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의 몇 차례의 과학협주곡 글에서 ‘연구를 지원하는 주체’ 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한국 등의 현대국가에서 과학 연구의 지원 주체가 주로 정부라는 것은 현실이고 국가의 과학 지원의 목적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는 중요한 화두다. 그런데 오늘은 이 문제를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자. “과학 연구를 지원하는 것은 정부 홀로 감당해야 할까?”
지금은 한국을 비롯한 대개의 현대국가에서 과학 연구의 물주는 정부이지만 이것이 근대과학 탄생 후 절대 변하지 않은 원칙은 아니었다. 현재와 같은 정부주도의 과학연구 체제가 탄생한 것은 20세기 중반이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중 전시 연구개발에 국력을 집중시켜 핵무기등과 같은 가시적인 성과를 도출한 경험을 발판삼아 전후 과학연구 진흥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를 모색했다. 이 결과 MIT의 공학자인 바네바 부시(Vannevar Bush)는 대통령에게 제출된 ‘과학 : 끝없는 프론티어’1 라는 유명한 보고서를 통하여 평화시에도 정부주도의 기초과학 연구가 필요하며, 기초과학에의 투자가 응용과학의 발전을 통해서 산업경제발전을 이룩한다는 선형적인 과학 발전 모델이 제시되었다. 이는 정부의 연구비가 대학 소속 연구자들에게 지원되는 현행 연구비 지원체제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으며 이러한 정부주도의 과학연구 지원은 미국을 넘어 전세계적인 현상이 되었다2 . 어쨌든 국가가 과학 발전을 지원하는 핵심 주체가 된 것은 과학 발전이 한참 진행된 이후에 생긴 일이다. 그러면 국가가 과학 연구의 중심이 되기 전에는 누가 과학 연구를 지원했을까?
근대과학 태동기의 과학연구는 부유한 후원자, 혹은 스스로 여유로웠단 과학자 자신의 쌈짓돈으로 수행되기도 했다. 그러나 근대과학이 어느정도 정립된 19세기말 – 20세기초 과학을 지원한 주된 물주는 바로 자본가들에 의해 설립된 자선 재단이었다. 19세기말 미국의 석유업계의 독점체제를 구축한 스탠다드 오일 (Standard Oil) 의 창업자인 존 D 록펠러는 잔혹한 독점자본가로 낙인찍힌 본인과 회사의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선사업에 본격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했다. 그 시발점이 1901년에 설립된 록펠러 의학연구소 (Rockerfeller Institute of Medical Research, 현 록펠러대학) 이고, 록펠러 의학연구소를 통해 수행된 수많은 기초연구중의 하나가 바로 DNA 가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핵심물질이라는 에버리 (Oswald Avery)의 연구이다. 그리고 그 이후에 설립된 록펠러재단 (Rockerfeller Foundation) 을 통하여 수많은 과학연구를 지원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성과로는 DNA 이중나선구조, 최초의 단백질 구조의 규명, 박테리오파지를 모델로 한 분자유전학의 태동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 등을 포함한다.
또한 철강산업의 지배자였던 앤드류 카네기는 사업에서 은퇴한 후 공공도서관의 건립, 카네기홀을 대표로 하는 문화시설 건립 이외에도 카네기 연구소 (Carnegie institution for science) 를 설립하고 유전학의 개척자인 토마스 헌트 모건,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 등의 수많은 과학자들의 연구를 지원하였다. 결국 자선재단의 과학연구 지원이 2차대전 전까지 미국에서 과학자의 연구를 지원하는 바탕이었다. 정부가 과학 지원의 주된 역할을 하는 오늘날도 이러한 전통은 아직도 계승되어 MS창업자 빌 게이츠와 폴 알렌, 페이스북의 마크 주커버그, 인텔 창업자 고든 무어 등의 웬만한 억만장자들은 자신의 사재를 민간 재단을 통해 과학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과학 연구를 지원할까? 자선활동이라면 여러가지가 있을텐데 왜 하필이면 과학자 일부의 지적 유희처럼 흔히 생각되기도 하는 순수과학 연구에 그들의 재산을 투자할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민간재단의 과학 지원은 일종의 ‘거래’ 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자본주의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들이 돈 안되는 과학에 투자를 하는 것은 얼핏 비효율적인 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들은 결국 자신에게는 남아도는 돈을 과학에 투자하여 돈으로 쉽게 구입하기 힘든 ‘명예’ 를 획득하는 거래를 하는 셈이다. 즉 이들은 자신의 재산을 명예와 명성으로 전환하는데 과학의 힘을 빌리는 것이 가장 손쉽고, 영속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은 셈이다. 그냥 돈으로 가지고 있으면 된다고 생각할런지 모르겠지만 급변하는 현대 자본주의에서는 오랜 시간동안 그 부를 유지하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록펠러, 카네기등과 미국의 도금 시대 (The Gilded Age)를 이끈 주역인 철도왕 코넬리우스 벤더빌트 (Cornellius Vanderbuilt)가문의 그 많은 재산은 후손들이 미국 전역에 호화 별장과 저택을 짓는 와중에서 흔적도 없이 없어진 반면3 록펠러와 카네기의 이름은 그들의 기부, 특히 과학연구에 관련된 기관 덕에 아직도 기억된다. 영화 ‘에비에이터’의 모델인 괴짜 억만장자 하워드 휴즈가 창업한 회사는 이제 사라졌지만 원래 세금을 줄이기 위해 주식의 명의를 이전할 목적으로 세워진 ‘하워드 휴즈 의학연구소’ (Howard Hughes Medical Institute, HHMI) 는 세계 최고의 의생명과학 연구지원기관으로써 건재하다. 120년 전에 죽은 한 스웨덴의 화약업자가 자신의 이름을 딴 상이 없었다면 ‘알프레드 노벨’ 이라는 이름은 이미 오래전에 잊혀졌을 것이다. 이렇듯 재력가가 자신의 이름과 명예를 영속적으로 남기는 방법은 자신의 재산을 과학연구에 기부하여, 과학사에 남는 업적의 후원자가 되어 과학의 영속성에 자신의 이름을 맡기는 것이다. 물론 과학활동에 기부함으로써 얻는 기업과 자본가의 이미지 개선, 재산을 기부함으로써 얻게 되는 합법적인 ‘절세 효과’ 등과 같은 바로 얻을 수 있는 이익도 상당하다.
그렇다면 과학자들은 이러한 재벌의 기부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이전의 과학협주곡의 글들에서 논의된 것처럼 현대의 과학 연구 지원에는 분명히 ‘후원’ 과 ‘용역’ 의 두가지 다른 성격이 존재한다. 다른 조건 없이 순수한 과학지식의 확장을 목표로 하는 연구라면 분명히 ‘후원’ 의 성격에 가까운 지원이겠지만 특정한 목표를 지향하는 연구라면 ‘용역’ 의 성격에 더 가까울수도 있으며 때로는 이 경계선에 서 있는 연구도 있을 것이다. 국가가 지원하는 연구가 ‘후원’ 과 ‘용역’ 중에서 어떤 성격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다른 의견이 존재한다. 순수과학에의 지원이 응용과학의 발전, 경제발전으로 이어진다는 바네바 부시의 선형이론을 굳이 들먹이지 않아도, 국가가 어느정도 수준에서 인류의 미래와 문화창달에 필요한 새로운 지식을 생산할 책임이 있다는 점은 동의할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혈세’ 라는 정부의 과학지원의 원천을 생각해보면 국가의 모든 과학 지원에 목적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현실적으로 힘들며 특히 한국과 같이 과학이 경제발전의 도구라는 인식이 팽배한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더우기 소액의 기초과학 지원 예산이라면 몰라도 규모가 크고 위험 부담이 큰 기초연구일수록 국가의 적극적인 투자를 이끌어내기는 쉽지 않다.
바로 이렇게 정부가 쉽게 지원하지 못하는 분야에서 민간차원의 지원은 때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결국 기부의 본질은 기부자가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을 지원하는 셈이므로 공공의 최대 이익과 투자효율이 반드시 고려될 필요는 없다. 즉 “자기 돈 자기 맘대로 쓰겠다는데” 누가 말리겠는가?. 가령 국가의 예산으로 감히 진행되기 힘든, 위험부담이 크면서도 당장은 그 활용성이 보이지는 않지만, 성공할 경우 과학적으로 큰 파급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연구는 민간재단의 최적의 지원대상이다. 결국 민간재단의 기부자가 얻을 수 있는 반대급부는 획기적인 연구결과로 인해서 얻어지는 기부자의 위상의 상승이므로 가급적이면 획기적인 연구, 정부의 지원으로 수행하기 힘든 연구를 지원해야 민간재단은 자신의 이름을 드높이려는 목적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가령 HHMI의 연구지원 철학인 ‘프로젝트가 아닌 연구자 중심’ 은 사회적으로 파급효과가 큰 혁신적인 연구를 지원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결국 재단의 이름을 드높일 가장 최선의 방법을 찾고자 한 것이다4.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물론 한국에서도 최근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이나 서경배 재단, 청암학술재단과 같은 과학 연구를 지원하는 민간 재단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국의 과학연구에서 민간재단의 지원은 아직 매우 미약한 것이 사실이다. 물론 자본주의의 종주국이자 현대 과학을 이끄는 미국과 한국의 상황을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국에서 민간재단에 의한 과학연구 지원이 왜 그동안 활발하지 않았는지를 한번 생각해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
일단 한국의 자본주의 역사가 일천하고 극히 일부의 재벌 위주로 자본축적이 이루어진다는 문제가 있다. 그리고 번거롭게 경영권을 후손에게 물려주다가 기업이 순식간에 없어지는 것보다는 자선재단의 형태로 변형하여 ‘명예’ 의 형태로 물려주는 것이 유리하다는 서구의 재벌들의 상식은 아직까지는 2대-3대를 넘어서도 편법과 탈법을 동원해서라도 경영권을 친족에서 물려주려는 국내의 재벌들에게는 아직 생소해 보인다. 결국 과학 이외의 다른 분야에서의 자선에서도 극히 인색한 상황이니 과학에 대한 지원 역시 부실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추세가 앞으로도 계속될까? 최근에 자신의 경영권 상속을 위해서 권력과 유착관계를 형성했다가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 재벌 총수가 감방 속에서 ‘내가 무엇 때문에 감옥살이를 해야 할까?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에 대해서 진지하게 성찰하다보면 빌 게이츠나 주커버그 같은 외국 재벌들이 경영권 승계 대신 과학연구 등에 자신의 재산을 쓴 이유가 단순한 겉멋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국에서 민간차원의 과학연구 지원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되려면 사회 전체적인 과학에 대한 인식변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서구의 민간재단의 활발한 과학지원활동, 그것도 얼핏 보기에는 돈낭비처럼 보이는 원천연구가 한국에서 가능할까? 사실 이런 것이 한국에서 일어나기에는 한국 사회의 과학에 대한 인식수준은 아직 미흡할지도 모른다. 과학을 교과서에 정립되어 있는 변하지 않는 지식으로 생각하거나, 그저 경제발전에 필요한 일종의 ‘흑마술’ 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사회에서 인류의 인식의 지평을 넓히기 위한 노력 – 아직은 왜 이런 연구를 하는지도 많지 않을 첨단과학 연구 – 에 민간재단이 투자한다고 해도, 이러한 투자활동을 존경의 눈길로 보기보다는 ‘돈이 남아도나?’ 식으로 삐딱하게 받아들여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서구의 민간재단에서의 과학 연구가 활성화 될 수 있는 진정한 원동력은 아마도 자신들이 근대과학을 통해 현대문명을 구축하고, 앞으로 이런 인류 문명의 기반을 계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자신들의 사명이라는 긍지가 사회 저변에 바탕이 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근현대 과학에 이렇다할 공헌을 하지 못한 한국에서 과학과 여기에의 투자가 그닥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는 이유는 결국 한국에서 이루어진 과학 연구로 인해 세상을 바꾸는 혁명적인 경험을 직접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태어나서 한번도 눈을 떠보지 못한 시각장애인에게 세상의 아름다움을 필설로 설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듯이 한국에서 과학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것 역시 그런 현실이다. 결국 한국에서 민간 분야에서의 과학투자는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다. 해외의 사례를 무조건 추종하기보다는 좀 더 신중하게, 한국의 현재 상황에 맞는 투자를 통하여 한국 사회에서 과학의 중요성을 이해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남궁석 (MadScientist in Secret Lab of Mad Scientist)
--------------------------------------------------- 1 Sciencethe Endless Frontier, 1945, A Report to the President by Vannevar Bush, Director of the Office of Scientific Research and Development, July 1945, https://www.nsf.gov/od/lpa/nsf50/vbush1945.htm 2 물론 바네바 부시의 선형모델은 그 이후 복잡한 과학과 기술의 발전양상을 정확히 설명하기 힘들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하였으나 여기에 대해서는 추후에 다루도록 한다 3 아이러니컬하게도 기부에 인색했던 밴더빌트의 이름은 그가 수행한 유일한 기부였던 밴더빌트 대학 설립시의 100만불 기부에 의해 겨우 기억된다. 4 그 좋은 예로 최근 HHMI의 Janellia Farm 에서 수행된 초파리 뇌지도 관련 연구를 들수있다. Robie et al., Mapping the Neural Substrate of Behavior, Cell, 170, p393-406, 20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