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단편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읽다보면 얘들 사이에 독재자로 묘사되는 엄석대란 넘이 있다. 난 이 엄석대가 영락없는 시골 우리뒷집 살던 경철이형 같고, 거기 엄석대 꼬붕처럼 등장하는 나머지 아이들이 모두 어릴적 시골 얘들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엄석대의 횡포와 농간에 아이들의 온갖 기회주의적 태도가 보이고, 그것도 일종의 권력(權力)이라고 아부하고 추종하는 인물도 많이 등장한다. 도용이는 엄석대 같은 경철이 형한테 무던히도 괴롭힘을 많이 당했다. 바로 앞뒷집 살면서 말이다. 꼬붕이기를 강요당하고 말안들으면 무력으로 굴종을 시키고 그랬지. 경철이 형 밑으로 저학년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특히 같은 또래인 종철이나 남선이같은 형들이 더 심하게 당했다. 비슷한 분위조차 경험하지 못하고 자란 도회지 출신들은 절대로 실감이 안날 것이다. 암튼 그랬다. 그 경철이형을 한 3~4년전에 한번 만났다. 어느날 나한테 연락이 왔는데 강동구 관내 소방관으로 근무중이었다. 신문을 보고 연락했다면서 광화문 어디서 만났는데 엄청 반가웠다. 그때 만난 김에 경철이형을 주인공 삼아 '강동구 소방관들이 구급대 119 아저씨로 바쁜 가운데도 틈틈이 불우이웃을 찾아 봉사한다'는 내용의 선행사례를 우리 신문 사회면에 기사로 실어준 적이 있다. 그 엄석대가 우찌 그리 천사처럼 나긋나긋해졌는지 도무지 상상이 안갈 정도였다. 무지하게 가정적이고, 무지하게 인자하고, 무지하게 다정다감한 이웃집 형이 됐으니 말이다. 말 그대로 위 아래집 살던 형의 모습 그대로. 그런데 요즘엔 도통 연락을 못하고 지낸다. 언젠가 분당 외곽쪽으로 골프다녀오던 길에 천호동 쪽에서 저녁을 먹게 돼서 지나가던 길이었다. 마침 내차 바로 옆에 강동구 소속의 119 한대가 신호를 받고 서있길래, 반가운 마음에 조수석에 있는 대원한테 '혹시 강경철이라고 아십니까?' 했더니 '아 그럼요, 우리 팀장인데요' 한다. 그러면서 '어떻게 되시는 사입니까' 하고 묻길래, '고향 동생뻘 되는데요' 했더니 '하이고, 매일 우리랑 이 차 타고 다니는데 오늘은 마침 비번이네요, 지금 연락해드릴까요' 그러는게 아닌가. 한편으로 좀 서운하긴 했어도 연락처를 불러달래서 쪽지에 적어놓고 있었는데 우찌우찌 하다 연락도 못하고 전화번호도 잃어버렸다. 하긴 지금이라도 수소문하고 연락해서 통화하는거야 어려운 일은 아니지. 사람이 살다보니 세상만사가 생각대로만 되는 것만도 아니어서 그 후론 아직도 소식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