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409 비유 문학에서는 비유가 중요하다. 특히 압축적이며 운율을 요구하는 시에서는 핵심일 수있다. 고등학교시절 비유에 대해 배운것은 직유와 은유정도였고 의인법 (Personification)을 추가할 수있지만 이번 주의 시창작론에서 환유와 제유라는 두가지를 더 배웠다. 직유 (Simile)는 식별하기 쉽다. "그녀는 꽃처럼 아름답다" 혹은 "그녀는 꽃같이 아름답다"와 같이 특정 접미사가 사용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은유 (Metaphor)는 "그녀는 꽃이다"와 같이 직접 다른 것으로 표시하기에 주목해야 인식된다는 차이가 있다. 의인법의 하나로 활유법을 들 수도 있는데 이는 무생물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이고 인간도 생명을 가지고 있기에 하나의 방법으로 묶을 수있다. 내가 좋아하는 김요섭 시인의 "은빛의 신"은 제목부터 은유를 사용했고 내용에 낡은 혹은 오래된 대신 "늙은 물래방아" 등 의인법을 많이 사용했다고 기억한다. 이번 주에 배운 환유와 제유는 둘 다 비유법이지만, 대체 방식이 다르다는 게 핵심이다. 즉 환유 (Metonymy)는 서로 밀접한 관계 있는 것으로 바꿔 표현하지만 제유 (Synecdoche)는 부분으로 전체 혹은 전체로 부분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다르다. 캐나다의 경우 연방정부가 위치한 수도 오타와가 정치나 정책분야에서 언급되면 연방정부를 의미하고 이는 환유라고 볼 수있다. 제유의 경우 "입이 많다"가 사람이 많은 것을 의미할 수있다. 즉 부분이 전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어찌보면 제유나 환유보다 은유가 시에는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레방아소리 높다"와 같은 시인의 은유는 소나기로 불어난 냇물의 속도를 표현하는데 압축적으로 시각화와 청각화까지 가능하기에 훨씬 강력한 효과를 가진다. 이에 비해 요즈음 오온의 공함을 느끼고 명상에 사용하고 있는 반야심경과 같은 것은 염불로서 활용되기에 운문적인 성격을 가져야 하지만 , 원문인 산크리스트어를 한문으로 번역했던 7세기 당나라 삼장법사의 시적 능력이 제한되었는지 의미의 전달은 충실하지만 운율적인 부분은 부족하다. 그래서 염불하는 고승들의 동영상을 보면 의미단락이 아닌 길이단락으로 염불이 이루어짐을 볼 수있다. 더우기 한글이 아니고 한문이기에 들으면서 의미를 바로 인식하기는 한계가 있어 염불과 인식이 별도로 이루어지는 것이 효과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