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가 감기에 걸렸어요. 그래서 오늘 아침부터 과일과 야채 녹즙만 먹
는 단식을 시작했는데 늦어도 열흘 안에 완치될 겁니다. 이런 경험이
여러 번 있었거든요.”
김점두리 (주)엔젤 대표는 감기에다 너무 바쁜 탓에 화장도 못하고 나
왔다고 했다. ‘생얼’이라는데 60대 초반의 나이답지 않게 피부가 반짝
거렸다.
엔젤은 녹즙기를 전문으로 제작하는 기업이다. 엔젤의 대표 브랜드인 ‘
엔젤리아’의 가장 큰 특징은 100% 스테인리스라는 점이다. 김 대표는 “
제품 속부터 바깥까지 모두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진 것은 우리 회사 녹
즙기가 세계에서도 유일하다”고 강조했다.
의료용 스테인리스 쌍기어 사용
“인체에 전혀 해가 없는 의료용 스테인리스를 사용하기 때문에 야채나
과일의 영양소를 파괴하지 않고 짜낼 수 있습니다. 또 3단계에 걸쳐 재
료를 으깨는 쌍기어를 채택, 기존 제품보다 2배 이상 착즙이 가능하고
플라스틱 재질의 녹즙기와 달리 수명도 반영구적입니다.”
엔젤 녹즙기의 가격은 타 브랜드 제품보다 서너 배 높다. 스테인리스 재
료 가격이 워낙 비싼 데다 일일이 수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건강
을 위해 만드는 제품인 만큼 알루미늄이나 플라스틱으로 만들 수는 없
다”는 고집을 꺾지 않은 탓이기도 하다.
김 대표가 녹즙기와 인연을 맺은 지 30년도 더 됐다. 1980년대 초반,
남편(이문현 엔젤 회장)의 사업이 기울면서 집안에 ‘빨간 딱지’가 붙었
다. 프레스 제작 공장을 헐값에 처분해 직원들 월급을 주고 나니 말 그
대로 거리에 나앉게 됐다.
사업 실패 스트레스로 인한 협심증에다 총각시절에 앓던 위염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이 회장의 관심이 자연식으로 쏠렸다. 기계 전문가였던 이
회장이 녹즙기 개발을 시작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엔젤이 개발한 녹즙기는 부산 지역을 중심으로 입소문이 퍼지면서 대박
이 났다. 당시 사회적으로 불어 닥친 녹즙 붐도 한몫을 해서, 한창 잘나
갈 때는 매출이 매월 100%씩 늘어났다. 공장을 풀가동해도 물량을 대
기가 벅찼고 몇 년 만에 한 해 6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할 정도로 성장했
다. 하지만 1994년 유명한 ‘녹즙기 쇳가루 파동’이 터지면서 한 순간에
모든 걸 잃고 한국을 떠나야 했다.
“녹즙기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남편과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마음을
잡기 위해 교회에 나갔는데 주위에서 건강 세미나를 개최해 달라는 겁
니다. 세미나는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거기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실제
로 실험을 해보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중증 당뇨 환자와 고혈압 환자에
게 일주일간 녹즙만 제공했는데 결과는 저희도 깜짝 놀랄 정도였습니
다. 그렇게 단기간에 호전되는 모습을 보고 녹즙기 사업이야말로 사람
을 살리는 길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됐습니다
중소기업청 도움으로 수출 시작
김 대표는 남편과 함께 고향인 부산으로 돌아와 다시 한 번 녹즙기 개발
에 매달렸다. 4전 5기 끝에 안팎이 모두 스테인리스로 만든 ‘엔젤리아’
개발에 성공했다. 문제는 개발 자금이었다. 10년 이상 녹즙기 개발에만
매달리면서 집안 사정이 엉망이 됐다.
한번은 170만 원 정도의 월급을 체불해 노동부에 고발되기도 했다. 경
찰서에서 보자고 하기에 나갔다가 뜻하지 않게 마산교도소에 수감이 됐
다. 너무 억울해서 사흘간 물만 마시면서 버텼다. 나흘째 되는 날, 이 회
장이 돈을 구해 체불 임금을 해결한 후에야 간신히 나올 수 있었다.
“이외에도 온갖 에피소드가 수도 없이 많습니다. 나중에는 쌀을 한 됫박
씩 사먹을 지경까지 갔습니다. 개발 자금을 대려면 제가 품팔이라도 해야
했지요. 어떻게든 목숨을 걸고 해야 할 사업이라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들려주던 김 대표는 눈물을 글썽였다).”
2007년 제대로 된 스테인리스 쌍기어 녹즙기를 개발했지만 또 다른 시
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개발비를 대느라 허덕인 탓에 국내 광고조차 언
감생심이었다. 제품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지만 이를 어떻
게 알릴 것이냐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내수보다 수출 길이 먼저 열린 것은 정부의 도움 덕분이
었다. 중소기업청 중소기업지원센터에서 영문 사이트를 제작해 주겠다
는 연락을 받은 것. 두 달 만에 만들어진 영문 사이트를 구글에 올렸더
니 바이어들이 하나둘씩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격이 비싸
다면서 한두 대씩 가져가던 미국, 영국 등 세계 각지의 바이어들은 차츰
주문량을 늘렸고 수출도 덩달아 상승곡선을 그렸다.
올해 1천만 달러 수출 예상
“러시아 바이어의 경우 괜찮은 녹즙기를 찾기 위해 몇 개월 동안 인터
넷 사이트를 헤맸다고 합니다. 우연히 구글에서 저희 사이트를 보고 먼
저 연락을 해왔어요. 현재 독일을 포함한 유럽 전역에서 엔젤 녹즙기를
판매 중입니다. 2년간은 수익을 재투자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모스크바
중심부에서 엔젤 녹즙기 광고도 하고 있습니다. 수출을 시작하는 데 ‘나
라 덕’을 톡톡히 본 셈입니다.”
현재는 바이어들과 비즈니스를 넘어서 집안의 경조사까지 챙기는 관계
로 발전했다. 지난해부터는 바이어에게만 의존하지 않고 수출을 보다
본격화하기 위해 해외 전시회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하고 있다. 지난해
말 두바이 전시회에 이어 지난 1월 독일 전시회에 참가했는데 현지 반
응이 아주 좋아 기대를 걸고 있다.
엔젤의 매출은 수출 훈풍과 내수시장 확대에 힘입어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다. 2011년 32억 원에서 지난해는 72억 원으로 증가했다. 수출 역
시 전년 대비 50% 이상 늘어난 436만 달러를 기록했다. 수출 국가는 미
국, 영국, 러시아, 독일 등 40여개국에 달한다. 올해 엔젤의 예상 매출
액은 110억 원. 매출과 비례해 수출도 순조롭게 늘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재 일본, 중국 등 8개 국가와 수출 협의를 진행 중인 만큼 연말
까지 1,000만 달러는 충분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건강 관련 교육센터 운영이 꿈
엔젤은 특이하게 가족 모두가 회사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 남편인 이문
현 회장은 기술과 제품 개발을 총괄하고 김 대표는 회사 경영 전반을 책
임진다. 두 아들은 각각 기술개발과 무역을 맡고, 해외에 있는 딸은 제
품 디자인을 담당한다. 과거 기술자와 바이어를 빼앗기는 뼈아픈 경험
을 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은 가족이 뭉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알
게 해준 계기가 있었습니다. 20년 전 400명 넘는 직원을 데리고 사업을
할 때의 일인데, 무역부 직원이 경쟁 업체에 바이어를 몰래 넘겨왔다는
것을 나중에 부도가 난 후에 알게 됐어요. 지금 저희 가족이 모두 회사
운영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 그 때의 경험 때문입니다. 물론 더욱 빠르게
성장시켜 보겠다는 생각도 바탕에 깔려 있지요.”
앞으로 김 대표의 소망은 작지만 강한 회사를 만드는 것과 함께 건강 관련
교육센터를 꾸미는 것이다. 유기농 채소를 직접 재배하고, 사람들이 휴식
하며 교육받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사회에도 도움이 되고 싶다는 것.
“단순한 녹즙기 회사가 아니라 건강을 수출하는 회사, 좋은 먹거리 프로
그램을 개발하는 학교를 운영하는 회사로 만드는 것이 최종 꿈입니다.
지금처럼 열심히 하면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