는 자꾸만 사방을 둘러보면 일행을 기다리다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것들이 몽땅 어디로 꺼져버린 거야! 하나 쯤은 남아있었어야지.}
* * *
이때 한천이기와 오 인의 도객,
그리고 사마귀와 사은상, 취풍녀 등 소일초를 제외한 모든 일행은
사십여 리 떨어진 낡은 절에서 치열한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들은 소일초가 사옥상과 싸우기 시작하자 마자 나타난
흑의인들과 싸우면서 이곳까지 온 것이었다.
그들의 수효는 이백에 가까웠다. 거기에다 모두가 마물들이었다.
탕마사십사객만큼 고강한 무공을 지니고 있지는 않았지만 몸체는 그들과 똑 같았다.
생사를 돌보지 않고 달려드는 그들을 열 세 사람은
서로 등을 맞대고 공격하여 백 수십 명을 죽였다.
다섯 명의 백인도객들의 도는 그들의 몸을 갈갈이 찢어놓는 신위를 보였으며,
한천이기는 그들의 몸을 풍선처럼 터뜨리고 있었다.
이 싸움의 최고 수훈자는 백인도객들이었다.
한천이기의 방법도 공력이 많이 소모되는 것이었기에
끝없이 펼쳐내기에는 무리가 있었으나
그들의 도는 신들린 것처럼 끝없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사마귀의 무공은 주귀를 제외하고는 마물들을 상대하기에 적당치 않았다.
그들의 매화지나 대자비수 등의 무공은 무용지물보다는 조금 나을 뿐이었다.
원천기가 소리쳤다.
{이건 아무래도 조호이산(鳥虎移山)같아.
지금 소일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음이 틀림없어.}
{그가 감당하지 못할 일이 뭐가 있겠어요? 염려놓아요!}
한천녀가 말했다.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야.
그들도 우리에 대해 상당히 알고 있는 것이 틀림없어. 이봐요, 조형!}
한천녀가 소리쳐서 백인도객 중의 한사람을 불렀다.
{왜 그러시오.}
{나머지 놈들을 당신들끼리 다 감당할 수 있겠소?}
{까짓 한 번 해보지요.
이 정도도 해결 못한데서야 어디 백인장의 사람이라 할 수 있겠소?}
{좋소, 그럼 우리는 먼저 가도록 하겠소. 빨리 뒤쫓아 오도록 하시오.}
원천기는 먼저 몸을 날렸다.
한천녀와 취풍녀가 잇달아 몸을 빼냈고,
사마귀는 도망한다는 소리에 기뻐서
무공이 상대적으로 약한 사은상을 붙잡고 부리나케 달려버렸다.
* * *
한편 소일초는 툴툴대다가 갑작스런 정적을 느끼고 모든 신경을 곤두세웠다.
일장을 날려서 작은 구덩이를 파고는 갈대넣은 다음 사옥상의 몸을 엎어서 뭍어버렸다.
그의 신경은 무서운 위험을 예고하고 있었다. 이것은 전에 없던 일이었다.
사방에는 바람소리만 들릴 뿐 가을의 그 흔한 벌레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강가에 서있는 삼 장 높이의 바위로 다가갔다.
순간 언제 나타났는지 한 명의 중년인이 그 바위 옆에 서 있었다.
아무런 감정도 느낌도 보이지 않고 서있는 중년의 사나이...
적포(赤袍)를 몸에 걸치고 섭선을 접어쥐고 있었다.
그의 몸에서 구름처럼 피어나는 기도로 인해서 풀벌레 소리마져 끊인 듯 했다.
그리고 바위의 다른 쪽에도 한 명의 중년인이 모습을 더러냈다.
어깨에 걸린 검... 그리고 눈같이 흰 백의...
놀랍게도 그는 미쳐버렸던 등천마세의 이교주 마금석(馬金錫)이었다.
최상승의 무공인 신형검기(身形劍氣)를 익힌 검객,
그의 모습은 전과 같았으나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있었다.
말없이 살기가 팽창하여 오르고...
소일초는 섭선을 든 적포인에 대해 감탄하고 있었다.
그의 가공할 기도는 마금석에 비해 오히려 나았기 때문이다.
마금석 역시 전과는 비할 수 없을 만치 강렬한 살기를 일으키고 있었다.
문득,
{무적검! 탕마령주까지 제거해 버렸다니 놀랍군!}
사방에서 들려오는 듯한 신비한 음성이 있엇다.
소일초는 급히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음성의 주인은 찾을 수가 없었다.
(육합전성(六合傳聲)! 그렇다면...!)
소일초의 눈이 번쩍 빛을 발했다.
그렇다. 사방에서 울려와 마치 동굴 속에 들어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그 음성은
육합전성으로 발해진 것이다.
그리고 물론 그 음성의 주인은 중원제일의 신비인이고
녹림맹의 맹주인 황녹천(黃綠天)의 음성이었다.
소일초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황녹천이 여기에 나타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것이었다.
중원의 정보상인이라는 황녹천, 그는 수많은 무림의 비밀에 관여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로부터 많은 이권을 챙기는 인물이었다.
{앞에 있는 두 사람을 소개하지.
적포인은 무림의 삼현(三賢) 중의 한 사람인 혈군자(血君子)라고 한다!
그리고 그 옆의 검객은 말하지 않아도 잘 알겠지. 마금석이라고...}
황녹천의 말에 소일초는 고개를 끄덕였다.
혈군자 같은 고수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생겨날 리는 없는 것이다.
{아마 너는 여기서 뼈를 묻게 될 거야.}
{황녹천, 장담하지 마라.}
소일초가 웅혼한 목소리로 말했다.
황녹천은 그 말에 충격을 받은 듯 했다.
{무적검, 나를 알고 있었군, 아무튼 잘 싸워보게!}
그 말과 동시에 혈군자의 섭선이 펼쳐지며 그를 베어왔다.
환상처럼 사방의 모든 공간에 섭선이 가득차 버리고 소일초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환상을 이용한 무공이었다. 실체는 어느 것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와 동시에 천지를 갈라놓을 듯 예리한 검기가 섭선들 사이에서 그를 향해 쪼깨왔다.
마금석도 공세를 발동한 것이다.
그것은 실로 완벽한 합공이었다.
거의 같은 순간 소일초의 손에서 마황검(魔皇劍)이 튀어나오며 일초검공이 빛을 발했다.
순간 그의 검에서 기류가 형성되며 모든 사방공간을 감싸는데...
환상이 걷쳐진 자리에 혈군자와 마금석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최초로 일초검공이 이름값을 하지 못한 것이다.
파아아!
갑자기 그의 발밑에서 섭선이 솟아 오르며 그의 몸을 양분하려 했다.
뒤로 몸을 젖히며 섭선을 피하는 순간 등뒤에 싸늘한 느낌이 전해졌다.
즉시 옆으로 몸을 옆으로 비틀었다.
{윽!}
소일초의 입에서 둔중한 신음이 터졌다.
일초검공은 실패하고 등에 마금석의 일 검을 맞은 것이다.
등에서는 비스듬히 맞은 일 검에 피가 번지고 있었다.
금강체인 그도 마금석의 신형검도에 상처를 입고 만 것이다.
(혈군자는 장환술(障幻術)의 달인이었구나. 장환술을 깨뜨리는 방법이 뭐였지?)
그는 허공으로 솟구쳐 오르며 마황검에 모든 공력을 모았다.
일초검공으로 사방을 휘감아 초토화 시켜버리려는 것이다.
일초검공에 걸리기만 하면 살아날 방법은 없는 것이다.
{이얍! 윽!}
기합과 함께 일초검공을 펼치려던 그는 묵직한 신음을 내뱉으며 땅으로 떨어졌다.
허공에 뜬 상태에서 어느새 등뒤에 혈군자의 일장을 맞은 것이었다.
내장이 끊어지는 듯한 통증이 몰려왔다.
떨어지는 그를 향해 다시 무시무시한 검기가 밀려오고 있었다
. 마치 사람은 보이지 않고 마치 유령과 싸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좋다. 보이건 말건 상관치 않겠다
. 마구잡이 검으로 한번 잡아보마 이 쥐새끼같은 놈들!)
그의 마황검이 순간 일만 개의 그림자를 만들며 사방으로 뻗어갔다.
마황검이 잇달아 휘둘러지면서 사방을 기류속에 몰아넣고...
눈마저 감아버리고 소일초는 기분이 내키는 대로 마구잡이로 검을 휘둘렀다.
무시무시한 일초검공에의해 생긴 기류는 사방을 폐허로 만들어 버리고 있었다.
과연, 그의 마구잡이 전법은 효과가 있었다
. 혈군자와 마금석의 공격이 잠시나마 뚝 끊쳤던 것이다.
전후좌우상하 사방팔방으로 내키는 대로 전력을 향해서 검을 펼쳐내었다.
꽝-!
쏴아아아! 추앙!
삼 장 높이의 바위가 박살나서 흩어지고 기류에 닿은 강물은 요동치며 솟아올랐다.
순간 소일초는 머리위가 이상함을 느끼고 검과 머리를 동시에 돌렸다.
{윽!}
머리가 깨어질 듯 아팠다.
어느새 혈군자의 섭선에 두개골이 패일 만큼 심한 상처를 입었다.
하나, 혈군자도 그 순간 운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그의 마황검에서 움직이고 있는 기류에 그대로 휘말리며
허공으로 갈갈이 찢겨져버렸던 것이다.
소일초의 얼굴로는 뜨거운 피가 흘러내려 완전히 혈인(血人)이 된 듯했다.
하지만 지혈할 사이도 없었다.
일초검공이 멈추기만 하면 죽는 것은 자기일 것이다.
푸악--!
그의 검이 혈군자를 찢는 틈을 타서 그의 발밑에서 마금석이 검과 함께 치솟아올랐다.
피하거나 어쩔틈도 없었다. 그의 몸은 두조각이 날지경이었다.
그는 속으로 크게 외쳤다.
(이환공!)
마금석과 그의 검은 소일초를 가르고 올라가 마황검의 회오리 속으로 빨려들어가 버렸다.
그 결과 사람과 검은 당연히 형체도 없이 파열되어 날아가버렸고,
하지만 그 순간 소일초의 어깨에서도 피가 튀었다
. 이환공이 펼쳐지기는 했으나 너무나 창촐간에 펼친것이라 불완전했던 것이다.
상처는 어깨 뿐만이 아니었다.
복부에서 어깨까지 갈라지지는 않았지만 긴 혈선이 그어졌고 내장은 심하게 다친 것이었다.
그의 내공은 흩어져 버리고 내장은 깊은 상처를 입었다.
금강체의 몸이 아니라면 벌써 죽었을 정도였다.
머리에서는 피가 빗물처럼 줄줄 내리며 그를 흠뻑 적시는데...
{황녹천...황녹천을 죽여야!하는데...}
그는 쓰러지고 말았다.
마황검은 다시 그의 손으로 스며들었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 * *
경천동지할 대결투가 몇 시간 사이에
두 번이나 벌어진 강변에는 다시 풀벌레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스스스!
어느 순간 한명의 청의면사인이 솟아오르듯이 강변에 나타났다.
바로 황녹천이었다.
{무서운 놈! 마물이 되어있는 그들을 헤치워 버리다니...}
그는 소일초의 쓰러진 몸에 손을 대 보았다.
{아직 살아있으니... 더욱 가공할 마물로 만들 수 있겠지!}
그는 소일초의 처참한 몸을 옆에 끼고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강변의 그 격전장에는 소일초의 옷이 갈라지면서 흘러내린 그의 소지품들이 피에 젖어있었다.
* * *
그리고 얼마 후 그곳에는 한 사람 두 사람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사은상은 땅속에서 찾아낸 사옥상을 끌어안고 울었다.
눈 만 멀뚱거리는 사옥상은 완전한 백치가 되어있었다.
취풍녀와 한천이기 사마귀 등은 폐허로 변해버린 격전장에서 넋을 잃고 있었다.
사방 수 십여 장을 휩쓸고 부수고 뒤집어 버린 대 혈투는 어떤 것이었는지 상상하기가 쉽지 않았다.
주위에 흩어져 있는 살점들과 뿌려진 피...
현장을 둘러보며 원천기는 중얼거렸다.
{소일초가 죽었단 말인가?}
그의 말에 취풍녀가 강한 도리질을 했다.
{그럴리가 없어요. 그는 결코 죽지 않아요.}
그녀의 말은 소일초에 대한 철저한 신념이었다.
그때 문득,
{저기에 보물이 있어.}
투귀가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모든 사람들의 눈이 그곳으로 쏠렸지만 그들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투귀는 다가가서 몇가지 물건들을 집어들었다.
그 중에는 아홉 마리 용이 새겨진 작은 소도와
오색 영롱한 사리(舍利)가 들어있는 주머니도 포함되어있었다.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고 주귀와 지금의 우두머리나 다름없는 원천기를 바라보았다.
시선이 모두 투귀에게 솔리는데,
원천기와 한천녀, 그리고 도귀와 사은상이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들의 눈에는 눈물이 겉잡을 수 없이 흐르고 있었다.
투귀의 귀신같은 눈이 무엇을 찾아냈는 지 그들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취풍녀가 뒤늦게 서야 그 사실을 깨닫고 울부짖었다.
{그럴리가 없어요. 그분이 돌아가실 리가 없어요. 얼마나 강한지 모두 잘 알고 있잖아요.
누가 그분을 죽일 수 있단 말이예요!.}
그녀의 날카로운 울부짖음에 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천녀가 그녀의 어깨를 감싸며 진정시키고 있을 뿐...
원천기가 겉옷을 벗어서 주변에 떨어져 있는 살점들을 하나하나 주워담기 시작하자
사마귀도 각자의 옷에 살점들과 뼈조각들을 주워담기 시작했다.
{우왝---왝!}
사은상이 심한 구역질을 했다.
어둠 속에서 두 시간이 넘도록 샅샅이 뒤지며
주운 살점들을 한 곳에 모으자 상당한 부피가 되었다.
불타는 처참한 인간의 잔해를 바라보는 그들의 볼에는
무림의 강호들 답지 않게 끊임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취풍녀는 충격이 얼마나 심했는지 실신하길 거듭했다.
사은상이 재를 수습하여 원천기가 벗어준 겉옷에 싸서 손에 들었다.
× × ×
북경의 대운루(大運樓),
자금성으로 향하는 주작로 변에 있는 이 주루는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여느 곳이나 마찬가지로 왁작지껄한 가운데 무림인도 관리도 구분이 없다.
한데 이 시꺼러운 곳에서 방금 만난 두 사람이 구석진 자리에서 소곤소곤 이야기 하고 있었다.
{등천마세의 주인인 무적검이 잡혔다네!}
{그게 무슨 말인가? 무적검이라면 마도사상 최고의 기재라고 소문났던 그 아닌가?}
{중원제일의 신비인이라는 황녹천이 잡았다더군!}
{자넨 이 소문을 어디서 들었는가?}
{지금 벌써 소문이 안 도는 곳이 없어!숭산 태실봉의 정천보로 데려가는 중이라더군!}
그들의 이야기에 주루에 앉은 무림인들 중 귀가 밝은 상당수의 인물들이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 중에는 준미한 소년도 한 사람있었다.
그는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그들에게 다가가 살며시 다시 물어보았다.
사실이라고 한다.
어디서 부터 퍼지기 시작한 소문인지는 모르지만 사방에 쫙 퍼졌다고 한다.
소년은 빠른 걸음으로 주루를 나가 어디론지 사라졌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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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 드립니다
진짜 소문보다 빠른것은 없지??
즐감하고 갑니다.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