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주병의 삼국지(三國志) .. (409) 강유의 다섯 번째 출정과 동오의 정권 교체
낙양으로 개선하려던 사마소에게 도착한 급보는 촉한의 강유가 장성(長城)을 공격하여
군량과 마초를 빼앗고 위군의 식량 보급로를 차단하려는 조짐이 보인다는 내용이었다.
크게 놀란 사마소는 바로 문무관들을 소집하여 촉군을 물리칠 대책을 상의했다.
이때는 촉한이 연호를 연희(延熙) 21년(258)에서 경요(景耀) 원년으로 고친 해였다.
강유는 한중에 머물면서 서천 출신 장수 두 명을 뽑아 매일 군사 훈련을 시키고 있었다.
강유가 새로이 발탁한 두 장수는 장서(蔣舒)와 부첨(傅僉)으로, 그 둘은 담력이 뛰어나고
용맹스러워서 강유가 무척이나 아꼈다.
어느날, 강유는 회남의 제갈탄이 사마소를 토벌하고자 군사를 일으켰으며 동오 손침이
이를 돕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어서 사마소가 낙양과 장안의 군사들을 모아서
태후와 위주 조모를 데리고 친정(親征)한다는 소식까지 들려왔다. 강유는 위나라의
소식에,
"이번에야 말로 대사를 이룰 기회로구나!"
하고, 크게 기뻐하며 출정을 허락해 달라는 표문을 적어 후주에게 올렸다. 중산대부 초주
(中散大夫 譙周)는 강유가 후주에게 표문을 올렸다는 소식을 듣고 탄식했다.
"요즘 황제께서는 주색에 빠지셔서 오로지 환락만을 쫓으시고, 환관 황호(黃皓)의 말만
믿고 나랏일에 소홀히하고 계신데 강백약(姜伯約, 강유의 자)은 정벌에만 신경을 쓸 뿐,
군사들을 가엾게 여기지 않고 있으니 이래서는 나라가 안팎으로 위태롭겠구나!"
초주는 곧장 「수국론(讎國論)」(원수의 나라에 대해 논한 글)을 적어 강유에게 보냈다.
누군가가 "옛날부터 약소국이 강대국을 이기기 위해서 어떤 방법을 썼는가?"라고 물어오
면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큰 나라에 있으면서 환란이 없으면 태만하기가 쉽고, 작은
나라에 있으면서 걱정이 있으면 늘 잘할 방법을 생각한다. 태만하면 망하고, 잘하려고
하면 흥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주(周)나라 문왕(文王)은 백성들을 잘 보살폈기 때문
에 작은 땅에서 일어나 상(商)나라와 같은 큰 땅을 차지할 수 있었고, 전국시대 월(越)나라
구천(勾踐)도 군사들을 극진히 아낀 덕분에 약한 처지에서도 강한 오나라를 제압했던
것이다."
또 누군가 "옛날에 초나라는 강하고 한나라는 약하니 홍구(鴻溝) 땅을 경계로 삼자고
했으나, 장량(張良)은 민심이 안정되면 다시 일을 도모하기 어렵다며 군사를 일으켜
마침내 항우를 쓰러뜨렸으니, 반드시 문왕과 구천의 사례를 본받을 필요는 없지 않는
가?"라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상나라와 주나라 때는 왕과 제후를 대대로
존중했고, 군신의 관계가 오랫동안 굳건했으니, 그때 한고조가 태어났더라도 칼로써
천하를 차지할 수 있었겠는가? 진(秦)나라가 제후국을 정벌하여 제후들을 없애고 각
지역에 지역을 관리하는 자들을 둔 이래로 백성들은 가혹한 부역에 시달렸다. 나라의
근간인 백성들이 살기 어려우니 여기 저기에서 호걸들이 들고 일어나서 서로 다투게
되었다. 지금은 진나라 말기처럼 서로 다투는 시대가 아니고 6국(제齊·초楚·연燕·한韓·조趙·위魏)이 병립하던 때와 같은 시대다. 문왕처럼 될 수는 있으나 한고조처럼 되기는
어렵다. 매사는 때와 기회가 맞을 때 움직여야 하는 법, 두 번 싸우지 않고 한 번에 이긴
은(殷)나라 탕왕(湯王)과 주나라 무왕(武王)을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 그들은 백성들을
소중히 여기고 때를 잘 살폈다. 힘만 믿고 전쟁을 일으켰다가 어려움에 만나게 되면
그때에 가서는 아무리 지혜로운 자라도 만회할 길이 없을 것이다."
초주는 문답 형식을 빌어 강유에게 출병하지 말 것을 은근히 권한 것이었다. 강유는 초주
의 글을 읽자마자 그것을 바닥에 패대기쳤다.
"이것은 책상 머리에 앉아서 말이나 할 줄 아는 썩어빠진 유생의 공론에 불과하다!"
그리고 서천의 군사를 동원하여 다시 중원 정벌에 나섰다. 강유가 장수 부첨에게 묻는다.
"공의 생각에는 어느 방면으로 진출하는 것이 좋겠나?"
부첨이 곧바로 대답한다.
"위나라의 군량과 마초는 모두 장성(長城)에 있으니 낙곡(駱谷)을 먼저 치고 침령(沈嶺)을
넘어 장성에 진출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장성에서 적의 군량과 마초부터 다 태워버리고
진천(秦川)을 취하면 중원을 차지할 날이 머지 않을 것입니다."
"나의 생각과 같도다."
강유는 부첨의 말에 동의하여 낙곡을 우선 공략하고 침령을 넘어 장성으로 나아갔다.
그때 장성을 지키던 장수는 사마소의 친척형 사마망(司馬望)이었다. 장성에는 군량과
마초는 풍부하였으나 군사와 말은 부족했다. 사마망은 촉군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왕진(王眞)과 이붕(李鵬) 두 장수와 함께 장성 밖 이십 리 떨어진 곳에 영채를
세웠다.
이튿날, 촉군이 도착하자 사마망은 두 장수와 함께 출전했다.
강유가 직접 말을 타고 앞으로 나와 사마망에게 손가락질하며 말한다.
"사마소가 제 주인을 친정(親征)하게 한 것은 이각(李傕), 곽사(郭汜)가 한 짓과 다르지
않다. 나는 이제 천자의 명을 받들어 너희들의 죄를 물으러 왔으니 속히 항복하라.
어리석게 항거하거나 머뭇거리면 너희 집안의 삼족을 멸하고 말겠다!"
사마망이 큰소리로 대꾸한다.
"상국(上國)을 계속하여 침략하다니 주제도 모르고 무례하기 짝이 없구나. 속히 물러가지
않으면 네 놈들은 너희의 갑옷 한 조각도 되가져가지 못할 것이다!"
사마망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뒤에서 왕진이 창을 휘두르며 달려 나온다. 그 모습을
보고 촉군에서는 부첨이 대응하러 나왔다. 십여 합쯤을 어울려 싸우다가 부첨이 힘에
부치는 듯 주춤하여 약간의 빈틈이 생겼다. 그러자 왕진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재빠르게
창끝을 부첨에게 겨누었다. 하지만 부첨은 왕진에게 일부러 틈을 보인 것이었다. 부첨은
왕진의 창을 피해 몸을 휙 비틀더니 단숨에 왕진을 사로잡아 자기 말 위에 싣고 유유히
본진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이붕은 한껏 약이 올라 칼을 휘두르며 왕진을 구하러 나섰다. 부첨은
말의 속도를 낮추어 이붕이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 이붕에게 거의 따라잡혔을 때, 부첨
은 갑자기 왕진을 바닥에 내던지고 숨겨두었던 사릉철간(四楞鐵鐗)을 몰래 꺼내들었다.
이붕이 칼날을 부첨에게 내리치려는 순간, 부첨은 나비가 꽃에 내려 앉듯 사뿐히 몸을 돌려 이붕의 얼굴을 내리찍었다. 순간의 힘으로 내리치니 이붕의 두 눈알이 빠져나오면서
이붕은 말 아래로 떨어져 그 자리에서 죽었다. 바닥에서 나뒹굴던 왕진 또한 촉군 병사들이 내지르는 창에 찔려 죽고 말았다.
강유는 기세를 몰아서 위군 진영으로 진격했다. 사마망은 믿던 두 장수가 눈 앞에서 순식간에 죽는 것을 보고 너무 놀라서 강유와 맞설 생각이 싹 사라졌다. 결국 사마망은
급하게 군사들을 거두어 장성으로 도망쳐 들어갔다. 그리고 성문을 굳게 닫고 지키면서
나와서 싸우지 않았다. 강유는 사마망이 장성 안으로 도망친 것을 보면서 제장들에게
명을 내렸다.
"오늘은 일단 군사들을 편히 쉬게 하고 내일 반드시 입성하도록 하자."
이튿날, 새벽부터 촉군은 성벽 바로 아래까지 진격하여 불화살과 불대포를 성 안으로
쏘아보냈다. 성 안의 초가들은 불화살에 여지없이 타버리고 성을 지키던 위군은 대혼란
에 휩싸였다. 강유는 한 술 더 떠서 마른 장작을 성문 앞에 그득하게 쌓아놓고 불을 지르라 명령하였다. 맹렬한 화염과 연기가 하늘을 찌를 듯했고 위군의 울부짖는 소리가 성
밖으로 터져나왔다.
촉군이 장성 공격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갑자기 배후에서 커다란 함성 소리가 들렸다.
강유가 말을 돌려 뒤를 보니, 위군이 깃발을 치켜들고 북을 요란하게 울리며 강유군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강유는 공격군의 후미부대를 뒤로 돌려 전군(前軍)으로 삼아 공격
태세를 갖추었다. 그리고 자신도 깃발 아래 서서 위군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위군 진영에서 젊은 장수가 창을 잡아들고 말을 달려나온다. 나이는 스물
안팎으로 보이고 얼굴은 해사한데 기세는 당당하다.
"강유야! 이 등장군(鄧將軍)을 아느냐!:
강유는 청년의 말을 듣고 그가 틀림없이 등애(鄧艾)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창을 단단히
잡고 대적하러 말을 달려나갔다. 두 사람이 삼, 사십 합을 맞붙었으나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았다. 청년 장수의 창 쓰는 법이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었다. 빈틈이 도저히 날 것 같지
않자 강유가 생각했다.
'힘보다는 계책이다! 계책을 써야 이길 수 있다!'
생각하자마자 강유가 그대로 말머리를 돌려 왼쪽 산길로 달아나기 시작한다. 젊은 장수
도 바로 말을 달려 강유를 바짝 뒤쫓는다. 강유는 창을 슬쩍 말 안장에 걸어두고 남몰래 활에 화살을 먹여 뒤를 향해 화살을 날린다. 그러나 젊은 장수는 눈과 귀가 어찌나 밝은
지 활 시위가 당겨지는 소리와 동시에 몸을 푹 숙여 화살을 아무렇지 않게 피한다.
화살은 청년의 등 위 허공을 가르며 지나간다. 강유가 뒤를 흘깃 살피는데, 젊은 장수가
강유를 향해 냅다 창을 내지른다. 강유는 재빨리 창을 피하면서 옆구리와 팔꿈치로 젊은
장수의 창대를 꽉 붙잡는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젊은 장수는 당황하여 강유에게 그대로
창을 빼앗기고 만다. 무기를 빼앗긴 젊은 장수는 자기 진영으로 달아난다. 강유는 달아나
는 적장을 뒤쫓는다.
'기회를 놓쳤다! 아깝다! 아까워!'
좋은 기회를 날린 강유는 뒤쫓으면서 속으로 탄식했다.
강유가 위의 진영까지 말을 달려 갔을 때, 진영 안에서 한 장수가 칼을 휘두르며
나서더니 크게 외친다.
"강유! 이 놈! 더 이상 내 아들을 쫓지 말아라! 등애가 바로 여기 있다!"
강유는 그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강유가 등애인 줄 알고 싸우고 있던 상대는 등애가
아니라 그의 아들 등충(鄧忠)이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지혜와 아들의 용맹! 놀랍구나.'
강유는 속으로 감탄하며 등애와 맞붙으려 했다. 그러나 자신의 말을 살피니 추격전 탓에
이미 많이 고단해 보였다. 괜히 그런 말을 이끌고 싸움에 나섰다가 본인과 말이 모두
위험할 수 있었다. 강유는 창을 잡아들고 그 끝을 등애에게 겨눈 채 말한다.
"내가 오늘 너희 부자들을 알았으니 이쯤에서 군사를 거두고 내일 다시 결판을 내자."
강유가 워낙 용맹한 장수인지라, 등애도 계책을 세우지 않은 싸움은 자신에게 불리할 수
있다고 느껴 말을 세우고 답한다.
"좋다. 각자 군사를 거두자. 이렇게 하기로 해놓고 비겁하게 공격하면 그건 사내대장부가
아니다."
강유와 등애의 약속으로 양측의 군사는 모두 물러났다. 등애는 위수(渭水) 강변에 영채를
세우고, 강유는 산 능선 두 곳을 끼고 영채를 세웠다. 등애는 촉군의 영채를 자세히 살피더니 사마망에게 편지를 써서 보냈다.
우리는 적이 아무리 도발해와도 절대 나가서 싸우면 안 됩니다. 오로지 굳게 지키면서
관중(關中)에서 응원군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으면 그 사이에 촉군의 군량과 마초는
바닥을 보일 것입니다. 그때 삼면에서 협공하면 반드시 승리를 거둘 수 있습니다.
내 아들 등충을 성 안으로 들여보낼테니 힘을 합쳐 성을 지키도록 하십시오.
등애는 사마망에게 편지를 보내는 한편 사마소에게 급사를 보내 구원군을 요청했다.
강유는 등애의 영채에 사자를 보내서 다음날 결전을 벌이자는 도전장을 전달했다.
등애는 짐짓 도전에 응하는 척하고 사자를 강유에게 돌려 보냈다.
이튿날 오경 무렵, 강유는 진을 펴고 위군이 나서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등애의 영채는
기가 모두 누워있고 북소리가 울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영채가 아예 텅 빈 것처럼 보였다.
촉군은 해가 질 때까지 위군을 기다리다가 그냥 철수했다. 이튿날 강유가 또 도전장을
보내면서 약속을 지키지 않은 등애를 질책했다. 등애는 도전장을 들고 온 촉의 사자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하면서 변명의 말을 했다.
"어제는 내가 몸이 조금 불편하여 싸우러 나가지 못했네. 내일은 반드시 나가서 싸울
것이니 그대로 가서 전하게."
등애의 말을 믿고 강유는 다음날 또 군사를 일으켰으나 등애는 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러기를 대여섯 차례, 부첨이 강유에게 말한다.
"등애가 무슨 계략을 꾸미고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장군께서도 대비를 하셔야
합니다."
"등애는 관중에서 지원군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우리를 삼면에서 공격할 계획인 게
분명하다. 동오의 손침에게 사절을 보내서 지원군을 얻은 다음에 등애의 뒤를 쳐야겠다."
강유도 생각하고 있는 바가 있었던 것이다. 손침에게 보낼 사자를 준비시키고 있는데,
파발꾼이 강유에게 달려 와서 보고한다.
"사마소군이 수춘성을 함락시키고 제갈탄을 죽였습니다. 제갈탄을 지원갔던 오나라 군사
들은 대부분이 위군에 투항했고, 사마소는 낙양으로 돌아가다가 다시 군사들을 이끌고
장성으로 오고 있습니다."
강유가 놀라며 탄식했다.
"이번에도 정벌은 그림의 떡이 되었구나! 철수하는 것이 낫겠다."
강유는 적에게 응원군이 보태지면 자신의 군대가 크게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판단 하에
철군을 결정했다. 우선 군수품과 보병을 후퇴시키고 자신은 기병대를 거느리고 뒤를
끊으며 물러갔다.
이것을 본 위군의 정탐꾼이 등애에게 가서 그 사실을 알렸다. 등애는 웃으며 말했다.
"허허허허! 강유, 눈치는 빠르구나. 우리 대장군의 군사가 오는 것을 알고 미리 꽁무니를
빼고 달아나다니. 뒤쫓으면 강유의 계략에 말려들 수 있으니 그냥 가게 내버려 두어라."
그리고 즉시 정탐꾼을 보내서 촉군이 퇴각한 뒤를 살펴보게 했다. 과연 등애의 추측대로 강유는 낙곡(駱谷)의 좁은 통로에 마른 풀과 장작을 쌓아놓고 추격대를 불태울 준비를 갖추어 놓았다. 정탐꾼의 보고를 들은 제장들은 모두 등애의 귀신같은 예측력에 감탄해
마지 않았다.
한편, 동오의 대장군 손침은 제갈탄에게 보냈던 전단, 전역, 당자 등이 모두 위나라에
투항했다는 소식을 듣고 대로했다. 그리고 투항한 장수들의 가족을 모조리 잡아다 참수
형에 처했다. 당시 오주 손량(吳主 孫亮)의 나이는 십육 세에 불과하였으나 총명하고 사리
분별에 밝았다. 그는 손침이 사람을 쉽게 죽이는 것을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손침이 대권을 단단히 붙잡고 있어 어쩔 도리가 없었다. 손침의 동생 위원장군 손거
(威遠將軍 孫據)는 창룡 금위대(蒼龍 禁衛隊)를 통솔하여 황궁에서 숙직하며 감시했고,
무위장군 손은(武衛將軍 孫恩), 편장군 손간(偏將軍 孫干), 장수교위 손개(長水校尉 孫闓)
가 도성 각 수비대를 지휘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손침이 임명한 자들이어서 중앙의
병권이 모두 손침에게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오주 손량이 우울한 심사로 앉아있는데, 황문시랑 전기(黃門侍郞 全紀)가 오주를 찾아
왔다. 전기는 국구(國舅)로서, 황후 전씨의 오라버니되는 사람이었다. 전기가 들어오자
손량은 눈물을 지으며 말한다.
"손침이 권세를 마구 휘둘러 사람을 무차별적으로 죽이고 짐을 업신여기니 해도 너무한
것 아니오? 이대로 두었다가는 필시 뒷날 큰 걱정거리가 될 것이오."
전기가 황제에게 아뢴다.
"폐하께서 신을 쓰시겠다 하시면 신은 만 번을 죽더라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옵니다."
전기의 말을 듣고 손량은 기운이 솟는 듯 했다.
"그렇다면 경은 지금 즉시 금위대(禁衛隊)를 소집하여 유승(劉丞) 장군과 함께 각 성문을
장악하도록 하오. 짐이 손수 손침을 죽이겠소. 허나 결코 경의 어머니가 이 일을 알게
해서는 안 되오. 경의 어머니는 손침의 누이가 아니오? 이 일을 알게 되면 손침에게 짐의
계획이 흘러가 모든 것이 무위(無爲)로 돌아가는 것을 넘어 큰 사달이 날 수도 있으니
조심하기를 바라오."
"폐하, 염려 마시옵소서. 신에게 조서를 써서 내려주시면 신이 그 문서를 무기로 삼아
손침 일당을 어전에 잡아다 무릎을 꿇리고 말겠습니다."
손량은 바로 밀서를 써서 전기에게 건넸다.
전기는 조서를 받아들고 집에 돌아왔다. 황제와의 약조에도 불구하고 전기는 참지
못하고 밀서의 내용을 아버지 전상(全尙)에게 넌지시 알려주었다. 전상은 손침 무리를
제거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떴다.
"손침은 이제 죽은 목숨이오. 사흘 안에 그 무리가 죽어나갈 것이오."
전상은 그만 신이 나서 아내에게 손침 제거 계획을 말하고 말았다. 아내는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한편으로는 몰래 손침에게 편지를 보내 그 일을 알려주었다.
누이의 밀서를 받은 손침은 그날 밤으로 아우 넷을 불러들인 다음, 정예병을 거느리고
전기와 유승의 집을 습격하여 그들의 가족을 모두 잡아들였다.
다음날 날이 밝아올 무렵, 오주 손량은 밖에서 크게 울리는 북소리와 징소리에 잠에서
깼다. 그때 환관이 급하게 달려들어와서 아뢴다.
"손침이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와서 궁궐을 포위했사옵니다!"
손량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손으로 황후를 가리키며
호통쳤다.
"네 오라비와 아비가 큰 일을 그르쳤다!"
그러고는 칼을 뽑아들고 뛰쳐 나가려고 했다. 황후 전씨와 신하들이 황제의 옷깃을
붙잡고 통곡하며 만류했다.
손침은 벌써 전기, 전상 부자와 유승을 죽이고 문무백관들을 불러모아 명령한다.
"주상이 주색에 빠져 지내면서 오랫동안 병을 앓더니 이제는 정신까지 잘못되었는지
분별력을 잃었소. 그러고서야 종묘제사를 제대로 받들 수 있겠소? 그러하기에 손량을
폐위하고자 하니, 감히 손량을 따르지 않는 자가 있으면 모두 역적으로 간주하고 엄히
다스리겠소!"
관원들은 모두 두려움에 떨며 대답한다.
"장군의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고분고분 대답하는 관원 무리에서 상서 환이(尙書 桓彛)가 대뜸 나서서 손침을 가리키며
소리친다.
"폐하께서는 총명한 군주이시다! 네 어찌 감히 그런 말을 함부로 하느냐? 네가 역적이
아니냐! 난 죽어도 역적놈의 말은 따르지 않겠다."
"뭣이야?"
손침은 크게 화를 내며 칼을 들고 환이를 바로 쳐죽였다. 그리고는 바로 내전으로
달려들어가 오주 손량에게 고함을 친다.
"무도하고 어리석은 군주를 당장에 죽여 천하에 사죄해야 마땅하나, 선제(先帝)의 얼굴을
보아 목숨은 살려주겠다. 황제의 자리에서 폐하고, 회계왕(會稽王)으로 삼을테니 옥새를
내놓아라. 내가 덕망 있는 군주를 모셔다 임금으로 세우겠다!"
말을 마치자마자 중서랑 이숭(中書郞 李崇)에게 황제의 인수(印綏)를 강제로 빼앗게 했다.
손량은 달리 손을 쓰지 못하고 그대로 궁궐 밖으로 쫓겨났다.
호림 땅에서 낭야왕(琅琊王)으로 있는 손휴(孫休)는 손권(孫權)의 여섯째 아들이었다.
손휴가 밤에 자다가 꿈을 꾸는데, 자신이 용이 되어 하늘을 짓쳐 올라가다가 뒤를
돌아보니 용의 꼬리가 없는 것이 보여서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그 이튿날, 조정의
종정 손해(宗正 孫楷)와 중서랑 동조(中書郞 董朝)가 손휴를 찾아와서 공손히 절을
하더니 청했다.
"도성으로 돌아가시지요."
손해와 동조는 손침의 명에 따라 낭야왕 손휴를 임금으로 모시기 위해 찾아온 것이었다.
손휴는 자세한 내막은 모른 채 둘을 따라나섰다. 일행이 곡아(曲阿)에 이르렀을 때,
한 노인이 다가와 자신의 이름은 간휴(干休)라고 밝히면서 머리를 조아려 말한다.
"지체하시면 반드시 변이 일어날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속히 떠나소서."
손휴는 다시 길을 떠나 포색정(布塞亭)에 이르렀다. 손은(孫恩)이 어가를 준비해놓았다가
손휴에게 타기를 권했으나 손휴는 감히 황제의 어가를 탈 수는 없다고 사양하고 작은
수레에 몸을 싣고 도성으로 들어갔다. 도성 내 길가에 문무백관이 일렬로 늘어서서 손휴
에게 절을 하며 맞이했다. 손휴가 수레에서 내려 답례를 하려는데, 손침이 나오더니 곧장
손휴를 대전으로 모시고 들어갔다.
"어좌에 오르시지요. 폐하."
손침의 말에 손휴는 거듭하여 사양하다 결국 옥새를 받아 쥐었다. 그리고 연호를
태평(太平) 3년(258)에서 영안(永安) 원년으로 고쳤다.
손침은 스스로 승상(丞相) 겸 형주목(荊州牧)에 올랐고, 조카 손호(孫皓)를 오정후(烏亭侯)
에 봉했다. 이로써 손침의 가문은 제후가 다섯이나 되었고, 그들이 모두 금위군을
거느리고 있으니 그 권세가 황제를 누를 지경이었다.
오주 손휴는 혹시 손침이 무슨 변란이라도 일으키지는 않을까 두려워서 겉으로는 은총을
내리면서도 속으로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방비하고 있었다. 손침의 교만방자한 태도는
날이 갈 수록 극심해졌다.
영안 원년 12월, 손침은 임금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뜻에서 쇠고기와 술을 가지고 입궐
했다. 그러나 손휴는 어떤 음모가 있을지 걱정스러운 마음에 그것을 받지 않았다. 정성을
거절 당하자 손침은 화를 내며 그 쇠고기와 술을 도로 가져다가 좌장군 장포
(左將軍 張布)에게 들고 가서 함께 먹고 마셨다. 술이 얼큰하게 오르자 손침이 장포에게
속내를 말한다.
"내가 회계왕을 폐했을 때, 사람들이 하나같이 나에게 직접 제위에 오르라고 권유했으나
내가 지금의 황제가 어질고 덕망이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데려다 옹립(擁立)했네. 그런데
오늘 나의 축수(祝壽)을 거절하더군. 나를 무시하는 것이 틀림없네. 두고 보라지. 내 조만
간에 뭔가를 단단히 보여줄테니!"
장포는 손침의 말씀이 그저 옳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튿날, 장포는 궁에 들어가 손휴에
게 손침이 했던 말을 은밀히 아뢰었다. 손휴는 제위에 오를 때부터 이미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손침에게서 직접 그런 말이 나왔다니 밤잠을 설칠 지경이었다.
며칠 후, 손침은 중서랑 맹종(中書郞 孟宗)에게 중영(中營) 소속 정예병 일만 오천 명을
내주어 무창(武昌)에 주둔하게 하고, 무기고에 비축한 무기들을 모조리 꺼내다 군사들에
게 무장하게 하였다. 장군 위막(將軍 魏邈)과 무위사 시삭(武衛士 施朔)은 손휴에게 그
사실을 은밀히 고했다.
"손침이 정예병을 도성 밖으로 빼내어 훈련시키고, 무기고의 병기도 모두 옮겨갔습니다.
손침이 변란을 준비하고 있는 듯 하옵니다."
손휴는 대경실색하여 급히 장포를 불러서 상의했다. 장포는 미리 생각하고 있었던
대책을 아뢴다.
"정봉(丁奉)은 지혜가 출중한 백전노장이옵니다. 큰일을 도모할 결단력이 있는 인물이오니 그와 더불어 의논해 보시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
손휴는 곧바로 정봉을 불러다 사정을 설명하고 계책을 물었다. 정봉이 자신있게 말한다.
"폐하, 근심하지 마옵소서. 신에게 나라의 적을 처치할 계락이 있사옵니다."
"계책이 무엇이오?"
"내일은 납일(臘日, 조정에서 제사 지내는 날)이니, 군신대회를 연다는 명목으로 신하들을 모두 부르십시오. 손침 또한 그 자리에 참석할테니 그 후엔 신이 알아서 처리하겠나이다."
시원시원한 정봉의 말에 손휴는 한 시름 놓았다.
정봉은 퇴궐과 동시에 위막과 시삭을 불러 궁 밖에서 해야할 일을 지시하고, 장포를 불러
궁궐 안에서 할 일을 지시했다.
이날 밤, 광풍이 크게 일면서 모래와 돌이 흩날리고 땅에 단단히 뿌리 박혀 있던 고목들
이 뿌리채 뽑혀 쓰러졌다. 다음날 날이 밝아서야 바람은 잦아들었다.
궁궐의 사자가 칙명을 받들고 나와서 손침에게 궁중의 잔치에 참석하라는 황제의 명을
전했다. 손침은 그날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마치 누가 떠밀기라도 한 것처럼 혼자서
나자빠진 일 때문에 기분이 찝찝하며 잔치에 참석할 기분이 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입궁
할 마음을 먹고 채비를 했다. 그런데 아내가 나서서 손침을 말린다.
"지난 밤 광풍이 몰아친데다 오늘 아침에는 까닭도 없이 놀라 넘어지셨으니 좋은 징조가
아닙니다. 오늘 연회에는 참석하지 마십시오."
손침은 만류하는 아내의 손을 뿌리치며 말한다.
"내 형제 다섯이 모두 금위군을 거느리고 있는데 어떤 놈이 감히 내 곁에 접근할 수
있겠소? 그래도 혹시 무슨 변이 생기면 부중에서 불을 올려 신호를 보내 주시오."
아내에게 당부의 말을 남기고 손침은 궁궐로 가는 수레에 몸을 실었다. 오주 손휴는 손침
이 들어서자 황급히 어좌에서 내려와 그를 맞이하고 상석에 앉기를 권했다. 잔치가 시작
되고 술이 몇 순배 돌았을 때였다.
"궁 밖에 불이 났다!"
다급한 외침이 들려온다. 손침은 아내에게 부탁했던 말이 떠올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는데, 손휴가 말리며 말한다.
"승상, 편히 앉아 계시오. 밖에 근위병이 호위하고 있는데 무얼 걱정하신단 말이오."
손휴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좌장군 장포가 칼을 들고 무사 서른 명을 거느린 채 대전
으로 뛰어오르더니 목청 높여 외친다.
"칙명을 받들어 역적 손침을 체포한다!"
손침은 기겁을 하고 달아나려 했지만 몇 걸음 가지 못하고 무사들에게 붙잡혀 끌려내려
갔다. 손침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려 오주 손휴에게 통곡하며 애걸한다.
"폐하, 부디 용서해 주소서! 교주(交州) 시골 땅으로 귀양보내 주시오면 저는 밭이나 갈며
조용히 살겠으니 목숨만 살려 주시옵소서."
손휴는 헛웃음을 짓고 말한다.
"네 손에 죽은 여거(呂擧), 등윤(滕胤), 왕돈(王惇)이 지하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을텐데,
시골 땅보다는 그곳으로 가는 것이 어떻겠느냐? 여봐라! 당장 이 역적을 잡아다
목을 쳐라!"
황제의 명에 따라 장포가 손침을 대전 동쪽 모퉁이로 끌고 가서 처형했다. 손침을 따르던
측근 호위병들은 군주가 보인 위엄에 사색이 되어 감히 움직이는 자가 없었다. 장포가
그 자리에 모인 자들이 모두 듣도록 칙명을 선포한다.
"죄는 손침 한 사람에게 있다. 나머지 사람들은 누구도 문책하지 않겠다."
그제야 손침의 부하들도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폐하, 오봉루(五鳳樓)에 오르시지요."
장포가 손휴에게 청했다. 그때, 정봉이 위막, 시삭 등과 함께 손침의 다섯 형제들을
붙잡아 왔다.
손휴가 말한다.
"너희 또한 역적 손침의 권력을 자기 것처럼 이용하여 국정을 문란하게 하였으니 그 죄가
손침에 못지 않다. 이 자들을 모두 저잣거리로 끌고가 참수형에 처하라!"
손침과 더불어 손침의 오형제, 그 삼족과 일당 수백 명은 손휴의 지엄한 명에 모두 목이
달아났다. 뿐만 아니라, 손휴는 앞서 죽은 손준(孫峻)의 무덤을 파헤쳐 시체를 끌어내
그 목을 자르게 했다.
손휴는 그들에게 목숨을 잃었던 제갈각, 등윤, 여거, 왕돈 등의 무덤을 크게 다시 만들어
그들의 충성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먼 곳으로 귀양 가 있던 충신들을 모두 풀어주어 고향
에 돌아가도록 했다. 그리고 이번 일을 주도한 정봉 등에게는 상을 후하게 내리고 벼슬을
올려주었다. 이로써 손침과 그 일가의 횡포는 잠재워지고 권력은 군주에게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