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빈(孫臏)은 손무보다 1백 년 뒤에 태어났다.
그는 위(魏)나라 사람으로 『오자병법(吳子兵法)』을 쓴 오기(吳起)에게서 병법을 배웠다.
손빈과 동문수학한 사람 중에 방연(龐涓)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일찍이 위나라 혜왕(惠王)의 총애를 받아 장군이 되었다.
방연은 곧 혜왕에게 손빈을 추천하였다. 그러나 그는 한 스승 밑에서 공부를 할 때부터 손빈의 재능이 자기보다 뛰어난 것을 질투하고 있었다. 그는 손빈이 혜왕 수하로 들어오게 되자, 갑자기 자신의 장군 지위까지 빼앗길 것을 두려워하여 계략을 꾸몄다.
혜왕 앞에 나간 방연은 손빈에게 거짓으로 간첩이란 죄를 씌워 참소하였다. 억울한 누명을 쓴 손빈은 옥에 갇히는 몸이 되었고, 두 다리를 자르는 형을 받았으며, 얼굴에는 먹물로 죄인의 표시를 하여 영원히 그 표적이 지워지지 않도록 하였다.
그러고도 방연은 손빈이 두려워 감옥에 가두어둔 채 풀어주지 않았다.
손빈은 동문수학한 친구에게 배반당한 것이 너무 억울하여 그만 혀를 깨물고 죽어버리고만 싶었다. 그러나 그는 후일을 기약하며 이를 악물고 참았다. 병법에 천재였던 그는 두 발자국 전진하기 위해 한 발자국 물러선다는 심정으로 분기를 가라 앉혔다.
어느 날 손빈은 저 혼자 큰 소리로 울다가 웃다가 하며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 방연이 감옥으로 찾아왔다.
“대왕!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손빈은 방연에게 넙죽 절을 하였다. 그러더니 갑자기 웃다가 돌연 슬픈 얼굴로 대성통곡을 하였다.
방연은 머리 좋은 손빈이 거짓으로 미친 척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옥리를 시켜 그를 돼지우리 속에 넣어 보라고 하였다.
손빈은 돼지 똥 속에 머리를 처박고 뒹굴며 놀다가 코를 드르릉 드르렁 골며 잠에 떨어졌다.
그것을 본 방연은 이제 손빈이 완전히 미쳤다고 생각하고, 그 뒤부터 관심도 두지 않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제 나라에서 사신이 왔다. 감옥 안에서 그 소식을 들은 손빈은 옥리를 가만히 불렀다.
“내가 백금을 낼 터이니 제나라 사신을 만나게 해주시오.”
황금에 눈이 어두운 옥리가 물었다.
“감옥살이를 하는 자에게 백금이 어디 있단 말이오?”
“제나라 사신이 줄 것이오.”
손빈의 말을 믿고 옥리는 몰래 제나라 사신을 불러왔다. 손빈은 제나라 사신에게 자신의 처지를 자세히 설명하였다.
제나라 사신도 전부터 손빈이 병법의 천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를 살려 제나라로 돌아가면 나중에 크게 쓰일 인물이라는 것을 간파하였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그대를 돕고 싶소. 내가 어찌하면 될 것 같소?”
“옥리에게 백금을 주십시오. 그러면 옥리는 내가 죽었다고 소문내고 대량(大梁)의 다리 밑에 갖다 버릴 것이오.”
제나라 사신은 손빈의 계략대로 하였다. 그리고 사신이 임무를 마치고 돌아갈 때에 맞춰 손빈은 대량의 다리 밑에 버려졌다.
그 사신은 곧 손빈을 수레에 태워 제나라로 데려갔다.
그 후 손빈은 자신을 데려간 사신의 소개로 제나라 장군 전기(田忌)의 집에 머물게 되었다.
그런데 전기는 도박을 좋아하여 마차 경주를 즐겼다. 어느 날 전기는 기분이 좋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손빈이 물었다.
“장군! 어디 불편한 데라도 있습니까?”
“아니오. 마차 경주에서 돈을 잃었기 때문이오.”
“대체 누구와 도박을 했습니까?”
“대왕과 공자(公子), 그리고 중신들이오.”
“다음에 마차 경주를 할 때는 저를 데리고 가십시오.”
전기는 손빈의 청을 들어 주었다.
마차 경기장에 간 손빈은 마차 속에서 경기 장면을 유심히 살펴본 후에 전기에게 다음과 같이 작전을 설명하였다.
“지금 보니 세 번의 경주 중 두 번을 이기면 되는 것이로군요.
그렇다면 상· 중· 하의 세 말 중 먼저 장군의 하등 말을 가지고 상대방의 상등 말과 겨루게 하십시오.
마지막 경주에는 장군의 중등 말과 상대방의 하등 말을 겨루게 하시면 세 번 중 두 번은 승리를 하게 될 것입니다.”
전기는 손빈의 작전을 듣고 보니 그럴 듯하였다. 그 전까지만 해도 전기는 자신의 상등 말을 상대방의 상등 말과
겨루게 하였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실력이 비슷하기는 하지만 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대의 말이 맞구려.”
전기는 그날 마침 제나라의 위왕과 마차 경주를 하게 되었다.
“천금을 걸도록 하십시오. 분명히 장군이 이깁니다.”
손빈의 말대로 전기는 위왕과 천금을 걸었다.
결과는 손빈의 작전대로 먼저 한 번지고, 나중에 두 번 이겨 전기의 승리로 돌아갔다.
위왕의 천금을 얻게 된 전기는 매우 기뻤다. 그리고 그 뒤부터 손빈이 지략을 갖춘 병법가임을 믿게 되었다.
어느 날 전기는 위왕에게 손빈을 추천하였다. 위왕도 손빈이 병법의 천재임을 알고 그를 군사(軍師)로 대우하였다.
그 뒤 위나라가 조(趙)나라를 공격했을 때였다. 조나라에서는 제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하였다.
제 나라의 위왕(威王)은 손빈을 구원군의 장수로 삼으려 하였다.
“대왕, 저는 두 다리가 없는 사람이니 장수 노릇을 할 수가 없습니다.”
손빈이 위왕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면 구원군의 장수로 전기 장군을 명하노라. 그대는 군사가 되어 출정하라.”
이렇게 하여 손빈은 전기 장군이 이끄는 구원군의 군사가 되어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때 마침 위나라의 장수 방연은 조나라의 도읍인 한단(邯鄲)을 포위하고 있었다.
조나라에 도착한 제나라의 구원군은 위나라의 방연이 이끄는 군대의 배후를 공격하려 하였다. 이때 손빈이 나섰다.
“전기 장군! 아군의 방향을 바꾸어 위나라 도읍인 대량(大梁)을 공격하도록 합시다.”
전기 장군은 손빈의 작전이 옳다고 여겨 그대로 시행하였다.
위나라는 군대가 조나라에 원정을 나가 있었기 때문에 도읍의 방위에 허술하였다.
손빈의 전략에 허를 찔린 방연은 군대를 거둬 급히 본국으로 돌아왔지만,
계릉(桂陵)에서 제나라의 군대를 맞아 대패하였다. 원정길에 지쳐 군사들의 사기가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손빈의 전술로 제나라는 조나라를 구원하고 강적인 위나라 군대를 격파하는 일조이석의 전과를 거두었다.
“방연은 끝가지 한단을 공략하고 대량을 버렸어야 했습니다.”
철군을 하여 제나라로 돌아왔을 때 손빈은 전기 장군에게 말하였다.
“그건 또 무슨 이유요?”
“만약 그렇게 했더라면 한단 공략에 성공하여 병사들의 사기가 충천할 것이고,
그런 기세로 우리 제나라 군대를 친다면 방연의 군대가 더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전기 장군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리고 역시 손빈을 군사로 삼기를 잘했다고 생각하였다.
제나라 군대가 계릉에서 위나라 군대를 대파하고 나서 13년 뒤의 일이었다. 이번에는 위나라가 한(韓)나라를 공격하였다.
한 나라는 제나라에 구원군을 요청하였고, 전기 장군은 손빈과 함께 출정하여 위나라 수도인 대량을 공격하게 되었다.
한나라로 쳐들어간 위나라 장수 방연은 급보를 받고 군대를 돌려 제나라 군대를 추격하였다.
“위나라 군대는 제나라 군대를 업신여겨 교만하게 굴고 있습니다.
지금은 바로 적의 교만함을 키워서 공격하는 병법을 쓸 때입니다. 따라서 군대를 일단 후퇴 시키십시오.”
손빈은 전기에게 전략을 말하였다.
“아니 지금 대량을 코앞에 두고 후퇴하란 말이오?
우리가 여기서 물러간다면 위나라 방연의 군대는 우리 제나라 군대를 우습게보고 더욱 신바람이 나서 추격할 것이오.”
전기는 13년 전처럼 위나라 군대를 맞아 일격에 쳐부술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나 손빈의 생각은 달랐다.
“바로 그 말이 맞습니다. 적으로 하여금 신바람이 나서 추격을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전쟁을 잘하는 것은 실력 대 실력으로 맞서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누가 이기든 결국 양편이 다 큰 피해를 입게 되지요. 적의 힘을 이용하여 우리 쪽이 피해를 덜 입고 이길 수 있다면, 그 길을 택하는 것이 바로 병법입니다.”
“그렇다면 군사는 어떤 전략을 가지고 있소?”
“적의 기를 더욱 살아나게 만든 후 그 급소를 쳐서 일격에 기를 꺾어놓는 것입니다.”
손빈은 자신의 전략을 전기에게 자세히 설명하였다.
“과연 그렇구려.”
전기는 손빈의 전략대로 제나라 군대를 후퇴시켰다. 제나라 군대는 날마다 취사하는 가마솥 자리의 수를 줄여갔다.
첫날에는 10만 명 분이던 것을, 다음 날에는 5만 명 분으로 줄였다. 그리고 그 다음날에는 3만 명 분으로 줄이며,
위나라 방연의 군대가 추격해 오기를 기다렸다.
방연은 제나라 군대를 추격하면서 솥을 걸고 불을 땐 흔적이 날마다 줄어드는 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며 말하였다.
“과연 생각했던 대로 제나라 군대는 군기가 빠졌다. 이 솥 자리를 보거라. 우리 위나라 군대가 두려워진 제나라 병사들이 모두들 도망치고 있는 것이다. 도망병 숫자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단 말야. 불과 사흘 동안에 군사가 절반 이상으로 줄었다.”
자신감을 얻은 방연은 주력부대를 진지에 남겨둔 채, 가볍게 무장한 기병대만 이끌고 행군 거리를 배로 늘려 밤낮으로 제나라 군대를 추격하였다.
한 편 손빈은 방연이 주력부대를 남겨둔 채 기병대만 이끌고 급히 추격해 올 것을 미리알고,
길이 좁고 양쪽에 나무들이 울창한 마릉이란 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손빈은 아름드리나무의 껍질을 벗겨 ‘방연이 이 나무 아래서 죽다’라고 쓴 후,
활의 명수들을 모아 양쪽 숲에 매복을 시키면서 다음과 같이 명령하였다.
“밤이 되기를 기다려 누가 이 나무 아래서 불을 켜거든 일제히 활을 쏴라!”
과연 손빈의 예측대로 밤이 되자 위나라 기병대가 마릉에 도착하였다. 캄캄한 밤인데도 껍질이 벗겨진 나무에 글씨가 쓰여 있는 걸 보고, 방연은 그것을 읽어보기 위해 군사들에게 불을 켜보라고 명령하였다.
방연은 나무에 쓰여 있는 글을 읽어 내려갔다.
그러나 미처 그 글을 다 읽기도 전에 매복했던 제나라 군사들이 일제히 활을 쏘아댔다.
“아앗! 복병이닷!”
위나라 기병들은 정예 군사임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소나기처럼 퍼부어대는 화살을 피하지 못해 갈팡질팡 하다가 전멸 당하였다.
“드디어 손빈에게 천하 명장의 이름을 주고 말았도다.”
마지막까지 남은 방연도 자신의 군사들이 전멸 당하자 이렇게 한탄하며 칼로 자결 하였다.
방연이 이끄는 위나라 선봉부대를 일격에 무너뜨린 제나라 군대는 그 승세를 타고 뒤따라오던 위나라 군대를 급습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이 전투에서 위나라 태자 신까지 포로로 잡았다.
손빈은 이 싸움에서 이름을 천하에 떨쳤으며,
후에 그가 쓴 병법서는 ‘손빈의 병법’이라 하여 많은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게 되었다.
손빈은 손자의 자손이며, 《손자병법》은 손빈에 의하여 정리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어쩌면 손자의 병법을 1백 년 후에 태어난 손빈이 더 다듬은 합작품일 가능성이 높다.
-《인물로 읽는 史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