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라는
박(朴)-석(昔)-김(金)씨로 왕실이 교체되었다. 기록에 의한 것만으로도 중국 진(秦)의 유민, 고조선의 유민, 낙랑군의 유민이 신라지역으로
몰려왔는데 서로 배타적으로 적대시하지 않고 여섯 촌(村)을 이루며 더불어 산다.
북방 기마민족 출신인
신라김씨 왕족은 말을 통해서 북방초원 루트를 경유한 로마와의 문화 교류를 유지하였고, 배를 통해서는 倭와 唐을 비롯한 외국과의 무역을 유지했다.
말과 배는 고대 사회에서 양대 기동수단이었다.
신라는 농업생산성과
기마군단, 그리고 철생산력과 해양력까지 두루 갖춘 입체적이고 다양한 국력의 조합(組合)을 갖고 있었다. 이는 남방계?북방계 등 다양한 민족의
공존과 융합에 의한 시너지 효과로서 설명될 것이다. 이런 복합성은 신라가 가진 주체성을 매개로 하여, 복잡성으로 전락하지 않고 높은 단합력을
발휘했다. 특히 신라는 전쟁이나 외교 등 국가적 위기 때 국내의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여 입체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다.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김(金)씨성을 사용한 사람은 '금일제' 라는 사람입니다이 사람은 흉노 출신이죠. 본격적인
얘기를 하기 전에 흉노에 대한 얘기를 해야겠네요.
배달한국(아마도 고조선을 말하는 듯 합니다)의 5세 태우의(太虞儀)천황의 막내
황자이신 태호복희(太虞伏羲)와 막내 딸이신 여와(女휶)께서 중국으로
이주하셨습니다. 삼황오제중 삼황의 맨 처음에 자리하시는
분이시죠.
팔괘(八卦)를 처음 만들고, 그물을 발명하여
중국인에게 어획·수렵(狩獵)의 방법을 가르치셨습니다. 이 분들의 후손들은 8개의 성씨로 나누어 중국의 각처로 흩어졌는데, 본래가 기마족(騎馬族) 출신들인 이들 중 중국을 벗어나 다시 북쪽이나 서쪽의 초원생활을 선택했다고합니다.
풍이(風夷)족들을 중국인들은 흉노(匈奴)라고 불렀고요.
=========================================================
잠깐.. 풍족에 대해서
'풍족(風族)은 한때 "스키타이" 라고도 불렸는데 이들 바람족은 중앙아시아의 대초원을 휩쓸면서 풍류도(風流道), 풍월도(風月道) 즉 신선도(神仙道)를 신봉하고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여 (東夷)족 특유의 개성들을 고스란히 전승하고 있다' 고 합니다.
=========================================================
하여간...
김씨성을
처음으로 사용한 김일제로 돌아가면 이 분의 아버지이신 휴도왕(休屠王)께서는
지금의 서안(西安) 북쪽 땅인 무위(武危)의 언지산(焉支山)과 돈황(敦惶)의
삼위산(三危山)이 있는 감숙성(甘肅省) 지역의 흉노족의
왕이셨습니다. 기원전 128년에서 117년 사이에 한나라의 장군 곽거병이
흉노를 토벌하러 대병을 끌고옵니다. 하서지방을 같이 다스리던(어떻게 한 땅을 여럿이서 다스리냐는 말씀을 하시지는 않을꺼라 믿겠습니다. 이들은 유목민족이란걸 잊지마시길) 사람이 곤사왕(昆邪王)이었는데, 한나라의 토벌군에 계속 밀리던
곤사왕은 선우(흉노족의 황제를 말합니다)의 질책이 두려워 휴도왕과
함께 한에 투항하려합니다. 휴도왕이 반발하자 휴도왕을 죽이고 4만의 무리와
함께 곽거병에게 투항하죠. 이 때, 휴도왕의 아들인 김일제는 한나라로
끌려가게되고요. 그리고 한무제의 눈에 들어 시중부마도위, 광록대부를
거처 상장이 되었고, 우연히 무제를 암살하려는 자를 격투 끝에 체포한
공으로 한(漢)나라 제후국의 왕인 "투후" 라는 벼슬까지 받으며, 한무제로부터 금(金)이라는 성까지 받고 가장 아끼는 신하가 됩니다.
시간은
흘러흘러 왕망이 나오는 때가 됩니다. 왕망은 아시죠? 전한을 멸망시키고
신(新)이라는 나라를 세운 사람입니다. 김일제의 후손들은 왕망이 신(新)을 건국하는데 일조해서 실세가 되죠. 하지만 신은 곧 멸망하고 신의 건국에 큰 역할을 했던 김일제의 후손들은 모두 도망치는데 이 때 도망친 무리중에 한 무리가 계림에 정착하게 되는데 이들이 바로 금일제의 5대 손인 금성과 그의 금씨 집단으로 소위 계림의 황금닭에서 태어났다는 삼국사기전설의 주인공 금알지라고
합니다.
<<동방박사는?
페르시아는 유대 나라로부터 가까운 동방으로서 아무리 길게 잡아도
10일 이내에 갈 수 있는 거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방박사들이 유대 나라를
약2년이라는 긴 시간을 여행하였다면 그들의 고국은 유대 땅으로부터 아주 먼 동방이었을 것이다. 그 가장 먼 동방국은 `신라`에 해당된다. 따라서
우리느 동방박사들은 신라인이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 나라의 고대
역사책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시조 박혁거세
편에 보면,
``54년 봄 2월(음력)에 패성(혜성)이 하고(견우성)에
나타났다``(五十四年春二月己酉, 悖聖于河鼓 오십사년춘이월기유 패성우하고)는 문구가 있는데 박혁거세 54년은 예수님이 탄생하신 년도인 BC 4년에
해당된다. (예수님은 한 겨울에 탄생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태어나셨을 때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양떼를 지킥 있었기 때문이다. 팔레스틴에
사는 목자들은 한겨울에 들판에서 밤을 지나지 않는다. )
따라서
신라인에 의해 관측된 그 혜성은 동방박사들을 인도했던 메시야의 별일 가능성이 크다. 사실 예수님 탄생 당시 천문학이 가장 발달한 곳은 중근동 지역이 아닌 극동지역이었다는 것이 현대
천문학계의 정설이다. 신라는 천문학 수준이 매우 높은 나라였다. 지금도 경주에 가면 신라인들이 별을 관측했던 세계 최고의 천문대인 첨성대가 우뚝
서 있다.
영국 왕립천문학회(BSC)에서는 1977년 학회기관지
12월호에 메시야의 별이 나타났다는 2천년 전에는 세계에서 가장 천문학이 발달한 곳이 중동과 극동이었고 중동에서는 태양력을 주로 연구한 반면
극동에서는 별의 운행을 주로 연구했기 때문에 만약 메시야의 별이 나타났다면 그 기록은 반드시 극동 쪽에 있을 것이라는 전제 하에 한국의 문헌을
뒤져서 앞서 소개한 삼국사기의 기록을 발표한 적이 있다.
아주 먼
동방나라라로부터......
그러면 어떻게 신라인이 메시야의 별을 알아 볼
수 있었겠는가? 위고다르(G, Wigodar)는 솔로몬 사후인 B.C 721년 앗시라아 침공에 의해 북이스라엘의 10지파가 포로가 되었으며 세계
곳곳에서 그들의 자손들이 발견된다고 한다. (G, Wigodar, The Encyclopedia of Judaism, Jerusalem
1989. pp.714-715)
고대 이스라엘 역사 연구가인
요셉 아이델버그(Joseph Eikelberg)는 역설키를 B.C 721년 북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했을 때 북왕국 10부족 중 일부가
천산산맥--> 중앙아시아-->지나(支那.중국)-->한국으로 이주하여 정착했다고 한다. 이것을 입증하는 고고학적 유물이 있다.
대동강변에서 제작 연대가 B.C 1200년으로 추정되는 고대 히브리어 문양이 새겨진 와당(瓦當)이
발견된 것이다.(국립중앙박물관) 그 내용은 ``도착했다``
`oleh`???라는 와당 문양과 함께 다음 몇 가지 글을 남겼다. ``신의 나라에 단결하여 들어가자``, ``성도가 모여 기도함으로
회복된다.`` ``잠언을 가르치는 사사가 통치한다.`` 특히 주목할 것은 ``신의 나라에 단결하여 들어가자``는 글인데 '벨렉계 선민'이었던
그들은 백의민족이 살고 있는 우리나라가 '욕단계 선민'의 나라인 것을 알았던 것 같다.
동짓날이 되면 팥죽을 만들어 각 방의 문설주를 비롯, 장독과 헛간 등에 뿌리던 우리 겨레의 풍습은
바로 rmef 곧 한반도까지 건너온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지파로부터 유래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붉은 색의 팥죽으로 양의 피를 대신한 유월절
행사였다. 출12:6.23>>
신라
국왕에 대한 명칭.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국왕의 호칭이
'거서간(居西干) -> 차차웅(次次雄) -> 이사금(泥師今) -> 마립간(麻立干) -> 왕(王)'으로 되어 있고,
최치원(崔致遠)의 제왕연대력(帝王年代曆)에는 모두 왕(王)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설명되어 있다.
한국 단군설화가 숭배하는 토템이
곰과 호랑이인데 초나라 토템 역시 곰이라는 것이다. 초나라 왕족 성은 슝(熊.곰)이다.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다 본 두 지역(三危와 太白)이
오늘날 쓰촨(四川)성과 간쑤(甘肅)성 교차지에 있는 민산(岷山)과 한국 강원도 태백산을 가리킨다고 양 교수는
주장했다.
그는 특히 일각에서 주장하는대로 `태백이 묘향산이라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라고 지적했다.
환웅이 천부인(天符印.거울,
칼, 방울) 3개를 가지고 하늘에서 내려 왔다는 것은 무속신앙의 무구를 가리키는 것인데 초나라는 무속신앙이 성행했고 초나라 후예 묘족(苗族)은
아직 각종 무속신앙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또 묘족은 지금도 단오절에 마늘과 쑥으로 잡귀를 쫓는다고
한다.
양 교수는 이러한 것이 단군신화가 고대 초나라 문화와
일맥상통하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연합뉴스} 기사
중에서...그리스-알타이-신라를 이어 준 汗血馬의
질주
新羅의 신화·알타이의 눈보라·무덤 속의
女戰士·曲玉·금관·積石목곽분·싸랑·솟대·샤먼… 그 속에 감춰진 우리의 原形과
만나다
비로소 피부로 접한 알타이 文化
알타이는 산 이름이다. 동시에 산맥 이름이며, 그 주변 지역의 이름이다. 중앙아시아 내륙지방의
고원지대에 알타이산이 솟아 있고 알타이 산맥이 東西로 흐른다.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카자흐인, 퉁구스인, 브리야트인, 에벤키인, 야쿠트인,
몽골인 등이 넓은 의미의 알타이족들이다. 이들의 각종 언어는 모두 알타이어족에 속하며 한국어와 일본어와도 깊은 親緣(친연) 관계에
있다.
나의 알타이에 대한 관심은 박시인 교수가 소개한 알타이 신화 때문이었다. 朴교수는 알타이 지역을
답사해 보지 못한 채 2차 자료만 가지고 알타이 문화를 소개하였지만, 그 내용에는 한국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꼭 알아야만 하는 것들이
수두룩하였다. 이를테면 영특한 새로서 까마귀의 기능이라든지, 씨족의 조상이나 최초의 왕이 등장하는 장소가 「신령스러운 나무(神樹)」 밑이라는 것
같은 내용은 고구려 고분벽화의 三足烏(삼족오)나, 鷄林(계림:경주)에서 발견되는 김알지 설화 같은 것이었다. 그런 내용을 읽어 가면서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한국어는 알타이 계통의 언어다. 왜 가까운 중국어와 비슷하지 않고 저 멀리 알타이와 가깝단 말인가?
이런 소박한 의문에 대한 역사적·인류학적 해답이 없던 시절은 의외로 오래 계속되었다. 1990년 이후 러시아가 문호를 개방하고 나 같은 인문학
연구자들이 광활한 시베리아와 스텝지대를 자유롭게 탐사할 수 있게 된 연후에야 비로소 글자로만 접하던 알타이 문화를 피부로, 肉聲(육성)으로 만날
수 있었음은 참으로 커다란 행운이었다.
스키타이
女戰士의 모자
알타이 남서쪽에 살고 있는 카자흐족의
민속신앙에 위대한 샤먼의 탄생과정을 설명하는 내용이 있다. 즉, 아기를 낳고
싶은 여인이 커다란 나무 밑에서 몇 시간이고 기도를 한다. 그 간절한 소원이 하늘의 절대자에게 전달되면 새들이 날아와 나무 위에 앉는다. 그러면
그 여인이 잉태한다. 엑스터시 과정이다. 그런 과정으로 태어난 아이가 커서 위대한 지도자가 된다. 나무 - 새- 엑스터시 잉태- 위대한 샤먼의
탄생이라는 圖式이다. 그래서 알타이 문화권에서 태어난 유능한 지도자는 모두 아버지가 없다.
한국사에서도 탄생과정이 신화로 처리되어 있는 사람이 씨족의
始祖(시조)나 왕으로 등장한 경우가 많다. 신라의 朴赫居世(박혁거세)와 김알지의 부모가 불분명하고,
昔脫解(석탈해)와 金首露(김수로)도 누구의 후손인지 모른다.
카자흐스탄의 알마티
동쪽 이시크(Issyk) 고분에서 발견된 기원전 3세기경 사람인 스키타이 여자 戰士(전사)는 금으로 만든 솟대를 모자에 달고 있었는데, 그
모양이 신라 금관의 디자인과 똑같아서 우리를 놀라게 하였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알타이에 발굴되어 「얼음공주」라는 별명이 붙은 여자 귀족의 높이
올린 머리장식에서 금으로 만든 새가 여러 마리 달려 있어 솟대에도 여러 가지 디자인이 있음을 보여 준 사실이다.
신라 자비마립간의
여동생인 鳥生夫人(조생부인)은 이름도 새가 낳은 부인이라는 뜻이지만 그 여인의 직업도 의례를 관장하는 祭官(제관)이었다. 신라와 유사한
민족구성과 문화양상을 지닌 弁辰(변진)에서 大家(대가)가 죽으면 대문에 새의 날개를 달았다고 한다(魏志 東夷傳). 죽은 자의 영혼이 하늘로
날아간다는 뜻이라고 한다.
한국에서 발견된 고고학적인 실물로 청동기 시대에 만들어진 청동 조각품에 나무 위에 새들이 앉아
있는 것들은 한둘이 아니고, 경주 瑞鳳塚(서봉총)에서 발굴된 신라 금관은 여성용이었는데, 머리 부분에 세 마리의 새가 앉아 있었다. 하늘나라로
영혼을 인도하는 새들임에 틀림없다.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역사 속의 새는 아마도 고구려 고분벽화에 등장하는 해(太陽) 속의 세 발 달린 까마귀일
것이다.
신라 왕족들의 무덤 형식은 積石墓(적석묘·Cairn)로서 기마민족의 전통이다. 통나무집에다 시신과
부장품을 집어넣고 막돌로 둥글게 덮는 모양이다. 그 문화를 스키타이-알타이式이라고 부를 수 있다.
신라의 금관 중에
순금제는 모두 적석묘에서만 발견된다. 금관의 제작시기는 5~6세기로서 주인공들은 모두 金씨계 인물들이다.
金씨계의 조상은
김알지이다. 그는 계림에서 발견한 상자 속에 있던 어린아이였다. 같은 신라의 첫 번째 왕인 박혁거세도 하늘에서 날아온 말이 놓고 간 알(卵)에서
탄생한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한국의 신화체계는 하늘에서 成人(성인)으로 내려와 통치자가 되는 고조선의 桓雄(환웅)이나 부여의
解慕漱(해모수) 같은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알이나 상자(櫃) 속에서 태어나는 사람으로 구별된다. 전자를 天孫(천손)신화라 부르고 후자를
卵生(난생)신화라고 부른다. 아시아에서 천손신화는 기마민족인 스키타이,
알타이, 몽골족의 신화이고 난생신화는 농경민족인 대만의 빠이완족, 타이족, 자바족, 인도의 문다족의 사회에서 발견되는 현상이 뚜렷하다. 즉
천손신화는 北아시아의 기마 유목민족들의 신화이고 난생신화는 南아시아의 농경민족들의 신화이다.
漢字로 금(金)이라는
뜻은 「쇠(鐵)」의 뜻과 「순금」의 의미도 있지만 역사에 등장한 신라 김알지로 시작되는 「김」은 순금의 뜻이다.
따로 이야기하겠지만
김(金)이라는 말의 뜻이 기마민족의 언어인 알타이어로 「금(Gold)」이라는 뜻이다. 멀리 터키어에서부터 퉁구스어, 브리야트어, 몽골어에
이르기까지 알트, 알튼, 알타이 등이 모두 알타이어족의 공통적인 의미로 금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신라 金氏族들은 일단 알타이 문화지역 출신이라는
심증은 충분하다.
신라인의 이중 구조:
북방+남방族 = 신라 金씨의 조상인 김알지의 이름도 알타이 계통 사람이라는
암시로 여겨진다. 알지-알치-알티로 어원 추적이 가능하므로 김알지의 이름은 알타이 출신 金씨라는 뜻으로 Gold-Gold라는 뜻이 중복된 흥미
있는 이름이다. 그런데 김알지가 알타이 계통의 인물이라는 것은 그의 탄생설화가
얽혀 있는 곳이 鷄林(계림)으로 알타이적인 영웅탄생에 나무(神木)와 직결되어 있고, 그의 후손들의 무덤인 경주의 신라 왕족들의
積石木槨(적석목곽) 형식의 무덤들은 북방 기마민족들의 매장 전통을 극명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김알지는 계림에서 발견된 상자 속에서 동자의 모습으로 발견된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상자
속에서 동자로 태어난다는 것은 난생신화의 구조이다. 나무, 즉 神木에서
주인공이 태어난다는 내용은 분명히 기마민족인 알타이적 천손신화인데, 정작 태어나는 순간은 남방 농경민족의 난생신화의 주인공으로 분장되어
있다.
왜
그럴까? 기마민족이면 떳떳하게 기마민족식 (알타이 민족의 신화인 하느님의
자손으로 태어나는) 天孫신화의 주인공이라고 하지 못하고 왜 구차하게 농경인들의 난생신화의 주인공처럼 탄생하였다고 꾸며져 있을까? 여기에 초창기
신라의 통치계층 인구들의 말 못할 사정이 있었던 것 같다. 경주지방에는 선사시대부터 농경인 인구가 살고 있었다. 이는 경주 지역의 수많은
고인돌이 증명하고 있다. 그 후에 여러 차례에 걸쳐 소수의 기마민족이 이민 왔다. 신라인들은 삼국지 위지 東夷傳(동이전)에 기록되어 있는 辰韓(진한)족이다. 중국 서북쪽의
秦(진-진시황의 진)나라에서 노역을 피하기 위하여 이민 온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소수였다. 다수의 토착 농경인들 위에 통치자로 군림하기에는 인구가 모자랐다. 하는 수 없이 여러 代(대)를 기다려야만 하였다. 드디어
미추왕(麻立干) 때 처음으로 金氏系 인물이 최고통치자로 등장할 수 있었다.
그때 소수의 기마민족 출신 金氏系 인물이 다수의 농경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농경인들처럼 난생신화의 주인공이라고 분장하지 않을 수 없었을지
모른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 궤짝 속에서 동자로 발견된 주인공이 북방계 토템인 신령스러운 나무, 즉 계림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꾸몄을 가능성이
짙다.
현대에 와서도 각종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후보자가 평소 믿지도 않던 불교의 부처님
點眼式(점안식)에도 참석하고, 한 번도 가 보지 않던 시장에 가서 아주머니들의 손을 붙잡는다.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통치권으로 부상하려는
사람들이 별의별 변신방법을 다 동원하는 현상은 똑같다.
알타이 고분에서
미라로 발견된 동양계 여인의 盛裝한 모습에서 올린 머리에 장식된 순금제 새들이 있다. 이 새들도 주인공의 탄생과 죽음에 깊이 관여하였던 영혼의
새들로서 여주인공의 혼을 天上의 세계로 인도하는 역할이다. 신라의 천마총에서 발견된 금관의 이마 부분에 커다란 새의 날개 한 쌍(鳥翼形 裝飾)이
달려 있는 것과 똑같은 고대인의 영혼관이다.
[출처] 신라인과 스키타이인의 관계|작성자 김충식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