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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뮤직 빅스타들의 노래, 빚을 내던져라!
제 3세계 부채탕감을 부르짖는 월드뮤직 빅스타들의 노래 ‘Drop The Debt빚을 내던져라!’.
유엔개발프로그램(UNDP)에 따르면, 많은 국가들이 사회복지 부문(교육, 의료 등)보다 훨씬 더 많은 예산을 부채 상환에 책정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2001년 코피 아난 UN 사무총장은 아프리카 국가들의 예산 중 38%가 부채 상환에 쓰이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런 부채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대부분 1960~70년대 아무런 보호조항조차 없이 빌려온 것으로, 최소한의 민주주의적 적법성조차 없는 독재정권의 체제 유지에 쓰인 경우가 많았다. 그 결과 오늘날 아이티(서인도 제도의 공화국) 정부는 과거의 독재자들(이미 유럽으로 피신해 착복한 어마어마한 돈으로 방탕하게 살아가고 있는 듀발리에 가문)이 떼먹은 빚을 대신 갚아야 하는 곤경에 처하기도 했다. 남아프리카도 과거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정책) 체제에서 군대를 무장시키고 인종차별 정책을 유지하는 데 썼던 차관을 상환해야 했다. 1970년대 후반 개발도상국가의 부채는 6000억 달러 수준이었다. 이들 국가들은 그후 20년 동안 4조 5000억 달러를 계속 갚았지만, 이자를 갚으려 또 빌린 부채의 이자로 말미암아 1990년대 후반 당시 2조 4500억 달러를 상환해야 하는 실정이었다. 국제금융기관들은 이렇게 미결제 상태로 남아있는 부채를 핑계로 제3세계 국가들에게 갈수록 혹독한 긴축재정 계획을 이행하도록 요구했다. 이런 계획은 사유화를 통한 공공서비스 감축과 대량실직, 사회보장 비용의 대폭 축소를 초래했다.
국가 부채를 일부 또는 전체적으로 무효화시킬 수도 있다. 선례도 있다. 1898년 쿠바, 1923년 코스타리카, 1953년 독일 등이다. 미국이 쿠바를 점령할 때 미국은 ‘쿠바 국민의 동의 없이 무력에 의해 강요됐다’는 이유로 스페인에 대한 쿠바의 채무를 무효화시켰다. 이후 법학계는 이런 부채를 ‘증오의 부채’라고 불렀다. 결국 국가의 의무를 위한 것이 아니라 권력을 위한 빚이므로, 국민에게 적대적인 행위를 저지른 채권자는 그 희생자(국민)에게 상환을 기대할 수 없다는 논리이다. 전직 독재자가 캐나다 왕립은행에 진 부채를 무효화시켰던 코스타리카의 법률에 대한 영국의 문제제기를 기각하면서, 이 문제를 중재했던 미 대법원 판사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William Howard Taft는 이 은행이 전혀 합법적인 용도가 아닌 곳에 돈을 빌려주었기 때문에 상환 요구는 거절되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이런 논리는 오늘날의 부채문제에도 확대 적용될 수 있다. “합법적이거나 도덕적 근거가 전혀 없는 증오의 부채가 민중의 동의 없이 부담지워졌고, 종종 그들을 탄압하는 데 쓰이며 권력자만 살찌운 것이다.”(노암 촘스키 <그들에게 국민은 없다> 중 '주빌리 2000' p.262). 제3세계의 부채 무효화 역시 정치적인 의지의 문제이며 유럽, 아프리카, 미주대륙, 아시아, 오세아니아주 시민들의 참여와 헌신만 있으면 가능하다.
이 음반은 판매 수입 중 상당 부분을 제3세계 부채 무효화 캠페인을 벌이는 단체에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프랑스에서는 ‘부채와 개발’이라는 그룹에서 각기 다른 감성을 갖고 활동했다. 일부는 종교인(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2000년 희년에 부채 무효화를 제안함)이거나 노동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는 반면 다른 이들은 제3세계의 문제에만 초점을 두었다. 이 음반의 마케팅 대상인 모든 국가에서 NGO 단체들은 이 음반에 대한 지지와 연대를 아끼지 않았다. 이것은 몇몇 단체에게는 중요한 기회였다. 2003년 2월 말~6월 초 사이에는(특히 이런 목표가 성취될 수 있다는 증거를 보여주는 독일 부채 무효화 50주년 기념일인 2월 27일 이후) 에비앙(Evian-les-Bains)에서 8개국의 선진국들에 의해 개최되는 G8 정상회담에 압력을 가할 수 있기에, 활동가들이 <빚을 내던져라Drop the Debt> 음반의 곡들을 불렀다.
노래는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지는 못하지만 운동가들을 단결시켜 승리로 이끌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물론,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거대권력들이 몇몇 음악가들이 요구했다는 이유만으로 부채를 무효화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단 한 명의 카메룬인, 인도네시아인 혹은 페루인이 라디오로 들은 한 곡에 감명받아 자신의 국가가 어떤 부채를 상환해야 하며, 그 이유가 무엇인지 묻게 된다면 아티스트와 프로듀서의 작업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선진국 클럽인 국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맹해 있는 상황인데 아프리카 극빈국들과 함께 부채무효화를 요구한다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더욱이 공공부채 비중은 극히 일부분이고 대부분 민간이 끌어다 쓴 부채인데 무효화가 과연 정당한 요구일 수 있겠느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의 빚은 200조 원이며 이로 인한 이자만 30조(1년 예산의 30%)이다. 이런 과정에서 국내 기업의 대규모 해외매각이 추진되고 있다. 노동자들도 해외매각을 원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다시 한 번 IMF를 맞이할 수 있는 내재적 위기를 한국 경제는 항상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아프리카의 극빈과다채무국과 구조적으로는 같은 위기에 놓여 있다. 이들과 같은 채무국이라는 연대의식을 가지고 부당한 국제 금융질서의 개편을 요구해야 한다. 세계화라는 단어 뒤에 숨어 있는 내재적 모순을 풀어나갈 시민의식은 여기서 싹튼다. 뜻을 같이하는 범세계 NGO 단체의 후원, 연대 아래 세계 25개국 이상의 음반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이 음반을 발매했다. 세계의 월드뮤직 유명 스타들(16개 팀, 100명이 넘는 뮤지션)이 참여했는데, 한국 대표로 한대수, 어어부밴드, 양병집, 김현보 등이 참가했다. 금세기 부채 무효화를 주장하는 월드 콘서트와 투어, 각종 시위 참가 등 국제적인 노래운동을 계획됐다. 이 음반 판매수익의 일부는 한국 NGO 단체의 후원기금으로 조성됐다.
수록곡 리스트
01. The Third World cries everyday'제3세계는 매일 신음하고 있다' / 아티스트 : Africa South 아프리카 사우스(남아프리카 공화국)
02. 반쪽이 / 아티스트 : 양병집과 김현보 (한국)
03. 구멍난 그림자 / 아티스트 : 한대수와 어어부 프로젝트 (한국)
04. Bana바나 / 아티스트 : Faya Tess & Lokua Kanza (콩고) 파야 테스 & 로쿠아 칸자곡
05. Murimi munhu무리미 무누 ‘농부’ / 아티스트 : Oliver Mtukudzi (짐바브웨) 올리버 므투쿠드치
06. Boor-yi 부어-이 / 아티스트 : El Hadj N'Diaye(세네갈) 엘 아쥐 엔디아이
07. Quem pode껨 뽀데 '누가할수 있나?' / 아티스트 : Teofilo Chantre & Cesaria Evora 떼오필루 쌍트르 & 세자리아 에보라 (카보베르데)
08. Rosebud ‘장미 봉오리’/ 아티스트 : Lenine (브라질) 레닌
09. Baba바바 / 아티스트 : Tiken Jah Fakoly (아이보리 코스트) & Tribo de Jah (브라질) 티켄 쟈('신'이라는 뜻) 파꼴리 & 트리보 데 쟈
10. Il faut payer일 포 뻬예 (Devo e nao nego/ 데보 이 노옹 네고) '빚을 갚을 때야' / 아티스트 : Chico Cesar (브라질) & the Fabulous Trobadors (프랑스, 오크어지방) 시꼬 세사르 & 더 훼뷸러스 트로바도르스
11. Cosas pa' pensar꼬사스 빠 뺀사르 '생각해야 할 것들' / 아티스트 : Toto la Momposina 또또 라 몸뽀시나 (콜럼비아)
12. Cadeau empoisonne카도 엉프와조네 '독묻은 성배聖杯' / 아티스트 : Zedess (Burkina Faso) 제데스
13. Assez아쎄 '충분해' / 아티스트 : Meiway (아이보리 코스트) 메이웨이
14. Osca Sankara오스카 샹카라 / 아티스트 : Massilia Sound System (프랑스,오크어지방) 마실리아 사운드 시스템
15. Argent trop cher(Money's too expensive)아르젠 트로 쉐르 '너무 비싸' / 아티스트 : Tarace Boulba (프랑스) & Ablaye Mbaye (세네갈) 따라스 불바 & 아블라이 엠바이
16. Hawa하와 / 아티스트 : AGRICANTUS(이태리) 아그리칸투스
17. Gracias a la vida그라시아스 아 라 비다 '삶에 감사를' / 아티스트 : Soledad Bravo (베네수엘라) 솔레다드
목을 조이는 달러여 안녕!
제3세계 부채 문제는 심각하다. 얼마나 심각하냐고 묻는다면 ‘빚진 돈의 이자를 갚기 위해 다시 돈을 빌려야 하는 악순환이 오늘날 제3세계 부채 문제의 심각성’이라고 간단히 답해야 할 것이다. 해결책은 선진국 정부의 경제원조 그렇지만 세계정세로 봐서는 그걸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 전쟁에는 막대한 돈을 쏟아 부어도 이런 문제에는 자린고비 뺨치는 게 지구촌의 세상 물정이다.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민간이라도 나설 수밖에 없다. 그 민간 가운데 ‘음악인’도 포함되는데 대표적인 인물은 록 밴드 U2의 리더 보노다. 그는 ‘Drop the Debt’라는 구호로 제3세계의 부채탕감을 추진하는 ‘주빌리 2000’이라는 운동에 앞장서 온 인물이다. ‘DATA’라는 이름의 연구소를 설립해 실질적 대안을 연구해 왔다. DATA란 ‘DEBT(부채), AIDS(후천성면역결핍증), TRADE(무역)’의 약자다. 그 과정에서 그는 2002년 5월에는 백악관에 압력을 넣어 폴 오닐 미국 재무장관을 대동하고 아프리카를 방문했다. “해외원조의 성공사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자”는 것이 보노의 취지였다.
서방의 팝스타가 제3세계의 빈곤에 대한 캠페인을 전개하는 것이 이례적인 일은 아니다. 그런데 이런 운동에 대해서도 뜨악한 시선이 없지는 않았다. 대표적 인물이 톰 모렐로(지금은 해체된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의 보컬)다. 그는 “내 생각에는 백악관을 설득해 변화를 이끌어내는 건 불가능하다. 깡통을 들고 백악관 뒷문에 서서 ‘실례지만 평화와 정의를 좀 나누어 주시겠어요’라고 말하는 건 전혀 통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보노 같은 팝스타의 운동 방식에 이의를 제기한 일도 있다. ‘언론 플레이’만 화려하지 실질적 성과는 별로 없다는 것이다. '주빌리 2000' 운동이 ‘제3세계 부채’의 심각성을 여론에 환기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선진국 명사들의 로비’만 가지고는 한계가 명확하다는 지적은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제3세계 음악인’이 나설 차례인가. 다행히도 그 단초를 마련하는 성과물이 나왔다. <빚을 내던져라>라는 제목의 음반이 그것이다. 이 음반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콩고, 짐바브웨, 세네갈, 아이보리코스트, 콜롬비아, 부르키나파소, 카부베르드, 브라질, 베네수엘라,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고 한국(!)의 아티스트들이 참여해 새롭게 녹음한 17개의 트랙들이 수록됐다.
이런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한 이는 프랑스 파리에 소재한 월드 뮤직 전문 레이블 루스아프리카의 프랑수아 모제르라는 인물이다. 그는 프로젝트를 위해 ‘Say It Loud’라는 기구를 설립하고, 각국의 레이블에 의사를 타진하고, 여러 비정부기구(NGO) 단체의 후원을 받아 이 프로젝트를 추진해 마침내 성공시켰다. 2002년 7월에 착수된 일이라고 하니 일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진 셈이다. ‘글로벌 문제에 대한 글로벌 솔루션’의 하나의 사례를 보여준 것이다. 이 음반이 발매됨으로써 6월 1일부터 3일 프랑스의 에비앙 온천에서 개최되는 G8(선진 8개국) 정상회담에서 제3세계의 부채를 탕감하라는 압력을 행사할 좋은 수단이 탄생한 것이었다. 한국의 아티스트가 두 트랙을 차지하게 된 것은 월드 뮤직 전문 레이블인 ‘굿인터내셔널’이 루스아프리카 레이블의 마수(?)에 걸려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은 문제는 이 음반에 담긴 음악이 음악적으로도 좋은가라는 점일 것이다. 즉, ‘의의’나 ‘취지’를 따져서 좋은 게 아니라 음악 자체로 듣기 좋은가라는 점이다. 일단 참가한 아티스트들의 면면을 보면 작품의 퀄리티가 보증된다. 카보 베르데 세자리아 에보라, 베네수엘라의 솔리다드 브라보, 짐바브웨의 올리베르 음투쿠지, 브라질의 시쿠 세자르와 레니니 등 ‘월드 스타’ 반열에 오른 인물들이 대거 참여했기 때문이다.
음악 스타일은 토속 음악의 향취가 강하게 남아 있는 음악부터 첨단 전자음향이 삽입된 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렇지만 ‘부채 탕감’이라는 뚜렷한 메시지를 담고 있어서인지 이런 다양함이 산만함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몇 가지 예를 든다면 콩고의 로쿠아 칸자는 “아이들의 이름으로 부채 무효화를 요구해야 해”라는 직언을 퍼붓고, 올리베르 음투쿠지는 “나라는 땅이야, 농부는 사람이지”라면서 민중의 삶을 담담히 묘사하고, 레니니는 “돈이라는 말이 왜 다른 단어들 속으로 사라졌는지를. 한많은 달러여”라는 날카로운 사회 비판을 선보였다.
그래서 양병집과 한대수라는 비운의 거물급 아티스트들이 여기에 동참했다. 양병집은 김현보와 함께 '반쪽이'를 녹음했고, 한대수는 어어부 프로젝트와 함께 '구멍난 그림자'를 녹음했다. 양병집/김현보의 트랙은 가야금과 합창이 어우러져 독특하게 편곡돼 있고, 한대수/어어부 프로젝트의 트랙은 퍼커션과 클라리넷이 예의 그로테스크한 무드를 자아낸다. 다른 나라의 아티스트들처럼 메시지가 직접적이지는 않고 풍자적이고 우회적인데 이건 어쩌면 한국의 음악적 전통일 것이다. 어쨌든 만약 ‘음악산업 진흥책’ 같은 게 있다면 ‘애먼’ 데 돈 쓰지 말고 이런 음악을 육성하는 데 더 많은 신경을 기울여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음악들이다.
또 메시지를 담은 곡이라고 해서 음악을 ‘선전과 선동’에 희생하지도 않는다. 각각의 트랙들은 각국의 음악적 전통이 서양의 ‘모던 사운드’와 어떻게 교류하면서 발전해왔는지를 보여준다. 정도와 양상은 다르지만 이른바 당대의 ‘월드 뮤직’의 단계를 잘 보여주는 사운드들이다. 물론 월드 뮤직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생경한 음악들이겠지만 음반을 발매하는 취지에 동감한다면 생경한 소리가 친숙하게 다가오는 뜻밖의 경험을 할 것이다. 그러니 음반 표지 뒤에 적혀 있는 '이 음반의 판매수익 10%는 제3세계 부채 무효화 운동에 뜻을 함께하는 세계 각국의 NGO 단체에게 전달됩니다'는 문구를 보고 ‘의식도 고양하고 돈도 모은다’는 식으로 생각할 필요는 전혀 없을 것 같다.
옥에 티를 하나만 지적하자면, 참여한 아티스트들이 특정한 문화권에 편중됐다는 점이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단체에서 조직한 만큼 불가피한 면이 없지 않지만 프랑스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사용권 나라들의 아티스트들 중심이라는 면이 없지 않다. 이건 뭐 영어사용권 나라들의 음악인들이 조금 더 분발하면 될 일이다. 그러기에는 이들이 복잡한 계약관계에 묶여 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