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스는 맑음의 덩어리. 혹은 당원을 친 이념의 빵. 칼 막 쓰지 마라. 반박이 불가능한 이 빵에 입을 대는 순간 포도주보다 붉은 혁명의 밤이 촛불처럼 타오른다. 너 이념 장사꾼이지? 칼 막 쓰지 마라. 이 빵으로 인해 세상은 맑거나 맑지 아니하며 공평하거나 공평하지 아니하도다. 오, 내 몸에 흐르는 타락천사의 붉은 피. 너 칼 막 쓰지?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풀밭에서 금지된 것들
초록빛은 언제나 나를 무장해제시킨다. 나는 애인과 함께 신발을 벗고 조심스럽게 풀밭으로 들어선다. 아, 발바닥을 간지럽히는 쾌락의 계집애들. 그 연약한 풀잎 꼭대기까지 물이 올라와 있다. 나는 기꺼이, 시간의 독재자인 물을 받아들인다. 그 속엔 풀의 독이 들어 있다. 애인은 내게 늘 엄마처럼 풀독을 조심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좀처럼 말을 듣지 않는 나는 벌거벗은 채 온몸으로 그 독을 먹고 서둘러 금지된 물질의 영역으로 들어선다. 일찍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생각은 말할 수 없이 단순해지고 걷잡을 수 없는 원시의 본능만이 꿈틀거린다. 물질이여, 너는 불 속에서도 뜨거워하지 않고 물속에서도 질식을 모르니 네가 바로 쾌락이로구나. 슬픔도 기쁨도 애간장을 녹이는 이별도 권력도 계급도 골 아픈 이데올로기도 없으니 내가 진정으로 당도해야 할 해방의 유물론이 바로 너로구나. 애인이여, 성스러운 바람의 매춘부여, 내게 좀 더 강한 풀독을 다오. 오늘은 원시의 본능을 타고 물질이 되고 싶구나. 만용을 부리며 나는 깊은 잠의 늪 속에 빠져든다. 지금 내가 무릎을 베고 누워 있는 이 여인은 일찍이 사랑의 여신이었거나 전쟁의 여신이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녀가 나무 그늘 아래서 풀독을 먹은 애욕의 노예를 위해 이렇게 정성껏 귓밥을 파주며 치유의 노래를 부르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알고 있다, 그녀의 노래가 해와 달이 없던 시절 비탄의 근원이었던 태초의 상처에서 연유하고 있음을. 그리하여 죽은 자를 소생시키는 밤이 오고 하늘에서 별똥이 떨어져 건너편 숲의 머리가 온통 은빛으로 하얗게 빛나는 것을. 순간 시간이 정지되고, 어리석은 나는 벼락같이 깨닫는다, 보잘것없는 인간의 육체가 바로 인간이라는 사물의 소중한 기호임을.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는 이미 위대한 물질인 것이다. 갑자기 눈앞이 밝아지고 세상의 모든 별이 중심을 잃고 한꺼번에 내게로 쏟아진다. 아, 이제 그만! 나는 소리친다. 하루아침에 진리의 오묘함을 깨닫는 일도 이제 그만! 금지된 물질의 영역으로 들어서는 일도 이제 그만! 경고하건대 이런 것들은 모두 풀밭에선 금지된 것들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계속 소리친다. 그러나 내 몸은 이미 그것을 매우 즐기는 구조로 되어 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바퀴들 2
바퀴를 보면 나는 기계가 되고 싶어진다. 바퀴가 없는 칼은 활은 삽은 책은 펜은 꽃은 벌은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오, 이 극단적인 깨달음!
바퀴는 오로지 기계에만 달려 있다. 두 바퀴로 가는 자전거가 그러하고, 요구르트를 만드는 믹서가 그러하고, 하늘을 나는 비행기가 그러하고, 컴퓨터의 하드디스크가 그러하고, 선풍기의 날개가 그러하고, 엘리베이터의 도르래가 그러하고, 열병합발전소의 터빈이 그러하고, 네 바퀴로 가는 자동차의 엔진이 그러하다…… 인간은 결코 바퀴가 달린 인간을 낳을 수 없으니 이는 기계가 될 수 없는 인간의 슬픈 숙명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신의 심판을 끝장내기 위해* 바퀴를 손가락에 끼고 목에 걸며 귀와 코에 구멍을 뚫고 부착하며, 오늘도 바퀴와 함께 잠들고, 깨어나고, 싸우고, 치고받고, 자리를 찾고, 밥을 먹고, 똥을 누고, 침투하고 침투당하고, 사랑한다.**
그리하여 세상은 바퀴에 의한, 바퀴를 위한, 바퀴의 연결이다. 나는 이미 자전거이며 자동차이며 비행기이며 섹스하는 인간이다.
음, 저 바퀴들. ——— * 앙토냉 아르토, 「시」. ** 질 들뢰즈 · 펠릭스 과타리, 「천개의 고원」.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불광천 ㅡ원구식
이 개울의 주인은 아마도 흰뺨검둥오리일 것이다. 나는 사람이 아둔해서 최근에야 겨우 이 사실을 알아차렸는데, 녀석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곳에서 태어나 이곳의 물과 물고기들을 먹고 새끼들을 낳으며 멋대로 날고 헤엄을 치고 아주 느긋하게 목욕을 해왔던 것이다. 자신이 이곳의 주인인 줄 아는 인간들의 뻔뻔함을 오히려 비웃으면서 주인처럼 잠을 자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나는 최근에 비가 내리는 천변을 걷다가 바로 이곳에 천국으로 가는 길이 숨어 있음을 발견하고는 매우 놀라 머리를 탁 친 적이 있다. “아이고, 이 바보야!” 희디흰 망초꽃들이 오래전부터 턱을 들어 그 방향을 수도 없이 일러 주었는데 이제야 겨우 깨닫다니! 눈을 들어 그곳을 바라보니, 그곳엔 과연 하늘 아래 가장 단단한 화강암들이 보석처럼 박혀 있는 산봉우리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것이었다. 그때쯤 되어서야 나는 천만 시민들이 아귀처럼 살아가는 서울이라는 이 도시에 하늘이 내려준 기막힌 선물이 두 개씩이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는 물의 어머니인 한강이요, 다른 하나는 바람의 아버지인 북한산이었던 것이다. 불광천은 이 둘을 이어주는 자식들 중에서 가장 나이 어린 막내, 정말 보잘 것 없는 실개천이지만 비와 천둥이 휘몰아칠 때면 엄청난 물을 순식간에 정액처럼 쏟아낸다. 바로 그 순간이다! 멀리 태백에서 발원한 한강이 성산대교 아래인 이곳에 이르러 비로소 참았던 몸을 풀고 궁극의 오르가즘을 맞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행주대교 아래 서해로 빠져나가는 한강물이 온통 우윳빛으로 허옇게 물들고, 흰뺨검둥오리들이 갑자기 우당탕탕하며 물을 박차고 올라 미친 듯이 어디론가 날아가는 것이다. —《서정시학》2014년 가을호 -------------ㅡㅡㅡㅡ 놀란 귀 ㅡ원구식
신체의 모든 감각기관은 놀란 귀가 변한 것이다. 만물의 근원이 파동이었으므로, 최초의 신체는 그것을 감지할 두 개의 안테나가 필요했다. 그리하여, 피부를 둥글게 말아 올려 쫑긋 세우고 구멍을 뚫었는데, 사람들이 이를 일러 귀라고 하였다. 처음엔 이것만으로 충분했다. 엄마의 자궁 속에서 꿈틀거리는 태아를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아직은 먹을 입도, 냄새를 맡을 코도, 맛을 볼 혀도, 사방을 둘러볼 눈도 필요 없다. 최초의 파동은 아마도 쿵쾅거리는 엄마의 심장이었을 것이다. 가까이서 터지는 이 엄청난 대포 소리에 귀는 매우 놀랐을 것이다.
나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귀는 놀란 귀라고. 엄마의 자궁을 찢고 문밖으로 나온 놀란 귀는 더욱 놀랐을 것이다. 세상은 엄청난 파동으로 가득했다. 놀란 귀는 계속 피부에 구멍을 뚫어 나갔다. 최초의 파동이 빛이었으므로 놀란 귀는 눈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와 동시에 엄마의 젖을 빨고 입을 크게 벌려 소리를 지르고 싶었을 것이다. 숨을 쉬고, 냄새를 맡을 두 개의 콧구멍도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놀란 귀는 두 주먹을 꽉 쥐고 높은 산 위에 올라 쏟아지는 별빛을 바라보며 이렇게 소리칠 것이다. 세상은 온통 내가 설명할 수 없는 것으로 가득 차 있다고. 놀란 귀는 더욱 놀랄 것이다. —《시작》2014년 봄호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시감도 2013 ㅡ원구식
13인의 시인이 도로로 질주하고. (모두 마침표를 찍지 않는 시인들이오. 길은 막다른 골목이 적당하오.)
제1의 시인이 요즘은 시에 마침표를 찍지 않는 게 대세라 하오. 제2의 시인이 한심하다는 듯 그걸 이제 알았느냐 하오. 제3의 시인이 이번 시집에서 마침표를 아예 다 빼버렸다 하오. 제4의 시인이 실수로 찍힐 수가 있으니 조심하라 하오. 제5의 시인이 시를 쓰기 전에 무조건 마침표를 빼는 것부터 가르친다 하오. 제6의 시인이 그거 괜찮은 교습법이라 하오. 제7의 시인이 산문시에서 마침표를 찍지 않아 성공한 시인이 있다 하오. 제8의 시인이 그나마 마침표가 없어서 겨우 시의 꼴을 갖추었다 하오. 제9의 시인이 그런데 아직도 마침표를 찍는 무식한 시인이 있다 하오. 제10의 시인이 어느 사회나 꼴통이 있는 법이니 그냥 내버려 두라 하오.
제11의 시인이 마침표를 안 찍으니 알딸딸해서 좋다 하오. 제12의 시인이 마침표를 모두 빼버리니 골이 안 아파 좋다 하오. 제13의 시인이 마침표가 없으니 뭔가 있어 보여 좋다 하오. 13인의 시인은 마침표를 안 찍는 시인과 빼버린 시인과 그렇게뿐이 모였소. (다른 사정은 없는 것이 차라리 나았소.)
그중에 1인의 시인이 문학상을 받은 시인이라도 좋소. 그중에 2인의 시인이 시잡지를 내는 시인이라도 좋소. 그중에 2인의 시인이 교과서에 실린 시인이라도 좋소. 그중에 1인의 시인이 예술원 회원이라도 좋소.
오늘밤도 혁명이 불가능하기에 우리는 삼삼오오 모여 삼겹살을 뒤집는다. 돼지기름이 튀고, 김치가 익어가고 소주가 한 순배 돌면 불콰한 얼굴들이 돼지처럼 꿰액 꿰액 울분을 토한다.
삼겹살의 맛은 희한하게도 뒤집는 데 있다. 정반합이 삼겹으로 쌓인 모순의 고기를 젓가락으로 뒤집는 순간 쾌락은 어느새 머리로 가 사상이 되고 열정은 가슴으로 가 젖이 되며 비애는 배로 가 울분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삼겹살을 뒤집는다는 것은 세상을 뒤집는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살아 움직이는 이 불판 위에서 정지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너무나 많은 양의 이물질을 흡수한 이 고기는 불의 변형*이다!
경고하건대 부디 조심하여라. 혁명의 속살과도 같은 이 고기를 뒤집는 순간 우리는 어느새 입안 가득히 불의 성질을 가진 입자들의 흐름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세상이 훼까닥 뒤집혀 버리는 도취의 순간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8 * 바슐라르, 「불의 정신분석」참조. —《시인세계》2013년 여름호 ............“혁명이 불가능”한 시대에 “삼삼오오 모여 삼겹살을 뒤집는” 모습은 즐겁기보다 서글프다. 그래도 삼겹살을 뒤집는 것이 “불의 성질을 가진 입자들의 흐름을 맛보”는 것이기에 의미가 크다. 또한 “정반합이 삼겹으로 쌓인 모순의 고기”를 뒤집는 일이기에 동참할 만하다. 정반합(正反合)은 헤겔 본인이 사용한 적은 없으나 그의 변증법을 해설하며 붙여진 논리의 전개 방식이다. 정(These)과 그것에 반대되는 반(Antithese)이 갈등을 통해 보다 새로운 합(Synthese)에 이르고, 이 합(진테제)은 다시 정(테제)이 되고 반(안티테제)을 만나 또다시 합(진테제)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반복으로 나아가면 보다 진리에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반합”에는 “정지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역사 발전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삼겹살을 뒤집는” 일은 “세상을 뒤집는” “혁명”이 될 수 있다. 맹문재 (시인, 안양대 교수)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분노의 맛 ㅡ원구식
나는 알고 있다, 분노가 설탕보다 달콤한 까닭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이 맛이 혁명의 힘이다. 보라, 세상의 절반은 이 맛으로 세워졌으며 나머지 절반은 이 맛으로 파괴되었도다. 그리하여, 혁명이 지나간 광장에는 언제나 분노로 얼굴이 일그러진 젊은 남녀들의 청춘이 던져져 있다. 이 얼굴들은 참으로 묘하게 미학적으로 분할되어 있다. 반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으며 나머지 반은 희열로 가득 차 있다.
(…죽음의 사제인 검은 까마귀들이 혁명의 눈동자를 파먹고 있다…)
나는 알고 있다, 분노가 소태보다 쓰디쓴 까닭을. 중추신경을 흥분시키는 이 맛은 싸구려 히로뽕보다 고약하게 중독된다. 순식간에 모세혈관이 터지고, 도파민이 흘러나와 너무나 미학적으로 육체를 파괴한다. 보라, 주체할 수 없는 관성의 힘이 죽음의 끝에서 확대시키는 저 동공들을. 희디흰 눈자위 사이로 툭툭 터지는 저 붉은 실핏줄들을. 오, 아드레날린보다 빠르게 교감신경을 마비시키는 이 맛!
(…혁명의 광장에는 오늘도 시간의 풍차들이 거인들처럼 쓰러져 있다…)
나는 알고 있다, 검은 까마귀들이 파먹는 분노의 맛을. 나의 절반을 파괴하는 힘이 나를 외친다. 나는 결코 물에 녹지 않으며 독한 술에도 녹지 않는다. 위산에도 녹지 않으며 창자 속에서도 녹지 않는다. 분노가 불타는 휘발유보다 달콤한 까닭은 이것이 오로지 붉은 핏속에서만 녹기 때문이다. 그런데, 너는 누구냐? 우리들 내장 깊숙이 상습적으로 산소와 포도당을 공급하는. —《시인동네》2013년 봄호 ㅡㅡㅡㅡㅡㅡㅡㅡㅡ 비 ㅡ 원구식
높은 곳에 물이 있다. 그러니까, 물이 항상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말은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물은 겸손하지도 않으며 특별히 거만하지도 않다. 물은 물이다. 모든 자연의 법칙이 그러하듯, 낮은 곳으로 흐르기 위해, 물은 높은 곳으로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이 평범한 사실을 깨달은 후 나는 네게 “하늘에서 물이 온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너와 내가 ‘비’라고 부르는 이 물 속에서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은 자전거를 타고 비에 관한 것들을 생각하는 것이다. 지금 내리는 이 비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지금 이 순간 이 비가 오지 않으면 안 될 그 어떤 절박한 사정이 도대체 무엇인가?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자전거를 타고 하염없이 어디론가 물처럼 흘러가는 것인데, 어느 날 두 개의 개울이 합쳐지는 하수종말처리장 근처 다리 밑에서 벌거벗은 채 그만 번개를 맞고 말았다. 아, 그 밋밋한 전기의 맛, 코피가 터지고 석회처럼 머리가 굳어질 때의 단순명료함, 그 멍한 상태에서 번쩍하며 찾아온 찰나의 깨달음. 불 속에 물이 있다! 그러니까, 그날 나는 다리 밑에서 전기뱀장어가 되어 대책없이 사물의 이치를 깨닫고 만 것이다. 한없이 낮은 곳으로 흐르기 위해, 물은 자신의 몸을 아낌없이 증발시켜 하늘에 이르렀는데 그 이유가 순전히 허공을 날기 위해서였음을 너무나 뼈저리게 알게 된 것이다. 바위가 부서져 모래가 되는 이유, 부서진 모래가 먼지가 되는 이유, 비로소 모든 존재의 이유를 이해하게 된 것이다. 하늘에서 물이 온다. 우리가 비라고 부르는 이것은 물의 사정, 물의 오르가즘. 아, 쏟아지는 빗속에서 번개가 일러준 한 마디의 말. 모든 사물은 날기를 원하는 것이다. —《시와 반시》2010년 가을호 —시집『비』(2015)에서 ------------- 최종 필터 (외 1편) ㅡ원구식 오염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선 최종적으로 필터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저 개구리도, 지렁이도, 풀잎도, 이미 죽은 고사목도.
오염은 농축된다, 숙명처럼.
그러니까, 지금 내가 먹는 음식이 늘, 최후의 만찬이다.
가장 치명적인 독은 가장 깨끗한 물을 마시고 가장 맑은 공기를 마시고 가장 좋은 음식을 골라 먹는 인간의 몸에 집적된다.
고요하고 은밀하게, 때로는 연어의 살보다 부드럽고 싱싱하게, 시종일관 적의를 드러내지 않는 충실한 종처럼, 서서히, 그러나 매우 빠르게 농축된다.
환원될 수 없는 시간 속에, 호모 사피엔스라는 이름의 최종 필터, 열심히 먹고 있다. —《열린시학》2010년 여름호
어둠의 경로
희망은, 늘, 이곳을 통해 왔다. 어둠의 불법체류자들이 푸른 당나귀를 타고 무한공유를 꿈꾸는 이곳, 나무가 어두운 땅에 뿌리를 박듯 삶의 젖줄을 시간의 검은 구멍 속에 뿌리박지 않은 자가 과연 누구더냐. 어쩌자고 너는 나 같은 디지털 폐인을 사랑한 것이냐. 밤이 깊었다. 아름다운 너는 이유를 묻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라. 자폐의 기관차가 수증기를 뿜으며 내 앞을 가로막고 있지 않느냐. 내가 저 놈의 멱을 딸 것이다. 언젠간 강호의 고수가 되어 천하를 호령할 그날을 꿈꾸는 게 아니다. 나는 그저 원초적 내공을 쌓을 뿐. 어둠의 경로여, 시간의 검은 구명이여. 때마침, 푸른 당나귀가 희망이라는 이름의 지독한 바이러스를 보내왔으니, 내 이제 절망으로 썩어문드러진 대명천지 밝은 세상을 뒤집어 버려야 하지 않겠느냐, 확! —《현대시》 2008년 12월호
탑(塔) ㅡ원구식
무너지는 것은 언제나 한꺼번에 무너진다. 무너질 때까지 참고 기다리다 한꺼번에 무너진다.
塔을 바라보면 무언가 무너져야 할 것이 무너지지 않아 불안하다. 당연히 무너져야 할 것이 가장 안정된 자세로 비바람에 千年을 견딘다. 이렇게 긴 세월이 흐르다 보면 이것만큼은 무너지지 않아야 할 것이 무너질 것 같아 불안하다.
아 어쩔 수 없는 무너짐 앞에 뚜렷한 명분으로 塔을 세우지만 오랜 세월이 흐르다 보면 맨 처음 塔을 세웠던 사람이 잊혀지듯 塔에 새긴 詩와 그림이 지워지고 언젠간 무너질 塔이 마침내 무너져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어디에 塔이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된다.
塔을 바라보면 무언가 무너져야 할 것이 무너지지 않아 불안하고 무너져선 안될 것이 무너질 것 같아 불안하다.
* 19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원구식/ 그의 시에는 세계를 보는 탁월한 직관과 과학적 상상력으로 격물치지하는 남다른 미덕이 있습니다. 이번 시집은 바슐라르의 과학철학에 기댄 물, 불, 흙, 공기의 네 기둥을 큰 뼈대로 삼아 구성되었습니다.
헤겔의 왈츠 ― Ver. 3.0 ㅡ원구식
지금 내가 추고 있는 이 춤은 혁명의 밤에서 비롯된 것이라네. 슬프지 않나? 바스티유가 부서져나가고 말을 탄 유럽의 정신이 조금도 거침없이! 당~당하게, 예나에 입성했을 때 철이 없는 우리 선생님은 점령군의 삼색기를 보고 기뻐하셨다네. 그러니까 이 춤은 살이 떨리도록 아름다운 저 깃발 속에서 흘러나온 것이라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혁명과 상관없이 죽는 법, 도도하기 이를 데 없는 자유 평등 박애의 왈츠도 러시아의 눈보라에 얼어붙고 말았다네.
난세였네. 영웅들이 몰락하고 그들의 여자들마저 순결을 내놓아야 하는 밤, 고독한 영혼을 소유한 우리 선생님이 마침내 세상을 구원할 새로운 춤을 개발하셨다네. 이름하여 정 반 합의 왈츠! 모순을 위한 모순의 춤! 놀랍지 않나? 느리고 무딘, 손재주라곤 전혀 없는 우리 선생님이 무엇이든 갖다 대기만 하면 척척 열리는 만능의 스텝을 개발해 내실 줄이야. 살이 떨리도록 아름다운 밤, 숨가쁜 유럽은 새로운 삼색기로 펄럭이고 철이 없는 유학생들은 해방의 춤을 조국으로 실어날랐다네. 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변증법적으로 죽어갔던가. 말이 어눌한 우리 선생님은 난세의 구경꾼답게 그저 무심히 눈을 감으셨다네.
지금 내가 추고 있는 이 춤은 혁명의 밤에서 비롯된 것이라네. 슬프지 않나? 제국이 무너지고 고독한 춤꾼이었던 청년 마르크스가 한쪽 구석에서 누더기가 된 변증법의 왈츠를 수정할 때 볼가의 강변에서 태어난 레닌은, 내전에 지친 조국의 인민들을 위해 애수의 러시안 왈츠를 준비했다네. 격렬한 밤이 수없이 지나도 조금도 멈출 줄 모르는 난세의 춤! 그러니까 이 춤은 살이 떨리도록 아름다운 붉은 깃발 속에서 흘러나온 것이라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혁명과 상관없이 죽는 법, 철의 장막이 무너지고 도도하기 이를 데 없는 만인의 춤도 이제는 추억의 왈츠가 되었다네. 명심하게. 피가 끓는 붉은 밤이 오면 페스트보다 아름다운 죽음이 왈츠와 함께 시작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