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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3-25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죄 / 조용기 목사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죄”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열왕기하 2:23~25의 내용을 보면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사가 벧엘을 통과하려고 할 때 성에서 어린 아이들 한국어로는 어린아이라고 하지만 히브리어로는 젊은 애들인 것입니다.
10~ 30대에 이르는 젊은이들이 떼를 지어 나와서 엘리사를 보고서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위협적으로 그렇게 말할 때 엘리사가 뒤를 돌아보고 야훼 이름으로 그를 저주하매 숲에서 암곰 두 마리가 나와서 찢은즉 42명이 죽임을 당했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 성경을 읽을 때 날보고 하는 말 같아요. 대머리가 된 것도 원통한데 사람들이 올라가라고 하면은 어떻게 합니까? 그러나 어떤 때 생각하면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과잉대응을 하셨는가!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고 해서 왜 저주를 해서 암곰에게 42명이나 찢기게 하셨는가?” 그런 의심이 생길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조금 깊이 생각해 보면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1. 대머리여 올라가라 올라가라
첫째로,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고 말한 것은 단순한 하나의 희롱의 말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엘리야가 하나님이 보내신 불말과 불수레를 타고 회오리 가운데 하늘로 올라간 것은 이스라엘이 다 알고 있습니다. 솔로몬 이후로 이스라엘은 솔로몬이 우상숭배 때문에 진노를 사서 북 이스라엘과 남유다로 갈라졌습니다. 북 이스라엘은 벧엘에 송아지 우상을 세우고 송아지를 섬겼습니다. 그래서 벧엘이라는 것은 우상숭배의 중심지요, 황금송아지를 섬기는 곳입니다. 그곳을 하나님의 종 엘리사가 통과할 때 이들이 엘리사를 보고 “대머리여 너도 올라가라! 대머리여 너도 올라가라!”는 것은 너희 선생 엘리야가 불수레와 불말을 타고 올라간 것처럼 너도 꺼져라. 너도 꺼져 버려라. 여기에 오지 마라. 그렇게 엘리사를 욕하는 것이 아니라 엘리야를 불수레를 타고 불말을 끄는 곳에 올라타고 하늘로 올리신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우상숭배자들이 하나님을 얕보는 말을 한 것입니다. 바로 너도 엘리사처럼 꺼져 버려라. 이렇게 욕을 한 것입니다.
역대하 36:16에 보면 “그 백성이 하나님의 사자를 비웃고 말씀을 멸시하며 그 선지자를 욕하여 여호와의 진노로 그 백성에게 미쳐서 만회할 수 없게 하였으므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엘리사는 누굽니까?
개인 엘리사가 아닌 것입니다. 엘리야의 뒤를 이은 야훼의 종입니다. 하나님의 권사와 위엄과 능력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엘리사를 대적해서 욕을 하는 것은 야훼를 욕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엘리사를 보고 “너도 엘리사처럼 꺼져라. 이 대머리야 너도 엘리야처럼 하늘로 올라가라!”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들이 야훼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을 아주 얕잡아 보고 무시하려고 하는 언동인 것입니다.
여러분 신약성경에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하나님께 진노를 사서 죽임을 당했는데 그들도 똑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때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병 고침을 받고 성령 받고 능력이 나타나매 예루살렘 교회가 왕성해졌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감동해서 어떠한 사람들은 사람들 앞에 가서 “우리 집을 바치겠습니다. 우리 논을 바치겠습니다. 우리 짐승을 바치겠습니다.”하고 사람들이 박수갈채를 하니까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굉장히 감동해서 베드로 앞에서 모든 성도들 앞에서 “나는 땅을 팔아서 주님께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약속을 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 베드로가 말하기를 “땅을 팔기 전에도 네 것이고 팔고 난 후에도 네 것인데 네
가 왜 하나님께 거짓말 했느냐?”고 추궁한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베드로와 성도들 앞에서 자기 땅을 팔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약속을 하고 난 다음에 땅을 팔고 나니까 돈에 욕심이 생겨서 얼마를 감추고 나머지를 가지고 나와서 이것 모두 다 땅 판 돈입니다. 하니까 베드로가 성령을 통해서 투시하시고 말씀하기를 “과연 그러느냐?” 아나니아의 대답은 “그렇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말하기를 “네가 왜 하나님 성령을 속이느냐?” 사람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을 속였다고 질타하자 그 자리에 쓰러져 영혼이 떠나가고 말았습니다.
사도행전 5: 3~ 4에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하나님을 욕되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약속하고 난 다음에 그 다음 도로 빼앗은 것입니다. 이 하나님을 얼마나 얕잡아 보고 욕되게 한 것입니까?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얕잡아 본 것입니다. 이 죄를 짓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그 영혼이 부부간에 다 떠나가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멸시와 적대적 행위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민수기 14:11~12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모든 이적을 행한 것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내가 전염병으로 그들을 쳐서 멸하고 너로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사무엘상 2:30에서도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영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멸시하는 언어, 행동은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역사하실 때 바리새교인, 사두개교인들이 예수께 이런 비평을 했습니다. 한번은 예수님이 길을 가시다가 귀신들려 장님 되고 귀머거리 된 사람을 고쳐주었습니다.
귀신이 쫓겨 나가매 그가 보고 말하니까 사람들이 깜짝 놀라서 “이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 아니냐? 이분이 바로 메시야가 아니냐?”고 하니까 질투와 시기와 꽉 들어찬 바리새, 사두개교인들이 “아! 저가 귀신을 쫓아낸 것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쫓아낸다.”고 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이 그 말을 들으시고 “만일 사탄이 사탄을 쫓아내면 그 나라가 어떻게 서겠는가? 내가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서 귀신을 쫓아내면 하늘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고 하시고, 마태복음 12:31~32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 하나님의 기사와 이적과 능력을 모독하고 멸시하고 무시하려고 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진노하고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벧엘에서 나온 젊은이들이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는 말은 “엘리야처럼 꺼져 버려라. 우리는 너를 원치 않는다. 네가 믿는 하나님, 엘리야를 불말과 불수레를 타고 올라가게 한 그 하나님 우리는 믿지 않는다. 너도 꺼져 버려라.” 하나님의 그 위대하신 능력과 권세와 기적을 완전히 모욕하고 멸시하고 짓밟는 행동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을 저주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하고 떨면서 섬겨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욕되게 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2.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
둘째로, 이들이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것은 사람을 외모로 판단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엘리사가 대머리가 되고 싶어서 대머리가 되었나요?
여러분 대머리가 안 되어봐서 그렇지 된 사람은 굉장히 답답합니다. 한번은 우리 애들이 어릴 때 우리 집사람하고 애들하고 식탁에 앉았는데 우리 애들 중에 하나가 우리 집사람에게 질문을 해요. “엄마, 엄마! 왜 아빠하고 결혼했어?” 그러자 집사람이 “왜? 왜 내가 잘못했냐?”고 묻자. 이 녀석이 한다는 소리가 “왜 대머리하고 결혼을 했어?”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 소리에 굉장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그러면 모르겠는데 내 자식이 나를 보고 대머리라고 할 때 또 왜 대머리하고 결혼했냐고 할 때 정말 충격을 받았습니다. 얼마 전에 내 눈썹에 흰 눈썹 하나가 길게 나왔어요. 우리 집사람이 그것 뽑아 버리자고 그래서 “에이! 그만두라. 그만두라. 나에게는 머리카락 하나가 천금보다 귀하다. 손대지 마라!”고 한 적이 있어요. 대머리가 되고 싶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대머리가 되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엘리사의 대머리를 보고 욕을 하는 것은 엘리사를 대머리 되게 한 하나님의 솜씨를 모욕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6: 7에 보면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그렇기 때문에 외모를 보고 사람을 비난하거나 조롱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 중심을 꿰뚫어 보시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2: 9에 “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용모로 사람을 차별하고 사람을 그렇게 대접하는 것 절대로 원치 않는 것입니다.
지난 6일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운동경기인 슈퍼볼 게임에서 한국계 미국인인 하인스 워드가 당당히 MVP 최고선수를 차지했습니다. 그는 수상소감을 말하면서 “지금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은 모두 어머니 덕분이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아프리카 미국인과 결혼했습니다. 한국에서 결혼을 하고 미국으로 건너가서 그분이 한국말만 하고 영어도 잘 모르고 미국 문화에 익숙하지 못하니까 그 아내를 버렸습니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그 여인은 일심으로 아들을 위해서 혼자 살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다른데 시집가지도 아니하고 그는 한국말만 알고 영어를 잘못하기 때문에 천한일은 다했습니다. 접시닦이, 호텔청소, 식료품가게 점원 등을 하며 하루 18시간씩 일하면서 그 아들을 키웠습니다. 하루는 어머니가 아들을 차에 태워서 학교 앞에 내려 주니까 아들이 내내 차 뒤에 쪼그리고 숨어 있었어요.
왜냐하면 자기 어머니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습니다. 피부색깔도 다르고 영어도 잘못하니.
학교에 대자마자 차문을 탁 박차고 사람들 보기 전에 학교에 뛰어 들어가다 뒤를 돌아보니 어머니가 자기를 바라보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인스는 거기에 충격을 느꼈습니다. “아! 내가 잘못했구나! 내 어머니가 한국여자라고 해서 내가 부끄럽게 여겼고 나하고 피부색깔이 다르다고 해서 어머니를 멸시하고 영어를 잘못한다고 해서 내가 부끄럽게 여긴 내가 잘못이구나.” 어린 하인스는 그때 마음에 깊이 통회하고 자복하고 그 이후로는 그 어머니가 한국계 여인이라는 것을 부끄럽게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차별은 미국인들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백인들이 아프리카 흑인들을 차별하는 것만 아니고 한국사회에서도 하인스를 차별했습니다. 어머니가 한국인이지만 한국사회에서도 그 피부색깔 때문에 차별을 하고 잘 혼합을 시켜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워드는 인종적 차별과 피부색으로 인한 조롱에도 굴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몸집이 다른 선수에 비해 턱없이 외소 했지만 낙심하지 않고 더 오히려 열심히 연습하고 실력을 키워서 운동 못지않게 학업실력도 좋아서 조지아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할 수가 있었습니다. 결국 이런 노력은 하인스를 최고로 만들었습니다. 워드는 지난 4년 최고의 각종 기록을 남기며 정상의 자리에서 활약하다가 마침내 이번 슈퍼볼 대회에서 영예의 MVP 최고선수상을 차지한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는 올해 4월에 어머니의 나라인 한국을 방문하겠다고 말하므로 한국의 모든 매스컴들이 흥분을 하고 그것을 대서특필하고 그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인스 워드는 미국에서 영웅입니다. 미국에서 풋볼경기라는 것은 대단한 인기를 가진 경기인 것입니다. 거기에 최고 선수가 되었으니 얼마나 큰 영예를 달성했습니까? 그가 이 자리에 올라온 것은 인종차별을 극복하고 피부색깔을 극복하고 눈물로 노력해서 일어나서 이러한 위치에 도달한 것입니다. 사람의 가치는 인종이나 피부색과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인종이나 피부색으로 차별하는 것은 그를 만드신 하나님을 모독하는 죄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한국도 단일민족이 아닙니다. TV발표에 보니까 우리 한국 농촌의 부인들의 50%가 월남여인들이나 필리핀여인들이나 태국 여인들이라고 말합니다. 농촌 처녀들이 농촌에 살고 싶지 않으니까 다 도시로 와 버리고 농촌 총각들이 결혼을 할 수가 없으니까 필리핀, 인도네시아, 월남, 태국 여인들을 데리고 와서 살고 있기 때문에 그 자녀들은 코시안(Kosian)이라고 말합니다. 코리안-아시안, 코시안. 그들은 자기나라 말도 우리나라말도 자기 어머니 나라말도 잘못하고 상당히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젠 단일민족이 아닙니다.
우리나라도 여러 나라 민족이 섞여서 사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오늘날에 와서 국경과 인종이라는 것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다 한 지구촌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종이나 피부색으로 차별하는 것은 하나님 창조에 대한 모독인 것입니다. 사람을 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깊이 생각해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외모를 가진 사람이라도 하나님은 똑같이 사랑하십니다. 여러분 보세요. 여러분과 똑같이 닮은 사람은 지금부터 과거에 살아온 모든 인류 중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고 장차 태어날 사람도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은 절대로 안 태어납니다. 온 우주 가운데 여러분과 같이 생긴 사람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러므로 여러분 특종이므로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몰라요. 여러분 하나가 없어지면 여러분 종류 하나밖에 없는 것이 지상에서 사라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다 공동제작하지 않았습니다. 새들 보세요. 얼굴이 똑같지요. 개들도 보세요. 같은 종류의 개는 다 얼굴이 똑같지요. 우리 사람은 똑같은 얼굴 한 사람도 없어요. 하나님은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다 하나님의 최고작품으로 만드셨다는 것을 알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형편과 처지에 있어도 하나님의 피조물이요, 하나님이 사랑받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멸시나 천대를 해서는 결코 되지 않습니다.
나는 송명희 시인의 시를 읽고 마음에 깊은 감동을 느끼고 내 인생에 굉장한 격려를 받았습니다.
송명희 시인은 장애를 축복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큰 사랑과 공평하심을 감사, 찬양하는 사람입니다. ‘나’라는 찬양으로 잘 알려진 올해 43세의 송명희 시인은 태어날 때 의사의 실수로 뇌를 다쳐 중증장애를 입었습니다. 의사가 어린 아기를 건졌는데 집게로 머리를 잡고서 어머니 자궁에서 끌어낼 때 소뇌를 다쳤습니다. 그래서 평생 제대로 몸을 가눌 수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녀의 집안은 아주 가난해서 분유 한 병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자라난 불쌍한 처지였습니다. 자라면서 송명희 시인은 자신의 처지에 절망해서 자살을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17살 때 죽을 때 죽더라도 나를 뇌성마비 장애인으로 세상에 나오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나 알고 죽자. 이렇게 결심하고 하루에 몇 시간씩 목숨을 걸고 기도하다가 하나님을 만나 예수님을 믿게 되고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그녀는 하루에 5시간씩 기도하고 성경을 30회나 통독했습니다. 송명희 시인이 거듭난 후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해서 지은시중에 나라는 시가 있는데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네./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송명희 시인은 휠체어에 몸을 싣고 지금까지 1,500회 이상 국내외 집회에 나갔습니다. 자신의 몸 하나 가누지 못하면서 25권의 책을 내고 100곡이 넘는 노래에 가사를 지었습니다. 현재 그녀는 건강이 악화되어 혼자 힘으로 휠체어를 타지도 못합니다. 1997년부터 거의 전신마비가 되어 컴퓨터 자판 하나를 치는데도 어떤 때는 30분이 넘게 걸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공평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가슴이 사무친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장애를 통해 남이 깨닫지 못한 진리를 알게 되었고 수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으니 하나님은 공평하시다고 말할 수 있지 않느냐.”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보기는 무능력하고 형편없이 보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를 우리와 똑같이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 차별하지 않습니다. 인종이나 피부나 건강상태로 말미암아 사람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사람을 외모로 판단해서는 절대로 되지 않습니다.
나는 송명희 시인을 볼 때마다 내가 크게 감동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자기 신세 한탄을 하고 자기 운명을 한탄하고 저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송명희 시인은 정말 원통하게 생각하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탄식해야 될 수 있는 처지에도 불구하고 자기 운명을 하나님께로부터 기쁘게 받아들여서 그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미하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로 인생을 대하고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은혜를 받아서 우리에게 큰 은혜를 끼칠 수 있는 시인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을 받아들이십시오. 여러분 인생을 스스로 못마땅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자신을 미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자신을 용서하고 사랑하고 용납하고 하나님이 여러분을 유일하게 만들어 주셨으니까 여러분의 운명과 삶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외모는 일시적인 것이고 마음은 영원한 것입니다.
부자와 나사로 보십시오. 부자는 외모로 세마포 옷에 자색 옷을 입고 날로 연락하고 쾌락을 누리고 살았지만 그 대문가에 있는 거지 나사로는 쭈그리고 앉아서 병들고 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 얻어먹고 살다가 둘이 다 죽고 말았습니다. 사람은 죽는 것이니까. 이 땅에 그 외모를 영원히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외모가 아니라 그 속에 무엇을 가졌는가? 그것입니다. 이 부자는 속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세상 연락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거지 나사로는 그 어려운 처지에도 속에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둘이 죽으매 나사로는 천사에 받들리어 아브라함의 품인 낙원으로 들어가고 부자는 죽어 음부에 내려가서 불꽃 가운데 고민하게 된 것입니다. 외모가 인생을 결정짓는 것 아닙니다. 속에 무엇이 있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영원한 운명을 결정짓는 것입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복음성가 중에 ‘세상에서 방황할 때’라는 노래가 있지 않습니까? 이 찬송은 무명은 사형수가 사형당하기 전에 예수를 믿고 변화되어서 남긴 글에 안철호씨가 곡을 붙여 만든 것입니다.
「세상에서 방황할 때 나 주님을 몰랐네./
내 맘대로 고집하며 온갖 죄를 저질렀네./
예수여 이 죄인도 용서 받을 수 있나요/
벌레만도 못한 내가 용서 받을 수 있나요/
많은 사람 찾아와서 나의 친구가 되어도/
병든 몸과 상한 마음 위로 받지 못했다오./
예수여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의지할 곳 없는 이 몸 위로 받기 원합니다.
이 죄인의 애통함을 예수께서 들으셨네./
못 자국 난 사랑이 손 나를 어루만지셨네./
내 주여 이 죄인이 다시 눈물 흘립니다./
오 내 주여 나 이제는 아무 걱정 없어요./
내 모든 죄 무거운 짐 이젠 모두 다 벗었네./
우리 주님 예수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오./
내 주여 이 죄인이 무한 감사드립니다./
나의 몸과 영혼까지 주를 위해 바칩니다.」
보통 사람이 지은 시가 아니라 사형수의 시입니다. 사형 복을 입고 사형감방에서 죽음의 날을 기다리면서 예수를 만나 죄를 통회하고 자복하고 이 시를 남긴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극한 죄를 짓고 사형을 받는 사람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절대 사람 무시하지 마십시오.
사람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입고 있습니다. 사람을 무시하면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상처 입은 사람일수록 우리는 더 불쌍히 여기고 동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 흘리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예수님이 하루는 바라새교인, 사두개교인들이 보는 앞에서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먹으니까 바리새, 사두개교인이 제자들보고 비난했습니다. “예수님이 저 세상 사람들이 미워하는 세리들과 세상이 다 아는 죄인들고 어떻게 밥을 먹느냐?” 그때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했습니까?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만 쓸데 있느니라. 내가 세상에 온 것은 의인을 불러 구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구원하러 왔다.” 모든 죄인들을 주님은 사랑하십니다. 적은 죄, 큰 죄, 극한 죄인을 위해서도 주님이 십자가를 짊어지시고 몸 찢고 피 흘려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주님은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사람 차별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3. 하나님의 종을 상처 입히지 말라
셋째로,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종을 상처 입히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작은 아이라고 했는데, 히브리어로는 “나르”라고 합니다. 여기서 청소년들을 말하는 것은 10~30대 안쪽의 청소년들이 적어도 50명 내지 60명이 떼를 지어서 주먹을 휘두르고 몽둥이를 들고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꺼져라. 꺼져라!”고 나오니까 엘리사가 굉장히 신분에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이 어떠한 테러를 행할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대변하는 예언자나 제사장을 멸시하고 무시할 때 하나님은 진노하시는 것입니다.
노아를 비웃은 둘째 아들, 함과 그에게 내린 저주를 여러분은 알잖아요. 노아가 홍수 이후에 농사를 지으려 포도를 짜서 놓았다가 마셨는데 그것이 술이 된 줄 몰랐습니다. 홍수 이전에는 술이 안 되었어요. 그래서 대취하여 더우니까 옷을 다 벗어 버리고 벌거벗고 큰대자로 드러누워서 잠이 들었는데 그 둘째 아들 함이 방안에 들어왔다가 보고, 비웃고, 아버지가 발가벗고 본전까지 다 드러내놓고 누워 있으니까 “셈형 이리와! 야벳 이리와! 구경하자! 아버지 보라. 발가벗고 드러누워서 아! 웃긴다. 웃겨!” 그러자 셈과 야벳은 두려워 떨면서 아버지 옷을 취해서 아버지 나체를 보지 않고 뒷걸음쳐 가서 아버지를 덮고 나왔습니다.
아버지가 술에서 깨어나서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뭐라고 했습니까? “셈의 하나님을 찬양할 찌어다. 가나안 즉 둘째 아들은 셈의 종중의 종이 될 찌어다.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종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정의 제사장인 아버지를 조롱하고 비웃은 결과로 내린 저주인 것입니다.
여러분 한 가정의 아버지는 가정을 대표하는 제사장입니다. 한 가정을 대표하는 하나님의 대변자인 것입니다. 그 아버지를 모욕하고 난 다음 함은 저주에 저주를 받았던 것을 우리가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노아를 비웃은 둘째 아들 함과 그에게 내린 저주를 생각하고 하나님이 대변자를 욕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기름 부은 받은 자에 대한 사울과 다윗의 태도를 보십시오. 사울도 하나님께 기름 받아서 이스라엘이 초대 왕이 되었고 다윗도 하나님께 기름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왕은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을 받은 다윗을 끝까지 죽이려고 했습니다.
사무엘상 19: 1에 “사울이 그 아들 요나단과 그 모든 신하에게 다윗을 죽이라 말하였더니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을 심히 기뻐하므로”말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것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다윗이 내 왕국의 위협이 되니까 그를 잡아 죽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수많은 군인들을 동원해서 새 새끼 잡는 포수처럼 다윗을 따라 다니며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타락한 하나님의 종이지만 사울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두 번이나 하나님이 죽일 수 있는 기회를 주셨어요. 기회를 손에 받았으면서도 다윗은 하나님의 기름 부은 종이니까 비록 타락했지만 하나님이 쓰신 종이기 때문에 그에게 나는 손 델 수 없다. 그것은 사울을 존경하는 것이 아니라 사울에게 기름 부었던 하나님을 존경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해서 그는 사울에게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엔게디 광야의 황무지 굴속으로 사울이 뒤를 보러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쫓기던 다윗과 그 무리들이 그 굴속에 숨어 있는데 깊은 굴속에 있는 것을 모르고 굴에 들어와서 뒤를 보았습니다. 바지가랑이를 다 내놓고 뒤를 보고 있으니 옆에 있는 신하들이 “하나님이 당신 손에 사울을 맡겼습니다. 단칼에 찔러 죽이십시오.” 무장도 안 해놓고 바지까지 벗고 쭈그리고 있는 사람 죽이는 것 식은 죽 먹기지. 그래도 사울이 그 옷자락만 칼로 자르고 “그를 죽이지 말라. 하나님이 기름 부은 자를 죽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무엘상 24:10에 “오늘 여호와께서 굴에서 왕을 내 손에 붙이신 것을 왕이 아셨을 것이니이다. 혹이 나를 권하여 왕을 죽이라 하였으나 내가 왕을 아껴 말하기를 나는 내 손을 들어 내 주를 해치 아니하리니 그는 야훼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는 하나님이 기름 부었는데 타락했다고 한다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죽이고 살리든 하지 내가 하나님 기름 부은 자에게 손 안 댄다.”는 것으로 다윗은 사울하고는 완전히 태도가 달랐습니다. 그 다음에는 기브아 광야 하길라산 길가에 사울이 다윗을 잡으러 왔다가 밤이 되어 지쳐서 자는데 사울이 진 가운데 눕고 군사들이 꽉 둘러서 잠을 자는데 한잠을 자요. 다윗이 그의 신하 아비새와 함께 그 진에 내려갔는데 천지를 모르고 자고 있습니다. 그때 아비새가 말했습니다. “아! 하나님이 사울을 당신 손에 맡겼습니다. 내가 당장 가서 두 번 찌를 필요도 없습니다. 한 번에 심장을 찔러서 땅에 꽃아 버리겠습니다.” 그럴 때 다윗이 “아니라, 그러지 마라. 그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
사무엘상 26: 9~11에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또 가로되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 죽을 날이 이르거나 혹 전장에 들어가서 망하리라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시나니 너는 그의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하고”
이렇게 두 번이나 하나님이 사울의 목숨을 다윗의 손에 내 맡겼건만 다윗은 사울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존경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사람 비록 타락했지만 다윗은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다윗을 죽이려고 밤낮으로 쫓아다닌 사람을 다윗은 끝까지 죽일 기회가 와도 안 죽였으니 하나님이 이것을 보고 다윗을 크게 칭찬하시고 내 마음에 꼭 합당한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기름 부은 자를 쉽게 죽이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너무나 쉽게 주의 종들에게 욕을 가하고 모욕하고 온갖 누명을 덮어씌우고 짓밟는 일을 하는데, 이것은 너무나 두려운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은 단지 개인 하나님의 종이 아닙니다. 개인이 아니고 그는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고 하나님이 뜻을 전하기 위해서 택함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의 잘잘못은 하나님이 관여할 일이지 사람이 관여하면 하나님을 비난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을 비난하면 그를 종으로 쓰는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엘리사는 굉장한 위협을 당했습니다. 왜냐하면 10~30대까지 이르는 젊은이들이 떼를 지어 나와서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너희 선생 엘리야처럼 꺼져 버려라! 오지 마라!” 그러면서 손에, 손에 아마 몽둥이를 들고 무기를 들고 따라왔을 것입니다. 그럴 때 엘리사는 뒤를 돌아보고 야훼 이름으로 저주했습니다. 그러자 수풀에 있던 암곰 두 마리가 나와서 동서사방으로 뛰고 물고 찢었으므로 42명이 찢기고 죽었습니다. 그러니 도망친 사람까지 합치면 50, 60명 될 것입니다.
젊은이 50, 60명이 떼를 지어서 몽둥이나 무기를 들고 “꺼져라! 꺼져라!”고 오면 어떠한 사람도 위협을 당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개인적인 인격모독이기 보다 하나님의 선지자에 대한 직분과 사역을 모독하는 일이요, 이 많은 무리들이 무리지어 모의하고 가담하여 하나님이 권위에 도전하는 처사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단호하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를 저주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계획적인 테러와 하나님의 종에 대한 모욕은 하나님이 대응하시고 저주하시는 것입니다.
레위기 26장 21~22에 “너희가 나를 거스려 내게 청종치 않을 찐대 내가 너희 죄대로 너희에게 칠 배나 더 재앙을 내릴 것이라 내가 들짐승을 너희 중에 보내리니 그것들이 너희 자녀를 움키고 너희 육축을 멸하며 너희 수효를 감소케 할찌라 너희 도로가 황폐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엘리사가 이 사람들을 저주해 버린 하나님께서 암곰을 시켜서 42명을 찢어 버리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름 부은 자에게 손대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름 부은 자를 짓밟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왜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이 한때 하나님이 기름부음을 받았으나 타락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기름 부은 자에게 결코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하나님의 종들에게 모욕하고 짓밟고 상처를 입히는 일을 서슴치 않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기가 흐르는 전선을 손으로 잡는 것과 한가지인 것입니다. 반드시 큰 쇼크를 받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미워하시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압니까?
미국의 제35대 대통령이었던 존 F. 케네디(1917-1963) 가(家)는 사고와 죽음이 끊이지 않아서 사람들은 말하기를 그 가문이 하나님의 진노를 샀다고 말합니다. 그의 아버지 조지 F. 케네디는 양조장으로 수많은 돈을 벌어 부를 축재하고 자식들을 명문대학에 입학시켰습니다. 그러나 케네디 대통령의 형이었던 조지프 케네디가 1944년 제2차 세계대전에 해군 비행기 조종사로 참가했다가 피격되어 시신조차 찾지 못하고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 여동생 캐슬린은 1948년 비행기 사고로 숨졌습니다.
그녀의 언니 로즈마리는 지능장애와 뇌전엽 수술 실패로 장애인이 되어 1941년 이후 공공시설에 수용되어 있습니다. 존 F. 케네디는 1961년에 대통령이 되었지만 아버지의 영향으로 반기독교적인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그는 대통령이 된 이듬해인 1962년에 헌법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미국의 모든 공립학교에서 성경을 교육하지 말고, 주기도문을 외우지 말라는 전면 금지 특명을 내렸습니다.
그로부터 1년 후인 1963년 케네디는 달라스에서 암살당했고, 이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인 1968년에는 그의 동생 로버트 케네디가 대통령 입후보하여 로스앤젤레스에서 연설하고 호텔에 들어왔는데 총에 맞아 암살당했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의 장남인 존 F. 케네디 2세는 1999년, 비행기 실종으로 사체도 찾지 못했습니다. 동생 로버트 케네디의 아들인 데이비드는 1984년 한 호텔에서 약물과다 복용으로 숨진 채 발견되었고, 그의 동생 마이클은 1997년 12월 음주스키를 타다 나무에 부딪혀서 숨졌습니다.
이처럼 가문의 저주가 계속되자 양조장을 했던 케네디의 아버지 조지 F. 케네디는 “내가 수십 년 동안 술을 만들어 그 술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가정을 파괴하고, 사랑과 안정을 빼앗았더니 이제 그 보응을 받는구나!”하고 탄식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타락의 길로 밀어 넣는 양조장 사업과 기독교 교육을 법적으로 금지한 케네디의 정책 등 하나님을 욕되게 한 일들로 인해 한 가문이 하나님이 진노를 산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죄를 지으면 금방은 잘 되는 것 같지만 반드시 하나님께 심판이 임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지 말라. 사람이 무엇으로 심던지 그대로 거두리라’
우리는 이 교훈을 통해서 깊이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종 엘리사를 모욕했던 그 젊은이들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것을 우리는 눈여겨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결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의식, 무의식 중 모욕되게 합니다. 하나님의 기사와 이적을 폄하하고 멸시하고 무시하는 행동을 하고 하나님이 지으신 이웃 사람들을 인종이나 피부 때문에 국적 때문에 욕하고 비하하고 주의 종을 대적하고 기름 부은 자를 멸시하고 무시하는 이런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씨앗을 심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쉽게 저지르고도 후한 무치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평안할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존경하되 떨고 두려워하므로 존경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우습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요, 위엄이 하늘 꼭대기까지 가득한 어른이신 것입니다. 모든 천군과 천사들이 그 앞에 얼굴을 들지 못하고 무릎을 꿇고 경배하는 대상이 하나님인 것입니다. 이 하나님을 우리가 만홀히 생각하고 모욕하면 어느 곳에 설 곳이 있겠습니다.
이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셔서 그 아들 예수님을 보내 주셔서 몸 찢고 피 흘려 죽기까지 하셨는데, 이 아들을 사랑하지 않고 모욕하고 멸시하고 천대하고 박대한다면 하나님에 대한 대적이요, 하나님을 멸시하고 무시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종, 엘리사를 보고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꺼져버리라”고 한 그들도 저주를 받았는데 하나님의 친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몸 찢고 피 흘려 죽기까지 해서 구원하려고 하셨는데 이를 무시고 멸시하고 대적하고 꺼져라. 꺼져! 떠나가라! 이렇게 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를 가만히 두겠습니까? 믿는 자는 영원한 천국에 믿지 않는 자는 영원한 형벌에 처할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낙원에 들어가서 천천 세세 복을 누릴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지옥과 음부에 떨어져서 천천 세세에 불타며 고통을 당할 것인가?”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결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가 있는 자는 아버지도 있고 예수가 없는 자는 아버지도 없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는 아버지를 사랑하는 자요, 예수님을 미워하는 자는 아버지를 대적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이겨낼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때가 이르기 전에 빨리 회개하고 예수를 모시고 또 예수님 안에서 아버지를 지극히 두려워하고 공경하며 사랑하고 하나님 따라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두렵고 크신 하나님이시여 우리를 사랑하신 그 극진한 사랑 때문에 우리가 행실이 고약해 진 것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철들지 않은 애기처럼 행동한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벧엘에 있는 이스라엘 청소년들이 떼를 지어 나와서 하나님의 종 엘리사를 보고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그렇게 말하므로 하나님의 사역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기적을 폄하하고 짓밟은 것을 우리는 들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우리는 두렵고 떨림으로 바라봐야 될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도 그 외모를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 말게 하여 주시옵시고 하나님의 기름 부은 자를 쉽게 모욕하고 비평하고 저항하지 말게 도와 주시옵시고 하나님을 항상 사랑하고 두려워하며 존경하고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