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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푸른고집, 이재무..
저 못된 것들 / 이재무
저 환장하게 빛나는 햇살
나를 꼬드기네
어깨에 둘러맨 가방 그만 내려놓고
오는 차 아무거나 잡아타라네
저 도화지처럼 푸르고 하얗고 높은
하늘 나를 충동질하네
멀쩡한 아내 버리고 젊은 새 여자 얻어
살림을 차려보라네
저 못된 것들 좀 보소
흐르는 냇물 시켜
가지 밖으로 얼굴 내민 연초록 시켜
지갑 속 명함을 버리라네
기어이 문제아가 되라 하네
-84쪽, '저 못된 것들' 모두
이재무 시인을 처음 만난 그때가 1987년 겨울이었던가? 아니면 이듬 해 초였던가? 아무튼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그때는 유월항쟁의 승리에 힘입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가 '민족문학작가회의'로 확대 개편하여 마악 걸음마를 내딛고 있을 때였다. 그때 나는 매일 같이 작가회의에 나가 문인들에게 부칠 봉투에 주소를 쓰거나 우표를 붙히는 그런 허드렛일을 하고 있었다.
작가회의에서 정식으로 임명한 간사도 아닌, 그저 작가회의 사무국 일을 도와주는 심부름꾼에 불과했다. 그맘 때, 대전에서 살고 있는 <삶의 문학> 출신의 이재무 시인이 정식으로 작가회의 간사로 뽑혀 사무국에 나타났다. 짤달막한 키에 제법 야무진 눈빛, 조선 토종마늘을 닮은 듯한 웃음, 민첩한 행동 속에 정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듯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구수한 된장 내음이 폴폴 난다는 그런 느낌.
아무튼 내가 처음 만난 그의 인상은 그랬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그와 함께 작가회의 사무국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나는 작가회의 사무국의 들러리였고, 그는 작가회의를 알차게 꾸려내야 할 책임을 지고 있었지만, 그와 같이 일을 하는 동안 서로 의견이 엇갈리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그는 그대로 나는 나대로 주어진 일을 묵묵히 처리했다고나 해야 할까.
"공원 한구석에 버려진 소주병을 바라다본다. 저 푸른 몸의 사내는 한때 뜨거운 불을 품은 적이 있다. 그를 마시고 사람들은 피가 뜨거워지는 경험을 가지곤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품은 불을 누군가가 다 소비했을 때 그는 저처럼 비참하게 버려졌다. 그 사내가 공터를 걸어 나오고 난 뒤에는 어떤 생이 펼쳐질 것인가."
- '시인의 말' 몇 토막
이재무 시인(47)의 일곱 번째 시집 <푸른 고집>(천년의 시작)을 읽는다. 이 시집은 지난 해 시월 말에 처음 나와 올해 5월까지 무려 5쇄를 찍은 시집이며,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의 '2005 우수문학도서'에도 뽑힌 책이다. 책이 잘 팔리지 않는 시대, 시집은 더더욱 팔리지 않는 시대에 5쇄까지 찍었다면 분명 이 시집 속에는 독자들을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숨겨져 있지 않겠는가.
푸른 고집? 이재무 시인은 푸른 고집에 대해 "그냥 고집이라고 하면 부정적인 뉘앙스가 풍기잖아요? 제가 말하는 푸른 고집은 원칙과 아름다움이 있는 그런 고집이지요"라고 말한다. 즉, 그가 생각하는 푸른 고집은 잃어 버려서는 안 될 것들은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는 고집, 지나간 시대의 것은 무조건 부정하고 버린다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그런 고집이다.
그 푸른 고집으로 똘똘 뭉쳐진 이 시집은 모두 4부에 72편의 시가 실려 있다. '이슬' '냉장고' '저수지' '라면을 끓이다' '도꼬마리' '봄을 찾아서' '깡통을 위하여' '풀과 기계' '장독대' '슬픔은 생의 재산' '저 못된 것들' '불구의 노래' '보라매공원' '구두' '골짜기' '콩국수' '가방에 대하여' '상처' '가을' 빈 그네' '민박' 등이 그것.
이재무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오늘도 나는 공원에 간다"며, 최근 자신의 시는 상당량 보라매공원에서 쓰여지고 있다고 고백한다. 그래서일까. 시인은 공원 벤치에 앉아 빈 소줏병을 바라보며 우리 사회에서 버림 받은 노숙자의 삶을 떠올린다. 노숙자가 저 빈 소줏병처럼 깨어지면 우리 사회를 위협하는 "가공할 흉기가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 의해 선택되어지면 재활용의 삶을 새롭게 살 수도 있다는 것이다.
半(반) 실업을 사는 나는 공원의 주요고객이다
나는 그곳에서 번데기를 사먹고 컵라면도
사먹고 뻥튀기를 사 잘게 부순 뒤 비둘기들을
모으고는 그들의 꽁지를 축구공인 냥 뻥
차버리기도 한다 날자 못하는 것도 새냐
-96쪽, '보라매공원' 몇 토막
이재무 시인은 출근을 하듯이 보라매공원에 간다. 그리고 그 공원 벤치에 노숙자처럼 앉아 사람들이 던져 주는 뻥튀기를 맛나게 쪼아먹는 비둘기를 바라보다가 날지 못하는 것은 새가 아니라며 비둘기의 꽁무니를 뻥 차버린다. 시인은 땀 흘리지 않고 남이 던져 주는 것들을 날름날름 받아먹는 것에 길들여져, 이제는 제대로 날지도 못하는 비둘기나 "수면 밖으로 주둥이/ 내밀고는 누군가 던진 티밥을 물고" 사라지는 살찐 물고기가 너무나 싫다.
푸른 고집으로 세상의 속내를 읽어내는 시인
시인 이재무는 누구인가?
"비둘기들이 떼지어 몰려다니며 먹이를 찾는다. 디룩디룩 살이 찐 저 비둘기들은 더 이상 평화 혹은 자유의 표상이 아니다. 자본에 길들여진, 이기에 가득 찬 우리의 초상이다. 누군가 토해 놓은 밥알을 주워 먹는 비둘기들은 충분히 추하다."
시인 이재무는 1958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1983년 <삶의문학>과 <실천문학> <문학과사회> 등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섣달 그믐><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벌초><몸에 피는 꽃><시간의 그물><위대한 식사>가 있으며, 산문집으로 <생의 변방에서>가 있다.
그밖에 공저 <우리시대의 시인 신경림을 찾아서>, 편저 <대표시, 대표평론 Ⅰ,Ⅱ> 등이 있다.
지금은 추계대, 청주과학대, 한남대, 한신대 대학원 등에서 시창작을 강의하고 있으며, 계간 시 전문지 <시작>의 편집주간을 맡고 있다. '난고문학상' '편운문학상' 받음.
"축축 늘어진 살덩이 매달고 뛰는 중년들"과 "철 지난 옷들을 입고 훈수 두는/ 늙은이들", 호수와 간이동물원을 어슬렁거리는 "청년/ 실업자들이 비루먹은 개처럼 꼬리를 길게" 내리고 있는 모습, 그 꼬락서니가 몹시 얄밉기만 하다. 시인의 눈에 비친 그들은 날개가 있어도 제대로 날지 못하는, 한때 뜨거운 불을 품은 적 있는 빈 소줏병처럼 버려진 사람들이다.
시인은 "오늘도 많은 죄절과 체념 그리고 권태"가 다녀간 그 공원 벤치에 앉아 "둥근 공원 안으로 물방울 되어 졸, 졸, 졸/ 고여오는 사람들"을 오래 바라본다. 하지만 그들은 "냇물이나 강물/ 벗어난 생의 물방울"처럼 "그 흐름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까닭에 시인이나 그들이 찾는 공원, "절망 곁 수백 평 그늘 거느린/ 공원"(공원의 벤취)은 큰 위로가 된다.
벼랑은 번번이 파도를 놓친다
외롭고 고달픈,
저 유구한 천년 만년의 고독
잡힐 듯 잡히지 않고
철썩철썩 매번 와서는 따귀나
안기고 가는 몰인정한 사랑아
희망을 놓쳐도
바보같이 바보같이 벼랑은
눈부신 고집 꺾지 않는다
마침내 시간은 그를 녹여
바다가 되게 하리라
-63쪽, '벼랑' 모두
시인은 바닷가에 앉아 파도가 게세게 몰아치는 벼랑을 바라본다. 시인의 눈에 비친 벼랑은 언제나 빈털털이다. 늘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파도는 "매번 와서는 따귀나/ 안기고 가는 몰인정한 사랑"이다. 하지만 벼랑은 언젠가는 그 몰인정한 파도를 끌어안고 마침내 파도와 하나가 될 거라는 꿈, "시간은 그를 녹여/ 바다가 되게 하리라"라는 희망의 끈을 결코 놓치지 않는다.
푸른 고집, 이재무 시인이 말하는 푸른 고집의 뿌리는 바로 여기에 있다. '푸른'은 희망이며 '고집'은 그 희망의 끈을 끝내 놓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다. 시인의 이러한 푸른 고집은 이 시집 곳곳에 드러난다.
"나를 먹고 노변의 풀이 자라고/ 샛강 물고기 살이 찐다면/ 아들아 나는 죽어서 영원히 사는 것 아니냐"(이별)라거나, "제 손으로 제 몸 조르고 쳐서/ 퍼렇게 멍든,/ 굽이치는 수천 수만 슬픔의 이랑을 보아라"(대청댐)나 "너는 나이 든 여인처럼/ 주름이 많다 언덕 구르는 자전거/ 바퀴살에 와 튀는 햇살 파편에/ 눈이 부셔 어리둥절한 강물이여,/ 노엽고 분한 것을 어찌 그리도/ 반짝이는 설움으로 울고 있느냐"(봄강)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그의 푸른 고집, 이 세상을 향한 아름다운 고집은 그가 살아있는 한, 아니 죽고 난 뒤에도 계속되지 않겠는가.
▲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미당문학상> 후보에 오른 이재무 시인
"쓰면 쓸수록 어려운 것이 시란 생각이 들어요. 제가 만약 시에 대한 정답을 얻었다면 오래 전에 시를 제 품에서 놓아주었겠지요. 근데, 요즈음 젊은 시인들은 일정한 패러다임이 유행하면 너도 나도 따라하는 것 같아요. 어쩌면 그 때문에 어떤 대상에 대해 너무 쉽게 깨치고, 또한 너무 쉽게 깨쳤기 때문에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것 같아요."
지난 달 25일(목), 서울에서 만난 이재무 시인. 이재무 시인은 '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시는 다른 장르와 달리 어떤 대상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라고 귀띔한다. 이어 "옛날에는 무모한 열정으로 시를 밀어붙혔지만 지금은 시쓰기가 더욱 어렵다. 시를 잘 모르기 때문에 계속 쓰는 것 같다"고 되뇐다.
지난 해에 이어 올해에도 미당문학상 후보에 이재무 시인이 오른 것에 대해 기자가 "최근 친일문인으로 분류된 서정주의 시세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묻자 "역사적 사회적 입장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미당한테 시를 많이 배웠다. 시를 쓰는 사람들 치고 미당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라고 되묻는다.
이재무 시인은 "그가 친일 혐의가 있다고 해서 그가 남긴 문학적 업적까지 폄하하는 것은 좀 심하지 않느냐?"라며 정치적 입장과 시세계는 구분해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조심스레 말한다. 이어 "한 인간에 대한 절대적 기준은 없지 않느냐? 미당의 시세계만큼은 누가 뭐래도 긍정하고 싶다"고 못박았다.
"요즈음 유행하는 생태시에도 문제가 많은 것 같아요. 생태패러다임은 나와 타자와의 관계인데, 자연을 소재로 삼으면 무조건 생태시라고 착각해요. 그리고 사람과 자연을 상생관계로 보아야 하는데 생태주의자들은 사람을 자연의 적으로 보지요. 즉, 사람은 '악'이요 자연은 '선'이라는 거지요. 저는 도덕경의 말처럼 자연은 선하지도 않고 악하지도 않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