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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명-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저-채사장
출-한빛비즈
독-2015년 6월 23일
․ 교양은 클래식을 들으며 우아하게 차를 마시는 그 무엇이 아니다. 교양과 인문학은 단적으로 말해서 넓고 얕은 지식이다. 개인의 전문적 지식은 먹고사는데 필수적이지만, 타인과 대화할 때는 그다지 쓸모가 없다. 교양과 인문학으로서의 넓고 얕은 지식이 우리를 심오한 어른들의 대화놀이에 참여할 수 있게 한다.
․ 경영학은 기업의 조직과 관리 운영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 영영이지만. 기업이 활동하기 위한 전제로서의 시장 자율성과 정부 개입 정당성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이런 역할은 경제학이 대신해주어야 한다. 이는 과학에서도 마찬가지다. 의학은 생리학에서 근거를 찾고, 물리학은 수학적 근거의 정당성을 기반으로 해야 가능하다.
근대 합리성의 붕고
-외적 요인:세계대전, 산업화 부작용
-내적 요인:
수학:불완전성 정리
물리학: 불확정성 원리
철학: 인신록적 무정부주의
․ 중세부터 근대까지의 기간은 기독교를 믿는 서양 백인 중산층 남성의 시대였다. 그는 세상의 주인으로 모든 것을 소유했다. 반면 그가 아닌 것들은 차별의 대상이 되었다. 여성차별과 인종차별이 만연했으며, 이들이 피지배의 대상이 되는 것은 이들 스스로 열등하다고 생각하게 했다.
․ 포스트모던은 이분법에서 벗어날 것을 제안한다. 세계를 강압적으로 둘로 쪼갤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가치들을 인정하는 다양성과 다원성을 추구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포스트모던은 그동안 억압받아왔던 가치들의 지위를 회복하고자 하며, 한반 더 나아가 이분법에 포착되지 않고 배제되었던 것들까지도 다시 복원하고자 한다. 유색인종의 고유문화가 관심받기 시자했다. 이처럼 포스트모던은 억압받고 잊혔던 것들의 귀환이다.
․ 건축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해체주의로 드러난다. 해체주의 건축 특징은 비대칭적이고 불안정하며 기능적인 효율성을 배제한 양식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대로 근대 건축을 고려해야 한다. 근개 건축은 아파트로 상징되는 극단적인 효율성을 추구한 모습이었다. 근대 대표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는 직사각형의 공간을 겹겹이 쌓아서 많은 사람이 제한된 공간을 최대한 넓게 사용할 수 있도록 했고, 건물이 인간의 편안함이나 효용을 극대화하는 데 기여 한다고 생각했다. 아파트는 르 코르뷔지에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네모난 고층 아파트의 모습은 근대 이성중심주의의 효율성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이러난 건축물은 효율성 측면에서는 뛰어나지만, 오늘날에 와서 그겅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인간적이지도 않다. 근대 건축에 대한 전면적 저항이 해체주의 건축이 추구하는 바다. 그래서 해체주의 건축은 비효율적이다. 둥근 형태를 띠거나 균형 잡히지 않아서 마치 무너질 듯하고, 공간을 낭비하여 비용을 증가시킨다. 물론 이러한 건축은 극단적인 효율성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한국 사회에 적합하지 않은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해체주의는 우리에게 잃어버린 건축적 아름다움을 돌려주고, 질서와 효율로 숨 막히는 도시 속에서 우리를 사유하게 하며, 사람들 간의 관계를 회복해주는 구심점 역할을 한다.
․ 다만 우리는 두렵다.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진리가, 진리가 아닐 수도 있음을 생각하는 것이 두렵고, 기 존에 내가 진리를 위해 쏟아온 정성과 노력이 허튼짓이었을까 봐 두렵고, 지금까지 나와 단일 진리를 공유해왔던 가족과 친구들의 눈치가 두렵다.
어떤 삶을 선택해도 괜찮다. 기존에 알고 있던 진리를 의심하고 그로인해 주변과 마찰을 빚더라도 다른 진리를 찾아 떠나는 인생도 괜찮은 선택이고, 내가 믿어왔던 진리에 대한 신념을 더 굳건히 해서 이를 주위 사람들과 함께 지켜나가는 인생도 괜찮은 선택이다. 결정은 당신이 하면 된다.
존재론: ( ) 가 있는가? 있다. 없다
인식론: ( )를 어떻게 아는가? 이성, 경험
관찰은 언제나 과거의 관찰에 한정될 뿐이다. 그런데 귀납법은 과거의 관찰을 토대로 미래를 예측하려 한다. 그런 까닭에 귀납법은 언제나 미래에 틀릴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자연과학의 지식인 일반 지식은 불확실하고 의심 가능한 지식이다.
․ 데카르트 이전까지의 시대는 신 중심의 중세였다. 당시에는 신이 중요할 뿐, 인간은 가치나 중요성을 갖지 않았아. 인간과 현실 세계는 신의 피조물로서 인간의 존재 의미는 신으로부터 도출되었다. 하지만 데카르트의 사유는 신이 아니라 인간으로부터 모든 세계의 증명을 시작한다. 진리에 도달하는 길은 나의 의심과 회의를 통해서이고, 나의 존재 증명이 신과 세계의 존재 증명보다 앞선다. 즉 인간의 이성이 우선이고, 신과 세계는 이로부퍼 파생되어 증명되는 것이다. 그래서 데카르트가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 불린다.
․ 베이컨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만의 동굴을 갖고 있다. 그래서 그 동굴 안에서 보호받고 있는 동안은 외부의 실제 빛이 아니라 동굴의 틈새로 새어 들어오는 제한된 빛으로 동굴 안을 본다. 이러한 주관성이 극복될 때 편견 없는 학뭄 탐구가 가능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 우리가 눈으로 본다는 것은 광원에서 쏟아져 나온 빛의 입자들이 사과에 충돌한 후 튕겨져 나와서 내 수정체를 통과해 망막을 자극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본 것이 아니가. 더 거쳐야 할 과정이 있다. 빛의 입자들이 내 눈의 망막을 자극하면 망막은 빛을 전기적 신호로 변환해서 시신경을 통해 뇌로 정보를 보낸다. 뇌는 눈, 귀도 없지만 전기겆 신호가 흘러들어가 해석을 거치면 그제야 전기적 신호를 사과의 이미지로 나에게 보여준다. 눈앞에 그려지는 사과는 실제로는 내 뇌가 만들어내는 영상이다. 우리는 실제 사과를 직접 보는 것이 아니라 뇌가 그려준 영상을 보는 것이다. 즉 사과와 세계는 내 머릿속에 있다. 나는 내 머릿속의 이미지를 보고 있다. 본다는 것은 외부의 사물 자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머릿속에서 해석된 그 무엇인가를 보고 있는 것이다.
․ 칸트는 네 눈앞에 드러난 세계를 현상이라고 부르고, 현상 너머의 진짜 세계를 물자체라고 불렀다. 칸트에 따르면 우리가 얼 수 있는 것은 현상뿐이고, 사룸의 실체 자체를 인식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 고대(절대주의) 중세 (상대주의) 근대(회의주의)
소크라테스-플라톤 교부철학 실재론-합리론(데카르트)
; l 칸트
; 아리스토텔레스 스콜라철학 유명론- 경험론(베이컨)
:
소피스트.........................................................................................................................니체
선 생각: 나는 늘 짧은 삶을 살면서 존재의 허무에 대해 참 많이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 책에서 내가 얻어가진 가장 큰 수확은 이것이었다.<기존에는 80년의 삶은 길고 지금 이 순간은 짧았지만, 영원회귀를 깨닫는 순간 우리는 알게 된다. 80년의 삶은 유한하지만, 이 순간은 무한히 반복되는 영원한 시간임을 말이다. 영원한 순간에 비해볼 때 80년의 유한한 삶의 길이는 0에 수렴한다. 영원회귀를 깨달은 존재는 이제 삶의 방식이 바뀐다. 그는 먼 미래의 불확실한 목표를 향해 지금 이 순간을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지금 이 순간을 가장 가치 있고 의미 있게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은 내 평생의 삶보다 훨씬 긴, 무한히 반복될 영원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삶의 비밀을 깨닫게 된 존재는 지금까지의 삶을 초월한 초인의 모습에 한 걸음 다가간다. > 영원회귀하는 삶의 길이를 얻어가진 만족감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도 좀 줄어드는 것 같다.
․ 유클리드 기하학에서의 삼각형은 내각의 합이 180도지만, 축구공처럼 휘어진 공간 위에 있는 삼각형은 내각의 합이 180도를 넘는다. 유클리드의 제5공리인 평행선 공리도 마찬가지여서 2D인 유클리드 공간의 평행한 두 직선을 절대 만나지 않지만, 곡률을 가진 3D 공간 위의 평행한 두 직선을 만나게 된다. 뉴턴의 역학이 윤믈리드 기하학을 바탕으로 한 물리학이라면, 아인슈타인의 역학은 비유클리드 기하학, 특히 리만 기하학 위에서 전개되는 물리학이라 하겠다. 다시 말해 상대성이론이 등장할 수 있는 배경에는 수학의 발전이 있었다.
․ 예술의 역사(세 딸의 재능으로 설명)
세 딸이 모두 미술쪽으로 진로를 정했다고 해서 자신의 재능을 총동원해서 한 달 동안 ‘앉아 있는 사’이른 주제로 그림을 그려오라 했다. 첫째는 수학적으로 정확한 원근법으로 그렸을 뿐 아니라 앉아 있는 사람의 아래쪽으로는 넓어지고 위로는 좁아지는 안정적인 삼각형 구도에다 팔 다리 비율은 황금비라고 하는 1:1.618로 편안하고 안정된 그림이었다. 둘째는 원근법이나 사람의 형태가 정확히 지며지지는 않았지만 앉아 있는 사람의 표정과 미묘한 몸동작에서 고뇌하고 있는 인간의 실존이 느껴진다. 찌푸려진 미간에서 고통이 느껴지고 의자 모서리에 장장 쓰러질 것만 같이 불안하게 걸터앉은 모습에서 현실애 대한 불안이 선명하게 전해진다. 셋째는 빈 캔버스를 가져와 그대로 들고 있으라 한다. 그러더니 의자에 앉아 물감으로 캔버스를 마구 휘젓는다. 몇 개의 선이 그려졌다. 퍼포먼스라 했다. 첫째는 고전주의(절대주의)로 대표되는 예술 사조로 이성을 통해 그림을 그리려는 화풍이다. 조화, 균형, 비례, 법칙을 강조,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진리를 추구하는 절대주의적 측면을 갖는다. 둘째는 낭만(상대)주의로 대표되는 화풍이다. 개인의 내면과 개성을 존중해 화가의 주관적 표현 방식을 중시하고 격정적이고 정서적인 모습을 보인다. 절대적 진리에 저항하는 상대주의적 측면이다. 셋째는 현대 미술(회의주의)이다. 그 폭이 너무 넓고 다양해 규정하기 어렵다. 예전 것들에 대한 거부와 새로운 것 추구로 압축된다. 현대 미술은 회화의 내용부터 형식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예술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일련의 작업이다. 그림의 대상이 소거되거난, 그림을 그린느 주체를 사라지게 하거나, 예술의 범위가 범위에 대한 고민까지 예술의 소재로 활용하는 등 회의주의 측면을 갖는다.
․ 바로크는 포르투칼어로 비뚤어진 진루라는 뜻으로 단정하지 않고 우아하지 못하다는 경멸적인 뜻으로 붙여졌으나 전 유럽을 휩쓴 고유한 양식으로 자리 잡았다. 바로크는 무겁고 어두운 반면 로코코는 밝고 가볍다는 차이다.
․ 사실주의는 예술에서 배제되었던 일상을 예술의 소재로 데뷔시켰고, 예술계와 대중에게 예술의 의미를 새롭게 고민하게 했다. 사실주의가 민중의 가난과 노동이라는 정치, 경제 측면의 소재를 채택함으로써 이념 측면이 드러난다면, 인상주의는 단지 눈에 보이는 것을 가감없이 그려내려고 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 세잔의 정물화를 보면 테이블 위에 놓인 체리 접시가 테이블의 수평과 어긋나서 마치 채리 접시만을 위에서 따로 보고 그린 듯하다. 세잔이 의도적으로 관점을 어긋나게 한 것은 절말 그리고자 한 것이 순간의 인상이 아니라 사물의 본질이었기 때문이다. 인상주의가 순간적인 이미지를 빠르게 그릴 때 당연히 전제하는 것은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가의 단일한 시선이다. 그른 사물 그 자체의 본질로 그림의 주인공은 사물의 본질이 되므로 실제 사물은 관찰자의 시선과 독립해서 존재한다. 따라서 세잔이 생각할 깨 글미에 존재하는 화가의 단일한 시선은 중요 요소가 아니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난 구상적 측면에서의 사물의 형태를 중시했다. 세잔 그림에서는 다른 측면에서 관측된 대상들이 동시에 하나의 화폭에 그려진 것이다. 세잔의 이런 선구적 작업은 후에 현대 입체파와 추상미술을 탄생하기 하여 현대 미술이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 아브라함은 존경받는 아버지, 야훼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
․ 이스라엘은 신과 겨루다의 의미
․ 절대적 유일신교-구약-유태교, 그리스도교, 이슬람
상대적 다신교- 베다-힌두교, 불교, 티베트불교
회의주의 종교
․ 죽음의 순간-임사 체험
임사 체험의 공통된 패턴을 보면 몸 밖에서 자신을 보는 체외 이탈의 경험, 빛의 터너을 통과하는 체험, 평온함의 느낌, 지각의 확대, 귀에 거슬리는 윙윙거리는 소리, 죽은 지인과의 만남, 인생의 회고, 경계 지점에서의 회귀들이다. 체험 후에 일반적으로 일상생활에서의 변화도 발견되고 있는데, 주변 환경과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증가했고, 지식에 대한 욕구가 늘어났으며, 죽음에 대한 공포가 극복되었다고 한다.
․ 죽음 이후의 네가능성
무- 단절
영생- 지속
윤회-반복
영원회귀-동일한 반복
․ 니체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영원회귀의 개념을 처음 제안했는데 끔찍한 사후관을 제시한 이유는 무엇일까? 영원회귀가 사실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영원회귀의 개념이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돌아보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영원회귀는 두 가지 시간의 길이를 전도시킨다. 그 두 시간은 인생과 순간이다. 보총 우리에게 100년의 인생은 매우 긴 시간이지만 지금 당장의 순간은 매우 짧다. 이 짧은 순간을 소모하며 살아가며 미래를 위채 참고 견딘다. 하지만 니체는 영원회귀 개념을 통해 정말 중요한 것은 인생의 목표나 인생 전체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임을 밝혀 무한히 반복되는 삶 속에서 무한히 반복될 것이다. 그래서 이 순간의 길이는 삶의 반복만큼 무한대로 길어진다. 반면 인생은 100년이라는 유한한 시간일 뿐이다. 순간과 인생의 길이는 역전된다. 순간은 무한한 길이를 갖지만 인생은 유한한 길이로 한정된다. 만약 이 순간이 힘겹고 고통스럽다면, 그 고통은 영원할 것이다. 반대로 지금 이 순간이 즐겁고 행복하다면 이 행복은 영원할 것이다. 내가 지금 소모해버리고 있는 이 순간은 내가 영원히 반복해야 하는 시간이다. 따라서 지금 이 순간을 낭비할 수 없다. 영원히 반복될 순간을 위해 우리는 나의 삶을 창조해야만 한다. 지금 당장 행복해지도록 삶을 바꿔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현재의 행위를 이해하게 하는 기준점이 된다. 죽음의 문제는 항상 삶의 의미와 엮여 있다. 죽음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이제는 삶에 대해 말해야 한다. 삶은 시간 속에서 인생으로 드러나고 시간을 벗어나 현재의 공간에서 의식으로 인지된다. 삶의 신비를 이해한다는 것은 시간 안에서 발견되는 인생과 공간 안에서 발견되는 의식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다.
․ 소설을 일을 때 주인공이 왜 이런 상황에 처했는지 독서 중에는 이해할 수 없지만 마지막 장을 넘길 때 주인공 행동의 의미가 규정된다. 내 삶의 주인공인 나도 마찬가지다. 왜 이 사람들을 만나야 했는지, 왜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되었는지, 삶을 살아가는 중간에는 그 의미가 확정되지 않는다. 삶의 마지막이 도래하는 순간에 나는 비로소 내가 왜 이런 삶을 살아야만 했는지 이해가 된다.
․ 살아 있음의 신비는 내가 나의 내적 세계로서의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신비다.
․ 실제 세계는 색깔을 갖고 있지 않다. 색깔은 인간이 물질 세계를 해석한 결과물이다. 실제 세계에서 색깔이란 단지 광원에서 쏟아져 나온 광입자들이 물체에 충돌아혀 일부는 흡수되고 일부는 튕겨져 나가는 운동 상태일 것이다. 신은 색깔이 아니라 입자들의 반사와 흡수를 볼 것이다.
․ 의식은 내적 세계를 의미한다. 이 내적 세계는 현상 세계다. 문제는 너무나도 선명하게 펼쳐져 있는 눈앞의 현상 세계가 실제로는 내 머릿속에 있다. 우리는 내 외부로 나가본 적이 없다. 사랑하는 사람들, 짜증나는 김 부장, 카드 고지서, 사회와 국가 모두 내 머릿속에 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자폐아들인지도 모른다.
․ 살아 있다는 것은 그 개인이 하나의 내적 세계, 하나의 우주를 소유하고 그 안에 거주함을 의미한다.
․ 공통된 체험이 불가능하지만 너무나 명확하고 나에게는 확실하게 인식되는 것, 그것이 신비의 대상이 된다. 구체적으로는 죽음과 삶의 풀리지 않는 심오함의 중심이 된다.
․ 세계 그 자체로서의 물자체의 세계는 우리가 직접 파악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우리는 그 세계를 감각기관의 제한된 정보로 받아들여 머릿속에서 그 세계를 재구성하고 확장한다. 우리는 내적 세계에서만 거주하며, 이 현상 세계는 나의 독자적인 새계로서 타인과 공유될 수 없다. 오래된 지혜가 말해주듯 눈앞의 현상 세계가 실제 세계가 아닌 하나의 허상임을 이해하게 될 때, 우리는 깨달음으로 향하는 인생의 순례길을 시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