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구성하기 어법에 대해 알아봤으니 이제 작품 쓰는 방법에 대해 알아볼 차례가 되었습니다. 이 장에서는 실제로 작품 쓰기에 착수할 수 있도록 이야기 순서를 결정하는 <구성(plot)>의 기능과 그 하위 유형에 대해 알아보기로 합시다. 같은 줄거리도 어느 것을 먼저 이야기하고 나중에 하며, 어떤 것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작품이 되기 때문입니다. 1. 구성의 기능
일을 능률적으로 처리하려면 먼저 순서를 정하듯 환유적 줄거리를 세운 분들은 무엇보다 먼저 구성을 이제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정에서 구성(構成)은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시는 산문과 달리 현재 이 순간의 정서나 상상을 이야기하기 위한 짧은 장르인 데다가, 화제 자체가 뒤얽혀 순서를 구분하기 어렵고, 그로 인해 비유적으로 말해야 한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봤듯이, 서정도 환유적으로도 전개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비유적 어법을 택해도 어떤 이야기부터 시작하느냐에 따라 시의 효과가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줄거리를 완성한 다음에는 이야기할 순서와 강조할 것을 결정해야 합니다. 구성에 대한 논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나 그가 대상으로 삼은 장르는 희곡입니다. 그러다가, 19세기로 접어들면서 소설에서 이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하고, 구성은 긴장과 갈등을 만들어내고, 작중 인물의 성격을 부각사키며, 테마를 강화하는 장치라고 정의하면서 작품의 주요 기법으로 꼽히기 시작합니다.
저는 문학 초년생 때 이와 같은 정의를 그냥 멋있게 말하기 위한 것으로 받아드렸습니다. 내용과 등장 인물이 다 정해진 상태에서 이야기의 순서를 달리한다고 크게 달라지겠느냐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음 두 문장을 비교해보면 이런 기능을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 그는 오랫동안 망설이다 사랑을 고백했다. 그리고 마침내 사랑을 얻었다. ⓑ 그는 밤새워 고민했다. 어찌 생각하면 그녀가 자기 고백을 받아줄 것 같기도 하고, 또 어찌 생각하면 그런 고백이 아주 멀어지게 만드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었다.... ⓐ와 같이 이야기하면 그냥 막연히 사랑을 얻기 위해 고심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러나, ⓑ처럼 고백하기 위해 망설이고 용기를 내는 과정을 되풀이하여 묘사하면 한결 인물의 성격이 뚜렷해지고, 과연 사랑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긴장하게 됩니다. 이런 효과를 자세하게 살피기 위해 ⓑ를 좀 더 구체화시켜 볼까요? 독자들을 긴장시키려면, 그냥 고민했다고 하지 말고, 밤새워 고민한 끝에 차나 한 잔 하자든지, 저녁 식사를 하자고 간접적인 구애를 되풀이하고, 그를 눈치 챈 상대가 오늘은 바쁘다던지 다른 약속이 있다는 식으로 거절하는 <구애 - 거절>의 패턴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와 같은 패턴이 형성되면 현실에서도 그렇거니와 작품 속에서도 번번이 거절당하는 사람은 그 나름대로 섭섭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 거절하는 사람도 부담스러워집니다. 그리고 그런 갈등이 쌓이면 긴장이 형성되고, 다른 이야기로 전환(key moment)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작중인물이 갈등과 긴장에 대응하는 방법은 독자에게 그 인물의 성격으로 비춰집니다. 그리고 그것이 곧 그 이야기의 테마가 됩니다. 따라서 같은 이야기도 ⓐ처럼 말하면 줄거리만 전달되고, ⓑ처럼 구성하면 한결 재미있어지면서 테마와 작중인물의 성격이 강화됩니다. 이와 같은 구성의 방법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한 사람은 포스터입니다. 그는 <왕이 죽었다 -> 그 다음 왕비가 죽었다>처럼 사건이 발생한 순서대로 말하는 것은 줄거리(story)이고, <왕이 죽었다 ->그 슬픔 때문에 왕비가 죽었다.>처럼 인과관계를 맺으면서 이야기하는 것은 구성(plot)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러나 시의 화제는 인과적인 것들이 아닙니다. 따라서 시를 구성할 때는 <논리적 인과관계>보다는 <정서적 연접관계>에 의해 구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소설이나 희곡을 구성할 때처럼 먼저 서정적 줄거리를 몇 도막으로 나누고, 어떤 도막을 먼저 이야기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제까자 발표된 작품들을 살펴보면, 어느 장르를 막론하고 네 도막으로 나눈 것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다섯 도막으로 나눈 것이 그 다음, 세 도막으로 나눈 것은 드뭅니다. 시조는 세 도막 형식이 아니냐고요? 네에.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의미상으로 나눌 때는 종장(終章)이 둘로 나눠져 네 도막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와 같이 4도막 형식이 절대적 우세를 차지하는 것은 한자문화권의 시가론(詩歌論)에서 주장하는 <기승전결(起承轉結)>이나, 서구의 희극론과 소설론에서 주장하는 <발단-전개-위기-결말>의 4단 구성론 때문이 아닙니다. 문학작품을 비롯하여, 음악 미술 무용 등 모든 예술들이 명칭만 달리할 뿐 모두 네 도막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여러분들은 초등학교 음악 시간에 선생님이 칠판에 아래와 같이 그러놓은 음표들을 '딴딴딴, 딴딴딴 따안단따 딴딴딴' 하고 따라 읽은 적이 있을 겁니다. 위 리듬꼴은 몇 도막입니까? 그런데 이제까지 배운 노래들을 입 속으로 불러보면 리듬꼴만 네 도막으로 나눠지는 게 아나라 멜로디도 네 도막으로 나눠집니다. 미술 시간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선생님은 전체 화면을 네 도막으로 나누고, 주된 대상은 중간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그리라고 하셨을 겁니다. 따라서 네 도막 형식은 모든 예술에서 두루 채택하는 형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네 도막 형식은 어떤 기능을 지니고 있기에 이처럼 모든 예술에 두루 쓰이는 걸까요? 이 문제는 비연시가 있으니까 한 도막 형식부터 살펴봐야 하겠지만, 비연시는 독서 과정에서 다시 여러 도막으로 나눠 받아들이니, 두 도막 형식부터 살펴보기로 합시다. <두 도막 형식>과 연관된 이론으로는 한시(漢詩)의 '선경후정론(先景後情論)'을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이론은 먼저 시적 대상의 모습을 그린 다음 자기 소감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지, 두 도막으로 구성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한시의 절구(絶句)나 율시(律詩)가 모두 네 도막 형식을 취하는 점으로 미루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제까지 쓰여진 문학 작품들을 살펴보면 2단 구성을 택하는 작품은 거의 없습니다. 전단(前段)과 후단(後段)을 대등하게 나누면 서로 맞서 테마를 변주하기가 어렵고, 어느 한 쪽을 강화시키면 독서과정에서 다른 쪽을 흡수하여 다시 여러 도막으로 나눠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2단구성은 어떤 대상을 제시하고 그를 설명하는 <메타 담화(meta discourse)>에나 채택하는 형식이라고 보아야 할 겁니다. <세 도막 형식>은 문학적 담화에서 자주 발견되는 형식입니다. 어떤 대상을 설명하고 논증하는 글들은 대개 3단 구성을 택합니다. 그리고 문학 작품의 경우 <액자플롯>도 이런 형식을 취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학술 논문도 겉으로만 세 도막 형식을 취할 뿐, 본론을 두 도막으로 나누어 <서론-본론1-본론2-결론>으로 전개합니다. 그러니까, <본론1>에 글쓴이의 주장을 담으면 <본론2>에는 그에 대한 근거나 반대 견해를 담습니다. 또 액자식 플롯도 마찬가지입니다. 외형상으로는 <나의 이야기-그에 대한 이야기-나의 이야기>로 나눠지지만, <그에 대한 이야기>에 해당하는 주 플롯(main plot)이 다시 여러 도막으로 나눠집니다. 따라서 세 도막 형식은 네 도막 형식의 변형이라고 보아야 할 겁니다. <다섯 도막 형식>은 네 도막 형식보다는 열세이지만, 모든 예술적 담화에서 두루 발견되는 형식입니다. 특히 갈등과 대결을 중시하는 극과 서사에서 자주 발견됩니다. 그러나 이 역시 네도막 형식의 셋째 도막에서 벌어지던 주동(主動)과 반동(反動)의 대결을 넷째 도막까지 연장하여 흥미를 강화시키기 위한 변형으로 보아야 할 겁니다. 그것은 4막극의 제3막과 5막극의 제3막과 4막의 명칭이 지니고 있는 의미를 생각해봐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로 전개되는 5막극에서 셋째 도막인 '위기'라는 명칭은 4막극의 셋째 도막과 같은 명칭이고, '절정'은 위기가 극에 달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셋째 도막에 포함시켜도 무방합니다. 그리고 서사와 극의 이런 명칭은 주동의 세력이 바뀌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시가의 '전(轉)'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장편 연작시나 대하소설 가운데는 <여섯 도막> 이상으로 나눠진 것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섯 도막 이상일 때는 독자들은 통합하여 다섯 도막 이하로 받아들입니다. 큰 덩어리를 몇 도막으로 나누는 것은 전체를 간편하게 인식하기 위해서인데, 너무 많이 나누면 오히려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섯 도막 이상은 다섯 도막 이하로 통합된다고 보아야 할 겁니다. 그렇다면 왜 예술적 담화들은 네 도막으로 나눠 전개할까요? 그리고 네 도막으로 나눌 경우 어떻게 전개해야 할까요? 이에 대한 해답은 각 도막의 명칭이 지닌 의미를 살펴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기(起)'나 '발단(發端)'은 <이야기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승(承)'과 '전개(展開)'는 앞 이야기를 <이어 받으면서 펼쳐나감>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기를 <A>로 시작했다면, 승은 첫머리에서 제시한 것을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A>나 그와 유사한 <A'>로 이어받아야 합니다. '전(轉)'은 <바뀜>을 의미합니다. 또 '위기(危機)'는 반동의 도전을 받아 주동이 <위기>에 쳐했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들은 모두 <바뀜>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앞의 두 도막과 달리 <B>를 제시해야 합니다. 아니, 이런 명칭이 아니더라도 셋째 도막에서는 다른 자질을 제시해야 합니다. <A-A>로 전개해온 데다가 다시 <A>를 제시하면 끝없는 반복으로 보여 독자들이 더 이상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결'이나 '결말'은 어떤 모티프를 배치해야 할까요? 구조적인 면에서 생각하면, <A-A-B>로 전개해온 이야기이 주체는 <A>입니다. 이런 담화에서 <B>로 결말을 내면 <A>와 <B>가 <1:1>이 되어 어느 것이 주제인지 구분되지 않고 <C>로 결말을 내면 새로운 이야기를 제시한 상태에서 끝을 맺기 때문에 완결감이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A>로 시작한 이야기는 <A>나 <A'>로 낼 수밖에 없습니다. 한시론에서 수미상관법(首尾相關法)을 주장하는 것이나, 변증법적미학(辯證法的美學)에서 정(正, A)과 (반(反, B)을 합친 것(合, AB)으로 결말을 내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구성이 이런 방식으로 전개된다는 것은 다음 작품을 분석해 봐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A) : 나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승(A') : 영변의 약산/진달래꽃/아름 따다 가실 때에 뿌리우리다// 전(B) : 가시는 걸음걸음/놓인 그꽃을/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결(A'') : 나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 김소월, 진달래꽃
이 작품에서 둘째 연의 꽃을 뿌리겠다는 이야기나 넷째 연의 눈물을 안 흘리겠다는 이야기는 첫째 연과 마찬가지로 님을 보내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전체 의미의 흐름은 <보내겠음(A) -> 보내겠음(A') ->밟고가시오(B) -> 보내겠음(A'')>으로서, <보내겠음(A)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문장의 구조나 서술어들도 이에 따라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문학작품을 네 도막으로 구성하는 것은, 첫째로 주제를 강화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같은 이야기를 세 번씩이나 되풀이하면 강조될 수밖에 없겠지요. 둘째로, 갈등을 형성하고, 인물의 성격을 부각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위 작품에서 님의 마음을 떠보려고 보내겠다는 말을 했다면, 님은 아마 '정말?'하고 되물으면서 '못 가'라고 할 겁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말을 반복하면 <보내드리겠음(A) -><-못 가겠음(B)>이 부딪혀 갈등이 누적되고, 마침내 위기로 치달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대결이 벌어지고 두 사람의 성격이 드러나겠지요. 셋째로, 전 조직을 유기화(有機化)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위 작품을 살펴봅시다. 앞에서 말했듯이 각 연의 소주제는 <보내겠음(A) -> 보내겠음(A') ->밟고가시오(B) -> 보내겠음(A')>입니다. 그런데 주어도 <나(A)-나(A)-님(B)-나(A)>이고, 서술어도 호음조(euphony) 현상이 일어나느냐 여부로 기준을 잡을 경우 <보내드리우리다(A)->뿌리우리다(A)->가시옵소서(B)->흘리우리다(A)>입니다. 따라서 의미에서부터 음성적 층위까지 서로 연결된 상태입니다. 그냥 우연히 나타난 현상을 너무 확대해서 설명하는 게 아니냐고요? 아닙니다. 이 작품에서 화자의 행위를 나타내는 서술어들이 호음조(好音鳥)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 어휘로 조직한 것은 이와 같이 예쁘게 보이고 싶어하는 심리가 반영되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또 님의 행위를 나타내는 서술어에 부딪히는 느낌의 치음(齒音, S)이 들어 있는 것은 두 팔을 휘두르며 떠날 수 있는 님에 대한 부러움이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음 대비도 마찬가지입니다. 음성모음은 크고 거칠며 어두운 느낌을 줍니다. 반대로 양성모음은 작고 밝은 느낌을 줍니다. 그런데, 화자의 행위를 나타내는 서술어들은 음성모음이 우세한 어휘들입니다. 그것은 슬프고 우울한 심정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님의 행위를 나타내는 서술어는 양성모음이 우세한 어휘입니다. 그것은 떠날 수 있는 임에 대한 부러움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일 믿어지지 않는다면, '보내드리우리다'를 <가십시오>로, '뿌리우리다'를 <깔아 놓지요>로 바꿔보십시오. 리듬이나 의미는 그대로이지만 느낌은 전혀 달라질 겁니다. 넷째로 리듬을 만들어내는 기능을 꼽을 수 있습니다. 앞에서 음악 시간에 '딴딴딴 딴딴딴 따안따딴따 딴딴단'하고 읽는 걸 소개했지요? '딴딴딴'이 <A>라면 '따안따딴따'는 <B>로서, 리듬은 유사한 자질을 <규칙화>하고 <변화>시킬 때 형성됩니다. 그러니까 전체를 <A-A-B-A>로 조직한 것은 이런 규칙과 변화를 통해 리듬감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다섯째로, 전체를 입체화하는 기능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A-A-B-A>를 도표로 그려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A A B A (1연) (2연) (3연) (4연)
어때요? 3연이 눈에 확 띄지요? 그리고, 1연과 4연은 배경으로 물러나면서 입체물처럼 보이지요? 낯선 것들은 언제나 눈에 띄기 마련이니까요. 체코 기호학자들이 주장하는 '전경화(前景化, fore-grounding)'도 바로 이런 현상을 주목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예술 작품을 네 도막으로전개하는 것은 주제를 강화하고, 리듬을 통해 전개하기위해서입니다. 여러분들도 시로 쓰려면 먼저 서정적 줄거리를 <A>와 <B>의 네 도막으로 나누고, 이런 방식으로 배열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 방식은 환유적으로 시 쓰기를 위해 반드시 익혀야 할 사항이니 꼭 연습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할 일] ○ 네 도막 형식의 기능을 시작 노트에 정리해 두시오. ○ 이미 만든 서정적 줄거리를 네 도막 형식을 이형해 시로 써보세요. * 강의 목차* 제1장 구성하기 1. 구성의 기능 2. 구성의 유형 3. 구성하기 제2장 리듬화하기 1. 리듬의 유형과 기능 2. 리듬화의 대상 3. 리듬화하기
제3장 이미지화하기 1. 이미지의 기능 2. 이미지의 유형 3. 이미지화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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