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929]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서울에 도착하자 잔치를 베풀어 접대하였는데 예조판서가 주관하였다. 술자리가 무르익자 다치바나 야스히로가 후추를 잔칫상 위에 흩어놓으니 기생과 악공들이 서로 빼앗으려고 뒤죽박죽이었다. 야스히로가 숙소로 돌아가 탄식하면서 통역관들에게 ‘너희 나라는 기강이 이미 무너졌으니 망하지 않는 것을 어찌 기대할 수 있겠느냐고 하였다.” 이는 조선 중기의 학자 신경(申炅)이 쓴 《재조번방지(再造藩邦志)》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다치바나 야스히로는 임진왜란을 일으키기 전에 조선을 염탐하러 왔던 일본 사신이지요. 야스히로는 궁궐에서조차 후추를 놓고 아수라장이 된 것을 보고 전쟁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류성룡의 《징비록》에도 나오는데 그만큼 조선시대에 후추는 조선에서 나지 않는 귀한 먹거리였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 임진왜란 전 일본 사신이 내놓은 후추에 아수라장이 되었다.(그림 이무성 작가)
《성종실록》 140권, 13년(1482년) 4월 17일 기록에 보면 일본 사신에게 후추 씨를 구해 보내라고 했지만 “후추는 남만(南蠻, 자바)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항상 본국에서 또 유구국(琉球國, 오키나와)에 청하고 유구국은 남만에 청하는 것으로 후추 씨는 얻기가 어려울 것 같다.”라고 변명하는 얘기가 나옵니다. 또 《성종실록》 14년에는 중국 사신에게 후추 씨를 얻도록 하고, 17년에는 대마주 태수 종정국이 후추의 씨를 구하고 있다는 문서를 보내오는 등 조선 조정은 귀한 후추의 씨앗을 구하려고 애를 썼다는 기록이 많습니다.
원래 원산지가 인도인 후추는 지금이야 쉽게 구할 수 있지만, 고려시대 때도 벽란도에서 아라비아 상인들에 의해 소량만 들여왔을 뿐으로 사치품으로 분류될 정도였지요.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도 후추로 물물교환했으며 공물로 바치게 했다고 합니다. 얼마 전 한 언론은 “카레 속 강황이 소화불량 완화, 치매 예방, 심혈관질환 개선 등 각종 건강 효과를 내는데, 체내 흡수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후추와 함께 먹는 것이 좋다.”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