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주차 – 내가 꿈꾸던 집
뭐, 이 나이를 먹고 이런 주제를 받는다면, 어느 도시의 어느 지역에 남향으로 몇 층짜리 건물을 차리고 어디는 세를 주고 어디는 가게를 차리고… 따위의 ‘실제적인’ 말을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러면 재미가 없으니까……. 진지 먹은 생각은 하지 않기로 하자. 나도 그쪽을 더 좋아하기도 하고.
어느 호젓한 숲속에 위치. 담쟁이가 드문드문 덮고 있고 적당히 변색이 일어나 앤티크한 느낌을 주는 빨간 벽돌담. 안뜰에는 작은 채소밭이 있었으면 좋겠다. 농사일을 그리 좋아하지 않고, 뭔가 생산적이고 자연친화적 활동을 한다는 유희만 얻었으면 좋겠으니. 큰 나무 한 그루 있었으면 하는데 감당이 될지는 모르겠다. 집 현관까지 이어지는 조약돌 길. 그 길가에 비교적 기르기 쉬운 꽃을 품고 있는 화분 몇 개 있으면 분위기가 살 것 같다.
집은 남향으로 2층짜리 벽돌집. 혼자 사는 집이라 그렇게 크지는 않은 것으로. 1층에는 거실과 부엌, 식당이 있었으면 좋겠다. 거실 한쪽 벽에는 난로가 있고, 난로 근처에는 원목 흔들의자, 바닥에는 카페트, 조금 떨어진 곳에 손님들을 위한 소파와 커피테이블. 벽에는 근대미술 쪽으로 몇 작품 걸려있으면 좋겠다. 현대추상미술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아! 난로 위에 유리병 속 범선 모형이 있으면 분위기가 살 것 같은데. 집이 작으니 부엌과 식당 규모에 욕심을 부릴 수는 없겠다. 다만 조그마하게라도 바(bar) 시설을 갖출 수 있었으면 좋겠다. 술장, 아일랜드 카운터, 목재 스툴 두어 개. 그 외에 화장실+욕실, 손님이 묵을 때 지낼 만한 작은 방, 그리고 2층으로 이어지는 나선형 계단.
2층은 순전히 나를 위한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어렸을 때부터 서재를 가지고 싶었다. 한쪽 벽면은 내가 좋아하는 책, 좋아할 것 같은 책, 뒤에 읽을지도 모를 책, 그냥 꽂아놓으면 폼 나는 책들이 가득 꽂혀있는 책장들이 전체를 막고 있는 것으로. 밖으로 돌출된 창문 밑에 위치한 길쭉한 책상. 감촉 좋고 충전재 빵빵하게 넣은 가죽 의자. 침대는 빅토리아풍으로, 다만 캐노피를 올리는 것 따위로 너무 과하지는 않게. 방 한 쪽에는 공간을 다소 차지하더라도 큼직한 옛날 지구본이 있었으면 좋겠다. 방 다른 쪽에는 작은 화장실, 옷방을 두고, 조금 남는 공간을 베란다로 이용하고 싶다. 베란다에는 작은 테이블 하나, 의자 둘.
그리고 지하실이 있었으면. 공간 절반은 창고로, 다른 반은 작업실로. 미국 영화를 보면 꼭 지하실이나 차고 같은 곳에 작업실을 두고 주인공이 이것저것 공구를 다루는 모습이 있었는데, 그게 좀 그럴싸해 보였다. 딱히 손재주가 좋지는 않지만, 어떻게 배우다 보면 늘지 않을까. 공구상자를 끼고 앉아 작업에 집중한 모습 ― 꽤 멋있을 것 같은데. 사냥용 엽총까지 욕심을 내고 싶지만, 성격이 냄비 같은 나를 생각해봤을 때 인명사고 내기 좋을 것 같아 이건 물러야겠다.
어쩐지 은둔자가 살기 좋은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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