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스물여섯 자나 되는 긴 제목의 영화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제작 제니스엔터테인먼트)이 3월 12일 관객과 만난다.
70년대 인기 만화영화 `우주소년 짱가'의 주제곡 가사에서 제목을 따온 이 영화는 엄정화와 김주혁을 `투 톱'으로 내세운 로맨틱 코미디. 신예 강석범 감독의 데뷔작으로 동네 대소사를 두루 챙기는 젊은 동네 반장과 서울에서 내려온 치과 여의사의 티격태격하는 사랑다툼을 그리고 있다.
종합병원에 근무하던 당찬 치과의사 혜진은 `힘있는' 환자의 진료를 거부했다가과장한테서 책망을 받자 자존심과 인권을 위해 사표를 내민다. 그러나 원장이 시위성 사표를 덜컥 수리하고 업계에서도 이 소문이 금방 퍼지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치과의원 개업에 나선다.
자금이 부족해 시골까지 내려간 혜진은 풍광 좋고 인심 좋아 보이는 바닷가 마을을 점찍고 적당한 건물을 수소문하는데 홍반장으로 불리는 두식이 부동산 중개를자처한다.
특별한 직업도 없는 홍반장은 치과의원 인테리어 공사를 능숙한 솜씨로해내는가 하면 중국음식점 배달원, 편의점 점원, 택배 배달원, 라이브카페 통기타가수 등으로 매일 변신한다.
도도하고 꿈많은 혜진은 넉살좋고 오지랖넓은 홍반장이 눈에 찰 리가 없다. 그러나 곤경에 처했을 때마다 나타나 도와주다보니 은근히 그를 기다리게 된다. 홍반장 역시 버릇없고 이기적인 혜진의 태도에 혀를 차다가 어느새 마음 속에 깊이 들어와 있는 것을 깨닫고 흠칫 놀란다.
혜진의 친구이자 간호사 미선(김가연)을 비롯해 여러 주변인물이 등장하지만 두사람의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칠 만한 조연도 없고, 수많은 사건과 해프닝이 쉴새없이이어지지만 두 사람의 애정 곡선은 큰 굴곡없이 완만하게 정점을 향한다.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혜진을 유혹하는 완벽한 남자 노도철(김준성)도 두 사람의 관계를 뒤흔들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러다보니 이 영화는 철저하게 두 주인공의 연기력과 호흡으로만 전편의 줄거리를 끌고나가야 하는 처지가 됐다.
두 쌍의 남녀를 내세운 영화 `싱글즈'에서 엇갈린 만남을 가졌던 김주혁과 엄정화는 `…홍반장'의 캐릭터에 걸맞은 분위기를 그럴듯하게 연출해내며 무난한 연기를펼친다.
이 영화의 묘미는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는 여성들의 판타지를 그리며 남녀의사회적 신분을 뒤집은 데 있다. 여성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물질적 풍요나 신분 상승보다는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나는' 남자인 것이다.
108분이라는 시간은 주인공이 이를 깨닫는 데 부족함이 없지만, 이렇다 할 극적장치도 없이 모두 채우기에는 다소 힘에 부쳐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