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공간에서 겪은 곤혹스러움
지난 금요일 베트남 여행에서 돌아와 주말을 넘긴 십이월 첫째 월요일이다. 주말 시간이 내게는 무척 난감하고 혼란스러웠다. 베트남 여정 중 머문 달랏 숙소에서 와이파이가 잡혔을 때 휴대폰을 열자 발신자 정체가 궁금한 이로부터 부고 문자가 와 있어 열어보게 되었다. 그걸 열자 다운로드를 하라 해 눌렀더니 열리지 않아 그냥 지나쳤다. 하루 뒤 귀국 공항에서 두 번째 눌러봤다.
베트남 여행 중 내 휴대폰이 해킹당해 국내로 돌아와 보니, 해커는 이제 내 이름으로 괴이쩍은 문자를 확대 재생산해 주변으로 퍼뜨렸다. 내 휴대폰에 저장된 전화번호라고 모두 발송되지는 않은 듯했다. 나는 인적 교류의 폭이 좁아 평소 문자나 통화가 오가는 지기가 많은 편이 아니다. 그러함에도 내 휴대폰에는 한두 번 연락하고 스친 인연들도 전화번호에 남겨둔 경우가 있었다.
이십여 년 전 근무지 기간제 교사와 통화를 나누었고, 십 년 전 근무지에 맡았던 교지 편집부 학생의 연락처도 있다. 그와 관련한 사진관이나 인쇄소와도 연락을 주고받았다. 학교 밖 인사로 동창회장과도 원고 청탁 건으로 전화가 오갔다. 퇴직 직전 머문 거제 연초 원룸 주인 전화번호도 남겨졌다. 퇴직 후 지난해 아파트 리모델링으로 연락을 주고받은 건축 업자 전화번호도 있다.
금요일 밤은 내 휴대폰의 해킹 비상사태로 급박하고 긴장했다. 내가 휴대폰을 초기화시킬 수 없어 토요일 아침이 밝아 기기 판매점으로 나가 이전 자료를 모두 지웠다. 그새 내 휴대폰에 번호가 저장된 이들에게 내가 발신자로 된 부고 문자가 떠돌아다녀도 어떠한 조치나 수습을 할 수 없어 곤혹스러웠다. 그나마 금융 피해는 발생하지 않고 개인 정보 유출을 염려한 정도인 듯했다.
금요일 저녁이어서 은행 업무는 에이알에스로 응급조치만 해두고 월요일이 되길 기다렸다. 농협 창구가 열리길 기다려 제1착으로 직원 앞에 다가가 방문 사유를 알려줬다. 일전 정지시켜 둔 입출금 통장은 비밀번호를 갱신해서 살려 쓰면 되고 신용카드는 분실 처리처럼 생각하고 새로이 발급해 사용하십사고 했다. 송금을 간편하게 하는 앱은 도움을 받아 새로 설치해야 할 듯했다.
직원은 내 정보가 수록된 모니터를 보면서 며칠 묶어둔 통장에서 금융 피해 사례는 없고 이후 입출금이 가능하게 하자고 했다. 신용카드는 재사용이 불가하니 폐기 처리하고 재발급하자고 했다. 절차 따라 관련 카드 재발급 업무를 보면서 주민등록증이 노출되었을 것으로 봐야 해 주민증을 갱신해서 일을 보자고 했다. 그걸 예상해 집을 나서면서 명함판 얼굴 사진은 가지고 갔더랬다.
농협 창구에서 일을 봐 나가다가 잠시 중단하고 반송시장 근처 주민센터 민원실을 찾아갔다. 업무 담당자에게 주민등록증 재발급을 신청해 두고 증이 나올 때까지 임시 확인증을 쓰십사고 해 그걸 들고 농협 창구로 되돌아가 신용카드 재발급 신청과 통장 관련 다른 업무까지 마쳤다. 젊은 직원 앞에 앉아 기다린 시간이 제법 길게 걸렸는데 일을 종결하기까지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창구를 나와 보도를 걸으니 단풍이 물들어 길바닥에 떨어진 마른 은행잎이 바스락거리며 부서졌다. 반송시장으로 나가 노점을 둘러보다 문득 서민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자랑스럽고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정직하게 땀 흘려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상 공간에서 음흉한 짓거리로 세상을 어지럽혀 혼란에 빠트리고 작자는 도대체 어떤 심보를 가졌는지 심히 유감이었다.
거리를 배회하며 정처 없이 걷다 보니 용지호수까지 진출해 있었다. 단풍잎이 떨어져 나목이 된 벚나무는 가지가 앙상했고 맑은 하늘에는 흰 구름이 몇 점 떠다녔다. 시청 로터리를 돌아 상남동으로 가니 오일장이 서는 날이었다. 대끼리 장터 보리밥으로 점심을 때우고 다른 통신사 대리점에 내 이름으로 휴대폰이 개설되지 않도록 조치하고 생선과 표고버섯을 산 봉지를 손에 들었다. 23.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