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터벅터벅 ]
이 곳은 제피리아 공국.
그 분의.....고향이였다.
지금은....이미 멸망해 버린 왕국.
훗...
내 손에 의해서 멸망해 버렸다.
그리고....그 분도 내 손에 의해 멸망해 버렸다.
이제 다 끝났는데....
난 왜 자꾸 여기를 찾게 되는 걸까....
' 여긴...... '
온 마을이 폐허가 되긴 했지만....
그나마 덜 무너진 집.
어쩐지 낯이 익는다.
[ 끼이익 ]
여기저기 쳐져있는 거미줄.
그 것은 곧 오랫동안 인간이 드나들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낡은 벽난로.
불에 타버린 소파.
무너져 내린 천장.
다른 사람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다고 하지만....
난 이 집에서 살고 있던 사람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 ........ '
침묵.
내겐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단어지만.....
왠지 아프다.
왜 일까....난 단지 명령대로 수행했을 뿐인데.......
액자.
그 속엔 웃고있는 낯 익는 얼굴이 보였다.
언제나 강하고....항상 자칭 천재 미소녀 마도사라며.....
붉은 노을과도 같은 인간.
내 마음을 뒤흔들어 놓은 유일한 사람.
' 리나.....인버스..... '
나지막하게 그녀의 이름을 불러본다.
집은 거의 다 타버렸는데....사진이 담긴 액자는 타지 않았다.
그 사진 속에 또 있는건....
나.....
파티 때 모두 같이 찍은 사진.
지금 이 집엔 주인 대신 이 사진만이 덩그라니 놓여있을 뿐이였다.
' ......응? '
겉 표지가 떨어져 나갈 듯 한 낡은 책.
아니....책이라기 보단....누군가 쓴 일기 같아 보였다.
자욱하게 쌓인 먼지.
그 먼지를 손으로 쓸어내리자 낯 익는 이름이 나타났다.
책의 맨 아래 오른쪽에 작게 써 있었다.
- Lina Inverse -
조심스럽게 첫 장을 넘겼다.
그 책엔 그 분의 필체로 자그마하게 뭔가를 열심히 쓴 흔적이 있었다.
도대체 뭘 쓴걸까.....
난 무심코 책장을 넘기다가 그 사이에 끼어있던 뭔가를 발견했다.
' 단풍....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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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나님~~~~뭐하세요? '
때는 2년 전.
그 날도 난 어김없이 수왕님의 명령에 따라 그녀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내가 찾아갔을 때 그녀는 책을 읽고 있었다.
그것도 꽤 두꺼운 책.
그러나 벌써 거의 끝까지 다 읽어가고 있었다.
' 리나님~~~~저 왔는데요~~~~ '
' .....어...? 아...왔냐? '
그녀는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리더니 나 임을 확인했는지 피식 웃어버렸다.
다른 인간들 같으면 날 회피했을 텐데 그녀는 날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흔히 말하는 친구처럼 대해줬다고나 할까?
나한테는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상관님이 명령하는 대로 수행할 뿐이지만 한편으론 왠지 기쁘기도 했다.
[ 바스락 ]
나뭇잎...아니...낙엽이 내 발에 밟혀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났다.
지금은 가을.
단풍잎....
그 붉은 단풍잎은 그녀와 너무도 잘 어울렸다.
' 이 단풍잎 너무 예쁘지? '
그녀는 자신의 머리 위로 떨어진 빠알간 단풍잎을 내 보였다.
웃고 있는 모습.
플러스 에너지 때문에 기분나쁘긴 했지만....마음 한 구석에선 왠지 안도감이 감돌았다.
' 리나님, 잠깐만 눈 감아보실래요? '
' 에...? 눈은 왜? '
' 아니...잠깐만이면 돼요 '
' 너 또 이상한 짓 하면 내가 가만 안둘거야? '
' 네!!! '
내 손 위로 떨어진 그녀를 닮은 붉은 단풍잎.
난 그 단풍잎을 그 분의 손에 꼬옥 쥐어 드렸다.
' 단풍잎? '
' 그 단풍잎 리나님과 닮은 것 같지 않아요? '
발그래진 얼굴.
난 아직도 그 때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았다.
그녀는 피식 웃더니 그 옆에 놓여있는 책 사이에 살짝 끼워 넣었다.
' 내가 단풍잎 골라달라고는 하지 않았지만....고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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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때 그 단풍잎..... '
집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타버렸지만 그 단풍잎은....
여전히 붉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그녀만의 빛을 발했던 그 분 처럼.....
그리고 그 일기장 마지막 페이지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9월 14일....
그 녀석이 오늘 또 나를 찾아왔다.
이젠 일상이 되어버린 것 같아 그리 썩 기분나쁘진 않지만 저번에 오지 않았을 땐 마음 속 한구석에 뭔가가 커다란 구멍이 뚫려버린 듯 아팠다.
오늘은 그 보랏빛 신관이 내게 단풍잎 하나를 주고 갔다.
선물일까?
그 녀석은 웃고만 다니니 속마음을 전혀 모르겠지만 일단 난 그렇게 믿고 있다.
이 단풍잎을 어디다 소중히 둘까 하며 생각하다가 이 일기장에 끼워 넣었다.
아직 내 마음을 잘 모르겠다.
그 인간인지 마족인지 모르는 신관을 좋아하는 걸까?
그도 날 좋아했으면 하는 말도 안될 듯 한 소망이 생겼다.
[ 투욱 ]
일기장을 덮었다.
내용은 더 있었지만 거기서 더 읽었다간 소멸해 버릴 것 같았다.
왜...뭣 때문에 이런 걸 쓴거지?
당신이란 사람은 어떻게 해서 내 마음을 이렇게 뒤흔들어 놓을 수 있는거지?
왠지 모를 아픔이 밀려온다.
난....명령대로 수행했을 뿐....
제라스님의 명령에 따라 그 분을 재도 남기지 않고 세상에서 깨끗히 없애버렸을 뿐인데....
- 제로스...회의 시간이다...그만 귀환하도록
제라스님의 돌아오라는 명령.
난 그 일기장을 내 가방에 넣었다.
순간 보이는 꽃....
그래....이 꽃은 언젠가 그 분께 드릴려고 꺾었던 것 같았다.
고통스러운 플러스 에너지를 느끼면서 까지도 애지중지 따 왔던 크로커스.
난 그 꽃을 선반에 놓인 액자 앞에 조심스럽게 내려 놓았다.
' 지금 귀환하겠습니다 '
크로커스의 꽃말이 뭔지 아십니까?
'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용서를 구할 수 있을까요?
제가 용서를 빌면 당신은 제 용서를 받아 주실 건가요?
당신이 용서를 받아주건 안 받아주건....
전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당신이 환생해 이 세상에 다시 나타날 그 날 까지....
그게 1년 후가 되건 10년이 되건 100년이 되건 그 이상의 시간이 흐르건 간에....
전 이 크로커스 처럼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설령.......내가 소멸했을지라도......
아아....
그냥 끄적 써본 단편록.
러브리 팬픽이지만 왠지 기분이 묘한데....(네가 쓰고도 그럼 어떡하냐!!!퍼억!!!)
으흐흐흑....
아무튼 남은 방학 잘 보내세요~~~>ㅁ<
첫댓글 아아- 잘봤어요.. -_ㅠ 마음한구석이 찡하군요..
아아,, 너무 잘쓰셨어요^^
흐흑... 오늘은 왜이렇게 슬픈글이많은지....ㅜ0ㅜ
오오~!!리나럽님짱!
하아...너무 좋은데요...원츄라는 말을...
제로스가 상당히 멋있어요+_+ 잘쓰셨어요. 요새 좋은소설 많이 올라와서 행복하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