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네모네' 꽃과 '아도니스 콤플렉스'
'아도니스 콤플렉스'는 미국 하버드대학교의 심리학자 해리슨 포프가 만든 심리학 개념이다. 원래는 '근육이형증' 이라 칭했는데, 독일 학자들이 그 개념을 받아들이면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미남 청년 아도니스의 이름을 따라 '아도니스 콤플렉스' 라고 명명했다. 주요 특징은 주로 남자가 외모에 너무 강한 집착을 보여 자신보다 잘 생겼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보면 심한 열등감을 느끼며 극심한 우울감을 느끼는 것이다.
아도니스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은 완벽주의자인 데다 자존감이 무척 낮아 자신의 외모나 몸매에 전혀 만족하지 못한다. 특히 근육에 너무강한 집착을 보여 자신의 근육을 불리는 데 가학에 가까울 정도의 노력을 기울인다. 몸매에 너무 과도하게 신경을 쓰다가 거식증에 시달리기도 하고, 외모를 가꾸느라 운동 기구나 화장품을 사는 데 지나치게 많이 지출한다. 어떤 심리학자들은 아도니스 콤플렉스를 일종의 병적인 나르시시즘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아도니스는 부녀 사이의 근친상간으로 태어났지만,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도 반할 정도로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아폴로도로스의 [도서관]에 따르면 아시리아의 왕 테이아스의 딸 미르라는 아프로디테를 섬기는 것을 거부했다. 분노한 여신은 그녀가 아버지를 사랑하게 하여 유모의 도움으로 아버지와 동침하도록 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테이아스가 격분하여 미르라를 죽이려하자 신들은 그녀를 몰약 나무로 변신시켜 주었다. 열 달 후 그 나무가 갈라지며 아도니스가 태어나자 숲의 요정들이 그를 데려다 키웠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따르면 미르라의 아버지는 키프로스의 왕 키니라스였다. 미르라의 유모는 어느 날 목을 매려는 그녀를 발견하고 그 이유가 품어서누 안 될 아버지를 향한 연정임을 알아내고 미르라를 구할 방법을 모색했다. 그때 마침 키프로스에서 남자들에게 아내와의 동침을 금했던 곡물의 여신 케레스의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유모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여 색에 굶주린 왕에게 적당한 때를 골라 은밀하게 좋은 아가씨가 있다고 귀뜀했다. 왕이 그녀의 나이를 묻자 유모는 미르라 공주님과 같은 나이라고 둘러대고 결국 한밤중에 그녀를 아버지의 침실에 밀어 넣는 데 성공했다.
키니라스는 며칠 밤을 딸과 동침하다가 어느 날 밤 그녀가 잠든 사이 얼굴이 너무 궁금하여 등불을 켜는 바람에 모든 진실을 알게 되었다. 분기탱천한 왕은 벽에 걸려 있던 칼집에서 칼을 빼 딸을 찌르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어둠 덕분에 간신히 아버지의 칼날을 피할 수 있었다. 아버지의 추격을 피해 이리저리 헤매느라 지칠 대로 지친 미르라는 결국 신들에게 하소연하여 몰약 나무로 변신했다. 미르라가 잉태한 아이는 몰약 나무 안에서 계속 자라더니 열 달 후 나무껍질을 뚫고 태어났다. 그 아이가 바로 에로스처럼 잘생긴 미남 아도니스였다.
바로 그때 그 몰약 나무 근처를 지나던 아프로디테가 갓 태어난 아도니스를 발견하여 하데스의 왕비 페르세포네에게 키워 달라고 맡겼다. 시간이 흘러 아도니스가 아름답고 준수한 청년으로 성장하자 아프로디테는 페르세포네를 찾아가 돌려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페르세포네가 거절하자 아프로디테는 제우스에게 중재를 부탁했다. 이에 제우스는 아도니스가 앞으로 1년의 1/3은 아프로디테와, 또 1/3은 페르세포네와, 나머지는 자신이 원하는 여신과 살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아도니스는 자기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1년의 1/3마저도 아프로디테와 함께 살겠다고 공표했다. 이때부터 아프로디테와 아도니스는 거의 한 몸처럼 붙어 다녔다. 아도니스는 사냥을 무척 좋아했는데 아프로디테는 그게 마음이 걸려 그에게 항상 큰 짐승을 조심하라고 일렀다. 그러던 어느 날 아도니스는 혼자 사냥을 나갔다가 아프로디테의 경고를 잊고 커다란 멧돼지를 쫓다가 그만 녀석의 엄니에 받혀 죽고 말았다.
슬픔에 잠긴 아프로디테는 피로 범벅이 된 아도니스의 시신에 신들의 음료인 넥타르를 부었다. 그러자 아도니스의 시신이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그 자리에서 아네모네 꽃 한 송이가 피어났다. 다른 설에 의하면 아도니스를 엄니로 물어 죽인 멧돼지는 바로 전쟁의 신 아레스였다. 아도니스에게 애인 아프로디테를 빼앗기자 아레스가 질투심에 사로잡혀 멧돼지로 변신해 그를 웅징했다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아도니스의 시신이 아침 안개처럼 사라지며 그의 핏 속에서 아네모네 한 송이가 피어났다. 그래서 그랬을까? 서양에서의 아네모네의 꽃말은 '거절당한 사랑'이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병의 상징'이고, 일본에서는 '나쁜 소식'의 상징이다. 아네모네의 어원이 그리스 신화에서 동풍의 신 에우로스, 서풍의 신 제피로스, 남풍의 신 노토스, 북풍의 신 보레아스 등 총 4명의 바람의 신을 총 칭하는 이름 '아네모이'다. 그래서 아네모네는 바람꽃으로 불린다. 왜 그럴까? 그것은 꽃잎이 너무 연약해서 바람에 쉽게 흔들리기 때문이다.
한때 우리나라에 '아도니스'라는 남성용 녹차 화장품이 있었다. 해마다 노벨상 후보로 추천될 정도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리아출신 시인의 필명도 '아도니스'다. 그는 본명이 알리 아흐마드 사이드인데 시집으로는 민음사에서 출간된 [너의 낯섦은 나의 낯섦]이 있다. 핀란드산 코코아 잔 중에 아네모네꽃이 그려진 '아네모네'가 있다. 가수 이영지와 래원의 노래 중에 <아네모네>가 있다. 이미자의 노래 중에도 <아네모네>가 있는데 마지막 두 소절이 아네모네 꽃말의 핵심을 찌른다.
마음 바쳐 그 사람을 사모하고 있지만/
허무한 그 사랑을 달랠 길은 없는가
브랜드로 읽는 그리스 신화 중에서
김원익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