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행복한 날, 행복한 아침입니다. 새 날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 진리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뜨거운 열정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18-20절을 보면 엘리후는 자신의 변론의 열정을 강하게 피력하고 있습니다. 욥의 친구들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서 침묵한 것에 비해서 엘리후는 온통 하고 싶은 말로 심령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는 그러한 자신의 심령의 상태를 '봉한 포도주와 새 가죽 부대의 터짐'에 비유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부대속에 가득 채워져 봉해진 포도주가 발효하면서 터져 나올 것 같다는 것입니다. 꼭 해야 할 말이 마음에 가득 차 있어서 말하지 않으면 가슴이 터질 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는 말을 발하여야 가슴이 시원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도 혹 이와 같은 경우를 경험 한 일이 있지 않습니까? 말을 하지 않으면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상황, 말을 하지 않으면 답답해서 미칠 것만 같은 상황, 말을 해야만 시원할 것 같은 상황을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무엇보다도 진리에 대하여 이러한 마음과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렘20:9) 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진리를 외치다가 수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지 않기로 다짐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곧 그의 심령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고는 답답하여 견딜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의 심령은 불붙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으면 그의 가슴은 터질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말씀을 전하면 전할수록 고난은 더욱 극심하여졌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가슴이 시원하였습니다. 베드로와 요한도 복음 전하는 것을 금하는 산헤드린 앞에서 말하기를 자신들은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행 4:20). 바울도 부득불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는 필연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고전 9: 16). 이렇게 하나님의 진리를 아는 자들은 이 진리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선포되기를 열망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진리에 대해서는 분명하고 담대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진리에 대해서는 그것을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뜨거운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마치 스데반이 돌에 맞아 순교하면서도 구원의 진리를 증거하기 위해서 마지막 열정을 다했던 것처럼 우리는 그런 자세로 진리를 증거해야 합니다. 사실 말씀은 역동성이 있습니다. 폭발적인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이 그 안에 있는 사람은 그것을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됩니다. 만일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 사람에게 말씀은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죽은 문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심령은 과연 진리를 전하고자 하는 뜨거운 열정으로 불타오르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서 역사합니까? 우리 함께, 진리를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은혜를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각자 기도드리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