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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삶의 존재 이유, 희망을 부르는 노래
- 이흥만론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I.
시는 시인과의 가장 인간적인 만남의 장을 열어주는 통로라는 점에서, 필자는 어느새 그가 다듬고 있는 삶의 진실성에 경의를 표하게 되었다. 이 분의 시를 탐독하면서 ‘시는 자연의 모방’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자연으로 상징되는 생명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영적 귀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손녀가 자라나는 순수의 모습을 시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뛰어난 감수성을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세계를 치환하여 현상학적으로 인식하는, 다시 말해 비유를 통해 시적으로 구축하는 시상은 우리에게 풍성한 감동을 선사한다. 또한 <서문>을 통해 그는 문인의 꿈을 잘 기술했다. 시집을 낸다면 꼭 이 제목으로 내고 싶었기에 2년간의 시상들을 모아 두 번째 시집 《이런 마음으로 살게 하소서》를 엮었다고 한다. “공감하는 마음으로, 살아 숨 쉬는 책으로 읽히기를 소망하며, 많은 꿈들이 현실이 되는 아름다운 상상을 한다.” 필자는 시인의 꿈이 실현되도록 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가 숨겨놓은 시맥을 찾아 나섰다. 시의 숲을 헤맨다. 시집에 실린 모든 시에 대해 한 편 한 편 감상하고 여섯 파트로 나눠진 것 중에서 각 파트 가장 문학성이 짙은 시에 대한 평을 쓰고자 한다.
그의 시는 서정시학의 힘을 업고 문학형식으로 형상화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있다. 시와의 치밀한 감상적 조우라는 이 시집 해설을 통해서 이흥만 시의 정체와 시적 울림의 메커니즘에 접근해 볼 수 있으리라 본다. 자연에 대한 사랑 없이 지구가 어떻게 건강할 수 있는가. 자연을 시적 등가물로 생각하고 노래했다는 점에서 그는 문학사의 한 언저리에 서정나무 한 그루를 심어놓는 데 크게 기여한 시인이라 하겠다. 살아있는 시인의 문학작품의 평가만으로 그의 시적 성과를 평가하는 것은 무리이지만, 그의 시가 낭만주의와 휴머니즘의 변증법적 완성을 통해서 한국시의 전통과 품격을 격조 있게 계승하고 있다는 데 대해서는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으리라 본다. 본래 시는, 자동화로 습관화된 지각을 지연시켜, 세계를 자아화함으로써 생성되는 것이다. 시를 읽는 것은 세계 속에 있는 시인의 내밀한 경험을 이해하는 것과 같다. 경험 중에서도 시인의 특별한 경험인 체험은 자기의식 속에 어떤 의미가 녹아 있다. 이 의미에 의해 체험은 지향성을 갖는다.
그의 세계 인식은 <이런 마음으로 살게 하소서>에 잘 피력되어 있다. 시제에 표상되는 이미지는 따뜻하고 열정적이고,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마음’의 형상임을 알 수 있고, ‘살게 하소서’라는 기도는 그의 삶과 시가 지니고 있는 연관성에 의해 그때그때 실제로 감각되고 파악되는 것 이상의 의미를 내포한다고 하겠다. 시인에게 시는 온전한 삶을 획득하고자 하는 지향성과도 같다고 하겠다. 이흥만 시인은 <서문>에서 ‘첫 번째 시집을 출판한 지 2년 만에 다시 시집을 출판하면서, 첫 시집 《너에게 주고 싶은 것들》을 세상에 내어놓고, 글을 달군 온도를 더 단단히 담금질했더라면, 다듬고 깎아내는 시간을 좀 더 가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피력하면서 오만과 자만을 경계하고 있다. 좀 더 변형과 보수를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에서 평자는 시인의 훌륭한 인품을 볼 수 있었다. 역사와 시대 앞에, 활자와 독자 앞에 겸손한 자세를 갖추는 거 말고 시인에게 무엇이 더 필요한가. 그가 찾고자 했던 진리는 오직 하나다. 기도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이런 마음’의 정체를 나서는 길이 행복하다.
II.
시집은 6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시인이 친절하게도 관련성이 있는 시들을 한데 묶어 분류를 잘 해놓았다. 때문에 대표적인 시 한 편으로도 각 부에 놓인 시들의 성격과 특성을 파악하는 데 무리가 없을 듯하다. 제1부 제목은 <외할아버지의 육아일기>다. 제2부는 <이런 마음으로 살게 하소서>, 제3부는 <봄의 역사>, 제4부는 <곰삭은 우정>, 제5부는 <추억여행>, 제6부는 <산다는 건>으로 되어 있다. 평자는 왜 시인이 <외할아버지의 육아일기>를 제1부에 먼저 놓았을까를 생각했다. <외할아버지의 육아일기>에는 시인의 손녀 사랑이 압축되어 있다. ‘팔다리가 뻐근해지고/ 허리도 아프지만/ 방글방글 눈웃음으로/ 수고비를 지불하면서/ 외할아버지 사랑을 옭아맨다/ 옳지, 이런 재미로 아이를 본다’는 시인이다. 1부에서 6부까지 비슷한 소재나 주제끼리 범주화해 놓은 걸 보면, 이 분의 시가 결코 흐트러진 글도 아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삶의 근원을 알고자 했고, 자신을 위협하는 많은 사회적 기제들을 깨어있는 의식으로 탐색하며, 오랜 시간 동안 시로 풀어내었다. 그의 시는 삶의 전반을 아우르고 있는 존재론적 사유의 흔적들이다. 시가 삶이 되고, 삶이 시가 되었던 과정을 애정의 눈으로 살펴보자.
하늘 맑은 휴일 아침
동상 들판으로 산책을 나갔더니
가을 햇살과 바람이
쉬지 않고 일했는지
벼도 콩도 밭둑에 숨어든 호박도
누런빛을 잔뜩 품었네요
그 풍광에 취하다 보니
발걸음도 마음도 깃털처럼 가볍네요
꽃구름 몽실몽실 앞산 너머 놀러 온 날
손녀 데리고 나들이 나갔더니
알록달록 단풍보다
사람 모습이 더 곱네요
쉬엄쉬엄 시간을 보내다가
돌아본 길 위에
그제사 여유로운 발걸음이
훈장같이 따라오네요
이런 마음으로 살게 하소서
까치를 보고도 까르르르 깔깔
들꽃을 보고도 까르르르 깔깔
손녀의 말간 웃음에 화답하듯
하늘도 파랗게 웃음을 흘립니다
내 삶도 향기롭게 익어갑니다
- <가을 햇살과 바람이 빚은 작품>, 전문
무엇보다도 이 시는 ‘가을 햇살과 바람이/ 쉬지 않고 일했는지’에 이어지는 ‘벼도 콩도 밭둑에 숨어든 호박도/ 누런빛을 잔뜩 품었네요’라고 시적 화자가 해석한 인과 구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인은 자신의 삶이 향기롭게 익어가는 원인을 물론 자연에서 찾지만, 자연이 전부가 아니고 진짜 원인은 그 속에서 건강한 웃음을 흘리는 손녀가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시로 노래하고 있다. 시인은 어떤 경우에도 시를 쓰고 있다는 것을 ‘현실태’로 표현함으로써 강한 인과성의 원리를 보여준다. ‘벼와 콩 호박’이 누렇게 된 이유로 ‘가을 햇살과 바람’이 열심히 일을 한 덕분이라는 논리는 ‘가능태’가 아니라 ‘현실태’다. 이 시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구조적인 형식도 알아야겠지만, 그 작품의 내적인 논리체계뿐만 아니라 작품 외적인 것도 부분과 전체라는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꽃구름 몽실몽실 앞산 너머 놀러 온 날/ 손녀 데리고 나들이 나갔더니 / 알록달록 단풍보다/ 사람 모습이 더 곱네요’하는 대목인데, 이 부분만 해석하면, 시인이 자연의 내면과 처절하게 대면한다고 볼 수 있지만, 다시 이어지는 ‘보다’라는 비교의 조사 뒤 ‘사람 모습이 더 곱네요’라는 데서 볼 때, 이 시는 자연주의보다 인간중심주의를 표방하고 있다고 하겠다. 무의식적인 충동이나 욕망이 무의식 밖으로 나올 때 언어기호의 껍질을 쓰고 나오는데, 시인은 하늘이 파란 것도 손녀의 말간 웃음 때문이라고 볼 정도로 손녀를 세상의 중심에 위치시키고 있다.
9시 30분에 눈을 뜨면
분유 120ml 뚝딱
품에 안고
등을 토닥여주면
꺼어억 큰애처럼 트림을 한다
‘아이쿠 잘한다’ 칭찬에
방긋방긋 보내는 답례
무뚝뚝한 외할아버지 입가에도
어느새 웃음꽃이 피고
이런 마음으로 살게 하소서
육아는 힘든 거라지만
눈에 콩깍지 낀 외할아버지
별거 아니라며 너스레를 떤다
분유 먹이고
노래 들으며 따라 하고
눈 맞추고 놀면 되지
낮잠 잘 땐 요람에 누이고
발로 살살 요람 흔들면 되고
가끔
앙앙거리며 보채면
기저귀 갈아주고
시간 맞춰 분유도 먹이고
고개 빳빳이 들고
까만 눈동자로 세상을 만나느라
바삐 굴면
일어서서 서성거리며
눈높이에 화답하면 되는 거지
- <외할아버지의 육아일기>, 부분
이 시집의 첫 파트 제목으로 놓여있는 이 시는 서정적 자아로서 시인이 아니라 역사적 자아로서 시적 화자가 손녀와의 관계 그대로 ‘외할아버지’의 관점에서 쓴 체험시다. ‘육아일기’란 단어는 이 시인의 행복론을 이해하는 데 키워드로 작용한다. 일반적으로 친정쪽 친정어머니나 외할머니가 육아를 도와주는 추세이지만 시인은 퇴직 후 손녀를 보면서 삶의 행복을 구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긍정이 내재된 마음과 육체가 겪게 되는 경험의 모든 양상은 행복이다. 행복해지는 길은 인식의 변화에 따라 획득되는 것이 아닌가. ‘무뚝뚝한 외할아버지 입가에도/ 어느새 웃음꽃이 피고/ 이런 마음으로 살게 하소서’ 라고 노래하는 것으로 볼 때, 시인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우리 삶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에 천착해왔다고 하겠다. 본질에 집중한다는 것은 언제나 깨어있음을 의미한다. 시인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가 시를 쓰는 것은 일종의 ‘행복한 삶에 대한 기도’다. 이흥만의 시작행위는 마음의 본질에 집중하여 자신의 존재성을 확립해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는 ‘육아는 힘든 거라지만/ 눈에 콩깍지 낀 외할아버지/ 별거 아니라며 너스레를 떤다’란 어구로 ‘육아는 힘들다’는 기존의 인식도 덮어버린다. 시인은 손녀와 교감하는 자신의 행위 본질에 대한 탐구 과정에서 사고와 감정의 질적 변화, 즉 행복을 경험하는 것이 확실하다.
검은빛 감돌던 산야에
바람 살랑 불더니
애기 속살 같은 잎새가
연초록 고운 옷 입고
쏙쏙 고개를 내민다
할미 할비 맘마
단어만 나열하던 손녀가
어느새
할머니 맘마 주세요
할아버지 꽃구경 가요
또박 또박 문장으로 재롱을 떤다
사랑은 유통 기한이 없다고 했던가
계절이 바뀌고
손녀가 커가고
나이가 먹는대도
아낌없는 사랑 베풀고
사람을 담는 참된 마음 가꾸고 싶네요
이런 마음으로 살게 하소서
그늘도 주고
목재도 주고
쉼터도 되어주는 나무처럼
사랑이 충만하니
하루하루가 행복합니다
오늘도
손녀의 눈망울 속엔
웃음이 가득하다
- <손녀의 눈망울>, 전문
위의 시를 보면, 이흥만 시인에게 시는 왜 필요한가를 알 수 있다. 시인은 시인의 역할을 ‘사랑을 표현하는 데’ 두고 있다. 이 시뿐만 아니라 다른 시에서도 나타나는 주요한 특질의 하나는 시의 중간중간에 ‘이런 마음으로 살게 하소서’라는 기원이 삽입되어 나타난다는 점이다. 위 시는 손녀의 눈망울을 접하고 쓴 작품이다. 시인은 반인간적인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서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늘도 주고/ 목재도 주고/ 쉼터도 되어주는 나무처럼/ 사랑이 충만하니/ 하루하루가 행복합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손녀를 보는 순간 또는 시간만큼, 시인은 이 손녀와 함께하는 공간 안에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흥만의 시는 현실만족에 대한 긍정성을 드러내는 데 그 특성이 있다. ‘사랑이 충만하니’ ‘하루하루가 행복합니다’ ‘참된 마음 가꾸고 싶네요’ 등의 직설적인 어구로 인한 시의 느슨한 긴장미를 시인은 ‘애기 속살 같은 잎새가/ 연초록 고운 옷 입고/ 쏙쏙 고개를 내민다’ ‘그늘도 주고/ 목재도 주고/ 쉼터도 되어주는 나무처럼’ ‘손녀의 눈망울 속엔/ 웃음이 가득하다’ 등의 묘사를 병용해서, 관념과 구체어를 중층으로 배치해서 문학성을 잘 견인해내고 있다. 시적 화자는 헌신과 희생을 드러내어 자기 행위를 합리화하기보다는 힘든 육아에 대한 긍정적이면서도 따뜻한 시각을 유지하는 일을 잊지 않는다. 이러한 긍정은 ‘손녀의 눈망울엔 웃음이 가득하다’ 라는 함축적인 어구에서 엿볼 수 있다.
이흥만의 시세계가 보여주는 또 다른 한 모습에는 남자의 따스함이 스며나고 있으며, 진솔한 고백이 반성적 성찰의 원리로 승화되어 순진무구한 인정의 미학으로 묻어난다는 것이다. ‘살면서 난 생채기 보듬으려고 떠난 휴가’라는 시의 첫 어구에는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리라는 남자의 진한 다짐이 들어있다. 역사적 자아로서 시인이 써나가는 시의 특징 중 하나는 개인적 체험을 보여주는 데 있어서 가공하지 않고 사실을 그대로 노출시킨다는 점이다. 독자로부터 공감을 얻게 되는 것은 그 소재가 특별해서라기보다 작가의 진솔함이 인정에 뿌리내려 있어서일 경우가 많다. 이흥만 시의 최대 강점은 체험의 진실성이요, 진한 사랑의 표백에 있다. 손녀에게도 아내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점이다. 이런 보편성, 일관성, 그리고 지속성이 독자로부터 공감을 얻게 할 뿐만 아니라 시문학으로서의 가치와 공감을 담보해 주는 것이다.
살면서 난 생채기 보듬으려고 떠난 휴가
짐 풀고 고개 드니
소나무 우듬지에 걸린 구름 사이로
살포시 고개 내민 하늘이 참 맑다
아이가 되어 물놀이도 하고
중년으로 돌아와 산책도 하고
제철 음식으로 먹는 재미도 누리고
커피 한 잔 마시며 웃음도 건졌다
하루가 이렇게도 빨랐던가
일인용 침대에 누운
아내의 숨소리가 편안하게 다가온다
생채기 아무는 소리가 이러할까
오늘밤에는
나를 일깨우는 소리에
흠뻑 젖어들고 싶다
- <아내의 숨소리> , 일부
‘아내의 숨소리’라는 제목이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숨소리’라는 말에 담긴 낭만성과 순수성 때문이다. 이 작품은 아내를 향한 시인의 정이 어떠한가를 잘 보여준다. 현대의 남편들은 아내에게 월급봉투 주고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불편 없이 살 수 있게 해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남편의 도리를 다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아내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물질적인 도움이 아니다. 아무리 황금만능주의 사회라 하더라도 부부간은 물질이 전부일 수 없다. 이흥만 시인은 이런 진리를 ‘아내의 숨소리’라는 제재를 통해 잘 보여준다. ‘소나무 우듬지에 걸린 구름 사이로/ 살포시 고개 내민 하늘이 참 맑다’는 어구는 내용적으로는 부부애의 무한한 확장이면서 형식적으로는 문학적 성취가 빛나는 부분이다. ‘우듬지에 걸린 구름’과 ‘고개 내민 하늘’의 대조가 감동을 준다. ‘참 맑다’의 의미에 뭉클한 느낌이 드는 것은 부부간의 애정이 그만큼 절대적이며, 애틋하고 간절하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시인은 이 작품을 통해서 필연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고자 한다. 아내의 숨소리를 들으며, ‘생채기 아무는 소리가 이러할까’라고 되뇌는 모습에서 아내를 생각하는 시인의 애틋함이 드러난다. 아내의 거친 숨소리를 즐겁게 듣고 말겠다는 각오를 ‘오늘밤에는/ 나를 일깨우는 소리에/ 흠뻑 젖어들고 싶다’고 의미화함으로써 시인은 아내 사랑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부부간의 정이 예전 같지 않은 요즘이라 이런 시가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울산의 명물 진하에 가다보면
서생포왜성*
을 만나게 된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축조한 성곽
왜장 가토 기요마사와 유정이 담판했던 곳
4월이 되면
400여 년 전 왜구에게 짓밟혔던 선조의 영혼이
백의민족의 혼으로 피어나
성곽을 둘러싼 채 살풀이를 한다
민초들의 눈물 머금은 그날의 역사
아는지 모르는지 행락객들
희희낙락 웃음을 흘리고
선조들의 절절한 애국심이
꽃잎으로 분분히 흩날린다
- <서생포왜성 벚꽃> 전문 -
이 시는 이흥만 시 중에서 대표적인 의식지향의 시다. 항상 손녀를 보는 외할아버지의 입장이나 아내의 남편 입장에서 현상을 이해하는 것만은 아니다. 때론 그는 사회의 중심 또는 역사의 중심에 서고자 한다. 이 작품 <서생포왜성 벚꽃>의 ‘서생포왜성’은 핍박받는 자의 상징이며 동시에 일복 침략의 물적 증거다. 그는 대동아공영이란 미행 하에 자행되고 있는 일본의 횡포에 대한 분노를 ‘왜성’을 시의 제재로 활용해서 잘 형상화하고 있다. 이 시의 최대 관심은 선조들의 절절한 애국심을 그리는 일이다. 그래서 역사시를 일러 가슴에 넘치는 민족애를 기록하는 작업이라고도 한다. 시인은 왜장 가토 기요마사와 유정이 담판을 벌였던 역사적 사실을 통해 일제의 횡포를 고발하며, 잊어서는 안 될 선조들의 저항정신이 행락객들의 희희낙락에 매몰되고 있는 현실을 우려의 시각으로 지켜본다. 역사유적의 보전 가치를 설파하고 있는 모습은 아름답다고 하겠다. 이 시의 결말부에서 시인은 역사를 잊은 듯한 우리들의 웃음소리를 안타까워하면서, 목숨으로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선조들의 절절한 애국심을 분분히 날리는 꽃잎으로 낭만화하고 있다. 서글픔에 더 접근하기 위해 저항정신을 ’꽃잎으로 묘사하였지만, 시인은 일제의 억압 속에서도 나라를 지켜려 했던 민초들에게 존경을 보낸다. 슬픈 우리 근대역사를 추적하는 모습에서 작가다움을 보여준다. 이 시는 ‘4월이 되면/ 400여 년 전 왜구에게 짓밟혔던 선조의 영혼이/ 백의민족의 혼으로 피어나/ 성곽을 둘러싼 채 살풀이를 한다’는 묘사에서 문학적 성취가 최고조로 발휘된다. 이로써 이흥만 시인은 시 속에 저항 정신을 담음으로써 투철한 시정신을 보여주었다고 하겠다.
은갈치처럼 반짝이는 억새 광장
무장사지로 가는 길은
마을 어귀부터 주민들의 지혜가 스며있었다
꼬리를 문 자동차 행렬을
큐빅을 맞추듯 빈틈없이 주차시키고
햇살로 물들인 구릿빛 얼굴로
씨익 한번 웃으신다
어깨 맞추고 담소 나누다보면
발걸음마다 바뀌는 풍경
흐르는 땀방울에 바람 머물면
또 하나의 추억이 시나브로 익어간다
신라인의 혼과 땀이 담긴
삼층석탑, 금당터, 아미타조상사적비가
천년세월을 불러내면
무심을 실천하는 억새가
사각사각 정담을 나눈다
이런 마음으로 살게 하소서
바람에 몸 맡긴 채
민초들의 생명력 같은 억새 평원을
그윽이 바라보노라면
신비로운 기적 같은 순간이 어깨를 툭툭 친다
유연한 삶을 살라는 화두가 귓가에 쟁쟁하다
- <무장사지 가는 길>, 전문
이흥만의 시세계를 이루는 또 하나의 바람직한 숨결은 민초들의 생명력 같은 억새 평원을 보면서 ‘무장사지’에 대한 그리움과 가시지 않을 짙은 향기를 담아내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역사적 유적지에 대한 그리움과 젊은 시절의 추억은 모든 사람의 가슴 속에 공통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유독 그에게는 강한 것 같다. 그러기에 무장사지는 그의 눈을 뜨이게 하고 무심을 실천하는 억새가 사각사각 정담을 나누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 시의 행간에 놓은 ‘이런 마음으로 살게 하소서’란 기도는 언제 어디서나 그의 세계관을 소환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자기를 표현함으로써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그의 대다수 시들은 손녀와의 교감에서 오는 행복감으로 생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인이야말로 눈물의 습기를 통해 ‘유연한 삶’을 황홀하게 만나는 작가다. 시가 소시민적 생활의 애환을 그리든, 병든 사회에의 저항과 분노를 나타내든 간에, ‘문학성’ 속에 그 대상을 용해하고 있다는 점이 이흥만 시의 강점이다. ‘그윽이 바라보노라면 신비로운 기적 같은 순간이 어깨를 툭툭 친다’라는 벼랑 같이 느껴질 정도의 미학적 사유가 녹아든 어구를 적재적소에 놓을 때까지 그는 감각의 촉수를 수없이 갈고 닦았으리라 본다.
뭘 그리 호들갑이었을까
백신 접종 예약을 하고 나니
두 시간 만에 황천길을 떠났다는 소식
기저질환도 없는데 의식을 잃었다는 둥
이삼일씩 앓아누웠다는 둥
말 말 말의 홍수 속에
머리가 어질어질
접종 당일
예약 상황 확인한 뒤
면접 기다리는 수험생처럼
비장함마저 감도는데
병원 안을 쓱 둘러보니
무지개가 핀 듯
각양각색의 모습들이
말조차 잃고 있다
막상 접종을 받고 보니
따끔한 느낌도 없다
아마도 긴장한 탓이리라
이런 마음으로 살게 하소서 113
“10여 분쯤 쉬었다가 가세요.
10시간 정도 지나면 약간의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물 많이 마시면서 한 이틀 편안하게 쉬세요.”
의사의 말이 귀에 쏘옥쏙 박힌다
10시간이 지나고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건만
아무런 반응이 없다
언론도 의사도 다 엉터리
진실은 개인에 따라 모두 다른 것
- <백신의 진실>, 전문
문학성이란 말이 상당히 막연한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주제와 구성 그리고 표현의 공감도를 의미한다. ‘말 말 말의 홍수 속에/ 머리가 어질어질’이라는 표현은 그의 시적 문재를 보여주는 것으로, 공감의 지름길이라 할 수 있는 형상화의 표본이다. 어떻든 그의 시는 인문학적 사유로 공감을 주기 때문에 멋과 맛뿐만 아니라 향기를 지닌다. 그 향기는 내면의 솔직함에서 나온다. 또한 작품과 작가는 일치한다. 시적 삶의 진실이 그대로 자신의 시 속에 투영되기에, 향기가 난다. 말 말 말의 홍수 속에 머리가 어질어질하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불신 정도가 도를 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건만/ 아무런 반응이 없다/ 언론도 의사도 다 엉터리’라고 결론지으며 본인의 백신체험을 전해준다. 마지막의 ‘진실은 개인에 따라 모두 다른 것’라는 대목은 이흥만에 있어서 삶의 진실과 백신의 진실이 같음을 증명한다. 일상을 조탁하는 정서의 힘이 멋을 한껏 우려낸 결과라 하겠다.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외침이라고나 할까. 시인은 과학을 신봉하자고 넌지시 말한다. 시인은 일부 부작용의 예를 부풀려 성급하게 일반화해서 문제를 부각시키는 언론과 뿌리가 모호한 유언비어를 경계하고 있다. 위의 시 말고도 여러 시를 보면, 그는 어둠 속에서도 환히 피어나는 피안의 세계를 가진 시인임을 알 수 있다.
빗방울 걸린 빨랫줄에
엄마의 삶이 송두리째 걸렸다
애기 옷도 보이고
일복도 보이건만
엄마의 옷 대신
텅 빈 하늘이 널려 있다
햇살 품은 빨랫줄엔
무엇을 널까
아이들 웃음 한 보자기
애 아빠 땀방울 한 소쿠리
엄마의 근심은 이불채로 널렸는데
빼꼼히 보이는 파란 하늘이 희망을 노래한다
그래
견디고 기다리다 보면
웃을 날도 오리라
오늘도 엄마는
빨랫줄 팽팽히 당겨두고
당당히 사랑을 널고 있겠다.
- <빗방울 걸린 빨랫줄> 전문
‘빗방울 걸린 빨랫줄에/ 엄마의 삶이 송두리째 걸렸다’로 시작하는 이 시를 감상하는 쾌미는 희망을 노래하는 부분을 관통하면서 느낄 수 있다. 물론 희망 그 자체가 아니라 희망이 구체화되고, 상징화되어 시적 언어로 피어나고 있는 부분을 통과하면서다. 시를 통해 자기 삶과 존재를 확인하고 그것을 증명하는 동시에, 부정과 어두운 삶의 그늘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독자가 있다면, 감히 이 시 <빗방울 걸린 빨랫줄>을 권한다. ‘엄마의 근심은 이불채로 널렸는데/ 빼꼼히 보이는 파란 하늘이 희망을 노래한다’고 쓴 시인은 희망의 전도사다. 이 시의 문학성은 역설적인 관점이 주는 반전의 맛에서 나온다. ‘엄마의 옷 대신/ 텅 빈 하늘이 널려 있다’고 해놓고, 시인은 시를 전개해 나가면서 하늘에 널린 것이 ‘근심’인데, 얼마나 근심거리가 많았으면, 이불채로 널렸다고 묘사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서 ‘견디고 기다리다 보면/ 웃을 날도 오리라’라고 적고, ‘오늘도 엄마는/ 빨랫줄 팽팽히 당겨두고/ 당당히 사랑을 널고 있겠다.’는 구체적인 행위 묘사로 시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인 결말부 마지막 행간에 지배적 정황을 놓는다. 시인은 어머니는 이래도 되는 줄 안다. 시인은 ‘희망’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 근거는 ‘견디고 기다리다 보면/ 웃을 날도 오리라’는 진술에 놓여 있다. 삶의 묘미가 빛나는 시임에 틀림없다. 이 시뿐만 아니라 많은 작품이 현실인식의 치열성을 보이면서도 방법론과 기교의 다양한 층위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보인다는 것은 제3집에 기대를 걸어도 좋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안개가 장막처럼 드리워진 오월 아침
이양기 소리가 들판을 깨우는데
차례 기다리는 무논엔
재두루미 해오라기 물오리가
거리두기 모범 답안같이 앉아
아침상을 받고 있다
부대끼고 깔깔거리는 모습 아니면 어때
저렇게라도 아이들을 만날 수만 있다면
생각이 미치자마자, 몸도 마음도 바빠진다
옳지, 아이들을 만나면
모내기 끝낸 논처럼
반듯하게 자랄 수 있도록
모든 열정을 쏟아놓아야지
다짐이 희망으로 피어났으면
- <퇴임을 앞둔 어느 교사의 다짐>, 전문
시인은 인류의 교사여야 한다. 이흥만은 시인이기 이전에 이미 교육자였다. 퇴임 전이라면 가장 회한이 많이 남을 시기이다. 가장 진솔하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삶을 담을 수 있는 적기다. 코로나로 인해 아이들과 떨어져 있지만, 아이들을 반듯하게 자라도록 열정을 다해야 한다는 다짐에는 변함이 없다. 시 <퇴임을 앞둔 어느 교사의 다짐>에는 작가의 인품과 덕성이 거울에 비치듯 드러나 있다. 이 시는 가장 아름다운 글이다. 어떤 시보다도 이 시는 시인의 교육자적인 면모를 드러낸다고 하겠다. 이흥만의 시는 <퇴임을 앞둔 어느 교사의 다짐>에서 알 수 있듯이 진솔한 감정으로 짜여진 천이다. 시인은 다양한 인간관계 속을 헤집고 다니면서 그 인연을 소중하게 감싸 안고 아름다운 인생이란 한 필의 비단을 직조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없는 삭막한 공간을 희망의 빛깔로 채색하면서 결코 열정을 포기하지 않고 희망으로 치환하려는 태도는 마땅히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본받아야 할 표상이 아닌가 여겨진다. 누구나 인간의 한계를 느낀다. 다만 그 상황에서 절망한 나머지 스스로의 고통에서 더 큰 고통으로 나아가는 사람도 있고, 그 시기에 맞는 새로운 의욕과 활기를 되찾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 이 시인은 후자의 사람이다. ‘모내기 끝낸 논’의 건강한 생명력을 보면서 새로운 의욕과 활기를 되찾고 싶어 한다. 글은 곧 그 사람 자신이다. 마음을 열고 학생과 호흡하며 맺은 인연을 열정으로 엮어가는 선생님의 모습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어디 또 있겠는가.
왜 그렇게 고개 숙이고 있나요
눈부신 햇살 때문인가요
바람의 헤살 탓인가요
혹시 사색에 잠긴 건가요
아니라오
까칠한 얼굴 때문이랍니다
왜 그렇게 고개 숙이고 있나요
위선투성이 학자들 때문인가요
독선적인 위정자 탓인가요
혹시 겸손해서 그런 건가요
아니라오
기 펼 곳 없는 청년들 안타까워서랍니다
- <벼이삭3>, 전문
‘왜 그렇게 고개 숙이고 있나요’라는 물음으로 시작되는 이 시는 시인의 비범한 현실인식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벼는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이 있는 것처럼, ‘고개숙임’은 다 성장했음의 표시다. 그러나 시인은 재해석을 통해 새롭게 메시지를 던지고자 한다. 이 시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고발하고 있다는 데서 시인의 의식이 빛난다. 우리 청년의 아픈 현실을 잘 묘사하고 있다. 시 역시 첫 석 줄의 문장이 대단히 중요하다. 원래 글의 서두 기능은 독자의 시선을 붙잡아두는 데 있다. 어떤 시보다도 이 시는 서두 기능에 있어서 완벽성을 보인다고 하겠다. 두 번의 ‘아니라오’에서 느낄 수 있듯이 나의 바깥에 있는, 우리가 잘 보지 못하는 현실을 이 시는 극명하게 보여준다. ‘까칠한 얼굴’, ‘기 펼 곳 없는’ 청년들은 시적 화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신의 공간에서 아웃사이더화되어 타자로 변해가는 것이다. 자신의 거처를 잃고 자신의 영토에서 추방당한 사람들은 도처에 있다. 세계의 어둠을 목격하고 그것을 읽어내고 역설적이게도 성숙의 상징에서 다른 아픔을 발견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문학적 가치는 물론 성취도 빛난다고 하겠다.
시인은 감각을 통해 자아를 포함한 세계와 만나고, 독자는 감각을 통해 시와 교감한다. 시인은 시를 쓰면서 자신의 마음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언어를 선택하고, 자신이 선택한 언어를 통하여 자연적으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다. 이때 선택하는 제재는 의식의 지향성에 의해 시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마음과 가장 유사한 사물이나 상황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일기’ ‘마음’ ‘역사’ ‘우정’ ‘추억여행’ ‘산다는 건’ 등의 화두는 그의 철학을 잘 보여주는 코드화된 어휘들이다. 특히 이흥만의 시는 누구나 공감할 만한 삶의 진리를 담고 있어 좋다. 시는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현실적 요소에 필수적으로 인간적인 요소가 가미될 때 그 지점에서 비로소 시가 문학이 되는 것이다. 시적 화자는 언제나 깨어 있는 마음의 눈으로 사물을 보는 존재다. 그러나 육안은 사물의 겉만 볼 수 있다. 그의 시는 첫 장에서 다른 장으로 나아가면서 다른 많은 변화를 보인다. 무엇보다도 사회와 역사를 관통하면서 시적 형상화도 원숙해졌다. 이런 변화는 시인의 시에 대한 고민이 깊었던 결과라 하겠다.
III.
이흥만 시인에게 있어서 시는 무엇인가? 두 번째 시집 탐구를 마치면서, 그의 시는 삶의 존재 이유이며, 삶의 희망을 부르는 노래였다고 말하고 싶다. 인연에 대한 사랑과 현실인식의 치열성에 대한 존재론적 의미를 표방하고 있는 이 시집의 특징이라면, 작가정신으로써 시가 현실과 유리되지 않고, 시대를 비추는 거울로서 기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시집에는 현실의 왜곡상을 폭로하면서 현실의 모순을 타개하려는 작가의 적극적인 의도가 드러나 있어 많은 공감을 준다. 시인은 도저히 담을 수 없는 문제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기도 했지만, 어떻게든 시적 형상화를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크고 화려한 길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것에서 소박한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서민적 삶의 태도도 좋았다.
시 쓰기를 ‘행복의 구가’ ‘희망의 노래’로 여기는 분이니까 앞으로도 계속 좋은 시를 써낼 것으로 본다. 문학적 성취가 빛나는 세 번째 시집 발간을 위해서, 시의 낭만주의와는 객관적인 거리를 가졌으면 좋겠다. 조금이라도 냉정해지면, 더 나은 구조나 시어가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의무이기도 한 ‘저항성’을 유지하면서도 불완전한 사회에 대한 긍정적이면서도 따뜻한 시각을 유지하려는 시인의 긍정적 세계관에 박수를 보낸다. 시의 긴장성과 애매성에 대한 치열한 도전이 뒤따랐으면 한다. 무엇보다도 이 시집에 드러나고 있는 이흥만 시인의 손녀에 대한 사랑, 교육자의 길에서 갖는 반성적 성찰과 기도, 희망의 전도사를 자처한 모습 등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시인으로서의 다양한 노력을 높이 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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