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춘선과 중앙선
수년전 문단동아리활동 문학기행 시절 용문에서 내려 아침수목원에서 문학강좌가 있었다. 계절 따라 문학인들이 모여서 나들이를 하는 문학행사인데 이때 저명 원로 문학인을 초청하여 강의를 듣는 시간을 갖는 경우가 있다. 그때도 ㅇㅅㅎ시인을 초청하여 강의를 듣기로 예약되었고 당일 참가회원 모두에게 배부된 팸플릿 표지에 이미 그분의 이름 석자가 빛나고 있었다. 그런대 용문역에 집결키로 한 예정 시간까지 도착이 안 되고 있어서 많이 기다렸다. 지루하도록 기다리고 기다려도 안보이니까 통화를 시도해보면 가고 있다고는 하는데 그렇게 무려 한 시간 이상을 지각한 것이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실수가 벌어진 것이었다. 그 어른이 미안해 할까봐 그랬는지 늦게 도착한 이유도 밝히지 않고 쉬쉬하면서 식당으로 갔고 점심을 먹고 수목원을 둘러보고 나왔는데 나는 왜 늦었는지 알고 싶었지만 그냥 열차가 늦어서 라고만 간단히 한마디 전달하고 마니까 돌아올 때까지 참으로 궁금했다. 2~30분 늦었다 해도 결례인데 무려 두 배 이상을 더 늦고도 명확한 해명이 없다는 것은 나에게는 참기 힘든 궁금증으로 돌아오는 길에 총무에게 기어코 캐물었다. 지하철을 잘 못 탔다는 것이다. 엉뚱한 곳으로 잘 못 탔다가 다시 돌아오느라고 늦었다는 것이다.
소상히 밝히면 망신감이 될까 쉬쉬한 걸로 짐작했다. 내가 실로 오랜만에 경춘선을 타면서 그때 일이 생각났다. 스마트폰으로 오늘 확인해보고 청량리에서 갈아타면 될 것 같아 기다리는데 한 두 역 더 가도 될 것 같아 망우역 까지 갔고 시간이 되어 차가 오기에 탔다. 사릉을 가려면 7역 정도 남았는데 다음역이 생소한 양원역이 나온다. 다시 스마트폰 꺼내 확인해보니 용문 행으로 잘못 가고 있었다. 구리 역에서 내려 얼른 바꿔 타고 망우역에서 내려 반대쪽으로 경춘선을 갈아탔다. 철저히 알아서 탄다고 탔는데 실수를 한 것이다. 누가 알면 부끄러울 일이다.
용문역 쪽으로 간 것은 중앙선, 춘천으로 가는 것은 경춘선이다. 이 두 선이 청량리에서 회기, 상봉, 퇴계원, 망우역 등이 겹치다가 아래로 중앙선 용문행, 위로 춘천 가는 경춘선으로 갈라진다. 나 말고도 오늘 이런 혼란 겪는 세분을 오늘의 현장에서 목격했는데 날마다 이 혼란 겪는 사람 수도 없이 발생하겠다는 생각이다. 나야 하두 오랜만에 오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나이 드신 노인들은 날마다 부지기수로 혼란을 일으킬 것 같다.
세상이 갈수록 복잡해진다. 발전이란 우리생활을 여러 가지로 편리하게 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반면 발전은 편리하나 복잡한 과정을 이해하고 나서야 편함이 오는 것이지 기본을 익히지 않고는 오히려 더 혼란을 야기하게 되는 것인가, 이런 현상이 왜 생기는가? 시대의 발전 즉 문명의 이기에 익숙하고 시대흐름에 동참하려면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원로 문학인을 두 종류로 분류해보면 공부를 계속 하는 사람과 안한 사람이 쉽게 구분이 간다. 공부를 안 하고 강의만 하는 사람은 옛날 얘기만 주된 주제로 나오니 지루하다.
지하철도 제대로 못 타는 노인이 한다는 강의는 들을 만 하다기 보다는 이제 그만 댁에서 쉬시든지 강단강의는 사양하고 옛날 얘기나 들려주든지 해야지 무슨 강의를 한단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니 오늘 나도 경춘선을 잘못 타고 3역이나 지나가다 다시 되돌아 바로 탔다는 것은 남의 일이 아니구나 하고 반성도 되면서 그래도 사릉기신제 현장에 30분전에 도착한 것은 미리미리 출발했으니까 잘 못이 없다고 자위해보았다. 또한 오랜만에 와보니 그럴 수도 있다고 변명도 된다. 하여튼 중앙선 경춘선은 누구나 상당히 혼란스럽다.
분당선을 타면 왕십리에서 내리자마자 절대 지하로 들어가지 말고 바로 반대(건너)편에서 환승하여 청량리, 회기, 중랑, 상봉, 망우 역 중에서 내려 신내역 쪽 경춘선으로 갈아타야 사릉(정순왕후릉)을 갈수 있다. 사릉역에서 내리면 택시(4,000원)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경춘선은 itx고속열차가 있어 또 헷갈린다. 용산 발 춘천행 경춘선 열차는 급행과 일반 두 종류인 셈이고 itx고속열차가 빨리 가고 요금이 더 비싸다. 서울에서 직장생활 할 때 산악회 관광버스나 내 승용차로도 자주 다녔던 경춘선에 지금처럼 지하 지상철이 놓이고 나서는 주변 경관 등 가히 천지가 변한 듯 달라졌으니 모를 수밖에 없는 일이다. 결론은 자주 다니며 익혀야 할뿐 다른 방법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