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
이순(耳順)의 날을 보내고 있다.
언젠가는 귀가 순해져 어떤 말이든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연초 ‘서로에게 선물이 되어주는 공동체’를 꿈꾸며 실로암사람들의 선물이 되고 싶었다.
연말이 되어 돌아보면 예술뿐 아니라 삶도 사역도 디테일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실로암 공동체에 헌신한다는 것은 당연한 말이지만, 구체적으로 내 시간과 물질과 에너지를 어떻게 사용했는지 아쉬움이 크다.
올해 들어서도 굵직한 일들이 많았다.
첫째는 실로암센터를 행암동으로 이전한 것이다.
2005년부터 17년 간 사용했던 봉선동센터 시대는 실로암사람들 역사에서 큰 획을 그었다.
2011년 도가니 사건이 진행 중이던 때 센터 출입문 강화유리가 박살나기도 했다.
2005년부터 시작한 골목길음악회는 행암동으로 이전하면서 옥상음악회로 이어졌다.
매일 주차 전쟁을 벌이면서도 마당 같은 옥상과 탁 트인 전망에 평화를 누린다.
무엇보다 평생교육원과 나란히 있다 보니 회원들을 자주 볼 수 있어서 참 좋다.
둘째는 1월부터 연제큰꿈 다함께돌봄센터 수탁 법인이 되었다.
연제큰꿈은 광주지역 1호 다돌센터의 역사성을 갖고 있다.
지난여름 옥상음악회에 다돌센터를 이용하는 가영이네 가족들이 찬양하는 모습은 감동이었다.
또한 10년 만에 수어교실 강사로 복귀했다.
"수어교육의 차이 나는 클래스!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수화언어의 새로운 세계가 열립니다. 수화교육의 일타 강사를 통해 만나보세요."라는 광고에 걸맞은 강사가 되기 위하여 준비도 많이 했다.
매주 월, 화요일 밤 시간을 수어교실에 온전히 투자하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마치 봄에 씨를 뿌리며 가을의 추수를 내다보는 농부처럼 수어교실은 사람을 키우는 것으로 더욱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올 한 해 아쉬운 장면도 생각난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모임이 지속되다 보니 회원과 직원 간의 소통의 한계가 드러났다.
무엇보다 목요모임과 청소년캠프가 멈춰 선 것이 뼈아프다.
맨 앞줄에 앉는 일권 형제, 태술 은옥 부부, 기용 형제의 모습과 은혁상 집사님의 아멘 소리도 그립다.
목요모임은 실로암사람들의 심장과 같은 사역이고, 청소년캠프는 한 해를 힘차게 여는 시작이다.
회원과 직원이 함께하며 하나 됨을 경험하는 목마름이 크다.
희망나눔 바자회는 작년에 이어 비대면으로 진행되었다. 희망나눔 특별위원회는 판매물품 선정에서 부터 레몬청과 다시팩, 드립백 작업까지 많은 손길을 필요로 했다. 다행히 시행착오도 줄이고 결과도 좋았다. 5만 원 티켓 한 장을 판매하는데 얼마만큼의 수고가 필요한 지는 해 본 사람만이 안다. 몇 사람의 열심으로는 감당할 수 없지만 '팀실로암'의 이름으로 함께했기에 가능했다. 퍼거슨 감독의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말은 언제나 정답이다.
실로암사람들 대표로서 가장 기쁜 것은 공동체의 성장이다.
조재형 감독의 ‘똥 싸는 소리’를 영화관에서 관람하는 것, 사랑이의 합창단 활동, 영준이 광주장차연에서 상임활동가로 커가는 것, 일용과 한샘이 보치아대회 우승, 경원과 니니가 전국체전에서 사냥한 메달을 가지고 센터를 방문했을 때, 승규와 은정이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장클라의 캄보디아 사역 영상을 볼 때, 김국장 이국장 권국장 진국장이 정책토론회에서 발제자나 토론자로 나설 때 가슴 뭉클하다.
광주 사회복지사대상을 김현아 처장이 받은 것은 기쁘고 감사한 일이다.
29년 동안 실로암사람들에서 헌신하여 복지현장 뿐 아니라 도가니 사건, 세월호 참사, 장애인차별철폐 투쟁에 연대활동을 인정받은 것이어서 더욱 값지다.
2023년을 상상한다.
실로암 공동체는 퍼즐과 같다.
낱개로 떨어져 있을 때는 또렷이 보이지 않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되어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 나갈 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다.
“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안도현)는 시처럼, 실로암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이들 때문에 실로암사람들은 전진해 나갈 것이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사람과 더불어…
(2022.12.31)
(*Photo by 김민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