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월드컵의 개최지는 56년 만에 이탈리아로 결정되었다. 당시 유럽 축구장들은 훌리건(폭력을 일삼는 광(狂)적인 축구팬들)의 난동으로 시끄러웠는데, 1985년 유럽 챔피언스컵에서는 '하이젤의 비극'으로 불리는 난동이 일어나 41명이 사망, 100여 명의 부상자가 나왔다. 1988년 유럽 선수권에서도 같은 소동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체포되었다. 이탈리아 '하이젤의 비극' 이후 처음 열리는 유럽에서의 월드컵이었기 때문에 훌리건을 철저히 통제하려 했다. 대회는 24팀이 6조로 나뉘어 1차 리그를 하고 거기에서 이긴 16개 팀이 토너먼트 방식으로 우승을 다투었다.(이 때부터 현재와 같은 월드컵 진행방식이 시작됨.)
아시아에서는 우리 한국과 아랍에미레이트가 출전했다. 우리 나라는 벨기에와의 1차전에서 2:0 패, 스페인과의 2차전에서 3:1 패, 우루과이와의 3차전에서는 1:0 패로 3전 3패. 16강 진출에 실패한 동시에 월드컵 출전 사상 최악의 성적을 거두었다. 아랍에미레이트도 3연패를 기록해 16강 진출이 좌절되었다.
아프리카에서는 카메룬과 이집트가 나왔는데 카메룬이 8강까지 진출해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브라질의 활약도 역시나 좋았다. 1989년 남아메리카 선수권에서 40년 만에 우승해 기세가 올라있었는데, 스웨덴과 코스타리카, 스코틀랜드를 꺾고 가뿐히 16강에 올랐다. 브라질의 16강 상대는 오랜 라이벌 아르헨티나였는데 후반 36분에 아르헨티나 측에서 골을 넣어 탈락하고 말았다.다음 월드컵을 예약해 놓은 미국도 출전했었지만, 체코와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에 져 16강 오르기에는 실패했다.
개최국 이탈리아 또한 본선에 진출했다. 예선에서 미국, 오스트리아, 체코를 모두 꺾고 16강에 올라가 우루과이에 2:0으로 승리를 따냈다.훌리건 문제로 찬밥 신세를 받은 잉글랜드는 벨기에와 카메룬(잉글랜드vs 3:2)을 물리치고 4강까지 나아갔다. 그런데 잉글랜드의 4강전이 예정되었던 토리노의 시장이 잉글랜드 대표팀이 올 경우 경기를 반납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이젤의 비극' 때 잉글랜드 인(人) 훌리건들에게 피해를 입은 당사자가 바로 토리노 시였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vs 이탈리아의 4강전. 전반 17분, 이탈리아가 선제골을 터뜨렸다. 그러나 곧이어 아르헨티나가 만회골을 넣었고 연장전에 이은 승부차기 끝에 아르헨티나가 결승에 진출했다. 서독 역시 잉글랜드를 승부차기 끝에 이기고 결승에 올라가, 이제 어느 쪽이 더 운이 좋은 팀이 되는가를 가리는 결승전이 되었다.
73000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로마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벌어진 서독과 아르헨티나의 결승. 서독은 계속해서 우세한 경기를 펼쳤지만 좀처럼 골은 나지 않았다. 후반 40분, 아르헨티나의 반칙으로 서독의 페널티 킥. 결국 페널티 킥의 성공으로 1:0, 서독의 승리. 이렇게 해서 베켄바우어는 팀의 감독으로서, 또 선수로서 월드컵을 제패했다. 또한 유럽이 결승전에서 남미를 이긴 것도 이 대회가 처음이었다. 서독 정부와 국민들에게 안겨준 월드컵 우승은 독일 통일을 미리 축하하는 선물과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