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26:69-75 새로운 변화를 위해...
새로운 변화를 가로막는 고정관념과 말이 있다. "며칠이나 하는지 보자”(불신주의), "누군 그거 안 해본지 알아 ?”(경험 제일주의), “우리가 하는 일이 그렇지 별 수 있겠어?” (패배주의),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마라” (무사 안일주의), “또 바뀔 텐데, 뭘” (비관주의), “너나 잘해” (냉소주의), “중간만 하면 돼” (평균주의), “줄 잘 서야 해” (기회주의), “하라면 해” (권위주의), “옛 날이 좋았어” (과거지향주의), “대충해” (적당주의)... 새로운 변화를 위해 반드시 고정관념과 내가 하는 말부터 바꿔야 된다. 야곱은 형 에서와 부친 이삭을 속인 후, 살기 위해 고향을 떠나 하란에 있는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한 후에 20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는 거기서 4명의 처첩에게서 11명의 아들과 딸 하나를 낳았고, 소와 양이 심히 많은 거부가 되었다. 고향에 가려고 외삼촌 라반의 집을 나와 얍복강 나루에 이르렀을 때, 강 건너편에서 형 에서가 400명의 병사들과 함께 자기를 죽이려고 달려오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야곱은 가족과 함께 모든 재물을 다 건너보낸 후, 얍복강에 홀로 남았다. 그곳에서 야곱은 인간의 연약함과 무능을 깨닫게 되었고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살 길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야곱은 여호와의 사자를 붙잡고 자기를 ‘축복해 달라’며 간절히 매달렸다. 천사가 그의 환도뼈를 쳐서 위골시켰지만 결코 여호와의 사자를 붙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그때, 여호와의 사자가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라 하였다. 창32:27-28에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하셨다. 옛 사람 야곱이 죽고 새 사람 이스라엘로 거듭났다. 그 순간 야곱을 죽이려고 달려왔던 형 에서의 마음이 눈 녹듯 변화되었다. 20년 만에 보는 동생 야곱을 긍휼히 여겨주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야곱이 이스라엘로 새롭게 변화되었을 때...) 고후5:17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하셨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변할 때, 상대방이 변하고 세상이 변하는 것이다. 새로운 변화를 위해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 이 시간 구체적으로 새로운 변화를 위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며 함께 은혜를 나누자.
1. 나의 연약함을 인정해야 한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난을 말씀하셨을 때, 자신의 연약함을 알지 못한 채 어떤 일이 있어도 예수님을 버리지 않고 떠나지 않겠다고 고백하였다. 막14:31에 “베드로가 힘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베드로는 자신의 힘으로 주께 대한 신앙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자신만만함) 마26:56에 보면 그렇게 자신만만했던 베드로와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을 갔다.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이 심문받을 때 바깥뜰에 앉은 베드로에게 한 여종이 나아와 말했다. 69절에 “베드로가 바깥 뜰에 앉았더니 한 여종이 나아와 이르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그때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하며 말했다. 70절에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며...” 베드로는 예수님을 향해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고백하였다. 그 때, 예수님이 베드로를 칭찬하시며 그 신앙 고백 위에 내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말씀을 받았다. 그런 베드로가 고난 앞에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는 비굴한 모습을 보였다. (살기 위해... 죽음이 두려웠기에...)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과 폭력의 위협을 받으면 살려는 본능에 이끌림을 받아 본분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만큼 사람은 약한 존재다. 우리도 약한 존재다. 그러므로 범사에 나의 약함을 인정하면 남의 약함도 인정하면서 너그러워지고 비판 습성이 사라지게 된다. 나는 결코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남에 대한 비판은 결국 나에 대한 비판으로 되돌아온다. 그러므로 남을 비판하기 전에 나를 먼저 돌아봐야 한다. 남을 비판하면 내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 특히 남을 외적인 모습만 보고 쉽게 비판하지 말아야 한다. 마7:1-2에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하셨다. 비판으로 남에게 상처를 주지 말고, 남을 긍휼히 여겨야 남도 나를 긍휼히 여겨 줄 것이다. 마5:7에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하셨다. 범사에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릴 때, 하나님이 나를 긍휼히 여기사 새로운 변화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실 것이다.
2. 믿음을 사랑으로 확증해야 한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베드로가 관정 앞문까지 나아갔을 때, 다른 여종이 그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71절에 “앞문까지 나아가니 다른 여종이 그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되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매...”그때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또 예수님을 부인하며 말했다. 72절에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베드로가 전에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예수님을 향해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었는데 지금 여기에서는 예수님을 향해 ‘그 사람’ 이라고 고백하였다. 고난 앞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사랑으로 확증하지 못했다. 왜, 사랑으로 확증하지 못했을까? 예수님처럼 고난을 당할까봐...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지게 될까봐... 너무나도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렇다. 사랑이 식어지면 두려움이 생기게 되고 그 두려움이 믿음을 무너지게 만든다. 요일4:18에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하셨다.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너도 진실로 예수를 믿고 따르는 자다. 네 말소리가 너를 증거 한다.”고 말했다. 73절에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도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 그렇다. 베드로의 말과 행동이 세상 사람들에게 크리스챤으로 인정을 받은 것이다. 고후2:15에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베드로가 사람들에게 ‘크리스챤’이라고 인정을 받은 것은 좋은 것이었으나 베드로는 앞에 놓인 십자가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사랑으로 확증하지 못했고, 또 다시 모든 사람 앞에서 예수님을 강하게 부인하였다. 74절에 보면 “그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곧 닭이 울더라.” 예수님을 ‘주님으로, 그리스도로,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던 베드로가 십자가의 고난 앞에서 예수님에 대한 믿음의 고백을 잃어버리고, 다시 예수님을 ‘그 사람’으로 고백하면서 저주하고 맹세까지 하였다. 우리들도 삶 속에서 주께 대한 믿음을 사랑으로 확증하지 못한다면 때때로 우리 삶이 ‘목구멍이 포도청’ 인지라 베드로처럼 그렇게 부인하고 저주하고 맹세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세상이 주는 이익을 위해, 세상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그 요구사항을 거절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우리 모두는 믿음을 사랑으로 확증하고 있는지 우리 자신을 시험해 보고 사랑으로 확증하는 신실한 ‘크리스챤’들이 되길 축원한다. 고후13:5에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하셨다. 그렇게 모든 상황 속에서 주께 대한 믿음을 사랑으로 확증할 때, 하나님이 우리 모두를 더욱 사랑해 주사 새로운 변화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실 것이다. 75절에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하셨다. 베드로의 통곡은 회개를 의미한다. 전승에 의하면 그 후, 베드로는 닭이 울 때마다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만큼 철저히 회개했다는 뜻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새로운 인생이 되길 원하면 제일 먼저 회개가 있어야 한다. 영어로 'retire'는 ‘은퇴하다, 퇴직하다, 물러나다’라는 뜻이지만 ‘다시 타이어를 갈다’라는 의미가 크다. 새로운 마음으로 ‘인생 타이어’를 다시 갈고, ‘새로운 변화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길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