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관광명승지(觀光名勝地)
3. 강화(江華)의 문화재
강화(江華)는 ‘역사(歷史)의 고도(古都)’라 불리기도 하며 국가지정 및 인천시 지정 문화재가 무척 많은데 소개하여 본다.
갑곶(甲串) 돈대 / 강화 고려 홍릉(洪陵) / 강화산성(江華山城)
①갑곶(甲串) 돈대<사적 제306호> : 갑곶돈(甲串墩)은 강화읍 해안동로에 있는 돈대(墩臺)
②강화 고려 홍릉(洪陵)<사적 제224호> : 고려 제23대 왕 고종(1213년~1259년)의 능(陵:무덤)
③강화산성(江華山城)<사적 제132호>
강화산성은 고려가 몽골의 침입에 대항하여 개경(開京/開城)에서 강화도로 천도(遷都)
강화석수문(江華石水門) / 강화성당(江華聖堂/天主聖殿) / 강화향교(江華鄕校)
④강화석수문(江華石水門)<시군(市郡) 유형문화재 제30호>
이 돌로 쌓은 수문(水門)은 1709년(숙종 35년)에 강화 내성(內城)을 쌓을 때 강화읍의 중심부를 흐르는 동낙천(東洛川) 위에 설치하여 남문 옆의 성곽과 연결하도록 한 돌다리
⑤강화성당(江華聖堂)<사적 제424호> : 강화읍에 있는 강화성당은 대한성공회(大韓聖公會)의 초대 주교인 코프(Corfe, C. J.)에 의하여 1900년(光武 4년)에 건립
⑥강화향교(江華鄕校)<시군(市郡) 유형문화재 제34호> : 강화읍 고려산(高麗山) 남쪽 기슭에 있는 강화향교는 1127년(인종 5) 3월에 현유(賢儒)의 위패(位牌)를 봉안배향(奉安配享)
고려궁지(高麗宮址) / 광성보(廣城堡) / 연미정(燕尾亭)
⑦고려궁지(高麗宮址)<사적 제133호>
고려궁궐지(高麗宮闕址)라고도 부르는 이곳은 강화읍에 있는데 고려가 몽골(蒙古)의 침입에 대항하여 개경(開京/松都/開城)에서 강화로 천도한 시기인 1232년에 지어진 궁궐(宮闕)이 있던 자리
⑧광성보(廣城堡)<사적 제227호> : 강화 불은면(佛恩面)에 있는 광성보(廣城堡)는 1656년에 설치했는데 1745년 완전한 석성(石城)으로 개축되었으며 당시 성문도 설치
⑨연미정(燕尾亭)<시군(市郡) 유형문화재 제24호>
강화읍 월곶리(月串里)에 있는 수려한 정자각으로, 월곶리는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는 지점인데 물길의 하나는 서해로, 또 하나는 갑곶(甲串)의 앞을 지나 인천 쪽으로 흐른다. 그 강 모양이 갈라진 제비 꼬리(燕尾)와 같다 하여 정자 이름을 연미정(燕尾亭)이라 붙였다고 한다.
온수리성당(溫水里聖堂) / 용흥궁(龍興宮) / 전등사(傳燈寺)
⑩온수리성당(溫水里聖堂)<시군(市郡) 유형문화재 제52호> : 강화 길상면(吉祥面) 온수리(溫水里)에도 성공회(聖公會) 성당이 있는데 1906년에 건립된 순 한옥식(韓屋式) 건물
⑪용흥궁(龍興宮)<시군(市郡) 유형문화재 제20호>
조선 제25대 왕인 철종(재위 1849∼1863)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
⑫전등사(傳燈寺) : 강화 길상면 정족산(鼎足山) 골짜기에 있는 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 11년(381),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창건하였다고 하는 유서(由緖) 깊은 사찰(寺刹)인데 우리나라에 세워진 최초의 절(寺刹)이다. 보관하고 있는 유물들을 보면 우리나라 보물 제178호로 지정된 대웅보전(大雄寶殿), 보물 제179호로 지정된 약사전(藥師殿)도 있는데 대웅보전 서쪽에 있으며 대웅보전과 비슷한 모양의 건축 모습이다. 그 밖에도 보물 제393호로 지정된 전등사 철종(鐵鍾)도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제조된 종이 아니고 중국 송(宋)나라 시대에 중국에서 제작된 종으로 밝혀졌다.
이 종은 1097년 중국 후난성(河南城) 숭명사에서 조성된 것인데 음통(音筒)이 없고 겉에 상ㆍ중ㆍ하로 구획이 구분되어있는 모습인데 띠(帶)가 둘려 있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
<전등사 나목녀(裸木女, 일명 나부상:裸婦像) 설화(說話)>
전등사 대웅보전(大雄寶殿)의 처마 밑 끝부분에 벌거벗은 여인(?)이 쪼그려 앉아 두 손으로 추녀를 받치고 있는 목상(木像)이 있어 신기한데 항상 관광객들의 눈길을 끈다.
▶추녀: 전통 목조건축에서 처마의 네 귀의 기둥 위에 끝이 위로 들린 크고 긴 서까래.
이 지붕 끝 처마를 받치고 있는 괴상한 나무조각상을 나목녀(裸木女)라 하는데 재미있는 설화(說話)가 전한다.
이 조각에 대해서 마당 구석에 설명도 붙어있지만, 그 내용과는 다른 전해오는 이야기도 있다.
① 전등사 대웅전을 고쳐 지을 때 대목수의 돈을 가지고 도망간 주막집 여자를 원망하여 대목수는 벌거벗은 몸으로 추녀를 받치고 있도록 하여 영원한 벌을 받게 했다.
② 불교 설화에서 산에 있던 원숭이들이 몰려와 불사(佛事)를 도왔다는 데서 벌거벗은 여인이 아니고 불사를 돕던 원숭이를 새겼다.
③ 충렬왕의 비인 정화궁주가 몽골 황제의 딸인 제국대장공주에 밀려 제2 비로 책봉되자 그 원한으로 제국대장공주의 모습을 벌거벗겨 추녀를 받치고 있는 모습으로 새긴 것이다. <해설판에는 ①만 기록되어 있는데 글쎄....>
등등인데 이 전등사(傳燈寺)는 정화궁주(貞和宮主)가 항상 보시(報施)하던 원찰(願刹)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