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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로.”
그쪽으로 머리를 돌린 김가영이 <그사람>을 보았다. 아직 이름을 모르니 <그사람>이다. 그가 나왔을 때 찰스가 묻는다.
“미스터, 구찌 동굴에 가지 않을랍니까?”
그 순간 현관 앞에 모인 세 쌍의 시선이 그에게 모여졌다. 세 쌍이란 <캔디> 민박에 투숙한 수잔, 제임스와 김가영이 되겠다. 수잔은 U.K 즉, 유나이티드 킹덤, 대영 제국녀이고 제임스는 U.S.A 미국인으로 흑인이다. 그의 시선이 셋을 스치고 지났을 때 찰스가 말을 잇는다.
“점심 포함해서 10불, 지금 출발하면 오후 6시까지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찰스는 베트남인 가이드로 지금 골목밖에 6인승 승합차를 대기시켜 놓은 상태다. 한사람만 더 태우면 되는 것이다. 그때 그가 김가영에게 물었다. 물론 한국어다.
“싼데. 잘 아는 녀석입니까?”
“아뇨.”
그의 시선을 받은 김가영이 말을 잇는다.
“하지만 싸다고 믿을 수 없는 건 아니겠죠. 이곳 물가도 싸니까요.”
“그렇군.”
머리를 끄덕인 그가 찰스에게 말했다.
“난 예약해놓은 것이 있어서. 실례.”
그리고는 몸을 돌리더니 발을 떼어 금방 골목 밖으로 사라졌다.
“갓뎀.”
제임스가 어깨를 부풀리며 투덜거렸지만 김가영을 의식하고는 더 이상 입을 열지는 않는다. 같은 코리안 인 줄을 알기 때문이다.
“이봐요, 찰스. 한사람 채울 때까지 마냥 기다려야 돼? 도대체 언제까지...”
수잔이 찰스에게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김가영은 그가 등을 보인 순간부터 가슴이 서늘해져서 멍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한사람이 더 있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1인당 3불씩만 더 내셔야...”
수잔의 잔소리를 다 듣고 난 찰스가 그렇게 말했을 때 김가영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되면 별로 싼 것도 아니다.
구찌 터널은 호치민시에서 30키로쯤 떨어진 농촌지역에 파놓은 터널이다. 1960년도의 전쟁 때는 구치현 내의 터널 길이만 200키로가 넘었다.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은 이 땅굴을 파괴하려고 지상 작전을 펼쳤다가 실패하고는 공습으로 초토화 시켰다. 그러나 지금은 일부가 복원되어 관광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꽝! 꽝! 꽝!”
연속으로 세발을 쏜 윤성일이 개머리판에서 볼을 떼고는 표적을 보았다. 1백 미터쯤 떨어진 표적은 실물크기의 두 배쯤으로 그려진 호랑이다. 총알은 호랑이 머리를 겨냥했지만 통나무에 그려진 표적에는 이미 수백발의 총탄에 맞은 터라 표시가 나지 않는다. 윤성일은 다시 M-1 소총의 개머리판을 뺨에 붙였다. M-1은 2차세계대전시에 미군이 사용하던 소충이니 70년이 넘는 고물이다. 윤성일은 총구를 호랑이 꼬리 쪽으로 돌렸다.
“꽝! 꽝!”
M-1의 발사음은 우렁차다. 탄창의 크립에는 둘째 손가락만한 탄환이 8발 장탄되어 있는데 한발을 쏠 때마다 빈 탄피가 우측 15도 허공으로 튕겨져 나갔다. 두발은 꼬리에 맞았다. 영점 조정이 잘된 총이었다. 꼬리에 대고 쏘는 놈이 드물었기 때문인지 꼬리 부분의 나무 조각이 부서진 것이다. 다시 개머리판을 뺨에 붙인 윤성일이 이제는 호랑이 등 위쪽의 흙담을 겨누었다. 흙담에 한 무더기의 흰 꽃이 피어있었던 것이다.
“꽝! 꽝! 꽝!”
나머지 세발이 꽃무더기 속으로 파고들었고 마지막 발사음과 함께 빈 탄피와 함께 크립이 쇳소리를 내며 튕겨 나갔다.
“나이스 샷!”
뒤에서 외치는 소리에 소총을 내려놓은 윤성일이 몸을 돌렸다. 사대 밖에서 흑인 사내 하나가 웃고 서있다. 민박집 현관 앞에서 만났던 흑인이다. 그때 윤성일의 시선이 그 뒤쪽으로 머리만 드러난 김가영을 보았다. 거리는 15미터 정도였지만 영점 조준이 잘된 시선이 정통으로 김가영의 눈동자를 맞췄다.
“저 자식.”
제임스가 그를 향해 수작을 거는 뒤쪽에서 수잔이 말했다.
“예약이 있다더니 저자식도 구찌에 왔군 그래.”
대답대신 김가영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의 일행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그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일행은?”
제임스도 그것이 궁금한지 먼저 물었다.
“나 혼자 온 거야.”
대답한 그가 셋을 둘러보고 묻는다.
“당신들은 셋?”
“그래.”
대답은 수잔이 했다. 수잔은 뼈대가 굵고 키가 크다. 하지만 군살이 없는 날씬한 몸매인데다 미인이다. 제임스는 노골적으로 추근거렸지만 수잔은 냉담했다. 수잔이 지그시 그를 보았다.
“당신, 뭘 타고 왔어?”
“렌트카.”
그 순간 김가영은 수잔의 눈이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이런 눈빛은 여자가 잘 안다. 수잔은 그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럼 그 차로 우리 태워줄 수 있어? 우린 그 안내원놈이 차를 이중으로 뛰게 해서 지금 한 시간째 기다리는 중이야.”
그렇다. 싼 게 좋은 것이 아니었다. 수잔의 부탁을 받은 그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지.”
짚은 무개차여서 바람이 거침없이 밀려왔다. 머리칼이 이렇게 흩날리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상쾌했다. 김가영은 뒷좌석에 등을 묻고 힐끗 운전석을 보았다. 비스듬한 위치여서 그의 옆모습이 보인다. 옆자리에 앉은 수잔이 열심히 이야기를 했고 그는 듣는 편이다. 그의 바로 뒤쪽에 앉은 제임스의 컨디션은 차안의 넷 중 최악이다. 두툼한 입술을 꾹 닫은 채 흰 창이 많은 두 눈을 히번덕거리고만 있다. 그때 수잔이 손으로 그의 어깨를 치면서 웃었다. 같은 방에서 이들은 함께 지냈지만 이렇게 환한 모습은 처음 본다. 그때 그가 차를 길가의 주유소에 세웠다. 주유소 직원에게 기름을 넣으라고 말한 그가 차에서 내리더니 셋을 둘러보며 물었다.
“뭘 마시고 싶어?”
옆쪽 가게에서 마실 것을 사려는 것이다. 그러자 수잔이 차에서 내렸다.
“같이 가, 윤.”
제임스는 가만 있었고 김가영은 한국어로 대답했다.
“전 괜찮아요.”
그때 그가 김가영에게 말했다.
“내 이름은 윤성일이요.”
한국어다. 숨을 들이켠 김가영도 한국어로 대답했다.
“전 김가영이라고 합니다.”
“셔츠엔 김나영이라고 써진 것 같던데.”
“비슷하게 보였겠죠.”
둘의 한국어를 잠자코 듣던 수잔이 윤성일에게 눈을 흘겼다.
“지금 뭐라고 했어?”
그러자 쓴웃음을 지은 윤성일이 가게 쪽으로 몸을 돌리면서 말했다.
“한국 사람은 다 친척이야. 그래서 서로 확인 해야 돼. 잘못하면 사촌끼리 만나 연애할 수 있으니까.”
그러자 잠자코 있던 제임스가 빙그레 웃었다.
다시 호치민으로 돌아가는 차 안이다. 수잔의 수다에 응답하던 윤성일이 갑자기 머리를 돌려 김가영에게 물었다. 물론 한국어다.
“난 스물여섯인데. 거기는?”
“스물셋요.”
바로 김가영의 대답을 들은 윤성일이 다시 앞쪽을 응시한 채 운전을 했고 수잔의 나이트 무용담이 계속되었다. 방콕의 나이트클럽에서 논 이야기다. 그쪽 이야기를 제임스도 거들었으므로 차 안 분위기가 떠들썩해졌다. 대화는 수잔과 제임스가 주도했고 윤성일은 듣는 쪽, 김가영의 존재는 무시되었다. 그때 다시 윤성일이 뒤에 힐끗 시선을 주고 나서 묻는다.
“오늘 저녁 시간 있어?”
“근데 왜 반말하세요?”
일초도 망설이지 않고 즉각 김가영이 따졌지만 윤성일의 대답은 듣지 못했다. 수잔이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야?”
“나이트에 가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어.”
수잔과 윤성일은 지금 김가영의 이야기를 한다. 그때 김가영이 영어로 말했다.
“미안한데. 난 나이트 체질이 아냐. 너무 시끄럽고 어수선해.”
그러자 윤성일이 한국어로 말했다.
“내가 세 살 위 아냐? 긴장 좀 풀어.”
“누가 긴장했다고 그래요?”
한국말은 거기서 끝났다. 이번에는 제임스가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하긴 그래. 그곳에 약쟁이가 많았어. 절반 이상이 약 먹고 취한 놈들이더라구.”
“약 먹어보았어? 대마는?”
하고 수잔이 물었으므로 윤성일이 대답했다.
“난 해본 적 없어. 한국에서는 대마초도 불법이야.”
머리를 저은 윤성일이 이번에는 앞쪽을 향한 채 한국어로 말했다.
“여덟시에 골목 건너편 통닭집으로 나와. 나하고 술 한 잔 하게.”
김가영은 대답하지 않았고 다시 수잔이 말했다.
“나도 약 끊은 지 반년쯤 되었어. 아니, 8개월쯤 되었나?”
말끝이 공허하게 짚 뒤로 흘러갔는데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치킨 식당으로 들어서자 기다리고 있던 윤성일이 눈으로 앞쪽을 가리켰다. 그 모습이 마치 몇 년 동안 만난 남자 같은 시늉이어서 한편으로는 편안해졌고 나머지 한편은 반발심이 일어났다. 그 반발심중 75% 정도가 저 익숙한 제스처로 여자 꽤나 거쳤을것 같다는 생각이 차지했다. 하지만 김가영은 잠자코 앞쪽에 앉는다. 윤성일의 노련한 태도에 대한 댓가로 이쪽 인사도 생략, 표정도 시큰둥하게 만들었다.
“닭 날개가 괜찮던데. 먹을거야?”
대뜸 윤성일이 묻자 김가영은 눈을 치켜떴다가 곧 내렸다. 왜 또 발말 하느냐고 물으려다 만 것이다. 괜히 자존심 내세울 것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윤성일이 시선을 주고 있었으므로 김가영은 머리를 끄덕였다.
“좋아요.”
“너도 반말해. 하지만 뒤에 형이나 선배 또는 오빠를 붙여야겠지.”
“스물여섯이라며. 지금 뭐해요?”
김가영이 불쑥 물었을때 윤성일이 종업원을 불러 이것저것을 시키고 나더니 다시 둘이 되자 대답했다.
“지금 치킨 시켰다. 왜?”
“직업이 뭐냐구?”
“네가 보다시피 배낭 여행자.”
“실업자구만.”
“피차 마찬가지 같은데.”
“다음 행선지는 어디....로?”
“어디야? 해봐.”
“어디야?”
“육로로 바닷가를 타고 북상해서 하노이까지 가는거다.”
테이블에 팔굽을 짚고 두 손등 위에 턱을 괴인 윤성일이 지그시 김가영을 보았지만 초점이 멀다. 숨을 삼킨 김가영이 윤성일을 보았다. 짧은 머리, 검게 탄 얼굴이었지만 윤곽이 굵고 조화를 이룬 용모다. 신장은 1미터 85쯤 되었을까? 크고 날씬한 체격. 여자들의 시선을 빨아 들일만 하다. 그리고 이 무심한 것 같은 태도, 툭툭 던지는 말투에다 강하다가 이렇게 초점이 먼 시선. 나는 이 남자를 바람의 전설이 떠도는 땅에서 만나 같은 비바람을 맞았다. 그때 윤성일의 시선에 초점이 잡혀졌다. 슬그머니 잡혀지는 바람에 김가영은 깜짝 놀랐다.
“뭐 생각하냐?”
“아냐. 아무것도...”
당황한 김가영이 머리까지 저었을 때 윤성일이 다시 묻는다.
“네 계획은 뭐야?”
“아직...”
“이 자식이 큰일났군.”
“뭐가...“
“요 붙이려고 했지?”
“아니?”
눈에 힘을 준 김가영을 보더니 윤성일이 입맛을 다시고 나서 말했다.
“그러니까 인마, <다깨다> 같은 놈들이 치근거리는 거야. 너 앞으로 <다자다> 같은 놈이 또 나타날거다.”
“다자다라니?”
되물었다가 그때서야 말뜻을 알아차린 김가영이 피식 웃었다.
“웃겨. 계획이 없으면 다 흐트러지는 줄 아는 모양이지?”
“몇일 계획으로 나왔는데?”
“열흘 계획인데 방콕 거쳐서 오느라고 나흘 지났어.”
그때 시킨 음식이 나왔으므로 둘의 말은 그쳤다. 윤성일이 시켜먹은 경험이 있는 터라 닭 날개에 쌀국수, 그리고 고치구이까지 먹음직했다. 이제 둘은 늦은 저녁을 먹는다. 고치구이를 씹던 윤성일이 시선을 식탁에 내린 채로 말했다.
“나하고 같이 다니자.”
고치를 내려놓은 윤성일이 똑바로 김가영을 보았다.
“그때 말야. 미토에서 <다깨다>가 너한테 동행하자고 했을 때 나를 보았던 네 얼굴이 계속 어른거려. 어젯밤에는 귀신처럼 꿈에도 나타났어. 그래서 결심했어. 귀신하고 같이 여행을 하면 어떨까 하고.”
첫댓글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글씨를 조금 더 키워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즐감요
^^
즐감요
즐감요~
감사히 잘봤습니다~
굿,,즐감,,
즐감하고 갑니다 .
잘 읽고 갑니다^^
♥ 늘 감사합니다.
역시 스토리가 빨라서 좋아,,
기대가 만땅이네요!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